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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학위논문 |
자작 동시「솟대」외 51편 창작 실제 |
Self-Composed Children's Poem〝Sotdae" and Other 51pieces Writing Reality |
지도교수 안 도 현 |
2014년 8월 일 |
우석대학교 경영행정문화대학원 |
문예창작학과 문예창작전공 |
박 예 분 |
목 차
Abstract
Ⅰ. 서론 1
A. 연구의 목적 및 필요성 1
B. 창작 방법 및 동기 3
Ⅱ. 본론 6
1. 관조를 통한 동심의 시적 감응 6
(1) 동시의 주제와 심상의 확장 15
(2) 동심의 궁극적 도달지점 35
2. 어린이 세계의 시적 리얼리티 확보 방안 47
(1) 자아존중감과 격려로서의 동시 49
(2) 또래집단과의 관계맺음에 대한 성찰 57
3. 동시의 효용가치와 파급효과 74
(1) 동시의 저변확대 74
(2) 동심을 나누기 위한 구체적인 사례 83
(3) 동시와 독자 94
Ⅲ. 결론 105
참고문헌 107
국문초록 109
【ABSTRACT】
Self-Composed Children's
Poem〝Sotdae" and Other 51pieces
Writing Reality
Park Ye Boon
Major in Literature Creation
Department of Literature Creation
Graduate School of Business, Administration, and Culture
Supervised by Professor An Do Hyun
This study selected 「Sotdae」and Other 51pieces of Writing, a part of children's poems, published on children's poem collections written by this author, 『The Sun, The Moon, and a Loaf of Bread』, 『In My Mother's Pulse,』, and the poems on the literary magazines published recently, compared and analyzed writers' theme recognition and writing process, and looked into effective value and ripple effect.
Generally, a poem is created by an utterance through mutual response of poets, subjects, and poem objects, and by displaying methodological technique. This author showed an attitude of poem writing by observing most of the poetic objects and by securing integrity over discriminating objects as a basis.
Identity with objects may be collapsed with eternity and absoluteness known as an abuse in poem writing from the past. But, the poet applied them positively, for it was easy to approach to substance of image. That kind of attitude has the method of doing something different from the western analytic method which cuts and arranges things and secures a certain appropriateness.
Contemplation may be a complete acceptance of an object on the one hand. Acceptance applied here is different from the passive one performed by learning or custom of the period of growth. It is similar to dialectical conclusion, for it is an active acceptance or positive acceptance which recovers from the resistance stage bringing about conflict with actuality after growth. That kind of speculation intuits and harmonizes an object and identifies subjects and objects to provide with objective view by maintaining a certain distance from things.
On the basis of it, creation method and motive of introduction 2) developed it in detail and examined what role that kind of composing attitude took in the early children's poem. In addition, this study verified if there is a vertical image in hope or social universal desire contained in the works written in the period. It is because this study worries about the probability that poor identification with objects may overlook an aspect and a history that objects get and make a mistake like innocence angelism called an illusion of poems.
In addition, body1) and body2) dealt with the process concerning how this study, over contemplative poetic inspiration which is possibly changed into respective lyricism, accepted the actuality in which differentiation and disharmony bring about in a multiple layer, multiplied the theme, and extended imagery.
Children's poems are created for children by adults on the basis of children's mind. Children's poems are created in the same process as poem writing, but the objects are children. So, poetic narrator and poetic situation have to be considered sufficiently. The author broke out adults' fixed ideas through a lot of experiences that the author had till now and wrote children's poems by accepting good things like naivety containing innocence repeatedly and positively.
So, this author dealt with very limited themes in the early period, centering on narrow area of activity, but reached the stage of accepting universal point of view, basing on children's imagination. It embraces the universe that oneself whose theme is extremely private, family and society surrounding him/her, and universe that embraces the person. The object of children's poem is so various and wide as imagination of children's mind and treats all of the things with animistic thought. The themes that this author dealt with are mostly elevation of children's self-esteem, growing dream and hope, loving family and neighbour, talking with the nature and things, aiming at community life, and stories about wars.
Body 3) examined efficiency and ripple effect of children's poems. All of the literary works including children's poems are created by authors and at last reaches the eyes of the readers who see them. It means that readers' appreciation level or situation intervenes with all works. Especially, the children's poems targeting at children do that more.
This study presented many outputs of ' simultaneous class' that the author established and lectured in the elementary schools, literary halls, and libraries as a basis of the assertion. The class members were children as well as parents processed separately. This study could contact manifesting children's minds, mutual communication, and feedback about the results. And this study verified the efficiency and ripple effect of children's poems naturally and presented the way for the children's poems to go. Children's poems are excited by 'seeing' at the height of children's eyes. Of course here, seeing doesn't mean seeing only visible things. It includes invisible time and characteristic forms of abstraction floating like fog in brain. . The conclusion and task of this study is here. It is that developing children's poems have to show the things floating in children's brains by embodying aesthetically. Somehow, children are the object of learning and are forced to accept things and concepts passively in the process. So, even though it is not defined clearly yet, in that imagination or abstraction floating in children's brains is uttered by free will, it is growth of thoughts or motivity of growth. By showing it to children through children's poems, it is possible to lessen conflict that they go through due to a gab from actuality. So, it is possible to search concrete method to solve the problem by love and creation of children's poems. The task is given to the author, the task that the author have to solve in the future.
Ⅰ. 서 론
A. 연구의 목적 및 필요성
동심이란 어린이의 마음이다. 즉 어린이처럼 꾸밈이 없는 참된 마음이다. 누구나 성장 과정에서 동심의 세계를 거쳐 왔기에 동심은 어린이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인 박목월은 동시집『산새알 물새알』에서 “동시를 쓰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고 했다. 빗방울 한 개에서 세계를 돌아다니며 시시덕거리는 장난꾸러기의 마음을 느낄 수 있고, 밤에 가만히 딸기밭을 뒤지는 바람의 손을 느낄 수 있고, 또한 얼굴이 갸름한 딸기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모든 것과 친구로 사귀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동문학가 이정석은 어린이를 “바다로 나가려고/ 몸살 하는/ 바구니에 담아놓은 꽃게들”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읽기 교과서, 동시「어린이」전문) 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어린이는 자유분방한 존재이며 바다처럼 원대한 꿈을 갖고 있다. 어린이들이 자신의 꿈을 잘 가꾸어갈 수 있도록 어른들은 옆에서 끊임없이 조력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어린이는 독립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기본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존재이며, 사회와 국가는 어린이들에게 최소한의 생존권·보호권·발달권· 참여권을 보장해 주어야하며 어린이들은 이를 누릴 권리가 있다. 어른들이 동시를 써서 어린이들에게 읽히는 것은 발달권에 속한다.
동시는 동심을 바탕으로 어린이의 심리를 잘 살려야 한다. 또한 동시도 시이므로 시가 갖추어야 할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전자는 어린이의 세계를 이해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린이들로부터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동시 속에 어린이들이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와 삶의 희로애락과 갈등을 고스란히 그려내야 한다. 그런 동시가 어린이들로부터 깊은 감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어른들의 고정관념 속에 갇힌 어린이가 아닌, 바다 위에서 팔딱팔딱 뛰노는 물고기처럼 어린이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현상을 그대로 담아내야 한다.
아동문학평론가 김이구는 「해묵은 동시를 던져버리자」고 제안했다. 동시는 그 본질상 어린이를 의식하고 쓰기에 기존에 ‘혀짤배기 동시’를 패턴화한 작품과 상투적인 동심주의나 유치한 교훈을 운문 형태로 담아내는 동시들이 많았다. 그나마 요즘은 성인시를 쓰는 시인들이 동시단에 합류하여 기량을 발휘하는 동시문학의 전성기답게 어설픈 동시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한편 새로움에 도전하지 않는 실험정신에 대해 일침을 가하며 동시단의 4무(無)를 지적하기도 했다. 시적 모험이 없고, 자기 작품을 보는 눈이 없고, 비평다운 비평이 없고, 타자(他者)와의 소통이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책상머리에 앉아서 어린이를 짐작하며 쓰는 안일한 동시는 과감히 버리고, 어린이들의 제한된 생활공간인 가정·어머니·친구·학교·학원 등 비좁은 공간을 넘어선 동시가 필요하다. 먼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어린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동시, 글로벌 시대의 주역이 될 그들에게 꼭 필요한 가치 있는 동시,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동시 등 어린이들의 정서를 풍요롭게 해주는 동시가 절실히 필요하다.
연구자는 김종헌의 “문학에서의 동심은 문명에 지친 인간을 끌어안고 인간과 상호관계성 속에서 상생의 기능을 하는 자연이며 순수 담론으로서의 동심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는 것에 인식을 같이 한다.
연구자는 대부분 관조를 통한 동심의 시적감응을 바탕으로 동시를 써왔다. 시적 모티브를 형성하는 대상을 분석하고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가만히 관조함으로써 대상의 본질과 합일을 이룬 뒤 시적 기교를 부여하여 작품화 했다. 거기에 연구자의 잠재된 희망 혹은 굴곡 된 욕망이나 또는 사회 보편적인 소망을 담기도 하고, 현상을 그대로 투사하여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시적 리얼리티를 확보하였다. 하지만 동시도 시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자문해 보면, 연구자의 동시는 아직도 동심의 구현을 명료하게 달성하는 시적구조의 허약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논문을 통해 적극적인 작가의식을 갖고 시의 구조에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어린이들의 정서적 발달을 돕는 동시쓰기를 점검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해 볼 것이다.
B. 창작 방법 및 동기
중국 명대 철학자 이지는 “동심이 없으면 최초의 마음을 다시 회복할 수 없다”고 했다. 어린아이는 사람의 처음 모습이고, 동심은 마음의 처음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심이 사라지는 것은 사람들이 듣고 본 것들이 내면에 들어와서 도리를 주관하기 때문이다.
동시는 어린이들이 지닌 동심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동시는 누구의 눈으로 보고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대상을 앞에 두고 시인의 눈과 어린아이의 눈이 충돌하기도 하고, 작품에 시인의 의도를 담아낼 때도 어른의 언어와 어린이의 언어를 고려하며, 시적 대상과 시적 화자와 시적 상황을 어린이의 세계로 그려내야 한다.
연구자는 시적대상을 관조함으로써 대상을 자신과 일체시키는 습성이 있다. 이는 가급적 성인들이 흔히 가지는 고착화된 주관과 통념을 배제하고 동심을 회복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그간 연구자의 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한 역지사지의 수용능력이다. 그리함으로써 성인의 고정관념이 불러들이는 어떠한 갈등과 선택 앞에서 동심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총체적으로 아우른다.
누가 연구자에게 시를 어떻게 쓰느냐고 물으면 거리낌 없이 “나는 가슴으로 쓴다.”고 답한다. 2004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될 때, 연구자는 국문학이나 문예창작을 전공하지 않은 상태였고, 시론이니 작가론이니 작품론이니 하는 이론서를 들춰본 적도 없었다. 시창작의 여러 기술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다만 시적 대상이 내게 다가오면, 그것 또한 내 삶의 일부라 여기며 분별과 갈등을 넘어서 있는 그대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안도현은 시를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쓰고, 엉덩이로도 쓰라고 한다. 가슴으로는 붉고 뜨거운 정신을 찾고, 손끝으로는 푸르고 차가운 언어를 매만질 것이며, 엉덩이를 묵직하게 방바닥에 붙이고 시에 몰두하라고 한다. 그러니까 연구자는 시를 손끝으로 주무르는 기술이 부족했다.
김수영은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온몸으로 동시에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고 한다. 시의 구조가 내용이나 형식 중 어느 한 부분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심장을 통해 온몸에 피가 돌 듯 시인이 창조의 주체로써 시작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연구자는 안도현과 김수영의 시론을 바탕으로 이의 연장선에서 주제의식과 시창작의 과정을 자작 동시집『햇덩이 달덩이 빵 한 덩이』와 『엄마의 지갑에는』, 문예지에 실린 동시 중에 「솟대」외 51편을 선별하여 비교 분석했다. 연구자가 지금까지 다룬 주제들은 주로 어린이들의 자존감 향상 및 꿈과 희망 가꾸기, 가족과 이웃사랑, 자연과 사물에 말 걸기, 공동체적 삶 지향, 전쟁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그동안 연구자가 발표한 동시의 실제를 밝혀내고, 아울러 그를 바탕으로 동시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완성도 높은 동시를 계속 창작할 수 있는 역량과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고자 한다.
본 론
관조를 통한 동심의 시적 감응
인간의 마음이나 삶을 해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린이 물론 성인도 마찬가지다. 이미 고착된 학습에 의해 모든 대상을 규정하고 재단하려는 어른 특유의 과잉된 관념과 허위의식이 이를 방해한다. 그런데 연구자의 경우 이런 과잉된 의식을 실체적인 경험으로 넘어서서 어린 시절 동심으로 환원되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즉,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학습 또는 구태의연한 관습에 의해 형성된 의식이 의심과 실제 경험을 통해 깨지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직관을 형성시켜준 것이다. 이런 직관은 여러 경험을 귀납적으로 수렴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연구자는 동시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움직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아이들의 언어로 아이들의 마음을 읽었다. 작고 하찮은 것들을 귀히 여기게 되었고 모든 사물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여기에. 연구자가 물질적 결핍 때문에 겪은 불편과 정서적 불안은 사물에 대한 통찰력을 키워주었다. 마주치는 모든 대상을 생명의 근본으로 보았다. 하늘과 땅, 그 안에서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우주의 흐름에 맡기며 위안을 얻었고 운명의 변화를 믿었다.
이러한 통찰과 시적 대상과의 일체감에 따른 감응은 연구자에게 동심의 터보엔진을 달아주었다. 한 개인의 지난한 삶을 뛰어 넘어 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호응하는 꿈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2003년 가을, 태풍 ‘매미’가 전국을 강타했다.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수확을 앞둔 농가와 해안가 사람들이 큰 타격을 입고 망연자실해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상처가 남의 일 같지 않아서 정말 안타까웠다.
연구자의 주요작품 가운데 하나인 ‘솟대’는 이렇듯 대상을 조용히 꿰뚫어보고 그와 일체감에 이르는 관조에 의해 조각되었다. 그해 태풍으로 어려움에 처한 농부의 마음에 공감하던 차에 ‘솟대’가 떠올랐다. 땅에 사는 인간의 소원을 하늘에 전해주는 매개 역할을 했던 ‘솟대’에 생각이 모아지자 곧 시적으로 감응했다. 솟대 끝의 오리와 자신을 일체시키자 여러 질문을 던지게 되었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시어들이 결합하기 시작했다.
아주 먼 옛날 농경사회를 살았던 조상들은 오로지 자연에 의지하고 순응하면서 어떻게 살아왔을까. 거대한 자연 앞에서 너무나 작고 힘없이 무너지는 인간의 나약한 생을 어디에 매어두고 이어갔을까. 농사를 짓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자연에 기댈 수밖에 없으므로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들의 아픔을 같이 하는 길은 솟대가 되어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일 뿐이었고, 그렇게 농민과 어민을 생각하는 시어들이 하나 둘 모이자 작품으로 완성된 것이다.
나는 나무오리예요.
다른 친구들처럼
물속을 헤엄치지도 못하고
꽥꽥 소리 내지도 못하지만
하늘 닿는
긴 장대 끝에 앉아
바람을 만나면
뱃사람들 이야기 들려주며
너무 세게 불지 말라 부탁하고
비를 만나면
농사짓는 사람들 이야기 들려주며
너무 많이 내리지 말라 부탁하고
별을 만나면
아이들 가슴에 반짝반짝
따뜻한 별 하나씩
품게 해 달라 꼭꼭 부탁해요.
-「솟대」전문
솟대는 민간신앙이 낳은 조형물이다. 삼한시대에 신을 모시던 소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소도에 세우는 솟대[立木]를 말한다. 솟대는 주머니에 볍씨를 넣어 기다란 장대 끝에 달아매고 새해의 풍년을 빈다. 마을에 과거급제한 사람이 나오면, 경축하는 의미로 마을 입구에 주홍색 칠을 한 장대를 세우고 장대 끝에 청색을 칠한 용을 만들어 붙여 과거에 급제한 사실을 알렸다.
「솟대」는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기도 하다. 심사를 맡은 이준관 시인은 심사평에서 “전통문화를 다룬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자연스럽고 간결한 표현이 동시의 조건에 알맞았으며, 나무오리의 따스한 마음씨를 말하듯이 친근한 어조와 쉬운 시어로 정감 있게 표현한 좋은 작품” 이라고 했다. 윤삼현 역시 이와 유사한 논점으로 동시집『햇덩이 달덩이 빵 한 덩이』를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아이들과 최근접 거리에서 살가운 아이들의 언어로 아이들과 호흡을 일치 시키는 시적 창작 전략을 선택하고 있는 시인이 박예분 시인이다. 그에 따라 아이들 눈높이에서 오는 언어의 다정다감함이 퍽 친숙함을 안겨준다는 느낌 이다.
이러한 창작 배경에는 이준관 시인의 언급처럼 ‘아이들과 호흡을 함께하는, 아이들의 다정한 친구 같은’ 목소리를 갖고자 노력하는 시적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시의식은 신춘문예 당선작 ‘솟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나무오 리를 화자로 내세워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표출한 것은 그러한 시의식과 궤를 같이 한다.
「솟대」처럼 꿈과 희망을 노래한 동시로「덩이」,「하늘의 별 따기」, 「나는 알지요」,「나는 홍시야」「희망이네 가정조사」,「못 생긴 사과」, 「돌탑」등이 있다. 김자연은 동시집『햇덩이 달덩이 빵 한 덩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의견을 피력했다.
동시집을 읽는 내내 햇덩이, 달덩이, 하늘의 별따기, 희망이네, 소망의 가지 들, 꿈, 칭찬, 돌탑, 햇살, 꿋꿋하게, 괜찮아, 힘차게, 날개, 한 줄기 빛, 또 다 른 시작 등 희망을 갈구하는 시어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콜라를 마신 것처 럼 마음이 싸했다. 요즘 그가 처한 생활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터라 이러한 시어들이 주는 의미가 절박하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동시가 밝고 건강해서 한 편으로는 그에게 동시가 있어 참 다행이다 싶었다. 작가는 자기 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결코 남에게 줄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박예분이 빈번하게 사용한 시어들의 의미는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로 작용 할 수 있다. 그의 동시집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된 시어들이 지향하는 것은 희 망이다.
이처럼 연구자의 동시를 대부분 ‘희망’과 ‘소망’ 그리고 ‘공감과 배려’라는 키워드를 주저 없이 들면서 후한 점수를 주었다. 이와 같은 평을 긍정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서 한편으론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다. 이는 연구자의 초기 동시의 한 요소이기도 한데, 자칫 어른의 굴절된 욕망을 다 삭혀내지 못하고 동시라고 내놓은 것만 같아서다.
흙덩이, 복덩이, 햇덩이, 달덩이,
돌덩이, 메주덩이, 눈덩이, 얼음덩이,
불덩이, 똥덩이, 소금덩이, 황금덩이
모두 작은 덩이로 이루어졌지만
하는 일은 다 다르다
나는 총소리 울리는
저 바다 건너
배고픈 아이들 배를 불리는
빵 한 덩이 되고 싶다.
-「덩이」전문
이 동시 역시 같은 심상과 작법에 의한 것으로 이라크 전쟁을 바라보며 쓴 시다. 2003년 3월 20일,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영국 등 연합군과 함께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제조를 이유로 이라크를 공격한 전쟁이다. 유엔 안보리의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침공하여 4월에 미〮·영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평화의 도시 바그다드에 폭탄이 떨어지고 수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났다. 전쟁의 폐허 속에도 꽃은 피고 졌다. 전쟁으로 온 가족을 잃고 두 팔까지 잃은 아이를 보았다.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이유도 모른 채 어린이들이 죽음과 질병, 굶주림에 고통 받는 참혹한 모습을 보며 전쟁의 폭력성을 실감했다. 달려가서 손을 잡아줄 수도 없고, 안아줄 수도 없어서 연구자는 아이들의 허기를 달래는 빵 한 덩이가 되고 싶었다.
아래 동시는 위에서 언급한 덜 성긴 시의 약점이 어느 정도 보완된 것으로 자평한다. 시적 감응의 대상을 자신과 일체화시키는 기법이 진일보 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솟대」 등 초기 동시에서는 대상을 응시하는 관조로 시적감응을 불러 온 것에 비해 이 시에서는 그에 그치지 않고 대상의 이름을 자기 이름처럼 불러서 더욱 견고하게 내면화시키는 과정을 밟았기 때문이다. ‘바라봄’으로써 일체감을 이루는 것보다 훨씬 더 밀착된 상태에서 합일하는 효과가 있다 하겠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하늘에서 별 따기래요.
사람들은
왜 모를까?
똑, 똑,
따려고만 하니까
꼭꼭
숨어버리는 거예요.
자, 가만히
불러보세요.
별아, 별아,
그러면
응, 하고 대답할 거예요.
저것 봐요.
반짝반짝 거리면서
가슴에 가득 안기잖아요.
