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98년 8월 15일은 제15대 김대중 대통령의 5년 임기 초로서 ‘대한민국 50년 경축식’이 열린 날이다.
당시에 김대중 대통령은 일제로부터 광복과 함께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수립을 경축하는 한편, 당시 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나 미래로 나가기 위한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 계기로 삼고자 회심의 카드로 준비를 했었다. 그해 2월에 출범한 「국민의 정부」가 대한민국 수립 50년을 맞아 ‘제2의 건국’을 선포하고, 국정을 이에 걸맞도록 범국민적인 개혁을 추진하려던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민 대화합을 통해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청산하고 국민의 역량을 재결집하여 당면한 국가적 어려움을 극복해 나감은 물론,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새로운 50년을 시작하는 새 출발의 계기로 삼고자 ‘대한민국 50년 – 다시 뛰는 한국인’, ‘제2의 건국 – 다시 뛰는 한국인’을 주제로 삼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등이 1998년 한 해 동안 국내외에서 총 184개 사업을 추진하였다.
<사업 현황>
총계 | 기본사업 | 지방사업 | |||
소계 | 정부기관 | 산하단체 | 민간단체 | ||
184 | 67 | 50 | 7 | 10 | 117 |
<주요 기념사업 >
기념사업 내역 | 주관기관 | 비고 | |
1. 정부수립의 역사적 의의 재조명 | |||
․ 대한민국정부수립 50주년기념 국제학술 심포지움 | 한국행정연구원 | 한국프레스센터 | |
․ 대한민국 50년 기념백서 발간 | 국회 및 각 부처 | ||
․ 대한민국 50년 ‘우리들의 이야기’ 전시회 | 조선일보사 | 예술의전당 | |
․ 대한민국 50년 사진전시회 | 한국사진기자회 | 광화문 거리 | |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개관 | 서울시 서대문구 | ||
․ 3.1독립운동 기념탑 건립 | 추진위/광복회 | 중구 장충동 | |
․ 대한민국 50년 기념 월드컵 주경기장 건립 | 서울시 | 마포구 상암동 | |
․ 해외독립유공자 초청 및 생존 애국지사 위문 | 국가보훈처 | ||
2. 국민화합과 국난극복을 위한 국민역량의 결집 | |||
․ 한강축전 및 나라사랑 국민화합음악회 | 행자부/서울시 | 한강→KBS홀 | |
․ 오페라 대축제/한국 합창 제전 | 예술의전당 | 예술의전당 | |
․ 주한 외국인과 지구촌 한마당 축제 | 서울특별시 | 어린이대공원 | |
․ 정부수립 50주년 기념 중앙경축식 | 행정자치부 | 광화문광장→세종문화회관 | |
․ 개회개원 및 제헌 50주년 경축행사 | 국회사무처 | ||
․ 전국 순회 태극기 이어달리기 | 행정자치부/KBS | 7.17~8.15 | |
․ 국민적 일체감 조성을 위한 국가상징 선양 | 행정자치부 | ||
3. 새 시대를 향한 국가의 미래상 제시 | |||
․ 정부 좌표 설정 및 부문별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 |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 ||
․ ‘헌정 50년과 한국 법학 –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학술회의 | 한국법학교수회 | 서울교육문화회관 | |
․ 세계 한민족 통일문제 토론회 | 민주평통자문회의 | 미국 샌프란시스코 | |
․ 대한민국 50년 ‘교육개혁 대토론회’ | 한국교육개발원 | 3회 개최 | |
4. 해외홍보를 통한 국가이미지 제고 | |||
․ 해외주재국 주요인사 및 외교단 초청 리셉션 | 문화관광부 | ||
․ 뮤지컬 ‘명성황후’ 미주 순회공연 | 문화관광부 | 미국 | |
․ 프랑스 아미뇽축제 주변국 참가 | 문화관광부 | 프랑스 |
이의 일환으로 김대중 정부는 제2의 건국이념을 바탕으로 국정전반의 개혁과 범국민운동의 효율적인 추진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하에 「제2의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새로운 밀레니엄(2000년)을 앞두고‘rebuilding korea’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 규모가 엄청나 600여 명의 기라성같은 각 분야의 유명 인사들이 총망라되었는데, 대표 공동위원장에는 진보적 경제학자인 변형윤(邊衡尹) 서울대 명예교수가, 상임위원장에는 이어령(李御寧) 전 문화부장관이 선임되었다.
