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비밀’과 김딱딱
넷플릭스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제목은 <비밀>. 역시 제목만 보고 고른 작품이었다. 줄거리도, 감독도 출연 배우에 대해서도 정보가 없었다. 정보가 없어서 기대를 안 해서 그랬을까. 나름 괜찮게 보았다. 특히 내가 모르는(사실 나만 모르는 것 같다. 이미 인지도가 상당한 배우였다) 주연 배우(김정현)가 연기를 그런대로 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한 남자가 군대에서 자살하고, 그의 어머니는 자기 자식이 왜 죽었는지도 모르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 자살한 군인과 관련이 있다. 형사(김정현)가 그 사건을 팔수록 자살한 젊은이에 대한 정보가 끌려 나오고, 그 와중에 관련자들이 죽어 나간다. 심지어 형사가 용의자로 특정한 인물까지 죽는다. 모르는 배우의 연기만 보고 있다가 잠시 길을 잃었던 걸까? 난 영화가 진짜 범인을 보여주기 전까지 그 인물을 의심하지 않았다.
물론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 이런 살인 사건을 풀어나가는 스토리에서는 등장인물을 다 의심해보는 것이 관객의 국룰이니까 뭐, 살짝 용의선상에 올려보기는 했다는 게 진실이다. 어쨌든 마지막에 범인이 밝혀지면서 아, 라는 감탄사만 뱉었고, 그 감탄사에 섞여 나간 감정에는 ‘결국은 저 사람이 범인이구나’라는 씁쓸함이 많았다. 그 사람이 범인이 아니었으면 한다든가, 범인이면 안 된다든가 하는 생각보다는 그냥 그 인물이 범인인 것이 약간 서글펐다.
영화에서 맘에 든 장면이 있었다. 형사가 화장실에 갔는데, 여자 미화원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영화 전개상 주인공이 화장실에 가는 장면을 보여줄 때는 뭔가 있어야 하기에 무슨 이야기로 나갈지 궁금해하고 있는데, 거기에 여자 미화원이 있어서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아무 개연성 없이 그런 장면을 연출했다면 실망했을 텐데, 감독들(이 영화는 감독이 두 명이다)에게 다 계획이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형사는 그 화장실에서 범인을 눈치채는 힌트를 얻는다.
영화에서 자살한 군인의 학창 시절을 보여줄 때, 그리고 그 학창 시절이 형사와 연결되고 어쩌면 그 형사의 말 한마디 때문에 그 군인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전개로 나갈 때, 박찬욱 감독의 2003년 영화 <올드보이>가 연상되었다. 또, 자살한 군인의 엄마가 마지막에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봉준호의 2009년 영화 <마더>에서 김혜자가 떠올랐다. ‘김혜자가 연기를 잘하긴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죽은 군인의 엄마 역으로 나오는 길해연 배우는 평소에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했던 배우 중 한 명이다. 이 영화에서도 연기를 아주 잘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오열 장면에서는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다. 나, 지금 오열하는 연기 하고 있어. 이렇게 주장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애써서 연기했을 배우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감정이 들지만, 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얘기다. 그녀의 오열 장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만약 저 역을 다른 배우가 어땠을까’라는 상념에 잠겨 버렸기에 많이 미안했다.
그냥 가볍게 영화나 하나 보려고 들어갔던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 <비밀>은 가벼운 영화가 아니었고, 보고 나서 심란했다. 누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다 알 수 없는데, 그렇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 대화? 소통? 그런데 우리는 소통하기 이전에 이미 어떤 이미지를 우리 안에 각인해 버린다. 그 이미지를 가지고 그와 하는 대화가 얼마만큼 진실할까.
2022년에 김지훈 감독은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라는 영화를 찍었다. 이 영화를 봤을 때의 느낌이 <비밀>을 보고 난 후의 느낌과 비슷하다. 소재도 괜찮고(내 맘에 드는 소재라고 하자), 주연 배우(설경구였다)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는데 뭔가 탄탄하지 않다는 느낌, 전체적으로 약간 허술한 집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에 <비밀>을 공동 연출한 임경호와 소준범은 이제 시작하는 감독들인 것 같으니 앞으로를 기대해봐야겠다. 박찬욱과 봉준호도 처음부터 박찬욱, 봉준호였겠냐고.
‘김딱딱’은 김정현의 별명이라고 한다. 내가 영화를 보고 있는데 옆으로 슥 지나가던 딸이 알려주었다. 별명의 유래는 소개하지 않겠다. 연예계에 떠도는 일화들을 다 믿지도 않을뿐더러, 나하고 상관도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김딱딱’이라는 단어가 매우 인상적이었는지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고, 김정현이라는 이름이 얼른 입에 붙지 않는데 그 단어는 바로 입에 착 붙었다. 김정현의 연기도 기대한다. 성장 가능성이 농후해 보였다.
첫댓글 저도 결말을 궁금해 하며 잘 보았던 영화예요. 낯선 배우가 주연이다 싶었는데 나름 인지도가 있었군요. ^^
한번 보고싶군요. 영화 소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