-「하늘의 별 따기」전문
‘하늘의 별 따기’는 무엇을 얻거나 성취하기가 매우 어려운 경우를 이른다. 연구자는 가끔 현실의 벽에 부딪혀 막막할 때 하늘을 본다. 캄캄한 하늘에서 제 빛을 내며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어두운 터널에 갇혀버린 연구자의 삶도 별들처럼 빛나길 바랐다. 생텍쥐베리의 동화 『어린왕자』에 나오는 사업가처럼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못하고 오로지 별을 갖고 싶은 소유욕에만 집중하는 삶이 아니다. 트리나 폴러스의 동화『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호랑 애벌레처럼 별을 따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무모함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별처럼 깜빡이고 싶었다. 세상을 향한 심장이 멎지 않고 계속 뛰기를 바랐다. 누군가를 짓밟고 짓밟히는 세상의 꼭대기도 아니다. 제 몸에서 빼낸 실로 온 몸을 휘감고 나뭇가지에 매달려 나비가 되기를 꿈꾸는 고치이고 싶었다. 현재는 보이지 않아 알 수 없지만, 그동안 상상해본 적 없는 가능성을 지닌 한 마리 나비가 되고 싶었다.
억눌린 현실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하늘의 별들이 변화를 꿈꾸는 연구자의 마음을 알아챌 때까지 낮은 목소리로 부르고 또 불렀다. 윤삼현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보였다.
「하늘의 별 따기」는 별을 따려는 사람은 많고, 별을 심으려는 사람은 적 다. 별의 숫자는 갈수록 줄어든다. 욕망의 사회 구조 속에서 자기 이익만을 챙기려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욕심을 나무라는 시이다. 그러나 꾸짖는 강도는 매우 약하다. 약하다 못해 부드럽다. ‘자 가만히/ 불러 보세요/ 별아 별아/ 그 러면 / 응, 하고 대답할 거예요’에서 보듯 시인의 차분한 설득력은 모나지 않 는 동심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발상이나 표현방식이 무리 없고 평이하며 친 절함을 잃지 않고 있다. 이 동시집의 전반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하늘의 별 따기」와「나는 알지요」는 2003년 5월에 아동문예문학상 을 받으며 등단한 작품이기도 한데, 이를 더 심화시키는 과정에서 연 구자는 하늘의 별을 가슴에 안기 위해 겨울나무를 시적화자로 내세웠다.
봄볕에 연초록 싹을 틔우는
나무의 이야기.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캄캄한 밤에
발목이 묻히는 눈밭에서도
나무는
저 혼자
쉼 없이
뿌리내림을 했다는 것을요.
봄바람이 불어 올 때마다
두 눈 꼭 감고
큰 숨 들이쉬는
소망의 가지들
온통
초록잎으로
팔랑거리는 날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나무는
너무나 행복하다는 것을요.
- 「나는 알지요」전문
온상에서 자라는 나무가 아닌 이상 혹독한 겨울을 견디지 않고는 꽃봉오리를 터트릴 수 없다. 겨울을 견디면 봄이 오듯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동안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수확의 계절이다. 딱히 거둬들일 것이 없는 연구자는 주위를 휘휘 둘러보다 눈에 쏙 들어오는 감나무에 흠뻑 익은 붉은 감 하나를 발견하였다. 단맛이 절로 나서 입맛을 다시며 어쩜 저리 잘 익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나처럼 이렇게
달디단 홍시가 되려면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릴 수 있어야 해.
얼굴이 빨개지도록
와하하하
크게 웃을 수도 있어야 해.
며칠 동안 찬 서리가 내려도
참아야하고
으랏차차 용기 있게
뛰어내릴 줄도 알아야 해.
홍시를 먹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렴
너도 잘할 수 있는 일
한 가지쯤 꼭 있을 거야.
-「나는 홍시야」전문
아이들이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경우는 실수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발표를 할 때 부끄러워하면 떨려서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 이럴 때는 아이에게 누구나 실수하면서 배우는 것이라고 말해줘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홍시는 자신을 닮은 씨앗을 땅에 심기 위해 용기를 내어 뛰어내릴 줄도 안다. 시의 화자인 홍시는 결코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다. 자신처럼 용기를 내지 못하는 친구에게 용기를 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줄 뿐이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늘 주변에 친구들이 많다. 그것은 ‘홍시’처럼 다른 사람에게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준관은 “아이들은 뜻밖에 자신이 하찮고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때가 많은데, ‘왜 나는 작을까?’ ‘왜 나는 공부를 못할까?’ ‘왜 나는 운동을 못할까?’ 이런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나는 홍시야 」는 그런 아이들에게 힘이 될 만한 동시이며, 자신감을 갖고 노력하면 누구나 ‘홍시’와 같은 결실을 맺게 될 거라는 가르침을 주는 동시라고 평가했다.
1) 동시의 주제와 심상의 확장
이제껏 연구자의 초기 동시에 대한 시적 감응과 작품화 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결국 시작(詩作)은 막연하게 떠돌던, 그러나 갈급한 주제의식이 어떤 체화된 느낌과 결합 또는 융합으로 비롯된다. 즉, 분리되었던 감각과 의식이 하나로 통섭되면서 창작에너지가 분출되고. 거기에 적절한 표현기법이 가미되면서 하나의 작품으로 드러난다.
연구자의 동시도 시적 감응의 발현이 대상과 나를 일치시켜 본질에 다가서는 관조에 있음을 말했다. 그리하여 타자를 내면화하여 궁극적으로 타자의 입을 통해 내가 바라는 어떤 가치를 말해왔다. 그래서 이제껏 살펴 본 시에서 보여주었듯 주제가 개인의 소망이나 희망 또는 개체화된 존재에 국한된 느낌을 주고 있다.
이에 비해 이후부터 다룰 동시는 주제와 심상이 좀 더 확장된 모습을 보여 주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변화 발전해 가는지 살펴보려 한다. 이는 어린 아이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관심의 대상을 자신에서 가족으로, 가족에서 교우 등 사회적 요인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과 같다. 연구자의 동시 주제 역시 그와 궤를 같이하는데, 다음에 언급한 시가 적절한 예라 하겠다.
우리 아빠는 회사가 부도나서
지금 일자리가 없다.
학교에서 가져온
가정조사표에 열심히 대답하는 누나.
아버지의 직업은?
-지금 열심히 알아보고 있는 중임.
아버지의 월수입은?
- 지금은 없지만 앞으로 있을 예정임.
누나의 눈동자 속에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
-「희망이네 가정조사」전문
「희망이네 가정조사」는 연구자의 가정이야기다. IMF즈음 부도를 맞은 남편이 새로운 직업을 모색하고 있을 때였다. 중학교에 입학한 둘째 딸이 가정조사표를 들고 와서 고민했다. 아빠엄마의 월수입, 아빠엄마의 학력, 사는 집은 자가인지 전세인지, 자동차는 무엇인지 등등 극히 사생활을 침해하는 조사라서 깜짝 놀랐다. 학생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세부적이었다. 딸과 연년생인 아들도 그 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그렇게 구체적인 가정조사표를 내밀지 않았다. 당시 연구자는 인후문화의 집에서 글쓰기 강사를 하며 월수입 오십만 원도 안 되던 때였다. 딸이 엄마아빠의 수입을 얼마로 적으면 되느냐고 물으며, “아빠의 직업이 없으니 점만 찍어야할지 없음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때 연구자는 딸에게 고민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쓰자고 말했다. 나름대로 긴장하며 심각했던 딸과 그를 가만히 지켜보던 두 아이가 킥킥대며 웃었다.
이준관은 「희망이네 가정조사」에 대해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가 부도가 난 다거나, 또는 아버지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는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한 가정의 기둥인 가장의 실직이나 사업 실패로 가족들이 겪는 마음고생은 얼마나 클까요.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실직으로 좌절에 빠져 있는 가족들에게 희망을 주는 시가 「희망이네 가정 조사」라는 시입니다. 이 시의 묘미는 ‘아버지의 직업’‘지금 열심히 알아보고 있는 중임’ 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아버지의 직업이 ‘희망’이라는 뜻이지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희망’이라는 직업처럼 든든한 것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박예분의 시는 「희망이네 가정 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와 힘을 줍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의 시는 우리가 살아갈 때 어떤 마음과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기도” 한다고 평가했다.
김자연은 “그의 이러한 희망 잡기는 「희망이네 가정 조사」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일자리를 잃은 아버지 직업을 적어내야 하는 아이의 현실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고통스런 상황을 ‘지금 열심히 알아보고 있는 중임’, ‘지금 없지만 앞으로 있을 예정임’이라고 말함으로써 새로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보는 관점을 달리해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동시는 읽는 사람에게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준다. 가족 간의 따뜻한 이해와 사랑을 느끼게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얘, 잘생긴 사과만 골라 먹으면
어떡하니?
상처 난 못생긴 사과일수록
가만히 들여다봐.
더욱 단단해지려고
달리기하다 넘어져 다친
네 무릎처럼
자전거 연습하다
넘어져 깨진 네 팔꿈치처럼
못생긴 사과도
더 맛있는 맛을 내려고
해님이랑 바람이랑 비랑
매일 씨름하다
울퉁불퉁 멍든 거야.
-「못생긴 사과」전문
생명에는 귀천이 없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일지라도 그 안에는 귀중함이 깃들어 있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생명은 평등하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하찮게 생각하지 않을 때 세상은 아름답다. 사과 한 바구니를 아이들 앞에 놓고 줄을 세우면 서로 보기 좋은 사과를 고르려고 눈동자를 굴린다. 결국 상처 난 사과들만 남는다.
연구자는 다시 아이들 앞에 태풍에 떨어진 사과를 내놓는다. 그야말로 상처투성이 사과들이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다시 농부의 꿈과 사과의 꿈이 산산조각 났으니 얼마나 슬프겠냐고 말하자, 그때서야 아이들이 하나둘 씩 손에 사과를 쥐고 찬찬히 살펴본다.
연구자는 상처 난 못생긴 사과를 자신의 꿈과 동일시하여 의인화했다. 당시 연구자가 처한 현실적 상황은 눈이 마주치는 것마다 온몸으로 간절하게 갈구하는 꿈이고 희망이었다. 김자연은 “그가 바라는 희망은 곧 아이들이 바라는 희망과도 무관하지 않다”며, 그 희망은 부정과 원망을 딛고 나오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고마움을 느끼고 서로에게 힘을 주는 것, 긍정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얻을 수 있는 것” 이라고 평가했다.
납작하고 넓은 돌을
맨 아래에 놓고
둥근 돌은 구르지 않게
모난 돌로 받치고
큰 돌 사이사이엔
작은 돌 끼워 탄탄하게
둥글 납작 모난 돌
크고 작은 돌들이 모여
기도합니다.
어떤 강풍에도 흔들리지 말자
어떤 폭우에도 쓸려가지 말자
졸졸 흐르는 계곡물이
그 마음 아는지
돌탑 주위를 조용조용 돕니다.
-「돌탑」전문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 꿈속에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시적 대상인 돌탑은 희망을 안고 하루하루 꿈을 키우며 비바람을 견디고 있다. 작은 돌, 큰 돌, 둥근 돌, 모난 돌, 납작한 돌, 뾰족한 돌들이 모여 저마다의 꿈을 쌓은 탑이다. 그 꿈이 와르르 무너지면 희망도 없기에 그 어떤 강풍에도 흔들리지 말고 쓸려가지 말자고 다함께 의지하며 꿈을 키워가고 있다. 그 꿈은 자기를 가장 사랑해주는 가족을 위한 꿈이기도 하고, 곁에 있는 친구를 위한 꿈이기도 하고, 저 멀리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꿈이기도 하다. 그 바탕은 바로 ‘서로 받쳐주고 부여잡아주는 사랑’이며, ‘탑’이라는 전체와 부분의 통합과 각 부분들이 지닌 개성을 살리고 역할을 분담시킨 시적장치로 메시지 전달을 보다 선명하게 했다.
항상 두둑한 엄마 지갑
만날 돈 없다는 건 다 거짓말 같아
엄마는 두꺼운 지갑을 열어 보며
혼자서 방긋 웃기도 하지
돈이 얼마나 많이 들었을까
나는 몹시 궁금해서 살짝 열어봤지
에계계
달랑 천 원짜리 두 장뿐이었어
대신 그 속에 어릴 적 내 사진이
활짝 웃고 있지 뭐야
거기에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랑 누나 사진까지 들어 있지 뭐야.
-「엄마의 지갑에는」전문
가족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다고 가족 구성원을 금방 바꾸거나 맘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갈등이 있거나 다투어도 혈육으로 뭉친 끈끈한 정으로 금세 마음을 열고 풀어버린다. 하물며 나를 낳아주신 부모의 사랑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하다. 살림이 어려운 엄마이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높고도 깊다. 힘들 때 ‘엄마’라는 이름만 떠올려도 힘이 되는 존재이다. 연구자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정신적인 지주이자 영원한 멘토였다. 그런 엄마를 뜻밖에 길에서 만나면 얼마나 반가울 것인가.
길을 가다 뜻밖에 엄마를 만나면
어쩜 그리 반가울까요
아침에 일어나서 보고
학교 다녀와서도 봤는데
마트에 간 엄마를
뜻밖에 집 앞 횡단보도 앞에서 만나면
우린 서로 맞은편에 서서
신호가 바뀔 때까지 손을 흔들지요
보고 또 보고 또 봐도
언제 어디서나 반가운 우리 엄마.
- 「길에서 만난 엄마」전문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체들에게 엄마는 절대적인 존재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의 품에 안겨 젖을 물고 그 체취를 맡으며 마음의 안정을 얻기 때문이다. 아기가 배가 고플 때 소리가 아닌 첫 언어는 ‘맘마’이다. 그렇게 시작해서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엄마’ 를 부른다.
인간의 뇌구조 중에서 감정이 발달하는 기관은 3세까지 성인의 80%가 형성된다고 한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 그 시기의 아이들에게 안정감과 신뢰감을 형성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어린 아이에게 불신감과 분노를 일으키는 정서불안장애를 가져올 수 있다.
연구자는 아이 셋을 키우면서 체벌을 가해본 적이 없다. 굳이 큰소리 내지 않고 때리지 않아도 대화로써 충분히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의 성품이나 대인관계도 원만하고 온유한 편이다.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에게 물들었다.
이준관 시인은『엄마의 지갑에는』을 따뜻한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 찬 시집이며, 가족 간의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동물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친구에 대한 사랑을 가득 담고 있어서, 마음이 사랑의 빛깔로 물들여지고 가슴이 훈훈해진다고 평가했다.
텃밭에 봉숭아꽃잎 물든다.
여름 볕에
화아, 발갛게
화아, 희고 노랗게
꽃잎 몇 장
초록 이파리 몇 장 따다 콕콕 찧으며
엄마가 기도한다
내 손톱에 해달별처럼 밝은
고운 물들게 해달라고
누군가에게
고운 물들여주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먼저 물들여야하는 것
내 조그만 손톱 물들이다가
엄마 손가락이
먼저 물든다.
-「꽃물 들이기」전문
‘물들다’ 는 어떤 빛깔이 스미거나 옮거나 묻는 것을 말하고, 또는 어떤 사상·행실·버릇이 누군가와 같이 닮아 가는 것을 말한다. 시적화자의 손톱에 봉숭아꽃으로 물들여주려다 엄마의 손가락이 먼저 물든다. 이런 엄마의 고운 마음을 통해 우리는 사람들과 어떻게 교류해야하는지, 자신의 삶을 어떤 마음으로 꾸려가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준관은 “박예분 시인의 동시는 여름이면 텃밭에 심은 봉숭아꽃잎을 따다가 엄마가 물들여주는 봉숭아 꽃물처럼 우리의 마음을 봉숭아꽃빛 사랑으로 곱게 물들여줍니다. 손톱에 곱게 물든 봉숭아 꽃물을 보면서 엄마의 사랑을 느꼈듯이 박예분 시인의 동시도 사랑의 마음을 담뿍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나는 박예분 시인의 동시를 ‘엄마가 물들여주는 봉숭아꽃물 같은 사랑의 동시’라고 부르고 싶다” 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아빠 출장 가신 날
엄마 곁 빈자리
서로 차지하려고 신경전을 벌이는
누나와 나.
- 얘들아
한 쪽 날개로는
하늘을 날 수 없단다
너희들이 엄마의 두 날개가 되어주렴.
말하지 않아도 우리 맘을 뚫어보는
엄마는 천사
야호,
엄마의 양쪽 날개가 되어
꿈나라로 출발!
- 「엄마의 날개」전문
엄마의 사랑을 온통 독차지하던 아이가 동생이 생기면 성장과정에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엄마 품에서 떨어져 나와 부딪히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간혹 분리불안 장애로 떼를 쓰며 울기도 한다. 가족들이 동생을 사랑하는 걸 보면 샘을 내고, 가족들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아기의 흉내를 내기도 한다. 그와 같은 아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엄마는 아이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사랑하며 자랄 수 있도록 지혜롭게 대처하는 모습을 「엄마의 날개」에 담아냈다.
뿌연 쌀뜨물에
된장 풀어 끓인 구수한 시래깃국
김 모락모락 난다.
오늘처럼 찬바람 윙윙거리는 날
멀리 출장 가신 아빠한테
뜨끈한 시래깃국 한 대접 보냈으면
좋겠다는 우리 엄마.
아침 다 먹도록 언뜻언뜻
아빠의 빈자리에 눈길 멈춘다.
- 「시래깃국」전문
‘엄마’라는 자리는 아이들만 챙기지 않는다. 「시래깃국」은 엄마 못지않게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주는 ‘아빠’라는 존재가 있음을 자연스럽게 인식시켰다. 아빠가 출장가고 없는 식탁에 세 식구가 마주 앉았다. 아이들은 아빠가 없어도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엄마의 말 한마디에 아이들은 아빠의 빈자리에 눈길을 준다. 그 순간 아이들의 머릿속에 아빠의 얼굴이 오버랩 될 것이다. 그리고 아빠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궁금해 할 것이다. 아이들도 집을 떠나서 생활할 때가 가끔 있기 때문이다.
수학여행 가려는 오빠가
엄마를 부른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아-
하루에 한 번
4일 동안 못 보니까
네 번 불러 주는 거라고
엄마도 따라서
아들, 아들, 아들, 아드을-
- 「4일 동안 못 보니까」전문
사랑은 표현이다. 바쁜 일상에 쫓겨 사는 맞벌이 부부들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다. 그럴수록 아이들에게 사랑의 표현을 아끼지 않아야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유치원에서 소꿉놀이할 때 아이들은 평소에 부모가 하는 말들을 그대로 사용한다. 부모가 고운 말을 쓰면 아이도 고운 말을 쓰고, 부모가 기분에 따라 반응했던 것들을 그대로 스펀지처럼 흡수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닮아간다.
아이들이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학교에서 ‘부모님께 편지쓰기’를 할 때 힘들어하는 걸 보았다. 대부분이 부모에게 ‘사랑한다’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고 한다. 엄마아빠의 어떤 모습이 좋은지, 무엇이 감사한지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만큼 부모가 아이들에게 사랑의 표현을 언어로 다양하게 해 주지 않아서 무감각한 것이다. 아이들이 언제 어디서든 부모의 목소리를 듣고 싶을 만큼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특히 집을 떠난 어린이들은 부모의 사랑이 더욱 그리울 것이다.
여행하다 집 생각나
전화 걸면 가슴 뭉클해
- 밥은 잘 먹니?
힘들진 않아?
잠자린 안 불편해?
세상에서 제일 포근한
엄마의 말.
-「여행지에서」전문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나는 여행은 설렘과 즐거움과 모험이 동반된다. 여행 중에 아름다운 자연과 정겨운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예기치 않는 돌발 상황에 직면하여 고생을 하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지나온 삶에 대한 반성과 현재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여행지」의 화자처럼 집을 떠나 생활하다보면, 어느 정도 호기심을 충족시킨 후 가족이 그리울 때도 있고, 집에서 먹던 밥이 생각날 때도 있다. 혹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불편한 잠을 자야할 때도 있다. 그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가족이다. 인간은 이렇게 가족들로부터 큰 위안을 얻는다.
이른 아침 부랴부랴
걸려 온 전화
할머니 목소리 다급하시다
- 별일 없지?
애들이 꿈에 보인다
차 조심시켜라
어떤 아침은
아빠가 할머니께 전화를 한다
- 별일 없으시죠?
어머니가 꿈에 보여서요
꿈에서도 가족은
서로서로를 아끼고
걱정하나 봐요.
- 「꿈 이야기」전문
가족은 꿈속에서도 서로 걱정을 한다. 시적 대상인 할머니는 집안의 중심이다. 연구자가 어릴 때는 증조할머니의 무릎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할머니의 손자사랑은 무조건적이다. 어디 손자뿐이랴. 당신이 낳은 자손들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도록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며 삶의 지혜와 사랑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었다. 하지만 요즘 노인들의 현주소는 어떤가. 주위를 둘러보면 노년을 몹시 힘들고 외롭게 사는 분들이 많다.
은행 담벼락에
종이상자를 접착테이프로 이어 붙여
겨우겨우 칼바람을 막은
조그만 집.
참깨, 콩, 팥, 마늘, 생강 따위를
맨땅에 늘어놓고 파는 할머니가
주인이다.
사 주는 사람도 없는데
종일 좁은 곳에 웅크리고 앉아
콜록콜록 기침하던 할머니.
오늘은 종이상자 집이 텅 비었다
무슨일일까
무슨일일까
핼쑥한 할머니 얼굴 떠올라
자꾸자꾸만 뒤돌아보며 걷는다.
