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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었던 아들 / 수 5:9-12, 눅 15:11-32
지난 주 노회 모임을 가는데 중앙교회 정목사님과 함께 갔다. 도중에 중앙교회 장로님도 같이 가게 되었다. 차를 타자마자 하는 말이 ‘갈보리교회 장로님은 노회를 안갑니까?’ ‘예, 용담댐 수몰에 대한 보상문제로 용담 가물막이 댐 공사 현장에서 데모하는데 가셨습니다.’ ‘노회 시작하는 날인데 장로님이 노회 예배에 참석하여 기도해야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데모한다고 하나님이 들어줍니까?’ ‘장로님, 출애굽기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고역으로 탄식하며 부르짖는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셨다고 했는데, 수몰민들이 함께 모여서 탄식소리를 크게 내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용담댐 수몰민에 대한 기도 한마디 없는 노회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좋습니까? 기도는 꼭 교회당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고통을 당한다고 억울하다고 직접 여럿이 힘을 모아 부르짖는 것이 더 큰 기도 아니겠습니까? 노회에 가면 누가 이곳 수몰민을 위해 기도해 주는 분이 있습니까?’라고 말하자 장로님께서 대답이 없으셨다. 고향이 댐으로 인해 수몰되면 고향은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다. 북에 고향이 있는 사람들은 통일이 되면 고향에 갈 수 있겠지만, 수몰된 고향은 이제 영원히 물에 잠기게 되어 우리가 살 수 없는 곳, 찾아갈 수 없는 곳이 된다. 그런데도 이런 아픔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관심 밖의 일,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로 생각한다. 여러분들이 건강을 헤치면서까지 외치는 그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리라 믿는다.
‘25시’라는 인상적인 영화가 있었다. 주인공은 요한 모리츠인데 순박하고 무식한 농부였다. 이 모리츠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유없는 고생을 한다. 한때는 유대인으로 오해를 받아서 여기저기 끌려다니면서 멸시와 학대를 받았다. 그런데 때로는 난데없이 세계 최고의 우수한 인종의 씨라고 해서 찬양을 받기도 한다. 여기저기 끌려다니다가 마지막에는 연합군에게 잡혀서 재판을 받는다. 재판관이 묻기를 ‘너의 진짜 신분이 무엇이냐?’라고 묻자 이 모리츠는 아무 대답을 못한다. 왜냐하면 자기가 정말로 누구인지를 자기 자신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심각한 이야기이다. 사람이 너무 고생하다보면 자기를 잃어버린다. 너무 복잡해도 자기 분열을 가져온다. 너무 바빠도 참다운 자기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된다. 속도와 경쟁으로 표현되는 현대의 사회구조는 인간들에게 자기 분열을 가져오게 하는 요람이다.
이런 예가 오늘 본문 중에 기록되어 있다. 어느 집에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 절반을 미리 받아가지고 집을 뛰쳐 나갔다. 집을 뛰쳐 나온 둘째 아들은 모든 것이 순풍에 돛을 단 배와 같이 잘되기만 했다. 주머니에 돈은 두둑하고 몸은 건강했고 나이도 젊었다. 그는 구질구질한 고향을 떠나 먼 나라로 갔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이 났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고 유행을 따라 옷을 입고 아름다운 여인들에게 둘러 싸였으며 많은 친구들을 사귀면서 재미있게 지냈다. 그러다가 돈이 떨어졌다. 생활은 위축되고 옷은 너덜너덜 해지고 여자와 친구들은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타향에서의 고독과 서러움이 왈칵 다가왔다. 처량하게 별들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그 생각은 아마 고향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는 아마 이런 종류의 노래를 불렀는지 모른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네. 내 동무 어디 두고 나홀로 앉아서 이일 저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그는 고향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 집에 대한 생각이었다. 아버지 집을 생각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재미있고 시간이 너무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인생의 즐거움과 슬픔, 인간의 허무와 고독을 다 경험하고 나니 비로소 자기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가르쳐주시던 어머니와 아버지 곧 자기 생명의 창조자에게로 생각이 돌아가게 된 것이다. 이것은 잃어버렸던 자리를 찾는 순간이다. 결국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아버지 집을 향하여 발길을 옮겼다. 아버지 집을 향하여 떠나는 것, 곧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가 과감히 일어나 어버지의 집을 향하여 발길을 돌리는 것을 회심이라고 말하고, 아버지 집을 향하여 한결같이 달려가는 그 걸음을 신앙생활이라고 말한다.