이에 행정자치부는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실과 협조하여 각 분야 민간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추진기획단을 구성한 후, 그해 8월 15일 오전에 수도 서울의 심장부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대규모 경축 행사를 거행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중앙경축식은 7월 17일 제헌절 경축식 후 국회의사당 앞마당을 출발해 거의 한 달간 전국 방방곡곡 502개 구간, 2,389㎞를 누빈, ‘전국 일주 태극기 달리기’의 마지막 주자가 경복궁 광장의 대한민국 50년 경축행사장에 입장하는 이벤트를 연출하고,
또 식후 행사로 광화문에서 서울시청까지 이르는 광화문 거리에서 펼쳐지는 ‘제2의 건국 국민한마당’에는 16개 시 ․ 도별 전통 풍물패가 국군의장대와 함께 퍼레이드를 펼치는 등 IMF 체제하에서 위축된 국민의 사기를 높이는 대형 축제로 추진하였다.
그런데 행사를 한창 준비하는 도중에 예기치 않은 난관에 부닥쳤다. 광복절을 보름 정도 앞둔 7월 31일이었다. 한밤중에 지리산 일대에 집중적으로 쏟아져 내린 대폭우와 산사태로 인해 대원사 계곡과 피아골 등에서 야영하던 야영객과 일부 주민이 매몰되는 등 103명이 숨지는 사태가 발생해 온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식으로 퍼부은 이때의 폭우는, ‘게릴라성 기습폭우’라는 용어가 국내에 처음으로 등장하고, 깊은 계곡마다 자동 음향 경보장치가 설치되는 계기가 되는 등 재난대응책에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아무튼 이로 인한 피해 상황이 연일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전국적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에 추진기획단에서는 대책회의를 열어 행사 규모를 대폭 축소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이에 따라 광화문광장 일대의 국민한마당 축제는 생략하고, 옛 중앙청 광장에서 경축식을 거행하며, 경축연회는 청와대 대정원에서 경복궁 경회루로, 한강 둔치에서 예정했던 KBS 주관의 ‘국민화합 한마당’도 KBS홀로 옮기기로 하였다.
그러나 불운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8월 15일을 앞두고 게릴라성 기습폭우가 끊임없이 쏟아져 경축식 단상 설치 등 행사 준비에 바쁜 실무자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그런 중에서도 행사 준비는 어렵사리 이루어져 드디어 행사를 하루 앞두고 오후에 모든 행사요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예행연습(rehearsal)을 할 시간이 되었다.
예행연습은 실제 진행상황을 염두에 두고 반드시 거쳐야 하는 순서이다. 더구나 당시에 첨단 행사 장비가 도입돼 마지막 점검을 할 예정이었지만 이마저도 그 시간에 장대같이 쏟아지는 폭우로 인해 제대로 예행연습을 하기 어려웠다. 무정한(?) 하늘은 이날 밤늦게까지 비를 쏟아 내렸다.
행사를 주관하는 행정자치부 내에 의견이 갈렸다. 비록 예행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당초 예정했던 옛 중앙청 광장과 예비 공간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두 곳을 모두 준비했다가 날씨 상황에 따라 어느 한 곳을 택해 행사를 거행하자는 측과, 이와 달리 ‘두 마리 토끼 모두 쫓다가는 두 마리 다 놓칠 수 있다.’는 속담과 같이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고 확실하게 행사를 거행할 수 있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옥내행사로 거행하자는 측으로 갈렸다. 앞쪽은 당시 행사를 총괄하던 김재철(金在喆, 후에 전남 행정부지사,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의정국장이었고, 뒤쪽은 박현준(朴炫晙, 후에 1급 관리관 퇴직, 고려대 공공행정학부 교수) 의정과장과 실무진에서 주로 의견을 내세웠다.
행사총괄 사무관이었던 필자는 옥외 행사의 경우 8월15일 행사 당일에도 비가 내릴 가능성과 함께 첨단 행사 장비의 작동 등의 예행연습을 거른 채 본 행사를 강행하는 것은 무리이며, 또 시간상으로도 두 장소 모두 완벽하게 행사를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날 밤 행정자치부는 김정길(金正吉) 장관 주재로 간부회의를 열어 숙고를 거듭하던 중에 김범일(金範鎰, 후에 산림청장, 대구광역시장) 기획관리실장이 실무진의 의견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결국 규모를 대폭 축소해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경축식을 갖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또 경축연회도 경복궁 경회루에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로 변경하는 것으로 결정한 후 대통령비서실과 경호실 등 관련기관에 협조를 요청했다. 그 시간이 전날 밤 9~10시경이었다. 이에 따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준비에 착수하였으나 경축식의 성격, 규모를 고려할 때 하루 밤새 완벽하게 행사를 준비하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촉박했다.
단상의 여러 시설과 비품을 설치하고, 행사 진행 시나리오를 수정하며, 참석자들에게 배포할 팸플릿〔종합안내서〕도 바꾸고, 초청인사 안내 계획을 새로 짜는 등 밤새 그야말로 숨 가쁘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하룻밤이 긴박하게 지나갔다.
