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강 세 번째 증명, 약속에 첨부한 율법(갈3,15-20)
1. 원본 유언장의 효력(3,15)
15.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사람의 관례를 예로 들어서 말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적법하게 유언을 작성해 놓으면, 아무도 그것을 무효로 하거나, 거기에다가 어떤 것을 덧붙일 수 없습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혈통이 아니라 믿음으로 전수되는 것이라는 논지로 두 번째 증명을 마친 후에,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맺은 계약을 부각시키기 시작합니다. 세 번째 증명은 그 믿음의 계약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재현되는 것이지, 율법은 어떤 필요에 의하여 덧붙여진 부가 조항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15절에 나오는 “유언”이라는 용어는 디아테케(διαθήκη)를 번역한 것인데, 원래 계약(testament) 또는 언약(Covenant)을 뜻합니다. 여기서 “유언”이라고 번역한 이유는 18절에 “유업”(κληρονομία, inheritance)이라는 용어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유언장을 기록하여 공증을 받으면 그 효력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유언에 부가 조항을 첨가하려면, 생전에 절차를 밟아서 새롭게 작성해야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바울이 적법하게 작성된 유언장을 일방적으로 폐기하거나, 사후에 첨삭하여 수정하는 것을 불법이라고 전제하는 이유가 다음 절에 나옵니다.
2. 언약의 후손은 그리스도뿐(3,16-18)
16.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약속을 말씀하실 때에, 마치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것처럼 '후손들에게'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단 한 사람을 가리키는 뜻으로 '너의 후손에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한 사람은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17.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맺으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뒤에 생긴 율법이 이를 무효로 하여 그 약속을 폐하지 못합니다.
18.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그것은 절대로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유업을 거저 주셨습니다.
“내가 너의 자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창12:7), “내가 이 땅을 너의 씨에게 주겠다.”(창24:7) 등등에 나오는 “후손” 또는 “씨”라는 용어가 복수가 아닌 단수로 등장한다는 점에 바울은 주목합니다. 사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표현은 단수로 표현한 집합명사입니다. 우리가 “사람이 많았어요.”라고 말해도 그 사람이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굳이 문법적인 문구를 찾아내서 증명을 시도합니다.
바울의 말대로라면,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아브라함의 후손은 단 한명도 없었던 셈이 됩니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 여기서 아브라함의 유언을 상속할 수 있는 후손은 절대로 혈통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즉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대한 신뢰를 믿음으로 따르는 자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의 유산을 이어받으려면, 단 하나의 후손인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자신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그것은 단지 혈통을 물려받은 것 뿐이지, 구원하는 신앙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유업을 물려받을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제시하는 증거물은 이것입니다. 율법이 등장한 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나온 지 430년 후라는 것입니다. 430년이라는 년 수 계산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모세의 인도를 받기 시작한 기간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모세가 토라(율법)의 전달자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율법은 유언장에 대한 첨가물이라는 논리가 등장합니다.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갈라디아 교회의 거짓 교사들의 논리가 오류인 것은, 그 율법이란 등장하기 430년 전에 작성된 유언장 원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맨 처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이 언약의 근본이었는데, 그 내용은 사라지고, 율법준수가 대신 자리 잡아서, 믿음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따른다면 그 유업을 물려받을 수 없게 됩니다. 오직 효력이 있는 문서는 약속이 담긴 유언장뿐입니다. 그러면 왜 율법이 등장하게 되었는지 바울은 이제 설명해야합니다.
3. 율법의 용도(갈3,19-20)
19. 그러면 율법의 용도는 무엇입니까? 율법은 약속을 받으신 그 후손이 오실 때까지 범죄들 때문에 덧붙여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개자의 손으로 제정되었습니다.
20 그런데 그 중개자는 한쪽에만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저는 법이란 “없어지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은 모두가 법을 잘 지켜서 법 없어도 되는 세상이 그 최종 목적입니다. 그런데 법이 없어질 수 없는 이유는 끝까지 법을 어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회에는 법이 존재합니다.
율법이 등장하게 된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할 때의 상황을 보십시오. 그들은 끊임없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레위기에 등장하는 상세한 율법조문들을 읽다보면, 이런 저런 범죄들이 그들 사회 속에 만연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율법이 등장하게 된 것은 죄가 되는 일이 어떤 일들인지를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율법은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진정한 후손이 올 때까지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면 아브라함과 하나님께서 맺은 계약서가 공개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믿음”만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물론 율법이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해서 폐기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유효기간이란 믿음의 길을 알지 못하는 백성들이 임시방편으로라도 그와 유사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효능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등장한 이상 그 효능은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다만 율법은 믿음의 길을 바르게 걸어가는데 조력할 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이 담고 있는 정신을 기억하여야 한다는 것이지, 할례를 받고나 정결법을 준수하여야만 한다는 식으로 과거의 율법 아래로 “회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19-2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율법은 천사들을 통하여, 중개자의 손을 빌어서 제정된 것이라고 말입니다. 천사들을 통한다는 표현은 천사들의 중개과정을 의미하고, 그 다음 중개자는 모세를 뜻합니다. 그런데 20절 내용은 난해합니다. 원문을 직역하면, “그러나 하나의 중개자는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입니다.”라는 말인데, 그 의미를 전혀 짐작할 수 없어서, 300여 가지나 되는 해석적 예시가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그런데 중개자는 한쪽에게만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라고 해결했지만, 이것 역시 의미가 불분명합니다. 독일어 성경(취리히 성경)이나 현대의 주석에서는 이렇게 번역합니다. “중개자는 하나의 [사람]을 [대표]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한 분이다.”라고 말입니다.
적당히 그 의미를 추적하면, 모세로 대표되는 중개자의 비중은 하나님께 비할 바가 못 된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직역 문장과 비교하여 부연해석을 한다면, “모세는 유일한 중개자가 아니지만, 하나님은 유일하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바울은 뒷부분(25절까지)에서 율법에 대한 보충 설명을 이어갑니다.
4.결론
하나님과의 약속에 첨부된 율법조항들은 그리스도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그 효력을 상실했습니다. 하지만 율법 안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좋은 안내자가 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 신학은 이것을 <율법의 교훈적 사용>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관점으로 재해석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눈으로 율법을 바라보면, 율법의 진수가 바르게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할 것은 그리스도이고, 율법정신은 우리의 삶을 반성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도우미입니다.
2024년 6월 23일
홍지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