-「종이상자 집」전문
「종이상자 집」은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문예진흥기금을 받은 작품이다. 시의 배경은 연구자가 살고 있는 지역 근처 안골이다. 시적대상인 할머니는 결코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기 위해 노점상을 차린 게 아니다.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기 무료해서 나왔다. 사람이 그리운 것이다. 자식들은 아침 일찍 일터로 나가고, 손자들은 학교에서 학원으로 바쁘다. 노인이 집에서 대화 상대 없이 혼자 벽만 바라보면 치매 걸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밖으로 나온 것이다. 물론 생계유지를 위해 노구를 끄는 안타까운 분들도 있다. 그분들이 의미 있는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노인복지가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시골 노인들이 타작을 해요.
할아버지가 콩을 두드리면
두두두두 두두두
콩알들이 콩콩콩 신나게
이리저리 뛰고 뒹굴고
할머니가 깨를 두드리면
소소소 소소소소
마당에 까르르 쏟아지는
깨알 같은 웃음소리에
산비탈에 감나무
먼발치서 까치발을 딛고 서서
잘 익은 홍시 서너 개
톡, 토옥 떨어뜨리며
할아버지 할머니, 새참 드세요!
- 「타작마당」전문
노부부만 사는 시골농가에서 콩 타작과 깨를 턴다. 산비탈에 감나무가 먼발치에서 지켜본다. 일손이 부족한 노인들을 돕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까지 갈 수 없는 몸이기에 잘 읽은 홍시를 서너 개 톡, 토옥 떨어뜨려 새참으로 내 놓는다.
고령화사회가 되면 노동력이 부족하여 생산과 성장이 둔화된다.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고령층의 고용이 늘어나지만, 이들을 위한 고용정책을 세울 때, 노년을 의미 있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후생복지사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연구자는 최명희문학관에서 파견작가로 일하며 문학 강연을 했다. 그 중에 서원노인복지관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자서전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는데 매우 만족했다. 참여한 분들은 복지관 소속의 독서동아리 회원들로써 평소 독서량이 많아서 글을 수월하게 썼고, 자신의 삶을 문집으로 엮으며 생이 훨씬 가벼워졌다고 매우 만족했다.
반면 몸이 불편해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독거노인들도 대다수였다. 다세대주택 반지하방에서 살던 독거노인이 숨진 뒤 20여일 지나서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통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국가나 사회단체에서 소외계층의 노약자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독거노인들의 쓸쓸한 죽음을 방지하기 위해 그들이 사는 곳에 문패 하나 걸어둘 일이다. 이웃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인이 혼자 사는 곳’이라고 큼지막하게 써 붙일 일이다.
우리 집 대문에
둥글납작한 나무 문패 걸었어요.
제일 위에 주소 적고
그 아래에 할아버지 할머니
그 아래에 엄마와 아빠
그 아래에 누나와 내 이름도
나란히 적었어요.
우편배달 아저씨보다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친구들이
더 많이 보는 내 이름.
어저께 대문 앞에서
앞집으로 이사 온 아저씨께
꾸벅 인사했더니
- 오호라, 네가 경수구나.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며
아저씨가 따뜻한 손을 내밀었어요.
- 「문패」전문
이웃사촌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옛말이 되어버렸다. 예전에는 이웃에 애경사가 생기면 가족처럼 함께 나누었다. 하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경쟁사회 속에 숨 가쁘게 사느라 이웃에 대한 관심이 없다. 바쁜 일이 있으면 이웃에게 집도 부탁하고 아이들도 믿고 맡겼는데, 요즘은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개인주의 사회가 되었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주차문제와 층간소음문제, 애완동물 키우는 문제 등 공동주택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마찰을 일으킨다. 또한 도난이나 성폭행범들 무서워 맘대로 문도 열어놓지 못하고, 개인정보 유출 문제 때문에 문패에 가족들의 이름도 걸어두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줄 알면서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릴 때 친하지 않으면 경계를 한다. 아이들에게도 낯선 사람이 부르면 절대로 따라가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정다운 이웃이 아니라 무서운 이웃이 되어버렸다. 다행이 연구자가 사는 오래된 주택가는 아직도 이웃들의 온정이 오간다. 동시「문패」는 이 시대의 희망사항이다.
엄마 심부름으로 동네슈퍼에 갔다.
두부 한 모, 콩나물, 김 한 봉지
잘 챙겨 나오는데
- 재강아, 잠깐만 기다려라
역시나 이쯤에서
나를 불러 세우는 아저씨.
금방 튀긴 따뜻한 쌀 튀밥
한 바가지 듬뿍 퍼주며
- 조심해서 잘 가라
도돌이표 아저씨 목소리는
늘 다정도 하지.
- 「도돌이표 아저씨」전문
동네에 누가 이사를 오면 아직도 시루떡을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옆집에서 부침개 냄새가 솔솔 풍기면 조금 있다가 부침개 한 접시가 대문 안으로 들어온다. 김장을 하면 서로 맛을 보라고 나누어주기도 한다. 누구네 집에 자식이 몇이고 어디 학교에 다니는 것 까지 알고 지낸다. 동네 아저씨들은 골목을 누비는 아이들을 만나면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정겹다.
우리 동네 배불뚝이 아저씨
나만 보면 놀린다.
- 콩만한 게 귀엽단 말이야
쳇, 나처럼 큰 콩이
어디 있다고.
웬만하면
말 안 하려고 했는데
- 있잖아요, 아저씨 배는 남산만해요.
- 「줄이기와 뻥튀기」
「줄이기와 뻥튀기」는 과장법과 대화체를 써서 더욱 생생하게 표현했다. 시적화자는 요즘 아이들답게 자기 의사표현이 분명하다. 자신을 콩에 비유한 아저씨에게 머뭇거리지 않고 ‘남산만한 배’ 라고 반격을 한다. 그런데 그 모습이 버릇없거나 건방지지 않다. 오히려 귀여워서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오늘은 재수 좋은 날,
길을 가다
만 원짜리 한 장 주웠다.
피자 사먹을까
통닭 사먹을까
입 안 가득 군침이 확 도는데
잠깐, 누가 떨어뜨렸을까?
배고픈 사람의 밥값이었을까
아픈 사람의 약값이었을까
친구가 심부름가다 흘린 돈일까
돈을 주운 행운은 어쩌면
돈을 잃어버린 사람의
불행일지도 몰라
주인 찾아주러 파출소 가는 길
피자 한 판 날아간다
통닭 한 마리도 훨훨 날아간다.
-「주운 돈」전문
길을 가다 주운 돈을 파출소에 신고하는 일은 쉽지 않다. 돈의 액수가 크건 작건 간에 돈의 유혹에 흔들렸을 것이고, 파출소까지 가는 일이 번거롭기도 해서 그냥 호주머니에 넣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화자는 누군가 배고픈 사람의 밥값일지도 모르고, 아픈 사람의 약값일지도 몰라서 파출소로 향한다. 이것이 곧 역지사지요 이웃사랑이다.
2) 동심의 궁극적 도달지점
동시의 토대인 동심의 상상력과 확장범위는 무한하다. 어쩌면 실생활에서 어쩔 수 없이 억압되고 고착화한 어른들보다 넓고 다양할 수 있다.
앞서 1)에서 살펴본 것처럼 연구자의 동시 주제가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범위에서 가족과 사회로 확장 되었다. 어린 아이들 역시 어른들과 비슷하게 가난이나 교우관계의 갈등은 물론이고 사회 부조리를 느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동심의 확장은 이에 머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 자신과 그를 둘러싼 가족과 사회는 물론이고 그를 모두 포괄하는 자연, 즉 우주와 긴밀하게 통섭한다. 시적 감응에 의한 창조행위란 일종의 인식전환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전환은 인간의 내면과 조응하는 외부의 힘이 작용할 때 비로소 하나의 실체로 그 진면목을 드러낸다.
따라서 동시의 대상은 동심의 상상력만큼이나 다양하고 넓게 포괄한다. 앞으로 살펴볼 동시에서는 박목월이 언급했듯 ‘동시란 세상의 모든 것과 친구로 사귀는 일임’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것으로 믿는다.
배추벌레를 잡아다 주면
늙은 수탉은 혼자 먹지 않는다
꼬오꼬꼬 꼬오꼬꼬꼬
암탉을 불러와 어서 먹으라 한다.
꼭 우리 할아버지 같다
옥수수 가루를 뿌려주면
젊은 수탉도 혼자 먹지 않는다
꼬오꼬꼬꼬 꼬오꼬꼬꼬
어린 닭들을 어서 오라 부른다.
꼭 우리 아버지 같다.
- 「우리 집 수탉」
동물도 가족을 사랑한다. 연구자가 시골에 사는 친정 부모님 댁에서 2년을 넘게 지켜 본 수탉들이다. 배추밭에서 나무젓가락으로 배추벌레를 잡아다 주면, 4년 넘게 산 늙은 수탉은 자기 입으로 먼저 가져가지 않는다. 암탉들을 불러 모으느라 꼬오꼬꼬 꼬오꼬 울어대고, 암탉들은 그 소리를 듣고 뒤뚱거리며 달려와서 부리로 배추벌레를 콕콕 찍어 먹는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찌 알았을까. 제 식구 챙기는 걸 보고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에 시로 형상화했다.
신현득 시인은 「우리 집 수탉」을 혼자 먹지 않는 닭의 생활을 재미있게 작품으로 소화했다고 평했다. “어미닭이 병아리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은 자주 보는 현상이다. 그러나 수탉이 암탉이나 어린 닭에게 모이를 양보하는 것은 약간 과정된 것 같다.”고 지적하고, “그래도 어색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경우에 견주었기 때문이다. 닭의 가족생활을 화합이 잘 되는 가정에 비유한 점이 좋다. 이 시는 투명하다. 할아버지 노릇하는 늙은 수탉, 아버지 노릇하는 젊은 수탉은 작품 안에 놓인 재미요, 알맹이”라고 평가했다.
인간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때 행복을 느낀다. 현대 문명의 이기로 인해 자연을 파괴하면서 개발에만 집중한 결과 생태계가 파괴되었다. '로드킬'(road-kill) 최다 발생지로 손꼽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오대산 사무소는 관통도로에서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대책마련에 나섰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모으는 일이 시급하다.
산에 가면 엄마는
나무에게 말을 건다
- 나무야,
신선한 공기 정말 고맙다
푸른 잎 무성한 나무들이
가지를 흔들어대며
- 고맙습니다, 또 오세요.
엄마는 나무에게
나무는 엄마에게
감사한 마음 나누는 숲에는
생명의 풀씨
평화의 풀씨가 자란다.
- 「함께 사는 일」전문
아이와 함께 모악산에 오른 적이 있다. 날씨도 청명하고 공기도 맑아서 큰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마다 공해에 찌든 세포가 다시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그때 숲에 대한 감사함을 「함께 사는 일」에 담았다.
요즘 지방마다 건강을 위한 슬로우 길을 만들어놓고 걷기 축제를 진행한다.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 변산 마실길, 군산 굽은길. 익산. 고창 질마재, 공주 마곡사 솔바람 길, 강릉 바우길, 진안 마실 길 등 천천히 걷는 길이 지역마다 무수히 형성되고 있다. 사시사철 트레킹 코스마다 사람들로 붐빈다. 가족〮, 친구, 동료, 이웃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이름 모를 작은 풀꽃을 만나고 다람쥐와 청솔모도 만난다.
험한 산길 힘들게 걷다 보니
차라리 아빠 차 타고
단번에 올라올 걸 그랬어.
아냐, 아냐, 그렇담
반갑게 허리 굽혀
어떻게 작은 풀꽃을 만나겠어.
오늘 우둘투둘 자갈길
걸어 보지 않았으면
세상의 길은
아마 모두 아스팔트라고
생각했을 거야.
새들의 노랫소릴 듣고도
이름 몰라서
얼른 불러 주지 못한 게
얼마나 미안한 건지
어떻게 알았겠어.
- 「걷지 않으면 몰라」
작은 풀꽃들도 인간처럼 이름을 갖고 저마다 세상에 필요한 귀한 존재로 태어났다. 해마다 때맞춰 피고 지는 야생화들을 보며 이름을 불러주지 못한 게 얼마나 미안한 건지 산길을 걸어보면 안다.
김춘수 시인의 시「꽃」처럼 화자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지만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그는 나에게 의미 있는 꽃’이 된다. 대상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을 때 의미가 없던 것이 이름을 붙여줌과 동시에 의미가 생긴다는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시다. 인간의 삶도 서로 소통하기 전에는 무의미한 스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무의미한 존재들이 각자 주어진 삶을 살아내기 위해 이 땅에 소리 없이 뿌리내림을 하고 있다.
뽑히고 또 뽑혀도
꿋꿋하게 다시 살아
벌레들에게
곡식이나 채소 대신
제 몸 갉아 먹게 내어 주는
농투성이 잡초
비가 많이 내릴 땐
온몸으로 흙을 감싸 쥐는
흙투성이 잡초
특별한 이름 하나 없어도
행복한 잡초
외양간에 송아지
살찌우고
끝내는
비옥한 땅을 만들기 위해
거름으로 돌아가는
두엄더미 잡초.
- 「잡초」 전문
‘잡초’라고 불리는 한해살이풀들의 삶은 얼마나 치열한가. 뽑히고 뽑혀도 끝없이 뿌리를 내리는 놀라운 생명력은 현실의 어려움에 맞서는 인간의 삶과도 다를 바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온몸으로 견디어 내는 잡초처럼 크고 작은 풀들의 노랫소리에 귀기울여보면, 작은 모이주머니 하나 달고 제 갈길 향해 하늘을 나는 작은 새들의 날갯짓에도 눈길이 간다.
집 없는 고양이들
오래된 기와지붕 오르내리며
멍멍이 밥그릇에 가득 담긴
생선대가리를 보고 군침 흘린다.
멍멍이가 꼬리 빳빳이 치켜세워
의심스레 살피는데
지붕 위 고양이들 우르르
쏜살 같이 달려들어
생선대가리 냉큼 물고
기와지붕을 타고 멀리 달아난다.
컹컹, 커겅,
빈 그릇 달그락 달그락거리며
멍멍이가 울어대자
달아난 고양이들 나무라는데
주인아저씨 뛰어나와
시끄럽다며 까치만 혼낸다.
아무 잘못 없는 까치
멀뚱멀뚱 하늘만 올려다보며
눈물 글썽인다.
교실에서 친구들과 장난치다
나만 선생님께 걸려
복도에 무릎 꿇고 앉아
두 손 번쩍 들고 벌서는
꼭 나 같다.
- 「억울한 까치」전문
고양이가 생선대가리를 물어갔는데 아무 잘못도 없는 까치가 야단을 맞는다. 까치는 얼마나 억울하고 속이 상하고 분할까. 그래서 까치는 멀뚱멀뚱 하늘을 쳐다보며 눈물을 글썽인다. 세상을 살다보면 억울한 일이 어디 이뿐이랴. 시의 화자도 까치처럼 친구와 같이 장난을 치다가 선생님께 걸려서 혼자만 억울하게 벌서는 일을 떠올린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세상에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더욱 슬픈 일이다. 「억울한 까치」는 이와 같은 어린이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헤아려 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이곳이
벼가 누렇게 익었던 곳이라고
찾아보면
잘 여문 낟알들이 있을 거라고
먹이 찾는 겨울새들을 위해
찬바람 맞으며
논 한가운데
기꺼이 알림판으로 서 있습니다.
-「겨울 허수아비」전문
허수아비는 가을에 새를 쫓기 위해 논에 세워 놓은 것이다. 이는 허수아비의 뜻이 아닌 인간의 삶이다. 아마도 허수아비는 먹이 찾는 새들을 쫓아낼 때마다 안타깝고 미안했을 것이다. 그래서 제 할일 다 끝냈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배고픈 겨울새들에게 ‘이곳이 벼가 누렇게 익었던 곳’이라고 알리기 위해 찬바람 맞으며 서 있는 것이다. 대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며 발상의 전환이다.
아기 매미 잘 자라라고
나무는 날마다 젖을 주었지요.
나무 젖을 먹고 자란 매미
날개 돋아 멀리 여행 떠날 때
나뭇가지에 제 허물 벗어 놓고
엄마나무라 표시해 두었지요.
- 「매미 허물」전문
전주한옥마을 이목대 비각 앞에 있는 오래된 벚나무에서 매미허물을 처음 보았다. 커다란 나무기둥에 세 줄로 나란히 줄지어 있는 모습을 보고 바퀴벌레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등이 갈라진 흔적이 보였고 속이 텅 비어 있었다. 그때야 매미허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무 한 그루에 수십 마리가 떼 지어 붙어 있는 것이 신기했다. 마치 노부부가 사는 집 같았다. 자식들은 다 객지로 떠나고 액자만 빽빽이 벽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알맹이는 다 떠나고 껍데기만 붙들고 사는 노인들은 곧 우리네 부모님이었다.
매미는 나무 기둥 속에 하얗고 길쭉길쭉한 알을 낳는다. 알을 깨고 나온 애벌레는 땅 속으로 들어가서 나무의 즙을 먹고 살며 네 번 정도 허물을 벗는다. 허물을 벗을 때마다 몸이 자라고 색깔도 진해져서 땅 위로 올라올 때는 어른매미와 거의 비슷해진다. 땅 위로 올라온 매미는 캄캄한 밤에 나무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마지막 허물을 벗는다. 먼저 머리가 나오고 다리와 날개를 뺀 다음 허물을 완전히 벗는다. 몸과 날개가 다 말라서 단단해지고 쪼글쪼글하던 날개도 완전히 다 펴진다. 그런 다음 짝을 찾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울어댄다.
결국 아기매미를 키운 건 매미 엄마가 아니라 나무였다. 나무 한 그루가 수많은 매미들의 생명을 거둔 것이다. 매미가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날 수 있도록 선뜻 생명의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 은혜 잊지 못해 매미는 자신을 키워 준 나무를 ‘엄마나무’ 라고 표시해 두고 멀리 여행을 떠난다.
‘제 허물 벗어 놓고’ 라고 표현한 것은 그 이면에 동음이의어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생태적인 매미의 허물을 뜻하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그릇된 실수, 과실’ 등의 의미를 담았다. 부모는 자식의 과오까지도 다 덮어주고 품어 안아주는 따뜻한 존재이다. 세상에 지친 몸을 뉘일 수 있는 곳, 언제든 찾아가도 반겨 맞아주는 곳은 바로 만고풍상 다 이겨낸 어머니의 품이기 때문이다.
정호는 법보신문「뭇 생명을 위한 변명」에서 “ 박예분 시인의「매미 허물」은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엄중한 독존이 인드라망이라는 연기론에서 벗어날 수 없음과 대자비의 시작과 끝이 부모님 은혜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멀리 여행을 떠난「매미 허물」은 2009년부터 서울지하철스크린 도어에 설치되었고, 양평곤충박물관에서 어린이 친구들을 맞이하고 있다. 인천광역시 영어마을에서 '동시로 배우는 영어' 교육기부 수업으로 「매미 허물」을 영어로 번역하여 교재로 활용하고 있다.
The Slough of a Cicada
- Park Yeboon
The tree gave milk everyday
for the baby cicada to grow well.
A cicada which has grown up by eating milk
when it could travel far with its own wings,
It takes off its slough on the branch of a tree
and marked as mother tree.
맴맴 쓰름쓰름 울어대던 매미들이 울음을 그치고 나면, 나무는 열매를 거두기 위해 가을 햇살에 온몸을 익힌다.
푸른 숲에
잣, 호도, 밤, 개암, 도토리는
푸른 열매
잘 익기 전에는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아요.
가을 숲에
잣, 호도, 밤, 개암, 도토리는
갈색 열매
잘 익은 열매는
사람들이 먼저 알아보고 찾지요.
- 「열매」전문
나무는 자신에게 주어진 종족보존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기 위해 카멜레온이 된다. 때가 되기 전에는 섣불리 자신의 열매를 내보이지 않는 게 생태이다. 우리는 자연을 통해 항상 큰 깨달음을 얻는다. 설익은 밥, 설익은 공부, 설익은 말, 설익은 생각, 설익은 마음, 설익은 행동은 아무리 포장을 해서 내놓아도 금세 표가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겸손은 만물의 미덕임을 「열매」를 통해 성찰하였다.
우리 동네 고물상엔
옛이야기 수북이 쌓여 날마다
고물들이 재잘재잘 수다잔치 벌여요.
와장창, 깨져버린 거울 조각은
이래봬도 왕년엔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모습 좀 잘 봐달라고 했대요.
날개 부러진 선풍기는
왕년에 자기도 뜨거운 여름엔
사람들에게 시원한 바람을 선물했대요.
바퀴 없는 낡은 자전거는
왕년엔 자기도 동네 곳곳을 쌩쌩 누비며
아주 신나게 달렸대요.
고물상 앞을 지날 때면
나 들으라는 듯
더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손 흔드는
왕년의 내 자전거.
- 「고물상」전문
동네 고물상 앞을 지나다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곳에 쌓인 것들은 세상에 버림받은 것들의 집합체였고, 정확히 말하자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기약 없는 기다림을 견디는 재활용품들의 대기 장소였다. 대부분 깨지고, 부서지고, 부러지고, 낡고, 녹슨 것들이 온갖 사연을 늘어놓았다. 유행가 가사처럼 왕년엔 꿈도 많았고 잘나갔던 시절이 있었던 그들의 곡절 많은 사연들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길 바랐다.
