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방언 은사 중지론’을 말하는가?
朴埰同 (2024.05.02.21:40)
{웨신} [21장: 예배와 안식일]에서 기도를 다루는 <3항> 마지막 문장은 “만일 소리를 내어 하는 경우에는 알 수 있는 언어로 해야 한다.”고 고백한다. 이 문장에서 우리는 고전 14장 16절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라는 바울 사도 말씀을 떠올려야 한다. 그리고 ‘방언 은사 중지론’이 아닌, 고전 14장 28절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라는 말씀을 떠올려야 한다.
또한 이 고백을 태어나게 만든 시대 배경을 떠올려만 한다. 그 배경은, ‘중세 로마 천주교 그릇된 관행으로서 미사’를 반대한 {웨신} [21장: 예배와 안식일] <2항> “예배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 드려야 하며 …… 천사나 성자들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 드려서는 안 된다. …… 또한 다만 그리스도 이외의 어떤 다른 중보로도 드릴 수가 없다.”는 고백에서 보는 대로, ‘중세 로마 천주교 그릇된 관행’이다. 즉, 한때는 서방(서로마) 기독교에서 통용되는 ‘살아있는 언어’였지만, 게르만족 침공으로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뒤 ‘죽은 언어’가 돼 버린 라틴어, 중세 로마 천주교 시대 영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 같은 서유럽 각국 자국어自國語가 아니라서 회중이 이해할 수 없는 ‘죽은 언어’ 라틴어로 미사를 집전했던 ‘중세 천주교 그릇된 관행’이라는 시대 배경이다. 이 시대 배경을 생각할 때 “만일 소리를 내어 하는 경우에는 (회중이) 알 수 있는 언어로 해야 한다.”는 고백은 결코 ‘방언 은사 중지’를 말하는 고백이 아니다.
고넬료와 그의 권속들 방언을 이른바 “랄라라” 방언, 혹은 “웅얼, 울얼” 방언 정도로 해석하신 고故 김홍전 목사님 다음과 같은 가르침으로 족하다. 다음은 ‘김홍전 {교회에 대하여 ③} (서울: 성약출판사, 2001)’ 188쪽에서 옮기는 글이다.
“또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이 “통역”이란 말보다 ‘해석’이라는 말이 적절할 터인데, 해석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니라.” 자기가 교회에서 웅얼웅얼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 하나님 말씀이 가르치는 바입니다. 요새 방언이라는 문제가 자꾸 돌아다니는데 성경은 항상 질서를 요구합니다. 모든 일을 단정히 하고 규칙대로 행하라는 것, 그 다음에는 항상 덕을 세우는 데 필요한 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가령 자기가 그런 종교적인 황홀경에 들어갔다고 할지라도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사석에서 하나님께만 자기 홀로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구별 없이 함부로 나가면 교회가 시끄러워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