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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7 주일설교
이 사람은 살려야 합니다
사도행전 9:36~43
저는 지난 주간에 거룩한방파제 국토순례단에 참여해서 4박 5일간 같이 걷고 돌아왔습니다.(사진)
국토순례단에 관해서는 제가 국민일보에 기사형식으로 글을 올렸으니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https://www.themiss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71880
국토순례는 작년에 시작하여 1~3차에 1570km를 걸었고 이번 제4차 국토순례는 전남 진도에서 출발하여 경남 거제까지 29일간 총 517km를 걸어갑니다. 그동안 15곳에서 예배드리고 선포식을 통해 그 지역에 거룩한방파제를 세웁니다.
국토순례단원들은 지역교회의 교육관에서 침낭을 이용해서 잠을 자는데 새벽마다 그 교회의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여 기도하고, 길을 걸어가면서도 대한민국과 한국교회가 거룩해지도록 기도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OECD 국가 가운데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은 유일한 나라인데 거룩한방파제 운동으로 끝까지 거룩한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틀 전 뉴스에 의하면 서울퀴어축제가 올해 6월 1일에 열린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같은 날에 반대 국민대회로 모여서 동성애 광란 축제를 막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많이 기도해 주시고 두루 홍보하여 많이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거룩한방파제를 위한 기도 제목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동성애 반대, 포괄적차별금지법 반대, 퀴어축제반대, 학생인권조례 반대, 성혁명 교과서 반대, NAP 독소조항 반대, 남자 며느리 반대, 여자 사위 반대, 극단 이슬람 반대, 각종 중독 반대, 낙태 반대 등.
그런데 이번 제4차 국토순례단은 특별한 기도 제목 하나를 추가했습니다. 바로 대전 송촌동에 있는 송촌장로교회 박경배 목사의 건강 회복을 위한 기도입니다. 박목사는 송촌장로교회의 목사이며 또 한국정직운동본부 대표이사이기도 합니다. 박목사는 동성애를 막고 대한민국을 거룩하게 만드는 중요한 지도자 가운데 한 분입니다. 이렇게 귀한 목사님이 지금 담낭암에 걸려서 투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토순례단이 박목사의 치유를 기원하는 깃발을 따로 만들어 매일 한 명이 책임지고 기도하며 걸었습니다. 저도 하루 담당했습니다.(사진)
저는 새벽마다 기도하고 또 걸으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박경배목사님을 치료하여 주세요. 박목사님은 지금 한국교회에 필요한 분입니다. 이 사람은 살려야 합니다.”
새벽기도회 때에 가장 먼저 박목사님을 위해 기도한 후에 다른 제목을 기도했습니다. 아침에 국토순례단이 출발할 때에도 출발 기도 후에 따로 박목사님 회복을 위해 합심 기도를 했고, 오후에도 도착 기도 후에 박목사님 회복을 위해 따로 기도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부탁합니다. 박경배목사님(이름도 경건합니다), 담낭암을 이겨내고 건강을 회복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성도들의 간절한 마음이 상달하여 죽었다가도 산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욥바에 살던 다비다라는 여 제자입니다. 욥바는 오늘날 텔아비브의 한 지역으로 편입되어 있습니다. 다비다는 히브리어로 ‘사슴’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헬라어로 기록했기에 헬라어로 번역을 해주었는데 사슴이 헬라어로 도르가(Δορκάς)입니다(36절). 다비다는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 여성입니다. 그리고 돈이 많은 부자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비다는 매우 착한 사람으로 구제를 많이 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기부를 많이 하는 크리스천 연예인을 검색하면 먼저 장나라씨가 나옵니다. 한류스타 배용준과 가수 션/정혜영 부부도 기부 천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로 배우 신영균 장로도 500억 원을 기부했다고 나옵니다. 그 외에도 많습니다. 여러분도 돈을 많이 벌어 구제와 기부에 크게 동참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이 다비다가 갑자기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무슨 병에 왜 병에 걸렸는지 성경에 설명이 없습니다. 혹시 너무 남을 위해 무리하게 헌신하다가 병이 난 것은 아닐까요? 누가는 의사이고 정확한 표현을 좋아하는 분인데 그 이상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는 그 후에 벌어진 일에 집중했습니다.
다비다가 죽자 사람들은 그녀를 다락에 눕혀놓고 룻다에 있는 베드로에게 가서 빨리 와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베드로가 오자 욥바의 모든 과부가 베드로를 에워싸고 울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비다가 생전에 만들어준 속옷과 겉옷을 내어 보였습니다.
1세기에 옷이란 매우 귀하고 비싼 물건이었습니다. 오죽하면 로마 군인들이 사형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을까요? 예수님 속옷은 통으로 짰으니 찢어 나누기가 아깝다고 제비뽑아서 가져갔습니다. 또 전쟁터에서 시신의 옷을 벗겨 가져갔습니다. 만일 요즘 누가 시신이 입었던 옷을 가져다주면 싫어하는 것을 넘어 경찰에 신고할 것입니다.