3. 어린이 세계의 시적 리얼리티 확보
문학작품의 작품성은 언제나 시대와의 통섭에 의해 완성된다. 당시 사회현상이나 분위기에 연동하여 평가가 조정되거나 달라진다. 물론 동시를 포함한 문학이 언어를 도구로 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지만, 그에 대한 감상과 평가는 시대에 따라 변주한다는 것이다. 문학성이라는 평가가 작가의 경험이나 정신 등을 주요소로 하는 실증주의에서, 문학의 작품성이란 오직 작품에 내재하는 요소에 있으며 내용을 오직 형식의 동기화로 보는 형식주의로 변화했던 과정이 그의 논거이다. 그리고 이런 형식주의가 다시 작품성이란 작가나 작품에 있다기보다는 작품과 그 작품을 읽는 독자와의 교감과 교통에 의해 비롯된다는 독자개입의 현상학적 이론의 대두가 그것이다.
이러한 문학 비평 가운데 가장 현대적이라고 볼 수 있는 독자 개입의 현상학적 관점을 토대로 어린이 세계의 시적 리얼리티 확보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려 한다. 그것이 성인시와는 달리 어린이를 독자로 하는 동시에 좀 더 개연성을 부여하리라는 관점에서다.
동시를 쓰는 일은 생의 커다란 축복이다. 그 안에는 동심이 가득 들어있기 때문이다. 동심으로 숨을 쉬면 늘 긍정의 힘이 자리하기에 크게 웃고 산다. 긍정의 힘은 밝고 힘찬 에너지가 넘쳐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
연구자는 교육현장에서 어린이들에게 글쓰기 지도를 하고 있다. 글쓰기의 기술적인 면을 가르치기 보다는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는 편에 속한다. 어린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문제로 고민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가슴에 쌓인 것들을 쏟아내면 그들의 마음을 그대로 읽어준다. 어린이들의 감정도 어른 못지않게 복잡하다.
어린이들의 고민거리는 자기 자신에서부터 친구, 가족, 학교, 놀이 등이 대부분이다. 또한 생각이 많은 어린이들은 무한한 호기심을 갖고 있어서 질문도 많다. 연구자는 되도록 어린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어린이들과 동화를 함께 읽을 때는 등장인물이나 사건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주제는 주로 ‘나, 가족, 이웃, 경쟁, 배려, 용서, 예의, 나눔, 우정, 약속, 존중, 믿음, 화, 질투, 부끄러움, 두려움, 외로움, 욕심,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싸움, 노동, 봉사, 남자와 여자, 규칙과 질서, 평등과 차별, 명령과 순종, 협동, 공평, 책임, 놀이, 참과 거짓, 감사, 양심, 절제, 정직, 희망, 겸손, 용기, 노력, 자립, 개성, 반성, 자신감, 꿈, 생명, 시간과 변화, 자연과 인간, 죽음, 전쟁, 다문화 등 다양하다.
동시의 주제도 동화와 다를 바 없다. 연구자는 어린이들과 뒹굴면서 자연스럽게 동시의 소재를 얻었다. 어린이들이 나누는 대화나 행동을 통해서 어린이 세계의 시적 리얼리티를 확보했다. 하지만
이준관은 『햇덩이 달덩이 빵 한 덩이』에 대해 “박예분 시인은 동시의 주인은 아이들이라는 신념으로 ‘아이들의 벗이 되는 시’ 를 쓰고, 아이들이 시를 친구삼아 가까이 지내게 하려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시를 쓰고 있으며, 박예분 시인의 시를 읽으면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나 친구가 읽어주는 시처럼 다정다감한 느낌이 든다”고 피력했다. 또한 “박예분 시인의 시는 발상이나 표현이나 어디 한군데 어려운 데가 없고, 아이들이 제 나이 또래의 친구를 사귀듯 시와 가까이 사귈 수 있게 아이들 눈높이에 딱 맞게 썼으며, 아이들 호흡에 맞게 시의 길이도 마침맞고, 표현도 평이하고 내용도 아이들 동심에 어울리는 것들”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1) 자아존중감과 격려로서의 동시
부모는 아이들 때문에 희망을 꿈꾸고, 때론 좌절하고 울고 웃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도자기와 같아서 처음부터 흙을 꼭꼭 다지지 않으면 쉽게 깨지고, 형상을 빚고 다듬는 시간이 오래 걸리면 금세 굳어 버려서 아름다운 모양을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격려와 칭찬과 사랑을 먹고 자란 아이들은 자아존중감이 높다. 자아존중감이란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나 실패를 경험해도 자신을 사랑하고 그 시련을 이겨내는 마음이다. 반대로 자아존중감이 낮은 어린이는 조그마한 문제 앞에서도 ‘나는 못해. 내가 어떻게 해. 잘못할 게 뻔해. 그럼 그렇지’ 등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한다. 이로 인해 성인이 되면 대인관계나 사회적인 성취에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자신을 사랑하고 아이와 함께 성장해야 한다. 밝은 웃음과 긍정적인 언어표현과 스킨십을 많이 해 주고, 단점을 지적하기보다 격려하고 장점을 칭찬하는 것을 아끼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책임질 수 있게 도와주고, 아이의 실수를 비난하여 분노와 좌절감을 맛보게 해서는 안 된다.
이경옥은 “자아존중감이란 사람들이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보는 긍정적인 평가 차원으로서 자신의 능력·성공·중요성·가치 등을 믿는 정도를 나타낸다”고 하였다.
또랑또랑 눈 맞추는
아기 얼굴 하도 예뻐
예쁜아, 예쁜아 부르다
호적에 올릴 때
한자엔 ‘쁜’자가 없어
‘예분’이라 지었다지.
촌티 줄줄 나서
한 때 수줍었던 내 이름.
사전에 낱말 찾기 하다 발견한
‘예분’은 꽃가루란다
방방곡곡 아름답게 꽃피워
단단한 열매 맺으라고
그처럼 살라고
하늘나라에 계신 증조할머니께서
예전에 그리 지으셨을까.
본디 예쁜 이름
일부러 잘 지어주신 이름이라서
더 멋진 이름 가진 친구들도
몹시 부러워하는
당당한 내 이름은
'박예분'
- 「친구야 네 이름은?」전문
이름은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물, 단체, 현상 따위에 붙여서 부르는 말이다. 명심보감에 ‘하늘은 녹(祿)이 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름 없는 풀이 없는데 하물며 이름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물은 이름이 주어짐으로써 비로소 의미를 얻고 존재가치를 지니게 된다.
연구자는 교육현장에서 아이들과 첫인사를 할 때 항상 이름에 얽힌 스토리로 인사를 하며 마음열기를 한다. 연구자가 먼저「친구야 네 이름은?」으로 소개하면, 어린이들이 그 시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패러디하여 소개하도록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기의 이름 뜻을 잘 알고 있는 어린이들이 많지 않았다. 고학년은 한자의 뜻만 전달하는 정도였고,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의 속뜻이나 바람은 알지 못했다. 저학년은 아예 자기 이름 뜻을 모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린이들을 만날 때마다 서로 친구의 이름에 의미 있는 뜻을 담는 시간을 가지곤 한다. 특히 친구의 장점을 찾아서 의미를 부여하도록 하면, 어린이들이 친구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고 자기 이름에 대해 자긍심을 갖는다. 그리고 부모에게 자신의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꼭 알아오라고 숙제를 낸다. 이는 어린이들에게 자아존중감을 향상시켜주기 위함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처럼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의 삶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할 때
뒤로 물러서지 않고
용기 내도록 힘을 주는
아빠의 응원
괜찮아 잘했어 참 잘했어!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나를 나답게 일으켜 주는
사랑 가득한
아빠의 말
괜찮아 잘했어 참 잘했어!
- 「괜찮아 잘했어 참 잘했어」전문
「괜찮아 잘했어 참 잘했어」는 모든 아이들이 바라는 아버지상이다. 조금만 잘못해도 꾸짖는 아버지보다 격려해 주는 아버지는 생각만 해도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된다. 사랑이 담긴 따뜻한 칭찬과 격려로 아이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부모의 말 한마디가 아이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어린이들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할 때 자기 자신을 더욱 사랑한다. 칭찬으로 얻은 자신감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아동의 권리와 책임을 적절하게 수행해 나가도록 돕는다.
입학해서 처음 받은
칭찬 스티커 두 개
선생님께서 내 이마에
착착 붙여 주셨다
엄마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어서
계단도 단숨에 오르고
반짝반짝 스티커
떨어질까 조심하고
집으로 가는 길
오늘따라 왜 이렇게 멀까.
- 「칭찬 스티커」전문
연구자의 셋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3개월 만에 칭찬 스티커를 받고 무척 좋아했다. 학교에서 집까지 얼마나 힘차고 빠르게 달렸는지, 먼저 자기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칭찬 스티커 두 개가 잘 붙어있는지부터 물었다. 평소 말이 없는 아이인데 그만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무슨 일로 칭찬을 받았는지 아이에게 구체적으로 물었다. 이는 칭찬의 역효과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칭찬할 때는 두루뭉술하게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했는지 칭찬하며 아이의 소질을 계발시켜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볍씨 하나가 싹 틔우고
이삭을 맺기까지
저 혼자 힘으로는 어림없어
햇볕도 적당히
비도 적당히
바람도 적당 적당히
가뭄이 들어도
홍수가 나도
태풍이 불어도
서로 양보하고 힘 합쳐
조금만 볍씨 하나
알곡을 맺게 한 거야.
엄마아빠의 칭찬과 꾸지람
그 속에 담긴 사랑과 걱정
골고루 먹고 자라는
우리도 하나의 볍씨인 거야.
- 「볍씨 하나」전문
자주 칭찬을 받는 어린이가 자주 꾸중을 듣는 어린이보다 지능이 더 많이 발달한다. 칭찬을 할 때는 부모가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며 올바른 칭찬을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동심리 전문가인 오쿠다 켄지는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아이의 긍정적인 변화를 발견하면 차고 넘치게 칭찬해야 한다며 “부모의 칭찬과 관심이 최고의 육아해법”이라고 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격려와 칭찬을 받고 크는 아이들은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간다.
부모에 대한 믿음은 아이에게 공감해주는 것이다. 아이의 이야기를 다 들어준 후에 “그렇구나!” 하고 아이의 감정을 먼저 중요하게 생각하고 공감해주면, 아이가 자기의 감정을 이해받은 후 그와 관련된 문제들을 객관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학원가기 싫다고
매일매일 외쳐대는
나는 달걀이고
못 들은 체 꼼짝 않는
우리 엄마는
굳센 바위다.
- 「달걀로 바위치기」전문
학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와 공부를 시키려는 부모의 모습을 속담으로 풀어내며 1연과 2연을 대비시켜 갈등을 극대화하였다. 윤삼현은「달걀로 바위치기」에 대해 “시에서 언어들이 지시하는 기능은 심미의식이라기보다는 달걀로 바위치기 한 세태풍자성 기능이 크다. 그러므로 이 시집의 전체적 분위기에서 다소 비켜 나 있는 작품이다. 맹수의 발톱처럼 숨겨 놓는 언어의 날카로움이 갈등하는 일상 밖으로 튀어 나온 것이다. 그만큼 공부에 치어 사는 요즘을 살아가는 어린 동심을 향한 안타까움과 애정의 표시라고 볼 수 있다. 달걀로 바위치기의 속담을 환유방식으로 취함이 보편적 이해에 기여하지만 도이 본질 개념인 미의식 차원에서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가정에서부터 존중을 받고 자라 온 아이들은 밖에서도 타인을 존중할 줄 알고 진실 된 사랑도 할 줄 안다. 아이에게 관심을 제대로 가진 부모라면, 최소한 자기 아이의 잠재력은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 비록 눈에 드러나는 성과가 낮더라도, 아이가 용기를 갖고 노력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격려해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들녘의 잡초가 아니라 어른들로부터 보호받아야하는 귀한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꾸물꾸물 기어가기는
굼벵이가 1등이고
깡충깡충 달려가기는
토끼가 1등이고
빙빙 하늘 날기는
솔개가 1등이고
데굴데굴 도토리 굴리기는
다람쥐가 1등이다.
자기가 가진 재주
친구들 앞에서 맘껏 뽐내는
동물학교 시험 성적은
누구나 1등이다.
- 「동물학교 시험」전문
아이들이 학교에서 모두 1등을 할 순 없다. 대한민국의 교육현실은 시험성적으로 1등에서 꼴찌까지 등수를 매겨 놓고, 그를 바탕으로 상급학교에 진학시키는 입시위주의 교육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무한경쟁에 뒤지지 않으려고 늘 헉헉댄다. 그도 모자라 부모가 등을 떠밀며 좀 더 빨리 달려야한다고 재촉한다. 때문에 아이들은 자기 삶의 호흡조절도 맘대로 못하는 실정이다.
외출한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 엄마 언제와?
- 한 시간쯤 후에
- 엄마, 빨리 와, 보고 싶어.
야호, 야호
절호의 기회다!
앞으로 한 시간은 더
마음 푹 놓고
컴퓨터 게임할 수 있으니까
엄마, 죄송해요!
- 「숨은 뜻」전문
아이 스스로 공부시간과 노는 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함에도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아이들에게 학습만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교육 현실이 대한민국의 부모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서 아이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자체를 쉽게 용납하지 못하기에 아이들은 부모 와 원활하게 소통하지 못하고 죄인처럼 몰래 게임을 즐긴다.
「숨은 뜻」을 읽은 어린이들은 매우 공감하며 독후감을 쓴다. 부모가 아이의 성적에 얽매지 않고, 아이가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꾸준히 자기계발에 힘을 쏟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교육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 부모자식 간에 시험 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실망감을 쌓는 일은 미래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줄 리 만무하다.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2011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의 국제비교'를 주제로 벌인 설문 결과, 대한민국 어린이와 청소년이 느끼는 주관적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게 나왔다.
아울러 대한민국 초교 4학년은 '행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가족’을 꼽은 학생이 54.4%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는 건강·자유·친구·성적·돈 등의 순이었다. 하지만 고학년이 되면서 가족은 지속적으로 감소한 반면 ‘돈’이라고 답한 비율은 꾸준히 증가했다. 구체적 조작기에 들어갈수록 어른 못지않게 현실적인 면에 비중을 두었다.
2) 또래집단과의 관계맺음에 대한 성찰
어린이들이 만나는 바람직한 최초의 사회는 안정적인 가족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가정이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비슷한 나이나 놀이 친구들이 모여 있는 또래집단과 어울리며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금만은 “아이들이 또래집단에서 성취감을 맛보며 성장하며 놀이집단 속에 들어가”고, 친구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쓰며, 또래들이 정해 놓은 규칙을 따르는 것은 아동의 성장에 일정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이 시기의 아이들은 모든 힘을 다 동원하여 자신감을 키우고자 분투한다. 무릎이 상처투성이가 되고, 정강이가 깨지고, 심지어 다리가 부러지면서까지 ‘근면성’과 ‘자신감’ 성취를 향해 나아간다. 하나씩 성장과업을 성취할 때마다 ‘나는 이것도 해냈다!’ ‘난 능력이 있구나!’라고 ‘자기 가치감’을 강화해 나가고 “또래집단과 관계를 맺지 못하면 정서발달이 정지되는 셈”이고, 또한 어느 어린이가 또래집단과 비슷하지 않고 무엇인가 많이 차이가 나면 자아존중감 형성에 상당한 위협을 받는다고 했다.
뽀옹-
이크,
누군지 다 알아요.
빨개진 얼굴 보면
금방 알 수 있어요.
하지만 누구라고
말할 수 없어요.
뽀옹-
이크,
수줍은 몰래 방귀
나도 예전에
뀌어봤으니까요.
- 「몰래 방귀」전문
방귀를 뀌거나 하품을 하는 것은 생리적인 현상이다. 방귀는 뱃속에 음식물이 부패하거나 발효되면서 가스가 방출되는 것이다. 하품은 몸속에 산소가 부족할 때 공기를 많이 들이마시기 위해 저절로 하는 것이다. 즉,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몸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런데도 방귀를 뀐 사람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부끄러움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까봐 염려하는 미안한 마음이 크다. 시의 화자는 친구의 그런 마음을 충분히 헤아려주는 마음이 넓은 어린이다. 이런 어린이는 친구들과 학교생활도 즐겁게 할 것이다. 경쟁을 해도 바르고 당당하게 승부할 것이다.
드디어 오늘 반장을 뽑는다.
김기린 한 표
박인봉 한 표
하얀 칠판에
바를 정(正)자
한 획이 그어질 때마다
내 마음은 시소를 탄다.
친구들이
김기린, 하고 내 이름 부르면
하늘 높이 붕 뜨고
박인봉, 하고 친구 이름 부르면
좋았던 내 마음
쾅, 엉덩방아 찧는다.
- 「시소놀이」전문
시소는 긴 널빤지의 한가운데를 괴어 그 양쪽 끝에 사람이 타고 서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놀이로써 혼자서는 불가능하며 둘 이상이 함께 한다. 여럿이 시소를 탈 때는 앞쪽에 앉은 사람끼리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진 쪽의 사람들이 내려간다. 반장 선거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친구들이 지지하는 후보자가 달라도 누군가 반장이 되면 인정을 해야 한다. 어린이들은 선거를 통해 페어플레이 정신과 친구관계의 소중함을 배운다.
자기들끼리 다투고선
가만 있는 사람
괜히 툭, 치고 가는 친구
우리끼리 얘기하는데
갑자기 끼어들어
자기 말만 계속하는 친구
셋이 함께 잘 지내다
자기하고만 놀자며
자꾸자꾸 우기는 친구
참, 참, 얄미워!
-「정말 얄미워」
백승희는 어린이들의 생활에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의 관계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어린이들은 친구 집단에 어울림으로써 또래와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배우며, 자신에 대한 새로운 지각을 할 수 있게 되고, 집단에 대하여 소속감을 발달시킬 수 있고, 일반적으로 부모나 교사보다 또래집단에 더 동조하는 것이 초등학교 시절 또래관계의 특징”이라고 했다.
봉우리가 아홉 개인 첩첩산중 우리 동네
아이라곤 구봉이와 나 딱 둘뿐이지요.
우리는 심심하면 서로 큰 소리로 놀리지요.
얼레리 꼴레리 덕배는 똥통에 빠졌다네.
풍덩, 똥통에 빠져서 어푸어푸 헤엄쳤다네.
에구에구, 똥냄새가 너무 지독해.
얼레리 꼴레리 구봉이는 똥통에 빠졌다네.
풍덩, 똥통에 빠져서 어푸어푸 헤엄쳤다네.
에구에구, 똥냄새가 너무 지독해.
내가 바지주머니에 구슬을 잔뜩 넣고
똥을 누다 그만 똥통에 빠뜨렸지 뭐예요.
구슬을 꺼내려고 잔뜩 몸을 숙이다
풍덩, 아이쿠, 똥통 속에 빠지고 말았지요.
그때 마당에 있던 구봉이가 잽싸게 달려와
내 팔을 잡아주다 그만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구봉이 팔뚝도 똥통에 푹 빠지고 말았지요.
나도 구봉이도 온통 똥 범벅이 되었지요.
우리는 징겅징겅 앞개울을 향해 달렸지요.
종일 맑은 물에 푸하푸하 똥물을 씻었지요.
하늘아래 구봉이와 나만 아는 비밀이지요.
첩첩산중 나랑 구봉이만 아는 비밀이지요.
- 「구봉이는 내 친구」
친구란 오래 두고 가깝게 사귀는 사람을 말한다. 친구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도와주는 게 진정한 친구다. 이것을 우정이라고 한다.「구봉이는 내 친구」에 대해 이준관 시인은 “봉이와 덕배는 첩첩산중 산골에 살며 장난스럽게 놀리기도 하지만 어려울 때 도와주는 정말 좋은 친구사이” 이며, 이 시는 “이야기처럼 쓰여 있어서 재미가 있고. 친구 간의 사랑을 익살스럽게 썼다”고 평했다.
하필이면 방학하는 날
다툴 게 뭐야
친구야 미안해
내가 먼저 사과할게
메일 보낸 지 며칠이 지나도
답장이 없어
괜히 먼저 사과했나
슬슬 후회하다가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닐까
답장 안 해도 좋으니
제발 아프지만 마
자꾸 걱정되어 나도 모르게
친구 집 앞까지 왔다.
- 「친구야, 친구야 」전문
어린이들이 힘들어하는 고민 중에 하나는 친구관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란 두 몸이 깃든 하나의 영혼”이라고 했다. 친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을 땐 관심을 갖고 자신이 먼저 다가가야 한다. 친구의 마음을 알아주고, 칭찬도 해 주고, 함께 웃음도 나누고, 서로 공통점도 찾아보고,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하며 상황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 또래집단에서도 친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어린이와 그렇지 못한 어린이들이 있다.