드디어 새날이 밝았다. 밤새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비가 그쳤다. 아무튼 이날 오전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국민과 외교사절 등 약 4,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축식은 ‘무사히’끝났다.
이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제2의 건국’을 기치로 범국민적 운동에 나설 것을 선언하였다. 즉 부정부패·정경유착·관치금융·지역감정 등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각종 적폐를 청산하여 다가오는 21세기 지식정보화사회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며, 세계 일류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총체적 국정개혁이자 범국민적 운동을 전개하겠다는 것이었다.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50년 중앙경축식’<사진/K-TV>
오늘날에는 주요 인사들이 단하에 자리잡고 있는데 반해 이 당시에는 단상에 자리잡는 것이 관행이었다.
폭우로 인해 행사 규모가 축소된 것은 못내 아쉬웠지만 경축식과 경축연회는 무사히 끝났다. 전날과는 다르게 8월 15일 당일 날씨는 너무나 청명했다. 이런 날씨라면 당초 계획대로 옛 경복궁 광장에서 거행하는데도 별 무리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사전에 충분히 예행연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대규모 행사를 강행하는 것은 너무나 무모한 모험이었다고 자위해 보았다.
그런데 이날 또 의외의 사고가 발생하였다. 당초 오전 10시에 옛 경복궁 광장에서 경축식을 거행한 후 가까운 경회루에서 3부요인, 정당대표, 주한외교단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축연회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10시 45분경에 경회루의 동쪽 용마루(지붕 맨 위쪽 등성이) 일부가 계속된 호우로 빗물이 스며든 탓인지 길이 7.5m, 너비 1.5m 가량의 무거운 기와 조각과 흙더미가 무너져 바닥에 굴러떨어진 것이다.
당초 예정대로라면 경회루 가장자리에 천막을 치고 경축연회 참석자들에게 음식과 음료 서빙을 준비하기 위해 호텔 종사요원이 바쁘게 드나들 시간이라 자칫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주요 인사들이 참석하는 국가의 경축행사가 이런 돌발 사고로 인해 행사를 망칠 뻔했던 것이다. 세종문회회관 대극장에서 경축식을 마친 후 이 소식을 듣고 급히 경회루의 사고 현장에 들렀던 박현준 의정과장과 필자는 경축식이 옥내행사로 축소된 것은 정말 하늘이 도왔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1주일 후에 ‘제2의 건국’을 상징하는, 새가 힘차게 비상(飛翔)하는 모습을 형상화하여 만든 옛 경복궁 광장의 경축식 단상은 SBS-TV에서 ‘제2의 건국’을 주제로 한 축제행사장으로 활용되었다. 당시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세대 인기 걸그룹 ‘핑클(Fin.K.L)’의 네 가수(이효리, 옥주현, 이진, 성유리)가 등단해 등에 작은 배낭을 메고 발랄하게 춤추며 노래하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약 2주 후 감사원에서 1억 원 가까이 소요된 경축식장 제작에 대해 소명서(疏明書)를 작성해 달라고 요구했다. 비가 내릴 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경축식장을 만들어 국고 손실을 초래했으니 그 합당한 이유를 밝혀 달라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감사원은 7월 31일 내린 지리산 집중호우 때부터 국가행사를 겨냥해 기상보도 상황을 추적해 왔던 것이다. 대규모 국가적 행사로 추진했다가 기상 변화로 인해 옥내행사로 축소된 것만으로도 억울한 데, 그 사유서까지 제출하라고 하니 참으로 황당하고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고민을 거듭한 끝에 최근의 기상이 '게릴라성 집중호우'라 행사 당일 비가 내릴지 아닐지 섣불리 예측하기 어려웠으며, 특히 이번 행사는 현직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제2의 건국’을 발표하는 중요한 계기 행사로 추진했다는 점 등을 부각하여 제출했다. 감사원으로부터 감사 대상이 된 공무원은 잘못이 판명되는 경우 징계까지 받을 수 있어 심적 부담이 크기 마련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감사원은 현직 대통령과 관련된 행사이고, 또 정책적으로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그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위엄이 넘쳐나는 용맹스러운 백두산 호랑이를 의욕적으로 그리다 작은 새끼 호랑이를 그린 것에 그치지 않고, 감사 대상까지 된 것은 오랜 공직생활에서 값진 경험이 되었다. 이 모든 문제는 무정한 날씨 탓이었다. 오늘 이 순간까지도 내 인생에 있어 그토록 하늘을 원망해 본 적이 없다. 끝
- 출처 : <정현규의 의전 노트, 제주에서 DMZ까지>(2024. 도서출판 예중, eboo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