그렇게 옷이 비싼 시대에 다비다는 욥바의 모든 과부에게 속옷과 겉옷을 만들어주어 헐벗지 않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부자라도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과부들이 울며 무슨 말을 했는지 기록은 없습니다. 만일 베드로가 과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물었다면 뭐라고 했을까요?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살려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님, 이 사람 다비다는 반드시 살려내셔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이 룻다까지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에게 지체하지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룻다까지는 직선거리로 18km인데 꼬불꼬불한 길로 걸어가면 5시간은 족히 걸렸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 먼 곳에서 베드로를 모셔온 것은 죽은 다비다를 살려 달라는 뜻입니다.
다비다가 한 선행을 보여주며 우는 사람들을 본 베드로는 사람들을 내보낸 후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시체에게 말했습니다. “다비다, 일어나시오.” 그러자 다비다는 눈을 뜨고 베드로를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앉았습니다. 다비다는 원래도 욥바에서 유명했는데 죽었다가 예수님의 능력으로 살아나자 그 소문이 온 욥바에 알려졌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여러 가지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죽은 사람도 살리는 능력이 있다”, “베드로는 기도하여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은혜를 받았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보다 욥바 과부들의 외침을 듣습니다. 성경에는 그런 표현이 없지만 제 귀에는 쟁쟁하게 들립니다. “주님, 우리에게는 다비다가 필요합니다. 이 사람은 살려야 합니다. 이 다비다는 꼭 살려야 합니다.” 결국 주님은 베드로의 기도만이 아니라 욥바의 과부들, 욥바 교회의 모든 성도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비다를 살려주신 것입니다.
욥바의 과부들이 “이 사람은 살려야 합니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사건이 성경에 또 있습니다. 바로 지난 주일에 만났던 그 백부장입니다. 가버나움에 살던 백부장은 하인이 병들었을 때 예수님께 하인을 고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 백부장은 감히 예수님께 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유대인 장로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부탁했습니다.
그때 장로들이 예수님께 와서 한 말을 보면 한 마디로 “이 사람은 살려야 합니다”였습니다. 이 백부장은 우리 민족을 사랑하여 우리에게 회당을 지어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 백부장의 청을 들어주시는 것이 합당합니다. 더구나 백부장은 하인이 병들자 마음이 아파서 우리를 보내어 살려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이 사람을 도와주셔야 합니다. 이 백부장의 하인을 살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장로들의 말을 듣고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기 위해 백부장의 집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들은 백부장은 수고스럽게 오실 필요가 없다고, 그냥 말씀으로 명령만 해주시면 된다고 말하여 예수님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에 그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칭찬하게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어떠세요? 좀 짜증이 나지 않습니까? 이 백부장은 계급도 놓고 돈도 많은데, 큰돈을 들려 회당을 지어줄 만큼 믿음과 헌신도 특별하고, 거기다 겸손한 인격까지 갖추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에게 왜 모든 것을 다 주셨는지 질투가 나지 않습니까?
욥바의 다비다도 그렇습니다. 그녀가 죽자 모든 과부가 울며 이 사람은 꼭 살려야 한다고 간곡하게 말했습니다. 다비다는 돈도 많은데 믿음도 좋고 가난한 과부들에게 그 비싼 옷을 속옷과 겉옷까지 해 입히는 착한 마음씨까지 가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비다는 이대로 죽으면 안 된다고, 꼭 살려내야 한다고 간청했습니다. 다비다는 참 복된 여성입니다.
저는 박경배목사님을 위해 기도하면서 바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박목사를 더 가까이 두고 싶어서 데려가고 싶더라도 뜻을 돌이켜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에는 박목사님이 필요하다고 기도했습니다. 가버나움 장로들의 부탁을 듣고 박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신 예수님이 박경배목사님도 치료해 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욥바 과부들의 간청을 듣고 다비다를 살려주신 하나님이 박목사님도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소원이 하나 생겼습니다. 내가 어느 날 어려운 병에 걸렸을 때, 이 사람은 우리 곁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제발 치료해달라고 몇 사람이나 기도할까요?
그래서 내가 병에 걸렸을 때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나를 위해 기도하며 “주님, 이 사람은 살려야 합니다.”라고 기도하게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한 소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같은 소원을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도 많은 사람을 구제하고 섬김으로 다른 사람이 꼭 필요로 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주여, 이 사람은 살리셔야 합니다.”라고 기도하는 그런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를 놓치면 안 됩니다. 내가 장차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면 크게 헌신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평생 그렇게 헌신할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내가 남을 유익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크게 헌신하려면 지금 가진 것으로 작은 헌신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작은 헌신을 실천하는 사람이 돈이 많이 생길 때 크게 헌신할 수 있습니다. 돈이 여유로울 때 헌신하겠다면 평생 그런 여유는 생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돈에 여유가 생기면 여유롭다는 기준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남는 사람이 없듯이 시간이 남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비다는 시간이 남아서 과부들을 위해 옷을 만들었을까요? 다비다만큼 바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쁜 시간을 쪼개어 헌신할 때 헌신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가장 힘들 때 나눔헌금을 시작해서 수년간 계속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정도 나눔헌금 가지고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위해 “이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라고 말할 정도는 못 되는데 제 마음에 장차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소원이 있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은 다비다를 위해서는 기도하지 말고 박경배목사님의 건강 회복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다른 사람이 여러분을 위해 “이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라고 기도하는 그런 성도의 삶을 살기를 축복합니다.
첫댓글 https://youtu.be/FOj2KUwj0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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