백승희는 “또래 집단에서 인기를 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데, 몇몇 연구에서 밝혀진 인기 있는 성격 특성은 우호적이고 사교적이며 참여를 잘하고 깔끔하며, 외모가 보기 좋게 생긴 것”이고, 반면에 “수줍어하고, 후퇴적이고, 공격적인 어린이는 인기가 적다.”고 했다. 또한 또래들은 “관심, 흥미, 욕구 등에 대하여 서로 정보를 제공하므로 사회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개인적인 문제와 걱정을 얘기하므로 심리적 치료기능도 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는
나를 얼마나 좋아할까
그 친구를 볼 때마다 가슴이
큰북처럼 쿵쿵거리는데
그 친구도 그럴까
그랬으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열쇠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마음의 열쇠」전문
요즘 어린이들은 학교와 학원 및 개인과외까지 다니며 학습을 하느라 친구들과 놀 시간이 없다. 오직 스마트폰으로 단체 토크나 게임을 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친구들과 잘 노는 법이나 사회성을 키워주는 학원까지 등장했다. 어떡하면 친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친구를 사귀고 싶으면, 자신이 먼저 따뜻한 친구가 되어주어야 한다.
지난 한 해
누군가를 미워하고 욕심 부렸던
네모난 마음
동그랗게 오려내고
갈매기 송골매 독수리처럼
바람에 몸 맡겨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가는
커다란 날갯짓.
지구 한 바퀴 빙 둘러보고
빈 가슴에
따뜻한 이야기 많이 담아
돌아오겠습니다.
- 「방패연」전문
대보름날 액막이연을 하늘 높이 띄운다. 한 해의 액운(厄運)을 멀리 날려 보내고 예방하는 것은 물론 복을 기원하기 위해서다. 시적 의도를 잘 읽은 전병호 시인은 “방패연은 전체 모양이 네모이고, 가운데는 둥글게 바람구멍이 뚫렸다. 네모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욕심 부렸던/ 무거운 마음’이고, ‘무거운 마음’을 동그랗게 오려낸 자리가 가운데 원형의 바람구멍이다. 원이 주는 이미지는 원만함·완성·포용·끝없음·화해·순환 등이다. 반면에 사각형의 세계는 인간의 삶과 생활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뜻한다고 했다. 또한 “시인은 사각형과 원의 상징적 의미를 성공적으로 시에 접합시켰고, 시인이 마음속에 오랫동안 담아왔던 삶의 철학을 응축된 말로 진솔하게 진술함으로써 잔잔한 시적감동을 이끌어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적화자는 분명하지 않지만 “굴곡진 생활을 이겨내고 이제는 삶을 관조적 자세로 바라보는 연령대의 어른이며, 시인과 시적화자 사이에는 거리가 없다고 할 정도 밀착되어 있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누구나
하나의 별이 되길 원하지만
별 하나만으로는
세상 어둠 다 밝히지 못해
수천 수억의 별들이
함께 할 때
밤하늘은 더욱 더 아름답게 빛나지.
누구나
한 줄기 빛이 되길 원하지만
빛 한 줄기만으로는
세상 꽃을 다 피우지 못해
수천 수억의 빛줄기가
함께 할 때
더욱 더 향기로운 이야기꽃 피우지.
- 「누구나」전문
서로 힘과 마음을 합하는 것을 협동이라고 한다.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여럿이 협동하면 힘이 덜 들어서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다. 반면 협동을 해서 불편한 점도 있다. 조별과제를 수행할 때 서로 보조를 맞춰야하기에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자라면서 사회성이 점점 더 중요해지기 때문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자란 아이가 대인 관계가 훨씬 원만하다. 협동은 각자의 장점을 살려서 서로 힘을 합해야지 누군가 희생을 해서도 안 된다. 함께 마음을 모으는 일이 되어야 한다. 수백 년 동안 뿔뿔이 흩어져 살아왔던 유대인들은 자녀들의 사회성을 유아교육의 모토로 삼고 훈련을 통해 ‘경쟁’과 ‘협동’을 가장 중요시 한다.
고재학은 『부모라면 유대인처럼』에서 “경쟁은 이기심과 다르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치러야하는 대가”이며. 그 때문에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경쟁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도록 훈련하고, 당연히 경쟁에 참여하는 한 이기는 게 중요하다는 정신을 심어 준다고 했다. 하지만 경쟁이란 질 수도 이길 수도 있기에 결과에 따른 원인이 무엇인지를 따져보게 하고 자신의 상황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도록 가르친다고 했다. 또한 유대인들은 무조건 이기고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가 아니라 남과 다르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경쟁의식과 함께 협동심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생후 2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기들이 단체 속에서 협동하는 법을 배우고, 어렸을 때부터 4-5명의 아이들이 함께 활동하거나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여럿이 함께 하도록 해서 스스로 느끼도록 한다고 했다.
작다고 놀리지 마세요
힘 약한 우리는
절대 혼자 다니지 않아요
엄마아빠랑 친구들이랑
물풀 사이 꼬리지느러미 흔들며
늘 떼 지어 다니지요
초롱초롱 많은 눈으로
힘센 물고기 발견하면
재빨리 피할 수도 있고
맛있는 장구벌레도
빨리 찾아낼 수 있고
혼자 넓은 바다 꿈꾸지 않고
얕은 물에서 서로 도우며
행복하게 살지요.
- 「송사리」전문
윤삼현은 「송사리」에 대해 “작은 어류에 속하는 멸치는 늘 수만 마리씩 떼 지어 다니는데, 스스로 힘이 약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어서 강자로부터의 습격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지혜”라며 송사리 역시 힘이 약해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삶의 법칙을 일찍 깨달아 삶의 원리로써 실천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어우러짐 속에 평화와 희망을 꿈꾸며 살아가는 동심의 긍정적 속성을 반영하는 면도 있어서 그만큼 밝은 이미지로 다가오는 시”라고 평가했다.
오늘 본 많은 것들 중에
무얼 편안한 꿈나라로 데리고 갈까.
동물병원에서 본 귀여운 강아지
다시 보고 싶고
강가에서 만난 노랑할미새 노래
다시 듣고 싶고
친구의 기분 상하게 했던 말들
다시 거두고 싶고
일하느라 땀에 흠뻑 젖은 아빠냄새
다시 맡아보고 싶은데
내 두 다리가
온종일 종종거리느라 힘들었다며
어서 가자 조른다.
자, 우리 모두 다 같이 손잡고
꿈나라로 출발.
-「꿈나라 가기 전」전문
연구자가 일기 쓰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쓴 동시이다. 그날그날 하루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어린이들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답한다. 그런데「꿈나라 가기 전」을 들려주면 이런저런 일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때 공간이동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다시 지난 하루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보라고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일기는 억울한 일, 재미있는 일, 기쁜 일, 슬픈 일, 답답한 일, 부끄러운 일, 자기의 잘못을 반성하는 일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숨김없이 그대로 표현하는 고백성사와 같다. 오늘 욕을 했다면 무슨 욕을 했는지, 왜 욕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사실대로 기록하게 한다. 훗날 이 기록을 다시 펼쳐보며 그 당시 아이들이 어떤 욕을 하고 어떤 놀이를 하며 살았는지 그 시대 어린이들의 문화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
거짓말로 지어 쓴 일기
바로 고쳐 놓기
친구한테 빌려 쓴 준비물
당장 다 갚기
짜증날 때 늘 발로 찼던
옆집 강아지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기
그리고 또
그리고 또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어떡하지?
-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이라면」전문
일기는 개인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주위 사건들을 함께 하기에 곧 시대적 배경이 담긴 ‘한 나라의 역사이자 세계의 역사’이다. 어린이들이 누군가에게 검사 맡고 보이기 위해 거짓으로 일기를 쓴다면 그것은 분명 개인의 역사를 왜곡한 것이다. 일본이 그들의 교과서에 우리의 역사를 왜곡한 것과 다를 게 없다.
모든 대상은 보는 관점에 따라 생각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꿈나라 가기 전」과「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이라면」을 통해 정직하고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기 바라는 마음으로 쓴 시다.
군대 가는 형에게 엄마가
-입대하려면 보름이나 남았구나
하루라도 더 늦게 가고 싶은 형은
- 보름밖에 안 남았어요!
제대 앞둔 형에게 엄마가
-제대하려면 한 달밖에 안 남았구나
하루라도 빨리 나오고 싶은 형은
- 한 달이나 남았어요!
- 「차이」전문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불편하게 인식할 때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한다. 상대방의 생각을 '틀린 것, 잘못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게 되면, 타협과 협력의 길을 모색하고 평화와 공존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문화적인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서로 소통할 수도 없고 상호 발전도 없다.
동시도 마찬가지다. 어린이가 공감하지 못하는 동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린이 세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보다 높은 시적 리얼리티를 확보하여 삶의 진정성과 감동이 묻어나는 깊이 있는 작품을 생산해야 한다.
우리 집 강아지
낯선 사람이
목청 터져라 무섭게 짖어댄다.
숙제하던 내가
제발 조용히 좀 해! 소리치면
엄마가 거든다.
내버려 둬!
저도 밥값 하는 거야
-「내버려 둬」전문
‘밥값 했다’는 말은 자신이 맡은 일을 충실히 했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밥값을 제대로 했다면 세월호 침몰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말 못하는 강아지도 제 밥값을 톡톡히 하는데, 세상에는 아직도 안일 무사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 때문에 사회는 큰 혼란과 분노의 풍랑이 끊이질 않고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제자리에서 묵묵히 밥값 잘하는 희망에 찬 나라를 꿈꾸어본다.
새해는 말띠 해라고
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는 해라고
우스갯소리 같지만
아빠가 특별히 덕담을 해 준다
너는 뭐든지 할 수 있어!
너는 틀림없이 해낼 거야!
아빠가 말로 지어 주신 밥을 먹고
가슴에 불끈 힘이 솟는다.
-「말밥」전문
시의 화자는 ‘아빠가 말로 지어주신 밥’을 먹고 ‘가슴에 불끈 힘이’ 솟는다.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말은 칭찬과 위로와 격려다. 아이들에게 기운을 북돋아주는 말은 ‘너희들을 믿는다, 나는 너를 이해해, 참 보기 좋구나, 잘 하는구나, 실망하지 마라, 많이 힘들었지? 힘내, 참 고맙구나, 미안하구나, 우리 잘해 보자, 그런 까닭이 있었구나, 키가 많이 컸구나, 이것 좀 도와줄래? 넌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야, 네 이름은 기억하기 좋구나.’ 등 한 끼의 밥보다 힘센 말들이 많다. 연구자의 동시도 이처럼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어주기를 소망한다.
김자연은 현실에서 동시를 대하는 태도를 크게 두 가지로 보았다. 하나는 독자 대상 중심으로 동시를 바라보거나 창작하는 태도로써, 이는 철저히 아동의 정서적·지적 수준을 고려하는 태도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하는 동시는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상의 언어로, 아이들의 생활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시” 한다고 보았다. 또한 ‘동시’ 라는 명칭에 걸맞게 동시 속에 아이(아이의 현실)가 살아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입장이다.
다른 한 쪽은 동심을 바탕으로 하되 시적형상화에 고심하는 태도로써, “동시도 시니까 시를 시답게 하는 내재율, 이미지와 비유, 함축성 등 언어적 예술성에도 무게를 두는 방법” 이라고 했다. 일반인이 동시를 감상하거나 창작·비평하는 방식도 이 두 가지 중 어디에 더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는 동심을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으며, “전자는 아이들 생활, 아이들이 당면한 현실, 그들의 바람(꿈)을 동심 자체로 이해하는 것이고, 후자는 동심을 단순히 아이의 현실, 아이의 생각, 아이들이 즐기는 단순한 재미, 아이의 꿈에만 국한하지 않고 인간이 추구해야할 삶의 근원성(자연성, 영원성)에 바탕을 둔다.”고 밝혔다. 이 중에 어느 것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동시문학 발전을 위해서도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피력했다. 또한 『햇덩이 달덩이 빵 한 덩이』이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박예분의 이번 동시집 는 비교적 전자의 원칙에 충실한 작품집이다. 그의 동시집에는 아이들 눈높이에서 아이들의 바람, 그들의 고민과 기쁨을 어루만 지고 바라보는 따뜻함이 곳곳에 배어 있다.
박예분 동시의 장점은 아이들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들을 다독이는 엄마의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다. 작은 것이기는 하지만 시에 느낌표나 말줄임표를 붙이는 것, 과연 햇덩이 달덩이가 작은 덩이인지 시어의 적절성에 대해 그가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동시에 아이들 마음을 보이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솟대>처 럼 문학적 깊이를 더해 주는 작품도 많이 창작해 주질 바란다. 앞으로 그가 우리 동시문학 발전을 위해 쉬지 않고,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가길 힘껏 응 원해 본다.
연구자는 ‘햇덩이 달덩이’를 우주적 관점에서 보았기에 ‘작은 덩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논문연구를 통해 김자연의 견해처럼 시어의 적절성에 대해 고민해 보고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여 창작에 문학적 깊이를 더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C. 동시의 효용가치와 파급효과
1) 동시의 저변확대
연구자가 2004년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솟대’가 당선될 때만 해도 동시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연구자는 당시 동시의 흐름을 알기 위해 동시집을 구입하려고 서울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에 들렀다. 동시집이 꽂힌 서가를 찾았지만 눈에 띠지 않아서 안내원에게 도움을 청하니 화장실 가는 쪽 구석을 가리켰다. 동화책은 누가 봐도 눈에 금방 띠는 곳에 진열을 해놓았는데, 동시집은 독자들에게 외면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과연 동시를 써서 밥을 먹고 살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문학은 곧 삶이기에 형편이 어려웠던 연구자로서는 동시도 당연히 삶을 더욱 생하게 하는 밥이 되어야한다고 소망했다.
그즈음 우물 안 개구리였던 연구자는 문우의 소개로 <한국동시문학회>에 가입하였다. 대한민국에 동시를 쓰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주로 어떤 작품을 창작하는지, 동시가 독자들에게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지, 동시를 세상에 어떻게 내놓아야 하는지, 이러한 문학단체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무엇인지, 문단의 새내기라서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한국동시문학회는 동시문학 발전과 동시인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며 동시인의 권익 옹호를 목적으로 2002년 5월 11일 창립되었다. 제1기 집행부(회장 권오삼)가 탄탄하게 기초를 다져 놓았고, 제2기(회장 노원호), 제3기(회장 박두순), 제4기(회장, 이상교), 제5기(회장, 이준관), 현재 제6기 (회장, 정용원)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한국동시문학회는 창립 목적을 원활하게 달성하기 위하여 15개의 사업계획을 제시했는데, 그 속에 포함된 사업 중의 하나가 ‘동시를 읽는 어머니 모임 조직’ 에 관한 것이었다. 한국동시문학회 카페에 「동시 읽는 어머니 모임 지부 활동 알림방」(cafe.daum.net/dongsimunhak)을 미리 마련하고, 그곳에 ‘동시 읽는 어머니 모임’의 사업 목적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2004. 4. 20자 탑재)
동시는 어린이의 영혼을 지키는 가장 맑고 순수한 문학입니다. 산업화와 빠른 정보화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깊이 사유하거나 충분히 휴식할 수 있는 경험을 빼앗고 있습니다. 더구나 입시와 성적 위주의 교육 정책은 어린이들을 경쟁에 빠져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 때문에 어린이들은 어린이 고유의 순수성을 간직할 수 있는 여유와 시적 경험을 상실해 가고 있는 게 현실입니 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머니들의 역할이 크다고 봅니 다. 그 일환으로 어머니들에게 순수문학 동시와의 만남의 기회를 주고, 더 나 아가 자녀들에게 전달되게 하여 어린이들의 동심을 지키려 함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동심을 회복하는 일은 너무도 시급한 과제이며, 이에 동시 읽는 어 머니 모임을 결성합니다.
이와 같은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사업 계획을 발표한 ‘동시읽는어머니모임’은 한국동시문학회에 본부를 두고, 먼저 전국에 15개 지부(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 춘천, 청주, 전주, 영주, 포항, 창원, 강릉, 목포)를 선정하여 지부장을 선임, 위촉장을 전달하였다. 그리고 각 지부에서는 2004년 5월에 자율적으로 ‘동시읽는어머니모임’ 지부를 결성하도록 권장하였다
이에 따라 연구자는 2005년 7월 7일, 전주에 ‘동시읽는어머니모임’을 발족하고 ‘전주인후문화의 집’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 전북아동문학회 창립 멤버인 윤이현 시인을 전주지부장으로 추대하고 연구자가 팀 리더를 맡았다. 이후 매월 첫째 주 목요일에 모임을 갖고 한국동시문학회에서 선정한 좋은 동시를 회원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며 잃어버린 동심을 회복하는 일을 펼치기 시작했다.
매년 한국동시문학회 여름 세미나와 함께 ‘동시읽는어머니모임 전국대회’ 를 개최하여 ‘동시낭송회’와 ‘동시화전’ 및 ‘각 지부별 사례발표’를 통해 동시문학의 저변확대에 힘썼다. ‘동시읽는어머니모임’ 전주지부가 활성화되자 언론이나 방송국에서 찾아와 종종 취재와 인터뷰를 했다. ‘동시모 (약칭)’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찾아오는 회원들이 늘어났다.
‘동시모 전주지부’ 회원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가족 같은 끈끈한 정으로 이어졌고, 회원들은 좋은 동시를 발견하거나 좋은 동시집이 출간되면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뱃속의 아기에게 동시를 읽어주는 어머니, 강아지에게 동시를 읽어주는 어머니, 동시를 써서 집안 구석구석에 붙여놓는 어머니, 남편과 드라이브할 때 동시를 읽어주는 어머니, 좋은 동시를 이웃과 나누는 어머니들과 함께 해마다 ‘동시낭송회’를 진행하고, 동시를 넣은 책갈피를 만들어 나눠주고, 가을엔 전주시 후원으로 전주평생학습센터에서 진행하는 전주독서동아리 ‘어울림한마당’ 축제에 참여하였다. 동시모 전주지부에서는 이젤에 동시화를 전시하고 좋은 동시 소개 및 시인에게 엽서쓰기를 진행하였다.
2010년 8월에 전주한옥마을에서 ‘동시읽는어머니모임 전국대회’와 ‘한국동시문학회 세미나 및 문학기행’을 1박 2일(28-29일까지) 동안 개최하였다. 연구자가 전주시의 후원을 받아 전통문화의 중심 도시에서 ‘전주시민과 함께하는 동시 낭독회’를 열어 초등학교 교과서 속 시인들과 교류하였다. 시인들의 자신의 동시집에 직접 사인을 해서 전주시민들에게 나눠주고, 한옥마을 문학 기행과 전주 음식 문화 등을 체험하였다. 당시 여성가족부 위민넷에서 취재를 나와 인터뷰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동시를 읽다 보면 쓰게 되고 저절로 관찰력이 길러져요. 또 동시를 읽는 이들은 인성이 따뜻한 사람으로 자라기 때문에 그런 본바탕이 유지되는 사회 가 자연스럽게 되는 거지요. 그런 까닭에 동시작가나 아동 문학가들이 할 일 이 시민에게 동시를 알리는 역할입니다. 그래서 전철의 스크린 도어에 전국의 동시 작가들의 동시가 실려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최근엔 종이컵에 동시를 넣거나 버스 정류장에도 동시를 넣으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동시 읽는어머니모임> 역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동시를 읽게 하 여 관찰력과 통찰력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키우는 멋진 일입니다. 여러분도 동참하시길 바랍니다.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한국동시문 학회 회장 이상교)
“해남 대흥사 산골 분교에 다닐 때 하루 1시간씩 걸어 다니는 등하교길이 지겨웠는데 그 당시 주산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수업하기 전 꼭 옛날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게 맘에 와 닿아 훗날에도 문예창작과에 발을 디디게 되었고 그 영향으로 딸과 같이 동시 읽는 어머니 모임에 들어왔죠. 동시를 접하게 되 면 삶이 따뜻해지고 시야가 넓어져요. 동시를 잘 읽고 싶어서 시낭송 공부와 스피치 공부를 5년 정도 했답니다.” (한국동시문학회회원 이민자, 광주, 47세)
“엄마 따라다니면서 보고 익힌 동시 읽는 게 몸에 배였는지, 고2때 전국 재 능 시낭송 대회 때 최우수상을 탔어요. 동시가 주는 편안함으로 문예창작과에 서 그림 동화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엄마와 같이 시각장애 인들에게 녹음봉사를 하고 싶어요.” (박주연, 21세, 대2)
“2005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는데 정기적으로 회원들이 모여 동시를 읽고 친 목을 도모합니다. 이런 전국대회를 통해 동시 읽는 어머니들을 만나게 되어 기쁘고 좋지요. 이번에 전주 지역 문학기행과 비빔밥 체험을 같이 해서 지역 문화를 알리는데 한 몫 하는 거라 의미가 깊어요.”(유희선, 전주동시모 회장)
“한국동시문학회 회원들과 동시 읽는 어머니 모임이 어우러져 하는 행사인 데 순수하게 어린이들이 참가하고 할머니까지 단순 명쾌하게 이해되는 동시 를 접하여 서로 의사소통전달이 잘 되게 하는 거지요. 최근 동시를 잘 읽지 않는 경향으로 인해 그러한 장점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하는 행사이기도 합니 다. 더불어 전국 각지의 유서깊은 문화재를 보면서 문화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것도 큰 역할입니다.” (전병호, 아동문학가)
"모임에서 작품 토론도 하고 깊이 있는 세미나와 함께 앞으로 나아갈 방 향을 잡기도 합니다. 각자 삶에 쫓겨 바쁘게 지내다가 이렇게 전국대회로 작 가와 독자가 서로 만나 친목도 도모하며 동시의 방향성을 잡는 일도 하기 때 문에 ‘동시읽는어머니모임’은 중요합니다.” (송명숙, 한국동시문학회 회원)
‘동시읽는어머니모임’(약칭 ‘동시모’)에 가족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하면서, 어른들은 잃어버린 동심을 회복하며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삶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며 동심으로 교감하는 사례를 다음과 같이 발표하기도 했다.