이제 첫째 아들의 이야기를 예로 말씀드린다. 부산의 한 가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장로의 가정인데 그 분의 아버지도 장로이다. 그 장로는 대학교수를 지낸 분이다. 하루는 온 집안 식구들이 모여 아침 식사를 하는데, 아들 장로가 기도를 하다가 미국을 조금 비판하는 뜻으로 기도를 했다. 그러나 아버지 장로가, 그 분은 경남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분인데, ‘우리가 수저를 들기 전에 너하고 나하고 분명히 해야 될 일이 있다’라고 말하니 아무도 식사를 못하고 긴장했다고 한다. 아버지 장로가 아들에게 ‘네가 장로로서 미국을 비판하는 기도를 하다니, 이게 어찌된 일이냐? 하나님이 택한 나라인 미국을 어찌 비판하느냐?’라고 말했다. 이에 아들 장로가 ‘아버님, 요즘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고, 미국도 우리가 과거에 생각했던 그런 미국이 아닙니다. 아버님께서 그렇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버지 장로가 ‘이놈! 네가 그렇게 고집을 하면 부자간의 인연을 끊자!’라고 호통을 쳤다. 딱하게 된 아들 장로가 ‘아버님, 어찌 이까짓 일로 부자의 인연을 끊겠습니까? 제가 장남인데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고정하십시오.’라고 말하자 아버지 장로가 밥상을 엎어버리며 ‘이놈, 썩 나가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가 모두 있는데 말이다.
이것은 고립된 이야기가 아니다. 평생을 아버지 곁에서 그 뜻을 어기지 않고 종처럼 일해온 첫재 아들과 같이 평생을 장로로서, 기독교인으로서 미국을 하나님이 축복하신 나라로 떠받들고 살아온 아버지 장로가 평생을 키워온 아들이 반미를 하다니, 이게 말이 되느냐? 재산 다 탕진한 둘째 아들 같은 놈이 아닌가? 저는 이 아버지 장로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부산의 장로의 이야기는 후에 아름답게 끝을 맺었다. 몇 달 후 사회가 변하고 12.12사건이나 5.18의 배후에 미국이 있고, 우루과이 라운드 등을 통해 미국에 대한 바른 인식이 널리 퍼지자 아버지 장로는 아들이 옳았다는 것을 깨닫고 간데마다 아들 자랑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성서의 비유는 매우 극적으로 끝이 난다. 첫째 아들은 돌아오기를 거절하고 잔치를 거부함으로써 탕자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1972년도에 큰 비행기 사고가 일어난 적이 있었다. 이 비행기 사고가 난 후 1974년도에 이 사고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한 사람이 그때 일을 책에 기록하여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있다. 그 책의 이름은 ‘생존(Alive)’이란 책이다. 그 책에 보면 1972년 10월 13일 우루과이의 몽떼비데오 공항을 떠난 전세 비행기 페어챠일드 F227기가 칠레의 산티아고로 가던 중 악천후로 인하여 안데스산맥에 기적적이 불시착을 했다. 비행기 양쪽 날개와 꼬리가 산봉우리에 부딪쳐 달아났지만 눈에 덮힌 산허리에 동체상륙을 한 것이다. 이 비행기에는 15명의 아마츄어 럭비 선수들과 응원단으로 따라가는 친구 25명, 그리고 비행기 승무원 5명 등 모두 45명이 타고 있었다. 그 중에 몇 명은 비행기가 불시착할 때 즉사했고 더러는 부상을 입어 죽어갔다. 사실 눈에 덮인 안데스산맥은 전문가들도 꺼려하는 죽음의 계곡이다. 한편 정부에서는 이 사고 비행기를 찾기 위하여 10일 동안 수색비행을 하고는 포기해 버렸다. 비행기에는 전혀 식량이 없었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청년들의 주머니 속에는 몇 개의 과자가 있을 뿐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추위와 굶주림과 싸우면서 67일 동안 끝까지 견디어 구조된 사람은 16명 뿐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이 생명의 두달간이나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죽은 친구들의 육체였다. 부상으로 여러 주간 앓다가 산 위에서 죽은 니코리지 군이 죽기 전 자기 아버지 앞으로 남겨놓은 메모에 이런 말이 기록되어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도 전혀 믿기 어려운 일이 여기에서 벌어졌습니다. 그것은 죽은 친구의 살을 쪼개내는 일입니다. 이것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으니까요. 저도 이제 오래 살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살이 친구들을 구원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죽은 친구의 살을 뜯어먹는 이 길밖에 달리 살 길이 없는 것을 알고, 이는 자기도 죽으면 자기의 살을 친구들이 뜯어 먹고 살기를 바랄 뿐이라는 처절한 내용의 편지였다. 67일 후에 구출되고 난 후 그 구출된 청년 중 호세라는 청년이 로저스 신부에게 이런 고백을 했다고 한다. ‘저는 학생시절에 교회에 한번도 빠져 본 적이 없습니다. 