예루살렘(1)
하느님 지성소 모셨던
이스라엘 민족의 '심장’
▲ 예루살렘은 다윗 왕이 여부스족으로부터 빼앗아(2사무 5,9) 정치ㆍ종교의 중심지인 새 왕국의 수도로 정하고 세운 도성이다. 지금의 예루살렘 성곽은 오스만 튀르크 제국 슐레이만 2세가 1532년부터 1539년까지 복원한 것이며 다윗 도성은 이 성곽 밖에 위치한다. 가운데 황금돔 모스크 자리가 바로 모리야 산이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화'를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주시는 구원의 구체적 표현으로 여겼다. 오직 하느님만이 세상에 평화를 주시며 전쟁과 갈등이 없는 평온을 보장해 주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지금도 하느님의 지성소를 모셨던 성채를 '평화의 도시', '평화의 근원'이란 뜻의 히브리말 '예루살라임'이라 부른다. 그리스말 '예로솔리마', 라틴말 '예루살렘'으로 불리는 이 도시가 오늘날 가장 위태로운 지구촌 화약고라니 아이러니하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Jerusalem Introduction
https://youtu.be/Aad2JgHATJ8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중앙 산악 지대의 키드론 골짜기 서쪽 해발 700m 고지에 자리잡은 도시이다. 동으로 유다 광야, 서로 쉐펠라 목초지, 남으로 베들레헴, 북으로 벤야민 산지가 있다.
예수시대 예루살렘은 성전을 중심으로 윗도시와 아랫도시로 구획돼 있었다. 윗도시에는 제관들과 고관들이 살았다. 반면, 아랫도시에는 석공, 도기 제조공, 방적공 등 여러 계층의 장인들과 서민들이 거주했다. 극심한 사회 갈등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은 성전을 중심으로 결속돼 있었다. 성전은 윗도시 사람들의 유일한 존재 이유이자, 아랫도시민들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는 성벽을 끼고 3개의 계곡이 흐른다. 성벽 동쪽과 올리브산 사이에 위치해 있는 '키드론 계곡'은 우기를 제외하고 항상 메말라 있다. 키드론은 '더럽다'는 뜻인데 여호사밧이 계곡 밑에 무덤들이 즐비해 있는 것을 보고 이 곳을 키드론이라 이름 붙였다(요엘 4,2-12).
다윗 도시 서쪽 언덕에 형성된 '티로포에온 계곡'은 자연스럽게 윗도시와 아랫도시의 경계 역할을 했다. 이 계곡에 실로암 연못(이사 8,6)이 있었으나 지금은 계곡의 흔적만 겨우 볼 수 있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Pool of Siloan and Hezekiah's Tunnel
https://youtu.be/1ZznAtue584
예루살렘 서쪽에 발달한 '힌놈 계곡'은 우리말로 '지옥' 또는 '죽음'을 뜻한다. 유다와 벤야민 지파의 경계지역(여호 15,8)이었던 이 계곡에는 오늘날 그리스 정교회 성 오누프리우스 수도원이 자리잡고 있다.
네 복음서는 예수의 예루살렘 활동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마르코ㆍ마태오ㆍ루카 복음서는 예수께서 공생활 이후 파스카 축제 때 단 한차례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마태 21,1-11, 마르 11,1-11, 루카 19,28-38)으로 기술하는 반면, 요한 복음서는 예수께서 적어도 다섯 차례 예루살렘에서 머문 것으로 증언한다. 특히 요한 복음서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머물던 정확한 날짜와 세부 활동까지 자세히 밝히고 있다.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께서 파스카 축제 때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성전 환전꾼들을 내쫓고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3-22)고 했다. 예수께서는 다시 유다인 축제 때 예루살렘에 올라가 '양문(사자문, 스테파노문)' 근처 벳자타 연못에서 안식일에 병자들을 치유하다 유다인들과 시비가 붙었다.
예수께서 세번째로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은 초막절 때였다. 히브리말로 '수꼿'이라 하는 초막절은 유다인 3대 명절 중 하나로 유다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해 약속의 땅에 정착하기까지 광야에서 떠돌아다닌 것을 기념해 초막을 치고 축제를 벌였다. 초막절은 보통 태양력으로 9~10월경에 열린다. 요한은 예수께서 초막절 때 남몰래 예루살렘에서 갔고, 축제 마지막 날 성전에서 군중들에게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라고 가르쳤다(요한 7,1-39).
예수께서는 초막절 석달 후 지내는 '성전 봉헌 축제' 때 또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셨다. 성전 봉헌 축제는 기원전 164년 새 성전을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날로 예수께서는 성전 동편 행각에 있는 솔로몬 주랑에서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고 가르치자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던지려 하며 예수를 배척했다(요한 10,22-39).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오른 것은 라자로를 살린 다음 맞은 파스카 축제 때다. 봄철 축제로 누룩 없는 빵을 먹으며 유다인들이 이집트 탈출을 기념해 지내는 이 축제는 히브리말로 '페사흐', 우리말로 '과월절' 또는 '무교절'이라고도 한다. 예수께서 라자로를 살렸다는 소식을 들은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최고의회를 소집해 예수를 잡아 죽이기로 결의했다(요한 11,45-57). 이때 예수께서는 예전에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입성했다. 예수께서는 마치 왕이 입성하듯 어린 나귀를 타고 성문으로 들어왔고, 순례자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를 맞으며 "호산나!"를 노래했다.