각종 영상 매체나 미디어의 발달로 요즘 아이들은 생각하는 시간 보다는 보고 듣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화려하고 자극적인 화면과 컴퓨 터 게임 등으로 우리 아이들의 깨끗해야할 영혼의 눈들이 삭막해지고 있습니 다. 풍부한 상상력으로 달나라에 가보고, 뭉게구름으로 솜사탕도 만들어보며 놀아야 할 우리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경쟁사회의 부추김으로 점점 서정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어른들 또한 사회적 불확실성에 따른 스트레스로 우리 아 이들을 이해하거나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몇 년 전, 아내가 동시를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들과 동시를 함께 읽고 있습니다. 온가족이 동시를 읽으며, 때로는 미소를 짓기도 하고 가끔 박장대소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또한 좋은 동시 들을 따로 뽑아서 한지 공책에 일일이 베껴 쓰기도 하고, 거기에 삽화까지 곁 들여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우리 가족 동시집'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부부는 아이들과 함께 동시를 읽으며 어린이들의 세계를 이해 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동시를 읽으며 '한때 나도 이런 생각을 하며 자 랐었지.' 하고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 아이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였고, 아이들과 동심으로 서로 교감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는 무엇보다 현시대의 생명을 동심으로 이어갈 씨 앗과 같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맑은 영혼을 지 켜 줄 좋은 동시를 많이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강민서 어린이의 아버지 강도 현)
아이들과 함께 우리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뿍 담겨 있는 동시를 만났다. “어! 그 동시 제목이 뭔지 알겠다!" 내가 소파에 앉아 동시를 읽을 때, 컴퓨터 를 열심히 하던 아이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래? 내용만 들어도 제목을 알 겠단 말이지? 좋아, 그럼 이 동시 제목이 뭘까?" "으음, 그건 000 일 거야!"
이렇게 아이와 함께 자연스럽게 시작된 '동시놀이'는 계속 되었다. 다음 날도, 내가 동시를 읽으면 아이들이 제목을 맞혔는데, 어려울 때는 단어 몸짓으로 힌트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렇게 즐겁게 제목을 맞히고, 빈칸도 마련해서 그 안에 들어갈 말도 맞혀보는 놀이를 했다. 아들은 눈치 빠른 자기 누나 몰래 먼저 힌트를 달라며 내게 눈짓을 했다가 이크, 누나한테 걸리기도 했다. 반칙 은 절대 안 돼! 이젠 서로 바꿔가면서 문제를 내고 맞히면서 <동시 놀이>를 했다. 초등 4학년이라기엔 덩치가 상당히 큰 아들이 ‘동시 제목 알아맞히기’ 문제를 낼 때이다. 제 딴엔 우리들에게 힌트를 주느라 큰 몸짓으로 아기 흉내 를 내는데, 그 모습을 보며 우리는 배꼽 쥐고 웃느라 힌트를 그만 놓쳐버리기 도 했다. 그래서 못 맞힌 벌로 엉덩이로 가족에게 사랑 고백을 했다. “아들, 사랑해." “하하하 호호호." 우리 방에 굴러다니던 웃음이 사방 벽에 부딪쳐서 배로 늘어다더니 저녁내 웃음바다가 되었다. 우리 가족은 함께 동시를 읽으면 서부터 즐거운 동시놀이에 푹 빠져 살고 있다. (오미숙)
나는 동시가 참 재미있다. 왜냐하면 동시 속에는 꽃도 별도 다 살아있고 이 야기도 나눈다. 우리 엄마가 시는 마음의 보약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매 일 매일 읽은 동시 중에 마음에 드는 동시를 그대로 공책에 옮겨 쓴다. 처음 엔 귀찮았지만 어느새 더 예쁜 말을 쓰게 되고 글씨도 예뻐졌다. (박예림, 울 산 남목초등학교 4학년)
동시를 읽을 때면 반복되는 말, 흉내 내는 말 등 여러 가지 표현들이 재미 있게 느껴진다. 동시를 읽으면 그 속에서 나와 똑같은 마음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서 좋다. 나는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동시가 참 고맙다. 내가 동시한테 느끼는 고마움이 다른 친구들에게도 전해지면 좋겠다. (황하운, 서울 봉천초 등학교 5학년)
동시를 읽을 때면요, 재미있어요. 강아지를 볼 때도 재미있는 말들이 생각 이 나고요, 꽃들을 볼 때도 예쁘게 꾸미고 싶은 낱말들이 마구마구 떠올라서 제 마음이 더욱 예뻐지는 것 같아요. 가끔은 엄마 아빠한테 자랑을 하면서 시 를 써보기도 하지요. 동시는 제게 놀이동산 같아요. 동시는 재미있고 가족이 랑 함께 할 수 있으니까요 (강민서. 전주기린초등학교 3학년)
2011년부터 한국동시문학회와 전국 동시읽는어머니모임은 동시의 저변확대를 목적으로「제1회 가족과 함께하는 동시화 전국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여는 것으로써, 좋은 동시를 통해 영상매체로 단절되었던 가족 간의 유대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바쁜 현대인들에게 동심을 찾아주고, 어린이들에게 동시의 참맛을 느끼며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 각 지부별로 예선을 치른 후, 수상을 한 대표작품을 전국대회에 올려 본선 심사를 거쳐 시상했다.
당시 한국동시문학회(제5대 회장, 이준관)는 ‘동시읽는어머니모임’의 명칭을 동시의 저변확대를 위해 ‘동시읽는모임’으로 변경하였다. 동시읽는모임전주지부는「제1회 가족과 함께하는 동시화 전국대회」를 진행함에 있어 <동시읽는모임 전북지부>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동시모 활동을 전라북도내 지역으로 확대하고 연구자가 <동시읽는모임 전북지부장>을 맡고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동시화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작품들은 각 지역의 형편에 따라 지역 도서관, 관공서 및 기업체, 학교, 문화시설 공간, 수도권 역사 등을 연중 순회 전시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동시화대회’ 에 시상식은 수상자와 그의 가족들이 참석하여 수상작품을 낭독하고, 동시화 작품을 만들 때 일어났던 에피소드도 발표한다. 수상자 가족들이 동심으로 돌아가 동시와 함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흐뭇했다. 이처럼 짧은 동시 한 편이 세상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가고 있다.
연구자는 2009년 4월부터 전주MBC라디오 방송 <여성시대>에서 매주 일요일에 좋은 동시 3편씩을 소개하고 있다. 시인들이 출간한 동시집을 연구자에게 보내주면 감사한 마음에 바로 방송에 소개를 한다. 우편배달부가 새 동시집을 건넬 때마다 새로운 동시를 만나는 기대로 가슴이 뛴다.
지금은 동시의 전성기라 할 만큼 동시창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일반시를 쓰는 시인들이 동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동시의 새로운 인식과 동시의 생태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좋은 바람이다. 독자층도 다양해졌고, 동시집을 내는 출판사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동시 전문지 계간 『오늘의 동시문학』과 격월간『동시마중』이 있고, 어린이문학지에는 월간 『어린이와 문학』『아동문예』, 계간 『시와동화』『창비어린이』『어린이책이야기』『아동문학평론』『열린아동문학』등이 있다.
동시 전문지 계간 『오늘의 동시문학』은 창간 10주년을 기념하여 동시 평론집『한국 동시, 어제와 오늘 내일을 읽다』를 발간하였다. 동시문학의 역사와 시대별 경향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동시문학사에 별빛 같은 작가들과 작품을 싣고, 오늘의 동시 흐름을 파악, 창작에 도움을 되는 평론집으로 동시와 동시문학 연구 자료로서의 역할도 너끈히 할 수 있는 묵직한 동시 평론집이다.
우리나라가 IMF 외환금융위기를 겪을 때 성인물 출판시장이 꺼꾸러지기 시작했다. 그때, 학부모들이 다음 세대에게는 이와 같은 어려움을 절대 겪지 않게 하리라는 다짐으로 어린이들의 독서교육에 더욱 관심을 가졌고, 그 덕에 아동출판시장이 살아났다.
이후 아동문학 작품을 발행하는 출판사들은 그 수효에 부응하여 전래동화부터 명작, 과학, 위인, 역사, 생태에 이르기까지 우리 교육현실에 맞춰 '교과서 연계 학습'과 관련한 기획물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것도 한때였고, 독서지도를 매개로 한 상업주의와 자기계발 바람이 불면서 아동출판시장도 주춤거렸다. 학부모들이 어린이들 각자의 개성을 찾아주는 가치로 시장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문학작품도 기호식품처럼 저마다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한다는 얘기다. 작가들도 이에 맞추어 아동들에게 문학의 즐거움을 안겨주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동문학 작품을 매개로 한 독서지도의 붐이 일어나면서 동시가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시 평론집『한국 동시, 어제와 오늘 내일을 읽다』에서 2006년도에 ‘오늘의 한국 동시 어디까지 와 있나?’라는 주제로 평론가 최지훈, 김용희, 이재철, 이도환이 오늘날 한국 동시의 좌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동시는 동화에 비해 위축되어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동시를 사랑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앞으로일반의 인식이 아동문학을 어린이 ‘문학’이라는 측면보다 어린이를 위한 ‘독서물’로 취급받고 있는 한 아동도서 시장에서의 동시의 자리는 늘 동 화에 가려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김용희)
동시의 독자가 적다는 현상을 굳이 다른 어떤 장르나 매체와 비교하는 것 은 타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보다는 동시 그 자체만 두고서 통시적으로 비 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60-70년대 동시는 사랑받았 는데 90년대 이후에는 사랑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동시가 위축되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라면 질문으로 성립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질문이 가령 있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질문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90년대 이전에 비하여 그 이후에 오히려 동시를 사랑하는 인구가 크게 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 증가의 정도가 동화에 비한다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여 상대적 빈곤인 것은 변함이 없지만, 동시 그 자체만 본다면 형 편이 훨씬 좋아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단적인 예가 전에는 동시집을 인세 주 고 출판사가 자청해서 출판한 예가 없었고, 동시집을 서점의 점두에 진열해 두고 파는 일도 없었는데, 지금은 서점의 점두에 동시집 판매대가 설치될 정 도이고, 출판사나 시인에 따라서는 인세를 받아가면서 동시집을 출판하는 예 가 범상한 일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결코 동시는 위축되고 있는 것이 아니 라는 뜻입니다.(최지훈)
김용희와 최지훈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현재 동시의 미래는 밝다. 매미의 허물벗기처럼 동시도 새롭게 변화해서 상상력의 한계에 판타지 가득한 동심의 마중물로 펌프질하여 좋은 작품을 내놓아야 한다. 오래오래 독자의 손을 떠나지 않는 그런 작품이야말로 독자들은 평범함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문학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2) 동심을 나누기 위한 구체적인 사례
연구자는 2009년도부터 한국도서관협회와 문화체육관광부 후원 ‘도서관.문학관 문학작가파견사업’ 에 최명희문학관 파견작가로 선정되어 동시를 매개로 문학 강연을 하였다. 그때부터 해마다 ‘동시사랑’ ‘잃어버린 動心을 찾아가세요’ ‘너의 動心 나의 童心!’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시민들에게 동시를 읽히고 동시의 저변확대에 힘을 쏟았다.
또한 각 도서관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작가와의 만남’ 시간을 통해 ‘동시로 우리아이 마음 읽기’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아이들의 세계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동시들을 선정하여 읽히며,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인식시켜 객관적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수강을 했던 학부모의 소감을 올린다.
마한교육문화회관에서 박예분선생님의 '동시로 우리 아이 마음읽기'라는 강의를 들었습니다. 동시가 그렇게 좋은 것인 줄 처음 알았습니다. 직장생활 ㆍ자녀 교육ㆍ가정 살림 등에 쫓겨 바쁘게만 살다가 동시를 읽으며 쉼터를 만난 듯 마음이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잊고 살았던 동심의 세계와 순수했던 내 학창시절이 가슴 속에 새록새록 새순처럼 돋아났습니다. 이렇게 좋은 동시 를 혼자만 읽을 수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저녁상을 물리고 남편과 딸이 랑 앉아서 오순도순 동시를 읽었습니다. 같은 동시를 서로 다른 목소리로 바 꿔 읽으며 동요도 불렀습니다. 동시 속에 담긴 내용들이 우리 가족의 이야기 와 같을 땐 깔깔거리며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동시에 담긴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성에도 감탄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은 동시가 친구처럼 좋다며 생각날 때마다 직접 시를 써서 제게 자랑을 합니다. 그뿐 아니라 집 안 곳곳 에 동시를 적어서 붙여 두었더니, 딸아이가 오가며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 번 씩 읽고 미소를 짓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제 마음이 포근해졌습니다. 저의 동시사랑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좋은 동시들을 몇 편 골라서 주위에 사는 어머님들과 교회모임에 나가서도 소개를 합니다. 동시를 읽고 함께 공감하며 웃는 즐거운 삶을 나누는 시간도 가질 수 있어서 무척 기뻤습니다. 항상 일과 가정의 반복되는 삶속에 동시는 제게 활력이 되고 기쁨이 되었습니다. 삶의 에너지를 준 동시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정찬미 어린이의 어머니, 이 정은)
2009년도에 최명희 문학관에서 6개월 동안 동시인의 작품 총 1346편을 소화했다. ‘동시사랑’을 수강했던 이경옥(현직 초등학교 교사)은 전주교육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초등교육상담을 전공하며,『학교 부적응 아동에 대한 동시를 활용한 상담 프로그램의 효과』를 논문으로 발표하였다.
이경옥은 ‘동시사랑’ 수업을 통해, 다양한 동시를 접하면서 그 매력에 푹 빠졌다. 연구자가 아이들에게 동시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지도했는데, 이를 곧바로 만수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나누었다. 이경옥은 일주일에 세 번씩, 퇴근 전에 교실 칠판에 동시를 써 놓고 퇴근했다. 그렇게 해 놓으면 다음 날 일찍 학교에 온 아이들이 칠판에 적힌 동시를 자연스럽게 낭독하며 암기하고, 그날은 일기장에 동시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이경옥은 독서치료가 자아존중감을 향상시키고 학교생활적응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선행 연구를 쫓아, 동시를 독서 치료의 자료로 선정하여 학교 부적응 아동을 대상으로 상담에 적극 활용하였다(2010년). 그가 학교 부적응 아동들에게 동시를 활용하여 상담 프로그램을 실시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동시를 활용한 상담 프로그램을 적용한 결과 학교 부적응 아동의 자아존중감이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하여 긍 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학교생활 적응에 필요한 하위영역인 학업적, 사회적 자아존중감 향상에 영향을 주었고, 가정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동시’를 활용한 것이 내담자의 자기개방에 효 과적으로 작용하여 가정적 자아존중감이 높게 나타났다.
둘째, 동시를 활용한 상담 프로그램을 적용한 결과 학교 부적응 아동의 학 교 적응을 돕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적응의 하위 영역인 학교교사, 학교친 구, 학교 수업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서, 교사를 친근하게 받아들이고 친구가 없다고 생각했던 내담자들이 친구들과의 관계가 원만해졌으며 수업태 도도 양호해졌다.
셋째, 동시를 활용한 상담 프로그램에서 문학의 한 영역인 동시를 독서자료 로 활용한 것이 상담과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낭송 과 동시의 내용이 상담 분위기를 조성하여 내담자의 자기개방에 도움을 주었 고 상담과정 및 상담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어 상담의 질을 높여 주었 다.
이경옥은 상담프로그램에 동시를 선정하게 된 이유로, 동시는 절제된 언어로 주제가 명확하게 전달되어서 상담과정에 즉시 활용할 수 있는 게 큰 장점이라고 밝혔다. 상담프로그램에 활용한 동시는 주로 생활동시였다. 생활 동시 속에 아이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문장들이 아동의 실생활에 그대로 전이 되어 상담과정에서 활발한 상호작용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연구자는 매 강의시간마다 수강생들과 함께 동시를 읽으며, 유년시절의 추억을 꺼내 이야기하며 요즘 아이들의 정서와 비교해 보기도 하였다. 수강생 중에 이영희 씨는 서정홍 시인의 「어버이 날」을 읽으며 친정어머니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 엄마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함께 동시를 낭독했다. 아이와 아내를 응원하는 남편들도 함께 잃어버린 동심을 찾는 여행에 동참하기도 하였다.
동요로 작곡 된 윤석중의 「퐁당퐁당」「고향땅」「앞으로」「나란히 나란히」「옹달샘」이원수의 「고향의 봄」한인현의 「섬집 아기」등을 함께 부르며 한 목소리로 옛 추억을 떠올리며 동심을 나누었다.
또한 동시를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동시를 선별하여 한지책에 ‘동시화집’을 만들었다. 시화집은 수강생 자신을 위해서나 자녀들을 위해 만들기도 하였다. 시화집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강생이 동시를 필사하면 남편 혹은 자녀가 그림을 그리는 등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계기가 되었다.
강의가 중반부쯤 진행될 때, 창작한 동시를 첨삭 받으려는 수강생이 늘었다. 강의 전에 40편이 넘는 동시를 창작해 와서 연구자에게 직접 첨삭지도를 받는 수강생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메일을 보내서 첨삭을 받는 수강생도 있었다.
동시를 읽으며 느꼈던 즐거움과 고마움에 대한 소박한 인사를 전하고 싶어, 수강생들이 동시인에게 팬레터를 손수 적어 보내기도 했다. 마음을 담아 보낸 수강생들의 팬레터가 시인들에게도 큰 힘이 되었다. 팬레터에 화답 하듯 엽서를 받은 시인들이 친필 답장과 사인 도서를 보내주었다.
김녹촌 시인은 문학관으로 전화를 해서 고맙다며 “이런 팬레터는 정말 오랜만에 받아보았으며, 더욱 열심히 글쓰기 작업에 몰두해야겠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동문학가 김미희 씨는 받은 엽서를 자신의 블로그에 소개하고 이는 '반가운 소식'으로, 이경애 님에게 “엽서 고맙고 감사합니다. 느닷없는 손님처럼 신선하고 반가웠답니다.”라며 자신의 도서 『달님도 인터넷 해요?』를 보내주었다.
수강생 이영희씨의 딸 설서윤(7살) 양은 신현득 시인에게 직접 만든 책을 선물로 보냈고, 시인으로부터 잘 받았다는 인사를 받고 전화로 고맙다는 통화도 했다. 이영희 씨는 "시인들한테 답장으로 받은 도서의 포장봉투도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겠다"고 했다.
엄기원 시인은 서연숙 님의 딸 조채영 (7살)양의 엽서를 받고 추석 선물로 『저학년이 참 좋아하는 동시 101』에 친필사인과 함께 "고마운 엽서 편지 오래 간직할 거"라고 전했다. 고인이 된 민현숙 시인도 독자의 엽서를 받고 정성이 가득한 편지를 보내주어서 회원들이 모두 감동했다.
그 외에도 많은 작가들이 동시사랑모임 팬레터에 감사하며 "큰 힘이 되었다"는 엽서와 도서를 선물로 보내왔다.
연구자는 동시를 매개로 독자와 시인이 직접 소통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독자와 시인 사이에 친밀감을 형성해 준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당시 공재동, 곽해룡, 권오삼, 김녹촌, 김미희, 김정신, 노원호, 문현식, 민현숙, 박방희, 박선미, 서재환, 신현득, 엄기원, 오순택, 유희윤, 이봉직, 정두리 시인 등이 독자들에게 답장을 보내왔다. 다음은 전북일보에 보도된 내용의 일부이다.
최명희문학관(관장 장성수)이 '도서관 문학작가 파견 지원사업'으로 '잃어 버린 동심을 찾아가세요'를 추진, 동시를 읽고 마음이 한 뼘 더 자라길 바라 는 어른들이 모여 동시사랑모임이 꾸려졌다. 그리고 노란 은행잎이 질 무렵, 이들은 멋지게 갈무리하게 됐다. 권옥, 김미희, 김순자, 서연숙, 신두란, 양희 진, 유미선, 이경애, 이경옥, 이기양, 이영희씨. 아이와 함께 참석하는 수강생 을 포함해 대다수가 주부들이다. 이들은 "아이들에게 "일기 써라", "독후감 써 라", "현장학습 보고서 써라" 등 늘 '쓰기'를 강요하면서도, 정작 일기 한 줄 도 기록하지 않는다는 반성에서 비롯됐다"며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좋은 동시를 꾸준히 읽고 동심을 나누다 보니, 아이들의 세계에 대한 이해도 깊어 지고, 자연스레 동시 한 번 써볼까 하는 맘이 들었다"고 했다.
동시사랑모임 회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동시를 선별해 동시 시화집도 제 작했다. 24일부터는 최명희문학관에서 작은 시화전도 가질 계획이다. 권 옥씨 는 "동시는 가족들이 함께 낭송하기에 참 좋다"며 "서로 호흡을 맞춰야하기 때문에 가족간 정도 돈독해지고, 아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족의 영혼을 살찌우는 좋은 도구"라고 말했다. (이화정, ‘동 시사랑모임 잃어버린 동심도 찾고 아이들과 친구도 되고, 2009.11.23.)