부모님이나 동네 어른들이 저를 칭찬해 주었습니다. 저는 모범 기독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 죽음의 산 위에서 새로운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교회에는 다녔으나 하나님 집에 살지 않았고, 신자라는 이름은 가졌으나 사실 신앙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눈에 덮힌 산 위에서 죽음과 싸우며 비로소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수없이 성만찬 예식에 참석했으나 기계적으로 빵과 포도주를 든 것 뿐이며 그 뜻이 가슴에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산 위에서 죽은 친구의 살 조각을 손에 들고 그것을 먹을 때 그것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것을 알았고 정말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이며, 십자가가 무엇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 순간적인 소망과 행복이 깨지는 순간 그는 아버지 품에 진정 돌아와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는 것이다. 집을 떠난 둘째 아들은 고통 속에서 순간적인 행복과 영원한 행복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배웠다. 그는 한때 순간적인 행복을 누리기 위해 영원한 참 행복을 저버리고 아버지 집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누릴 순간적인 행복을 위하여 영원한 행복의 하나님의 품을 떠나 방황한다. 기계처럼 돌아가는 현대문명 속에서 바쁘게 움직인다. 아버지의 집, 아버지의 품을 생각해 볼 겨를도 없다. 순간적인 물질적 행복 때문에 바쁘고, 너무 재미있어서 영원한 행복을 생각해 보지 못한다. 지금까지 이 둘째 아들은 고통 속에서 순간적인 행복과 영원한 행복을 분별하는 지혜를 배운 것이다. 또한 이 둘째 아들은 거짓된 쾌락과 진정한 기쁨을 고독한 타향살이에서 비로소 배웠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의 집을 향하여 발길을 돌이켰던 것이다.
여러분, 인생의 소망은 아버지의 집, 곧 하나님의 품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먹는 것보다도, 입는 것보다도, 순간적인 쾌락보다도 아버지 집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면서 사는 참다운 삶의 가치를 찾을 때 비로소 인간은 영원한 행복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도 순간적인 행복을 생각했더라면, 돌을 떡으로 만들었을 것이고, 성전에서 뛰어내리기도 했을 것이고, 마귀에게 절하고 천하를 호령하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보다도 내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나의 참 양식이라고 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말씀대로 살고, 급기야는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시면서 참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는 영원한 영광을 획득하신 것이다. 만일 예수님이 그렇지 않고 집 나간 둘째 아들처럼, 아버지의 품을 떠나 당시 이스라엘의 왕노릇이나 했더라면, 누구의 칼에 맞아 죽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의 영광이 없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세상에서 순간적인 행복을 위해 정신없이 바쁘게 뛰어다니던 발걸음을 멈추고, 고요하고 담담한 심정으로 솔직하게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집을 떠난 둘째 아들처럼 방랑하는 것이 인생이겠는가 말이다. 인생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갈대처럼 방황하는 인생을 정리하고 보람과 가치를 찾아야겠다. 먹고 마시고 물질을 쌓는 것이 인생의 전부이겠는가? 여러분, ‘아버지의 집, 그 품으로’ 여러분의 생각을 돌이키기 바란다. 아버지는 늘 기다리고 계시니, 오늘도 형식과 외식에 젖어 살아가는 기계적 신앙생활을 청산하고 우리의 인생을 전부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돌이켜 나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1996-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