3000여 년 전인 기원전 1000년께 다윗이 천혜의 요새인 이곳에 도성을 세워 유다 바알라에서 '하느님의 궤'를 모셔왔다(2사무 6장 참고). 다윗은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려 했던(창세 22, 1-22) 모리아산에 집터를 정해 '시온'이라 했고, 솔로몬이 그곳에 주님의 집을 지어(2역대 3,1)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셨으며(2역대 5,2-7.10), '주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찼다(1열왕 8,1-66).
▲ 토라(모세오경)에 따르면 모든 유다인 남자는 매년 초막절, 수확절, 추수절 때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해야 했다. 13세부터 이 의무가 적용됐지만 유다인들은 이 율법에 익숙해지기 위해 12세 때부터 대부분 순례를 떠났다. 루카 복음에 따르면 예수도 12세 때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했다.
사진은 만 13세가 된 한 유다인 소년이 가족과 함께 토라 율법 규정을 지킬 의무를 서약하는 예식을 하고 있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다인들에게 모든 시대를 통해 삶의 중심이 됐다. 토라(모세오경)에 따라 이스라엘 모든 남자는 해마다 과월절(파스카)과 수확절(오순절), 추수절(초막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했다(탈출 23,14-17 참조). 또 예루살렘을 향해 무릎을 꿇고 하루 3번씩 기도하는(다니 6, 11) 풍습이 생겨났고, 회당도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지어졌다. 예수의 부모도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가곤 했고, 예수도 12세 되던 해 토라에 따라 예루살렘 축제에 참가했다(루카 2, 41-42).
다윗 도성과 예루살렘 성전은 기원전 586년 바빌론 군대에 의해 모두 파괴됐고, 유다인들은 포로로 끌려가 바빌론에서 70년간 종살이를 했다(2열왕 25장).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이후 즈루빠벨과 예수아가 나서 기원전 515년에 성전을 재건했으나 가장 중요한 계약 궤를 안치하지 못했다(에즈 5,1-6,18). 왜냐하면, 예레미야 예언자가 성전이 파괴되기 전에 신탁을 받고 천막과 계약 궤를 들고 모세가 하느님의 상속 재산을 본 느보산으로 올라가 어느 동굴에 숨기고 입구를 막아 버렸는데 그 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2마카 2,4-8).기원전 37년 로마에 의해 유다 왕이 된 헤로데는 즈루빠벨의 성전을 부수지 않고 새 성전을 짓기 시작해 46년의 긴 공사 끝에 완공됐다. 헤로데 성전은 다시 한번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지가 됐다. 하지만 이 성전은 겨우 6년 만에 폐허가 됐다. 66~70년에 일어난 제1차 유다 항쟁을 진압한 로마 티투스 황제에 의해 예수의 예언대로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루카 21,6) 완전히 파괴됐다.
▲ 다윗 도성과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의 예언대로 모두 파괴됐다.
사진은 헤로데 성전 벽 가운데 유일하게 지금까지 남아 있는 서쪽 벽(통곡의 벽)에서 유다인들이 키파를 머리에 쓰고 기도하고 있다.
이스라엘 전승에 의하면 이날은 유다력 '아브'(8월) 달의 9일째 되는 날로 바로 기원전 586년에 솔로몬의 성전이 바빌론군에 의해 불타 없어진 바로 그날이었다. 유다인들은 솔로몬 성전과 헤로데 성전이 똑같이 파괴된 이 운명의 날을 기억하기 위해 통곡의 벽에서 예레미야의 애가를 읽으며 성전 파괴를 슬퍼하며 메시아 도래를 기도하고 있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Jerusalem Introduction
https://youtu.be/Aad2JgHATJ8
[알고 가면 재미 두 배]
1. 팔레스타인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급적 피하라.
예루살렘 순례는 항상 자유롭다. 하지만 언제나 보이지 않는 감시의 눈길이 있다는 것을 주의하라. 특히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면 출국시 공항에서 엄격한 몸검사, 짐검사로 낭패를 당한다.
2. 한국에서 준비해간 음식을 식당에서 내놓으면 안 된다.
유다인 식당에는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가리는 랍비가 있다. 랍비의 검열을 통과하지 않은 음식은 모두 부정한 것으로 간주한다. 부정한 음식을 담은 접시나 그릇은 모두 깨버리기도 하고 심한 경우는 식당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3. 레스토랑ㆍ커피숍 음식값에는 무장 경비원 수당이 포함돼 있다.
커피숍 등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영수증이 메뉴판 가격보다 비싸게 청구된다. 무장 경비원 수당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비싸지 않으니 신변 안전을 위해서도 무장 경비원이 있는 가게를 갈 것을 추천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천주교 광주대교구
남동 5.18 기념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