연구자는 초등학교와 도서관에서 ‘어린이 시인교실’을 진행하면서 어린이들이 주위에 관심을 갖고 모든 사물을 친구처럼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사물을 엉뚱하게 새롭게 바라보는 창의성을 높여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친구와의 관계 유지를 위해 입장 바꿔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도왔다. 어린이들이 쓴 시를 문집으로 발간하여 주면, 아이들은 자신들의 성과에 매우 만족하였다.
2008년도에 ‘학교문화예술교육지원’ 사업으로 전주효문초등학교와 전주송북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동심의 씨앗을 나눠요’ 프로그램과 2011년도에 전주시립인후도서관에서 ‘어린이 시인교실’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어린이시집 『동심의 씨앗을 나눠요』와『무슨 소리가 들리니?』를 발간하였고, 앞으로 제시 될 어린이시와 소감문은 어린이시집에서 발췌하였다.
머리가 하얀 우리 할아버지
오늘도 할 일이 없어
공원 나무 그늘에 앉아 계신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준호 오냐?”
반갑게 활짝 웃으신다.
엄마가 할아버지께
마트에 가셔서
고기나 과일 좀 사오시라고 하면
즐거워하시는 할아버지.
- 「할아버지」전문. 소준호. 효문초등학교 4학년
사람들은
흑인, 황인, 백인을 차별한다
저녁에 TV보며
아빠가 하는 말
- 옆동에 필리핀 사람이 이사왔네
엄마가 맞장구친다
- 피부도 새카만 사람이
히죽히죽 웃고 다니니까 징그러워요
곰곰 생각해보니
미국으로 유학 간 우리 친척 형도
미국 사람들 앞에서는
우리가 필리핀 사람을 보는 것 같겠지.
-「단지 피부색 때문에」전문.(전수현,. 송북초 5학년)
사실 나는 동시에 별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쓰지도 못했다. 그런데 ‘동 심의 씨앗을 나눠요‘ 시간에 많은 것을 느꼈다. 특히 하찮은 사물들과 이야기 하는 법을 알았다. 그래서 내 마음을 시로 잘 표현할 수 있었고 점점 동시에 재미를 느꼈다. 선생님께서는 친구를 잘 이해하면 싸울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 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은 어렵지 않았다. 심심할 때 멍하니 있지 말고, 무엇이든 말을 걸고 싶은 것들을 찾아 보면 된다. 우리가 공부하는 교실 안에도 많이 있었다.
내가 키우는 작은 화분, 시들어버린 꽃, 친구들이 그린 그림, 지우개, 창문, 연필, 컴퓨터, 필통 등 참 많이 있다. 그것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내가 그것들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내가 시들어버린 꽃이라면, 내가 꽉 닫힌 창문이라면, 내가 필통이라면, 내가 야생화라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 는지 상상하는 것이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재미있다. 수 업을 받을 때마다 이 프로그램이 나한테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알았다. 그 날의 주제에 따라 알지 못했던 지식도 얻고 시 쓰는 방법도 알았다.
선생님께서 내가 모르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아 프리카 사람들은 먹을 게 없어서 뼈만 앙상한 걸 보니까 마음이 더 아팠다. 나는 이렇게 꼬박꼬박 먹고 옷도 좋은 것을 입고 있다. 그런데 아프리카 사람 들은 내가 먹기 싫어서 남기는 밥조차 못 먹어서 죽어가는 모습이 마음속으 로 쏙 들어왔다.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항 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며, 내 주위에 어려운 이웃이 있는지 돌아봐야겠 다. 내가 처음에 깜빡 잊고 이 수업을 두 번 빠졌는데 그 부분이 아쉽다. 다 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가 못 받은 수업을 다시 받고 싶다. 다음에 또 이 프로그램을 했으면 좋겠다. (박윤준, 효문초 4학년)
2011년도에 송천시립도서관에서 ‘어린이 시인교실’을 마치며 어린이들이 쓴 어린이시와 소감을 아래에 올린다. 이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도서관협회의 후원, ‘도서관·문학관 문학작가파견사업’으로 진행되었다.
두근두근
아빠가 흔들리는
내 이를 실로 묶으면
큰 웅덩이에 빠지는 느낌
순간 아빠가
내 이마를 치려하면
사자한테 끌려가는 느낌
이가 쏙 빠지고 나면
사자한테 끌려가다
살아서 다행인 느낌
“휴, 안심이다.”
저절로 큰 숨이 나온다.
-「이 빼는 날」전문.(김은서, 신동초 2학년)
시인교실을 다니면서 작가 선생님께 편지도 써 보내고, 시 쓰는 방법도 배 워서 시를 즐겁게 썼다. 언니 오빠 친구들과 같이 시를 쓰니까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런 날은 나중에 커서도 잊지 못할 것이다. 시 쓰는 건 참 즐겁다! (김은서, 2학년)
시를 배우면서 신이 나고 지루하고 했다. 재미있는 시를 읽으면 즐겁고, 처 음에 시를 베껴 쓸 때는 싫었는데 지금은 괜찮다. 이제 시 쓰는 수업이 끝나 니까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다. (양홍정, 1학년)
저는 시인교실을 다니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시에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경험을 다 쏟아서 쓰는 거라고 ……. 곧 있으면 끝나는 이 시인 교실을 많이 생각할 것입니다. (신민서, 2학년)
처음에는 시를 아주 싫어했는데 시인교실에서 선생님과 함께 하니까 재미 있어졌다. 이상현 선생님의 동시 <봄 쌓기>를 읽고 ‘봄이 앉아 있다’는 표현 이 좋아서 편지를 썼다. 그런데 내 주소를 잘 몰라서 박예분 선생님 집으로 답장이 왔다고 한다. 다음 수업할 때 선생님이 꼭 가져오신다고 했는데 빨리 받아보고 싶다. (이동민, 2학년)
시인교실을 다니면서 시를 쓰는 방법 등을 배우며 더 시를 잘 쓸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김춘남 시인께 편지를 썼는데, 책이랑 답장이 4장이 나 와서 엄청 감격스러웠고 다른 아이들이 부러워했다. 시인교실이 다음이 마 지막 시간이어서 아쉽다. (설지윤, 2학년)
시인교실에서 권오삼 선생님께 편지를 썼는데 답장이 와서 정말 좋았다. 선 생님이 동시집에 사인을 해서 보내줬다. 「방아깨비」 「오리 가오리」 「ABC」「똥 찾아가세요」등 동시가 참 재미있었다.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 니까 권오삼 선생님과 무척 가까워진 느낌이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하는 동시화대회에서 교육감상을 받아서 엄청 기뻤다. 이제 시를 더 자신 있게 쓰 게 됐고, 어린이 시인교실은 나한테 웃음을 많이 주었고 도움도 많이 됐다. 박예분 선생님께 정말 감사하고 고마웠다. (이윤나, 3학년)
매일 심심하던 때에 시인교실을 다니면서 시에 대해 잘 알게 되었고 흥미 있는 일을 하게 되어서 재미있었다. 작가에게 편지쓰기 시간에 동시 <보기만 해도 맛있는 라면>을 쓴 유희윤 선생님께 편지를 드렸는데 답장과 시집이 와 서 정말 기뻤다. 동시집에 올라 온 라면에 대한 시를 맨 처음 썼던 것을 나한 테만 살짝 보여주셨다. 시인들도 시를 다 완성할 때까지는 고치고 또 고친다 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시인과 직접 편지를 주고받는 일은 처음이기 때 문에 기분이 더욱 좋았다. 다음이 마지막 시간이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 다. (김서현, 4학년)
어린이 시인교실을 다니고 나서 시를 더 잘 쓰게 되었고 웃음을 찾게 되었 다. 그리고 학교생활이 좋아진 것 같다. 왜냐하면 글쓰기를 더 잘해져서이다. 좀 아쉬운 점은 하루도 안 빠지고 출석할 수 있었는데 딱 하루 빠진 것이다. 친구들도 만나서 즐거웠고, 시도 많이 읽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어서 즐거웠 다. 나중에 또 하고 싶다. (박생수, 5학년)
백여 년 전 부터 지금까지 좋은 동시를 써온 수많은 시인들과 연구자의 가슴에 동심의 씨앗을 뿌려 준 동시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동시 덕분에 중년인 연구자의 삶이 허투루 흐르지 않았고, 동시 덕분에 좋은 사람들의 기운을 맘껏 받으며 살고 있다. 동심의 씨앗들이 어린이는 물론이고 어른들의 마음 밭에 잔잔히 뿌리내려 좀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길 바라며 두 손 모은다.
3) 동시와 독자
연구자는 2005년 3월부터 2007년 8월까지 일간지 <어린이동아>에 ‘박예분선생님의 글쓰기 교실’을 연재하였다. 교육 현장에서 만난 어린이들과 신문을 통해 만난 어린이들이 연구자의 동시집 『햇덩이 달덩이 빵 한 덩이』『엄마의 지갑에는』을 읽고 쓴 독후감상문을 올린다. 그리고 학교 도서관에서 만난 학부모들의 동시감상문을 덧붙인다. 이를 통해 시인이 쓴 동시가 독자에게 어떻게 전달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앞으로 제시되는 동시감상문 사례는 『글 잘 쓰는 반딧불이』(청개구리, 2008)에서 발췌하였다.
이 시는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해 주는 시이다. 나에게 7살 된 친척동생이 있는데, 내가 어딜 가고 싶을 때 동생이 뒤따라오면 짜증이 났다. 그렇지만 위의 시처럼, 내가 심심할 때는 같이 놀고, 내가 놀다가 다친 적이 있는데 그 때도 정말 나를 부축해줬다. 이 시를 읽으니, 정말 내 동생도 나에게 걸림돌 도 되고 디딤돌도 된다.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겠다. (황산해, 「걸림돌 과 디딤돌」을 읽고, 초등 5학년)
어릴 때 지리산 청학동에서 7일 동안 지낸 적이 있었다. 청학동 선생님도 무섭고, 친구들도 없어서 심심했는데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니까 가슴이 뭉클 했다. 그때 집이 참 좋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랑 전화통화를 한 후로는 매일 집에 가고 싶어서 울고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었다. 그러다가 집에 돌아와서 엄마를 만나니 정말 기뻤다. 그래서 이 시가 내 마음에 더 와 닿았다. (성웅, 「여행지에서」를 읽고, 6학년)
‘우리 집 여왕’ 이란 시를 보니, 여왕 대신 왕 노릇하는 꼭 우리아빠를 보는 것 같다. 우리 아빠는 우리 집에서 우두머리이기 때문에 아빠가 우리에게 째 려보는 눈길만 줘도 눈치 빠른 나는 움찔 거리며 고개를 팍 숙인다. 그리고 아빠의 말을 어길시에는 아빠는 두꺼운 대나무 매로 때리려고 우리에게 달려 오신다. 꼭 왕의 말을 어긴 죄인들이 곤장을 맞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그때 어 머니께서는 아빠가 우릴 때리시는 것을 말리신다. 꼭 황후마마가 왕에게 말리 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아빠는 우리의 우두머리기는 하지만, 날마다 쉴 새 없이 우리에게 ‘휴지 한 칸 뜯어가지고 와라! 신문지 가져와라! 텔레비전 켜 라! 과자 사와라’ ‘물 갖고 와라’ ‘손톱깎이 갖고 와라’ 많은 심부름을 모두 나에게 맡기신다. 그래서 나는 그럴 때마다 아빠가 우리 집의 우두머리가 아 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빠도 손과 발이 있기 때문이다. 그 렇지만 아빠는 우리를 위해 힘들게 일하시기 때문에 우린 더욱더 아버지께 잘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한다. (기OO, 「우리 집 여왕」을 읽고, 5학 년)
이예슬 어린이는 ‘우리 집 여왕’을 읽고 자기 집과 비슷한 생각이 들어서 얼른 시를 쓰고 싶은 충동을 느껴서 패러디를 하였다. “우리 집 대왕/중국 진 시황보다 더 훌륭하고 /무서운 사람 /우리 집에 있다. //우리 엄마의 눈빛 하 나에 /우리 가족 행동은/'척, 척, 척’ // 아빠의 힘센 근육 자랑도/ 엄마 앞에 선/ 숨는다.// 우리 집 대왕은/ 바로 우리 엄마이다. (이예슬, 「우리 집 여 왕」을 읽고, 5학년)
나는 다른 시도 좋았지만 특히 ‘숨은 뜻’이 마음에 더 와 닿는다. 나도 외 출한 엄마아빠가 돌아올 때 시간이 된 것 같으면 불안해서 전화를 한다. 엄마 에게 언제 올 거냐고 묻고 지금 뭐하고 있는 중이냐고 물어본 다음 컴퓨터를 더 하든가 아니면 빨리 끄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까먹고 그냥 계속하다 들킨 적도 있기 때문에 좀 먼 곳에 갔으면 두 번은 전화를 해서 물어본다.
엄마 아빠는 내가 애 그러는지 아시는 것처럼, 집에 오시면 “너, 컴퓨터 했 어? 공부는 얼마나 했어?”하며 물어보신다. 문제는 거짓말 못하는 내 얼굴에 다 드러난다는 거다. 그래서 혼날 때마다 ‘앞으로는 몰래 컴퓨터를 안 해야지’ 생각하면서도 엄마 아빠만 나가면 컴퓨터의 유혹에 계속 끌려서 걱정이다. 컴 퓨터의 유혹에서 빠져 나와 불안한 마음이 아닌 가뿐한 마음으로, 또 떳떳하 게, 숨은 뜻이 들어 있는 전화가 아닌, 진짜 엄마가 보고 싶어질 때 전화를 했으면 좋겠다. (강OO, 「숨은 뜻」을 읽고, 중학교 1학년)
이 시를 읽으며, 몇 주 전 일이 떠올랐다. 학원에 가야 되는데 그날은 갑자 기 정말로 학원에 가기 싫었다. 더구나 다음 날이 운동회인데. 나는 엄마에게 준비물을 준비해야 한다는 핑계로 학원가기 싫다고 계속 버티고 있었다. 엄마 께서 “학원비가 얼만데, 몇 시니? 빨리 안 갈래?”하며 계속 말씀하셨지만 나 는 꿈쩍 하지 않았다. 위의 시와는 반대로 그때는 내가 바위였었다. 나는 끝 까지 버텨서 결국 학원에 안 갔다. 그런데 문제는 밤8시 쯤 학원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왜 안 왔느냐, 내일은 꼭 와라. 내일도 빠지면 절대 안 된다.” 라 고. 사실은 다음날도 운동회를 하니까 피곤하다는 핑계로 빠지려고 맘먹었는 데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오늘 가고 내일 쉴 걸.’ 하면서 진짜 후회를 많 이 했던 생각이 난다. (강OO,. 「달걀로 바위치기」를 읽고, 중학교 1학년)
남산만한 배불뚝이 아저씨 배를 보면 정말 웃길 것 같다. 그림에서 아이의 머리가 재미있다. 삐죽삐죽 올라온 머리가 꼭 폭탄 맞은 머리처럼 재미있다. 그리고 아이가 아저씨를 놀리는 게 너무나 재미있다. 나도 이 아이처럼 나를 놀리는 어른들을 재치 있게 놀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배불뚝이 아저 씨는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그림을 보며 상상해 보니까 자꾸 웃음이 나온다. ‘배불뚝이’라는 말도 참 재미있다. (신원용, 「줄이기와 뻥튀기」를 읽고, 3학 년)
할머니의 사랑이 느껴지며 우리 할머니가 생각난다. 작년에 엄마아빠가 일 이 있어서 서울에 3개월 정도 있었는데, 그때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셔서 우 리를 보살펴 주셨다. 내게 맛있는 음식도 많이 해 주시고, 뭐라도 더 먹이고 주려고만 하셨다. 여기 시에서는 할머니가 팔이 없으신데, 우리 할머니는 다 리가 많이 아프시다. 그런데도 내가 학교 갔다 오면, 벌떡 일어나서 맛있는 것을 만들어 주신다. 할머니와 가끔 의견 다툼도 있었다. “공부는 안하고 만 날 놀기만 해서 어쩔래. 반찬 투정하지 말고 골고루 먹어라.” 주로 할머니가 내게 하셨던 말씀이다. 그때마다 약간 짜증도 냈지만, 참 고맙고 감사한 우리 할머니다. 할머니,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요! (김선홍, 「팔 하나인 우리 할 머니」를 읽고, 6학년)
나는 친한 친구와 사소한 일로 다투는 일이 많다. 그때 너무 화가 나서 참 을 수 없어서 화내고 다투게 된다. 내 친구에게 이 시를 읽어주며 앞으로 사 이좋게 지내자고 해야겠다. (박주현, 「새끼손가락 걸었다」을 읽고, 6학년)
내가 가족과 함께 부영 1차 아파트로 운동하러 가던 날이었다. 나는 운동하 기 싫어서 혼자 심심하게 돌아다녔다. 그런데 진버들 문구점 앞에 5천 원짜리 지폐가 떨어져 있는 걸 보았다. 그때 누가 먼저 집어 갈까봐 나는 후딱 주워 서 문구점으로 가 맛난 것을 사 먹어 버렸다. 막상 사먹고 나니 갑자기 돈 주 인이 생각났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던 적이 생각난다. (이 정찬, 「주운 돈」을 읽고, 4학년)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왜냐하면 ‘엄마는 천사’에서 우리 엄마의 모습이 떠 올랐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도 천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쩔 때는 악마 처럼 보일 때도 있다. 천사일 때는 환한 얼굴로 나한테 잘해줄 때이고, 악마 일 때는 화난 얼굴로 나를 혼낼 때이다. 하긴, 나도 내 친구들에게 어쩔 땐 천사일 때가 있고 악마일 때도 있으니까. 애들이 나를 화나게 하면 나는 정말 얼굴이 악마처럼 무섭게 변한다. 우리 엄마도 내가 화나게 해서 나쁜 얼굴이 되는 거다. (김현정, 「엄마의 날개」를 읽고, 3학년)
나는 우리학교 교장선생님은 이 동시와 반대라는 생각을 했다. 때때로 따뜻 한 눈빛으로 다정하게 말씀하시긴 하지만, 그건 오직 학교로 찾아오는 손님들 에게만 그러는 것 같다. 우리학교 교장 선생님이 이 시에 나오는 것처럼 ‘누 구를 만나든 먼저 보는 사람이 정답게 인사하는 그런 교장선생님이 되셨으면 좋겠다. 그러면 더욱 학교 분위기도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교장 선생 님을 만나면 도망치지 않고, 환한 얼굴로 교장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싶다. (이OO, 「우리학교 교장 선생님」을 읽고, 5학년)
'숨은 뜻'을 읽고, 내가 직접 겪은 일이라 재미있다. 나도 외출한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언제 오냐고 물어보고 게임을 한다. 왜냐하면 내가 유일하게 게 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가 한 술 더 떠서, 엄마가 돌 아와 대문 여는 소리가 나면, 컴퓨터 스위치를 바로 누르고 거실에 나와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척한다. 그래서 여태까지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들이 컴퓨터 모니터를 만져본다고 한다. 만져봐서 뜨거우 면 거짓말 한 게 들통이 나서 혼난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그렇게까지 의심 은 안 하니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박예분 선생님이 우리들의 이런 마음 을 알고 시를 썼다는 말을 듣고, 어른들이 다 알고 있는데 그냥 모른 척 해준 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 몰래 컴퓨터게임을 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 만, 게임을 하고 싶은 걸 참지 못해서 또 하고, 또 하게 된다. 그래도 시의 마 지막 연처럼 나도 “엄마, 죄송해요!” 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엄마에게 진심으 로 미안한 생각이 든다. (백승혁, 「숨은 뜻」을 읽고, 5학년)
언니랑 같이 등교하다가 만 원짜리 한 장을 주웠던 적이 있다. 그 순간 운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학교로 가서 선생님께 갖다 주 었다. 그랬더니 얼마 뒤에 선생님께서 선행상을 주셨다. 그러니까 만 원 대신 선행상을 받은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만 원보다 선행상이 훨씬 좋은 것 같 다. 만 원을 주웠을 때는 그것으로 맛있는 것도 사먹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상장은 오래오래 볼 수 있고, 그 일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좋다. 만약에 먹을 것을 사먹어 버렸다면, 똥으로 나와서 없어졌을 테니까. 마음 아픈 남의 돈으로 사 먹은 것이라서 똥도 냄 새가 지독했을 것이다. 또 다시 생각해 봐도 언니랑 나는 그때 생각을 참 잘 한 것 같다. (박나현, 「주운 돈」을 읽고, 4학년)
여기까지 연구자의 동시에 대한 어린이 독자들의 감상을 살펴본 결과, 이 논문의 본론 ‘창작의 실제’에서 다루지 않은 동시들이 7편이나 되었다. 이를 통해 어린이들이 공감하는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음은 2013년도에 북일초등학교 도서관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6개월 동안 ‘동시읽기 및 창작지도’를 진행하였다. 그때 연구자의 동시집을 읽고, 이야기 나눈 학부모 독자들의 감상글을 올린다. 이 또한 어른들의 잃어버린 동심을 회복하고 어린이의 세계를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우리 딸아이가 시래깃국을 소재로 썼다면 이런 분위기의 시가 나올 것 같다. 애들 아빠가 장기 출장도 잦고 시래깃국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강의하고, 보직으로 유학업무 담당이라 해외출장이 많은데 출장 후 꼭 된장 시래깃국이 먹고 싶다고 공항에서부터 전화를 하곤 한다. “난데, 지 금 도착 했네~ 바로 가니까 기다려! 당신 무지 보고 싶네~ 그리고 국은 알지? 당신이 끓여주는 된장국 먹고 싶어서 혼났네.” 하며 너스레를 떤다. 난 그때 부터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을 소박하지만 맛있고 감사한 밥상을 차리느라 분주하다. 이 동시에는 바로 우리네 삶에서 느껴지는 소박함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정이 담겼다. 옛날 시골향기가 묻어나는 된장 시래깃국, 소박하지만 정성 가득한 시래깃국을 먹으면서 함께하지 못하는 부재중인 가 장을 떠올리는 아내의 마음과 이를 바라보는 자식의 눈높이가 꼭 우리집 풍 경 같고 마음이 푸근하다. (박현정, 「시래깃국」을 읽고, 북일초 학부모)
동시「종이상자집」은 무심한 어른들에 비해,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아이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문득 며칠 전 찾아뵈었던 까만 얼 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시골 시어머님의 얼굴이 떠오르네요. “집에 있으면 뭐하냐,, 얘기할 사람도 없고 심심한데......” 어머니의 말씀이 맘에 걸립니다. 앞으로는 전화통화라도 자주해야겠습니다. (김미정, 「종이상자집」을 읽고, 북일초 학부모)
나의 잔소리가 내 아이의 등에 꼭 붙어 다니고, 날이 갈수록 가방 속의 책 보다 더욱 더 무거워진다고 생각하니 너무 끔찍하다. 시험과 다른 아이와의 비교가 얼마나 내 아이를 숨 막히게 하는지 알면서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현실속의 엄마들...... 오늘 하루 반성해본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더욱 열심 히 사랑해줘야겠다. (김미정, 「무거운 잔소리」, 북일초 학부모)
내 고향은 무주다. 초등 2학년 때 남원으로 전학 온 나는 방학이 되면 큰집 이 있는 무주에 놀러 갔다. 그때마다 엄마 아빠는 살던 집을 둘러보라 하셨 고, 큰엄마께서도 집에 갔다 왔냐고 물으셨다. 이미 다른 사람이 사서 소를 키우고 있는데 꼭 가야하냐고 투덜거리며 다녀왔다. 그 집은 엄마 아버지가 결혼하시며 지은 집이고, 우리 삼남매가 태어나고 자란 집이다. 그런데 이상 하게도 그 집 대문 앞에는 항상 아버지의 문패가 달려 있었다.
