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프람과 열쇠 ]
2018101559 구승혜
뉴프람정. 내가 복용했던 항우울제의 이름이다. 이 약을 처방 받던 날, 의사 선생님은 우울증은 자물쇠와 같은 것이라 말했다. 내 우울이 시작된 원인을 찾아야 자물쇠에 맞는 열쇠를 찾아 우울을 끝낼 수 있다는 말이었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막연하게 내 우울의 원인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었다. 우울의 원인이 나 자신이라면 나를 없애야 하는 걸까? 그럴 수는 없었고 그러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야만 했다.
내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이유로 처음 떠올린 것은 폭력의 기억이었다. 나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고,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였다. 그래서 친구를 믿을 수 없었고, 사랑을 믿을 수 없었다. 폭력이 남긴 상흔이었다. 마음의 상처는 몸의 상처처럼 저절로 딱지가 앉지도 새 살이 돋아나지도 않는 것이었다. 이 상처는 내 우울의 자물쇠 중 하나가 분명했다. 하지만 열쇠를 찾는 것이 문제였다. 이미 상처가 난 마음을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 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치 이미 망가진 장난감을 들고 와 고쳐 달라고 떼 쓰는 7살짜리 아이를 만난 듯 했다. 당혹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열쇠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나의 상처는 ‘이미 받은’ 것이 아니라 ‘계속 받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질책하고 있었다. ‘내가 뭐가 맘에 안들었을까?’ ‘나는 멍청해서 사랑 받지 못하는 걸까?’ 이 따위의 질문들로 스스로를 괴롭히느라 폭력을 비난하지 못 하고 있었다. 폭력은 명백하게 그들의 잘못이라고 되뇌이는 것은 첫번째 자물쇠의 열쇠가 되어주었다. 묻어 두었던 상처를 꺼내보는 것은 아주 따가운 일이었기에 여러번 움찔거려야 했지만, 나는 드디어 회복을 시작했다.
처음엔 자물쇠를 하나 풀었으니 이제는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도 그리 자비롭지는 않았다. 나는 나아지지 않았다. 자물쇠의 구조는 생각보다 복잡했고 다음 자물쇠를 찾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참을 미루다 몇 달만에 하는 방 정리는 차라리 쉬운 편이었다. 내 마음의 방은 엄마가 ‘돼지 우리’라고 부르는 내 방보다 백 배 천 배는 더 지저분했다.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 있던 생각들 중에서 아주 솔직하고도 못난 생각을 찾았다. 나는 늘 스스로를 거짓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착함’에는 어설펐고 ‘못됨’에는 어색했다. 착한 척 했지만 나는 그리 유하지 못했고 모진 척 했지만 사실 불안했다. 위선과 위악 사이를 맴돌며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 세상에는 이렇게 빛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왜 이리도 푸석푸석하고 못난 걸까. 나는 왜 당당하지 못하며 그에 솔직하지도 못한 걸까. 이런 생각들이 머릿 속을 부유하기 시작하자 나는 열쇠를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무기력에 빠졌다. 죽고 싶었다. 아니 그냥 원래 없던 사람처럼 사라지고 싶었다. 하지만 살고도 싶었다. 제대로 살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했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였다. 나 자신에게 생각을 바꾸라고 협박했다. 나는 착한 체 하는 것이 아니라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모진 체 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태도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발악이자 발버둥이었다. 내가 끼워 넣을 수 있는 최선의 열쇠였다. 내가 나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애를 쓰는 일은 모든 것은 아닐 지라도,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꾸어 주었다. 스스로를 협박하고 또 협박 당하는 일은 아주 피곤했고, 약 없이도 잠에 들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나를 사랑하는 것이 어렵다. 아직도 종종 자기 비하를 하고, 며칠씩 무력감과 불면에 시달리기도 하며, 가끔씩은 마음에 또 다른 자물쇠가 채워지도 한다. 하지만 나는 다시 열쇠를 찾을 것이다. 오래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더라도 상처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사랑을 할 것이다. 나는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슬픔을 인정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더 이상 뉴프람은 먹지 않는다.
첫댓글 아직은 많이 힘들더라도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 찾아가려 했다는 점이 매우 인상깊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알지 못했던 구승혜 학우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 글을 읽고 한번씩 자신의 힘듦을 외부에서 열쇠를 찾으려 했던 자신을 반성할 수 있었고 내 자신을 더욱 성숙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스스로가 완전한 열쇠를 찾지 못했지만, 예전과 달리 변화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글쓴이 분의 글을 보았을 때 벌써 열쇠를 찾은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학기동안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