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답지 않게 너무 따뜻하다’는 인간들의 수근거림이 못마땅했을까요? 성난 동장군이 적잖은 눈과 세찬 바람을 앞세워 거친 호흡으로 우리를 압박해왔습니다. 각성한 동장군의 기세에 자연은 숨죽였고, 겨울숲바라보기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겨울의 온화함에 살~짝 마음을 풀어놓았다가 극단으로 바뀐 매서운 추위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듯 도중 귀가, 지각 참여 등 미세한 차질이 발생했으나 겨울숲과의 만남을 기다려온 선생님들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번 수업은 상견례를 겸해 알자반부터 놀자반, 날자반에 소속한 모든 교육생이 참여하는 뜻있는 수업이어서 더욱 기대가 큽니다.
겨울숲바라보기에 추위는 음식의 양념처럼 필수 요소. 일정은 시간표대로 진행됩니다. 관록의 날자반 선배님들은 뒷풀이 때 다시 만나기로 하고 서둘러 행낭을 꾸려 발길을 재촉하고, 알자반도 지난번 건너뛰었던 준비 체조를 필두로 일정을 시작합니다. 오늘 첫 만남 상대는 남문 바로 뒤 산행길 초입 계단길 양쪽에 적절한 간격으로 자리잡고 있는 쥐똥나무와 귀룽나무입니다. 서울숲에서 봤던 나무들과 달리 겨울눈들이 작습니다. 이 나무들의 특징이자 동정 포인트인 끝눈과 가짜 끝눈을 열심히 찾아 들여다 봅니다.
추위가 제법 매섭지만 아직은 견딜만 합니다. 루페보는 법도 조금은 익숙해진 듯 합니다. 지난 수업보다 조금 높아진 난이도가 살짝 부담을 줍니다. 끝눈인지 아닌지, 같이 있는 건지 시작부터 오늘 수업이 쉽지 않을 것임을 암시합니다. 역시 보고 또 보고, 관찰한대로 내가 가장 잘 알 수 있도록 기록하는 것이 해법입니다.
눈덮힌 겨울산의 풍광은 아름답습니다. 하얀 눈이 얹혀 있는 나뭇가지가 연출하는 무채색의 대비, 휑한 가지 사이로 푸르게 빛나는 하늘, 채녹지 않은 성벽의 눈이 그려내는 겨울산은 눈부시고 바람이 더해 “쨍~”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성벽 아래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 한그루로 향합니다. 쪽동백나무입니다. 맨눈이고 엽병내아이며, 세로덧눈이 보입니다. 서울숲에서 봤던 바로 그 맨눈입니다. 스토리가 많은 나무인지라 김유정의 소설부터 나무이름의 유래, 열매처럼보이는 때죽납작진딧물충영까지 강사님들의 곁들임 설명에 아 하~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다양한 특징을 가진 탓에 쉬 잊지 않을듯 합니다.
골따라 불어대는 매서운 바람이 체감온도를 급격히 낮춥니다. 움직이지 않고 한 곳에 머물러 있어 추위가 더 느껴집니다. 손도 시렵고 굳어 처음보다 글씨 쓰기가 어렵습니다. 이동하자는 강사님의 말이 고맙게 느껴집니다. 모두 웅크린채 잰 걸음으로 걷습니다. 그리 멀리 가지 못하고 얕으막한 성벽아래 멈춥니다. 한팀은 성벽쪽의 떨기나무 백당나무로, 다른 한 팀은 산비탈쪽에 가지마다 허옇게 바랜 열매를 달고 있는 참빗살나무앞에 멈춥니다. 눈덮힌 비탈에 미끌어지지 않게 짝다리에 힘주고 서서 루페를 거내듭니다. 산밑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에 절로 몸이 돌아섭니다. 관찰을 하라는 강사님의 독려에도 발만 동동 구르게되고 결국 받아쓰기가 되어버립니다.
참빗살나무의 겨울눈과 열매(왼쪽) / 가로덧눈과 세로덧눈이 있는 괴불나무의 겨울눈
배경이 죽여준다며 포즈를 취해달라는 요구에 애써 웃음지며 화이팅을 외쳐보지만 몸따로 마음따로입니다. “왜 내가 이 고생을 사서 한다고 했을까? 잠깐이지만 후회가 머리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강사님의 독려에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 서어나무, 찰피나무, 까마귀밥나무, 다릅나무와 차례로 눈맞춤합니다. 일부는 관찰표 작성을 포기하고 강사님의 설명과 관찰에 집중합니다. 어떤 조는 바람을 피해 참호 속으로 들어가 공부합니다.
반상록성인 까마귀밥나무의 어설픈 겨울눈(왼쪽)과 수피가 독특한 다릅나무의 겨울눈(오른쪽)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지는 바람에 체감온도는 더욱 떨어지고 일부 교육생들에게는 수업을 지속할 수 없는 한계 상황에 도달한 듯 합니다. 강사님별로 수업운영의 묘를 발휘합니다. 회군하는 팀이 있는가하면 관찰표 작성은 중단하고 관찰위주로 속도를 내서 진행하는 팀도 있습니다. 사발통문이 돌아가고 속속 하산길에 합류합니다. 하산이 아쉽지만 얼굴에 번지는 안도의 표정은 감출 수 없습니다.
계획된 일정을 앞당겨 마무리했습니다. 계획한 관찰 수종을 모두 관찰하지 못한 조도 있지만 자연의 무서움을 느끼고 체험한 것만으로도 깨달음이고 훌륭한 공부입니다. 겨울눈 관찰만 수업이 아닙니다. 겨울숲바라보기에 동행하는 동료와 선후배간 소통과 교류 또한 공부입니다. 뒷풀이는 그래서 언제나 옳고 즐겁습니다.
첫댓글 글/사진 즐감, 감사합니다.
강 추위에 모두모두 고생했던 날 이었습니다.
최대한 하나라도 더 듣고 적어보려고 안간힘을 썼던ㅎ
사진보니 그날의 ...생생하게 떠 오릅니다.
정말 호된 날씨에 겨울숲의 또 다른 민낯을 경험하였습니다. 생생한 후기와 사진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더욱 추위에 대비하여야겠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겨울숲바라보기 은근한 매력이 있어 좋습니다.
방공호에까지 들어가 수업을.....
강사님의 열정에 꾀도 못부리고....
절대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수업은 매운맛!
생생후기는 달콤!
겨울숲 수업이 적응되기도 전에 강추위를 만나셨네요.
끝까지 함께하신 알자반 샘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스럽고 힘드셨겠지만 훗날 남한산성의 수업이 젤 기억에 날겁니다.
한장의 추억을 만드신거지요~ㅎㅎ
알자반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