새 주인도 그 집에서 산 것이 아니라서 문패는 신경 쓰지도 않은 것 같다. 내가 커갈수록 문패는 점점 갈라지고 아버지의 이름조차 희미해져 갔다. 그곳 에서 아버지의 문패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아버지는 문패하나 달 당신 집은 갖지 못하고 남의 집만 짓다가 돌아가셨다. 문패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어른들께는 이것이 어떤 의미였을지 생각해보게 된 다. (강세진, 「문패」를 읽고 , 북일초 학부모)
사람의 관점에 차이가 정말 다르다는 생각도 들게 해 주었습니다. 나는 두 아들이 공부를 안 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너 길거리에서 상자 줍고 빈병 줍 는 할머니 되고 싶니? 나이 먹어서 힘들게 안 살 거면 공부 열심히 해라!” 자 주 빗대어 말했다. 그런데 이 동시를 읽으면서 내 자신이 더 부끄러웠습니다. ‘아, 그렇구나!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할머니의 몸부림이구나.’ 생각하니 가슴 이 뭉클해졌습니다. 할머니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잘못된 관점으로만 봤던 내게 이 동시는 모든 사물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을 주었 습니다. (강혜성,「빈병 줍는 할머니」를 읽고, 북일초 학부모)
나의 어릴 적 추억이 물씬 풍기는 동시이다. 언니와 동네 친구들이 모여서 한바탕 요란하게 봉숭아꽃과 이파리를 한 봉지 가득 채워서 절구에 넣고 서 로 찧겠다고 아우성 댔던 일이 떠올랐다. 엄마 몰래 영양크림 가져와서 손톱 주위에 바르고 서로 먼저 손내밀며 티격태격 열손가락이 예쁘게 물들기를 바 라는 마음으로 움직이지 않고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다 그만 잠 이 들어, 잠을 자가 뒤척이다보면 꽃이 빠진 손가락은 물이 들지 않아서 속상 해하고, 예쁘게 물든 손톱을 보며 첫눈이 오기만 기다렸던 그 시절이 생각났 다. 나의 손톱에 꽃물을 들여 주던 언니의 손이 먼저 곱게 물들었던 것은 위 의 동시처럼 역시나 언니의 사랑이 나에게 전해진 것 같다. 사람은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나도 다른 사람을 위해 내 마음을 먼 저 물들여야겠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강혜성, 「꽃물들이기」를 읽고. 북일초 학부모)
사춘기 소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나 또한 그 시절에 좋아하는 아 이 앞에선 한 없이 작아졌던 것 같다. 눈 마주치기도 힘들고 말 걸기도 힘들 었던 것 같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내가 마 치 소녀가 된 것처럼....... (김혜경, 「얼음 땡」을 읽고, 북일초 학부모)
반장뽑기를 할 때 아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설레었을까? 한 표 한 표 역전 되고 뒤바뀔 때마다 안도하고 기뻐하는 아이들의 마음, 실망하고 슬퍼하는 아 이들의 맑은 마음이 느껴지는 동시다. 박인봉 한 표, 김기린 한 표 부를 때마 다 엇갈리는 마음 뒤에서 오늘 반장은 누가 됐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혜 영, 「시소놀이」를 읽고, 북일초 학부모)
세 살배기 아들이 생각난다. 넘어진데 또 넘어지고 멍든 자리 또 멍들고, 다친 자리 딱지도 가라앉기 전에 또 다치고 마는, 그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르 는 세 살배기 아들이다. 뛰어서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아픈 흉터보다 더 좋은 것은, 뛰고 달리기 때문이 아닐까? 넘어져서 아플 거라는 나중의 후회보다 뛰 는 순간의 즐거움이 더 크다는 것이 어른과 아이의 다른 점인 것 같다. (이혜 영, 「흉터」를 읽고. 북일초 학부모)
이 시를 읽고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그리 고 일 년 전 내가 아파서 병원에 일주일 씩 입원했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아 픈 나는 나대로 남편과 아이들도 그들대로 엄마 없는 불편함 때문에 고생이 많았던 그때를 생각하니 눈물이 자꾸 흐르네요. 하지만 퇴원해서 돌아왔더니 아이들이 몰라보게 의젓해지고 마음이 많이 성숙해졌던 그날을 회상하며 시 를 패러디 해봅니다.
컵라면도 실컷 먹고 / TV도 실컷 보고/ 게임도 질리게 했다 // 다 지겹고 질릴 무렵 / “엄마!” 하고 불러본다. // 아무 대답이 없다/ 엄마는 아파서 병 원에 가셨다 // 그래도 / 며칠 있으면 오니까 다행이다// 엄마가 오시면 / 꼭 안아드려야지. (곽옥선, 「엄마 없는 날」을 읽고, 북일초 학부모)
박예분 선생님의 동시집 『엄마의 지갑에는』속에는 따뜻한 이야기들이 가 득하다. 읽다보면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그래 맞아!’하며 고개가 끄덕여지기 도하고, 잠시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그 중 「엄마가 된 진순 이」는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 시골집에서 키우던 개 ‘메리’를 생각나게 했다. 진순이는 이름이 ‘진순이’인 걸 보니 아마 진돗개 종류인가 보다. 우리 메리는 그냥 잡종개였다. 그러나 ‘총명하고 훤칠하고 의젓’ 하기는 진순이 못지않았던 것 같다. 시골인데 왜 서양 여자 이름 같이 ‘메리’ 라 불렀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우리 집 개는 대대로 다 ‘메리’라고 불렀다.
메리가 새끼를 낳으면 우리 엄마도 진순이 주인처럼 미역국을 끓여주시고, 또 날계란도 깨서 부어주시며 “애썼다, 고생했다, 많이 먹어라잉~”마치 사람 에게 하듯 말씀하셨다. 새끼들이 나란히 달라붙어 젖을 빨면 뿌듯한 듯 자랑 스럽게 고개를 쳐들던 우리 집 메리. 커다란 밥그릇에 머리를 집어넣고 서로 앙앙대며 먹다가 다 먹어 치우면 아예 빈 그릇 속에 들어앉아 쩝쩝 입맛을 다시던 앙증맞은 메리의 새끼들. 하지만 우리 메리는 그 많은 새끼들과 오래 함께 살지 못했다. 대를 이을 한 마리만 남기고 우리 엄마가 맘대로 이웃들에 게 보내버려서 메리는 며칠 밤낮을 아프게 울었다. 동시의 주인공 진순이는 든든한 남편 진돌이랑 다섯 마리 이쁜 새끼들이랑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최순화, 「엄마가 된 진순이」를 읽고, 북일초 학부모)
이 동시를 읽으며 어렸을 적 우리 집 앞마당이 눈앞에 그려졌다. 시골에 살 았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 일은 일상이었다. 나는 코흘리개, 단발머리에 ‘선머 슴 아이’ 라고 불리기도 했다. 엄마아빠는 농사일, 밭일에 바쁘셔서 손길이 거 의 닿지 않았던 꼬질꼬질한 아이였다. 요즘 같으면 왕땅 당하기 딱 좋은 모습 이었다. 그래도 동네 친구, 언니, 오빠들이 있어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나이 먹기” “얼음땡 놀이” 등 여러 가지 놀이를 하고 신이 났다.
지금은 이 시처럼 시골 노인들이 타작하지만, 예전에는 엄마, 아빠, 고모, 고모부, 큰아버지, 큰엄마, 큰집 언니와 오빠들이 함께 도와가며 타작을 했다. 콩타작에는 콩이 하늘로 튀고, 참깨를 털면 깨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는 콩 잡으랴 깨 잡으랴 신나게 뛰어다녔다. 바가지에 누가 콩을 잘 넣는지 시합도 하며 새참속 막걸리를 몰래 한 모금 먹고 얼굴이 벌개졌던 일들이 놀이처럼 재미있었다. 긴장대로 홍시를 따주던 큰집 막내오빠, 그 오빠의 손길이 닿은 홍시는 유난히 더 맛있었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오롯이 내 머릿속에 남아 있 는 시골 풍경, 타작마당 속에 내 추억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아스팔트 위에서 놀고, 아파트에서 “빨리 빨리” 하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먹 고 사는 요즘 아이들은 나중에 무엇을 추억할까? 콩 타작, 깨 털기, 홍시 따 기, 새참 먹기 속으로 내 아이의 어릴 적 기억도 채워주고 싶다. 메마를 가슴 이 아닌, 팔딱팔딱 뛰는 가슴으로 살며, 어른이 되어 힘들 때 꺼내보며 웃을 수 있도록! (양현미, 「타작마당」을 읽고, 북일초 학부모)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어른도 동시를 읽고, 까마득히 잊고 지낸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추억하고 동심으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문삼석은 아동문학의 현실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좌절감을 느낄 때 아동문학의 원천인 아동들을 생각하면 “어느새 천진난만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나는 그것을 회귀(回歸)라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도피가 아니다. 어려운 현실을 회피하기 위한 회귀가 아니라, 서로를 용서하고 포용하며 꿈을 안고 살았던 어린 시절로부터 오늘을 포용하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어오기 위한 회귀”라고 했다.
북일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연로한 부모와 어린 자식을 둔 사이에서 ‘샌드위치’ 부모의 역할을 하고 있다. 자신의 부모와 자녀들을 함께 챙겨야하고.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일도 많고, 끊임없는 자기계발까지 정신적인 여유가 없이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동시를 만난 북일초 어머니들은, 잃어버린 동심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통해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고 함께 깔깔깔 웃기도 했다. 이게 바로 동시가 가진 힘이다. 사랑이다.
Ⅲ. 결론
동시는 어른이 동심을 바탕으로 어린이를 위해 쓴 시다. 동시 역시 시창작과 거의 동일한 과정으로 탄생한다. 시는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 쯤 지점에서 막연히 미학적 주제로 떠다니며 스스로 시적 에너지를 축적해 나가다 외부의 자극에 표상되면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특정하기 어려운 어떤 심상이 충분한 숙성기를 지나 구체적으로 이미지화 되는 순간 작가가 부여한 적절한 표현기법에 의해 완결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동시는 대상이 어린이라는 점에서 시적화자, 시적대상, 시적상황 등에 숙고해야할 요소들이 더 있다. 그것은 동심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경로로 그에 도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동심에 이르지 않고는 좋은 동시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논문에서 밝히고자 했던 동시의 실제는 결국 이러한 문제였다. 연구자의 초기 동시가 어떤 형식의 시적 발현과 감응을 거쳐서 창작되었는지 연구해 봄으로써 동시창작론을 견고히 하고자 했다. 초기에는 지극히 한정적인 주제에 머물렀던 동시의 주제와 심상이 졸시「매미」처럼 어떤 변화와 발전과정을 거쳐서 우주적 관점까지 수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는지 스스로 검증했다. 이렇게 창작된 동시가 아동들에게 어떤 효용과 가치로 자리하는지를 아이들과의 피드백을 통한 공감의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실체화하였다.
연구자는 시작활동 초기에 시적 감응에 이르는 방법론적 과정으로 ‘관조’를 주로 선택했는데, 이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마흔에 동시를 쓰기 시작한 것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보여줄 수는 없었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실생활이 경험을 통해 수용, 부정, 재수용이라는 보편적인 인식 단계를 이미 거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경험에 의해 검증되지 않고 학습이나 계몽에 의해 수용된 것들의 억압이나 교란에서 벗어나 시적대상을 관조함으로써 대상을 자신과 일체시키고, 그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이었던 셈이다. 즉, 연구자가 여러 경험을 통해 성인의 고정관념을 깨고 동심에 이른 과정은 동심이 지니고 있는 순진무구함처럼 선적인 것의 재수용 과정이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이 동시로 나타난 것이다.
이때 성인들의 억제된 소망이나 변형된 욕망을 말하거나, 교훈적인 당위성이나 동심천사주의로 끌고 가는 오류를 경계하고, 대상에 대한 개별적이고 특수한 심상을 발현시켰다. 이러한 경험을 거친 이후 주체와 심상의 범위를 확장하는 단계에 이르렀는데, 그것은 아이들과의 직접적인 교감과 공감에서 비롯되었다. 연구자는 여러 학교와 도서관, 문학관 등에서 동시를 주제로 강연을 해왔으며,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움직임에 관심을 가졌고 그들의 언어로 마음을 읽었다.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파고들듯이 그들의 세계로 파고들었다. 그 결과 어린이들이 안고 있는 갈등이나 문제점들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그들의 세계를 그대로 투사하여 리얼리티를 담아내는 시적형상화를 모색하였다.
또한 모든 대상을 생명의 근본으로 보고 사물에 대한 통찰력을 키웠다. 동심으로 바라 본 세상은 한 개인의 지난한 삶을 뛰어 넘어 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호응하는 꿈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물환론적인 상상력으로 주제와 심상이 확장되면서 시적대상도 다양해졌다. 자연과 인간의 삶을 하나로 보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우주의 흐름에 맡겨, 동식물과 온갖 사물들이 생명의 주체가 되어 능동적으로 행동하도록 하였다.
동심의 에너지는 동시의 저변확대로 확장되었다. 연구자는 동시를 매개로 어른들에게는 잃어버린 동심을 회복시켜주어 초심잡기를 통해 가족 간의 유대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였고, 아이들에게는 그들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동시전도사’를 자청했다. 어린이들에게 글쓰기 지도를 하며, 그들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밖으로 끌어내어 이야기를 나눈 뒤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이 논문을 통해 앞으로 동시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시적형상화를 더해 어린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동시, 리얼리티를 확보하여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동시, 상상력이 풍부한 동시, 어린이 세계의 비가시적인 면까지 읽어주는 동시, 공동체를 모색하며 상생하는 동시로 어린이들이 정서적 풍요를 누릴 수 있도록 주력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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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자작 동시「솟대」외 51편 창작 실제
경영행정문화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문예창작전공 박예분
지도교수 : 안도현
이 논문은 연구자의 동시집『햇덩이 달덩이 빵 한 덩이』,『엄마의 지갑에는』과 최근 문예지에 발표한 동시 중 「솟대」외 51편을 선별하여 작가의 주제의식과 창작과정을 비교 분석하고 동시의 효용가치와 파급효과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일반적으로 시작은 주체인 시인과 시적 대상의 상호감응에 의해 발화하여 거기에 방법론적 기교를 부여함으로써 완결된다. 연구자는 대부분 시적 대상을 관조함으로써 대상과의 분별을 넘어선 일체성을 확보하고 그를 기저로 하는 시작태도를 보여 왔다. 이는 대상과의 동일시가 고전적 시작의 폐해로 지적되는 영원성과 절대성에 함몰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상의 본질에 접근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이를 적극 수용해왔다. 이런 태도는 사물을 분절하여 재단하는 서양의 분석적인 방법과 궤를 달리하며 나름의 당위성을 확보한다.
관조란 한편으로 대상의 완전한 수용이라 할 수 있는데 이때의 수용은 성장기 학습이나 관습에 의한 수동적 수용과는 다르다. 이는 성인이 된 이후 현실과 갈등분화를 일으키는 저항단계를 극복한 능동적 수용 혹은 적극적 수용이라는 점에서 헤겔의 변증법적 결론과 유사하다. 이런 관조는 대상을 직관함으로써 주체와 대상을 일치시키는 동시에 조응함으로써 사물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시켜 객관적 시각을 부여한다.
이를 바탕으로 서론 2)의 창작방법 및 동기에서는 이를 보다 상세하게 전개하여 그런 시작태도가 연구자의 초기 동시에서 어떤 성과로 이어졌는지 살펴보았다. 아울러 그 시기 작품 속에 담긴 희망이나 사회 보편적인 소망에 허상이 없는지 꼼꼼히 검증해보았다. 대상과의 섣부른 동일시가 대상이 지닌 이면과 이력을 간과하게 되어, 흔히 동시의 허상으로 일컬어지는 동심천사주의와 같은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그리고 본론 1)과 2)에서는 개별적 서정화로 흐르기 쉬운 관조적 시적 감흥을 넘어, 다층에서 분화와 불화가 일어나는 현실을 어떻게 수용하여 동시의 주제를 다양화하고 심상을 확장 했는지에 대한 과정을 다루었다.
동시는 어른이 동심을 바탕으로 어린이를 위해 쓴 시다. 동시 역시 시창작과 동일한 과정으로 탄생하지만, 시적대상이 어린이라는 점에서 시적화자와 시적상황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연구자는 지금껏 겪어 온 여러 경험을 통해 성인의 고정관념을 깨고 동심이 지닌 순진무구함처럼 선적인 것의 재수용과 그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으로 동시를 창작하였다.
그에 따라 연구자의 초기 동시는 어린이들의 협소한 행동반경에 따른 지극히 한정적인 주제에 머물렀으나, 동심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우주적 관점까지 수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것은 주제가 극히 개인적인 자신과 그를 둘러싼 가족과 사회는 물론이고 그를 모두 포괄하는 우주와 긴밀하게 통섭한다. 동시의 대상은 동심의 상상력만큼이나 다양하고 넓어서 모든 사물을 물환론적인 사고로 대한다. 연구자가 다룬 주제들은 주로 어린이들의 자존감 향상 및 꿈과 희망 가꾸기, 가족과 이웃사랑, 자연과 사물에 말 걸기, 공동체 삶 지향,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다.
본론 3)에서는 동시의 효용성과 파급효과에 대해 살펴보았다. 동시를 포함하여 모든 문학작품은 작자에 의해 탄생하여 결국 그를 보는 독자의 눈에 안착한다. 이는 어떤 작품이든 독자의 감상 수준이나 상황이 개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동시는 그 정도가 더하다.
이 논문에서는 이의 논거로 연구자가 초등학교와 문학관 도서관 등에서 개설 강의한 ‘동시수업’의 결과물을 다수 예시했다. 거기에 참여한 성원으로는 아동 뿐 아니라 학부모까지 별도로 진행했다. 그곳에서 동심의 발현과 상호 교통은 물론이고 그 성과에 대한 피드백을 생생히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의 효용성과 파급효과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검증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면서 앞으로 동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동시는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바라 봄’으로 촉발한다. 물론 여기에서 보는 것은 가시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가시적인 시간과 머릿속에 안개처럼 떠도는 추상성의 형질 역시 포함된다.
본 논문의 결론이자 과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보다 발전적인 동시는 바로 아이들 머릿속에 떠도는 것들을 미적으로 형상화시켜서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어린이는 학습의 대상이고, 그 과정에서 어떤 사물이나 개념에 대한 수동적 수용을 강요받는다. 따라서 아직 명료하게 정리되진 않았으나 아동들의 머릿속을 떠다니는 상상이나 추상적인 것들은 그 발화가 자유의지라는 점에서 사고의 자람 또는 커감의 동력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동시를 통해 아동들에게 보여준다면 아동들이 현실과의 괴리로 겪는 갈등을 줄이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의 모색은 역시 동시에 대한 사랑과 창작으로 이루어질 것인데, 이는 앞으로 연구자가 해내야할 중요한 과제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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