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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이삭을 결박하라 / 창 22:1-14, 롬 8:31-39
요즘 홍콩감기인지 대만감기인지 모르지만 독감이 유행이다. 수십 억의 사람들이 감기에 걸리고 수천억 원의 돈이 감기약을 사는데 나간다. 감기는 그렇게 대단한 병은 아니지만, 긴 시간 동안 고통스러운 것을 생각하면 가볍게 생각할 병도 아니다. 유사이래 감기가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진 적이 없었으며, 그 치료법과 예방법도 터무니없이 엉뚱하였다. 마늘싹이나 양파를 먹어보아라, 파뿌리나 도라지를달여 먹어라, 전지충격을 받아보라, 소주에 고춧가루를 풀어서 마셔보라, 위스키를 들이켜라... 감기란 상부 호흡기의 내벽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현상인데, 여러 가지 바이러스가 호흡기관에 침입해서 코와 목 점막의 약한 세포를 죽이는 것이다. 이 바이러스는 세포로 하여금 더 많은 바이러스를 생산하게 하는데, 한 세포에서 1천개 까지의 새 바이러스가 늘어나서 인접한 세포들을 공격하게 된다. 감기를 일으키는 주요 병원체는 리노바이러스로서, 알려진 종류만도 113종에 이른다. 그러나 아직까지 감기 병원체는 완전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중요한만큼 논쟁의 여지도 많은 감기 예방제는 비타민C이다. 이것은 노벨상 수상자인 라이너스 칼 폴링이 발표한 것인데, 비타민C 많이 섭취하면 인체의 면역체가 강화되어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비타민C가 많은 식품으로는 싱싱한 과일과 채소, 된장, 김치 등이 있다. 그렇다고 비타민C가 감기를 쉽게 예방과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감기는 예방이 최우선이다. 그래서 감기 바이러스가 옮기는 것을 막아야 한다. 감기의 감염경로에 의하면 재채기나 기침보다는 손의 접촉이 감기를 퍼트리는 주요 경로이다. 코를 훌쩍거리는 어린아이를 어루만지거나 감기에 걸린 사람과 악수를 할 때 쉽게 감염되며, 또 손으로 자기 눈을 문지르거나 코를 만지면 바이러스가 몸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감기를 피할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인간은 잘났든 못났든 조상의 덕을 보면서 살게 되었다. 조상들이 일구어 놓은 땅덩이 위에서 조상들이 창조해 낸 문화 속에서 후손들이 살고 있다. 그래서 훌륭한 조상을 둔 후손들은 그 덕분에 잘 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세계 역사상 조상의 덕을 가장 크게 보는 민족이 하나있다. 그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이다. 무슨 덕을 보고 있나? 그들이 사는 국토이 면적을 보면 조상의 덕을 본 것이 없다. 전라도만한 조그만 땅덩이에 산다. 그것도 사막 위에 물도 없는 땅을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통해 얻었다. 뿐만 아니라 문화유산도 없다. 전부 로마, 바벨론, 앗수르 등의 침략으로 다 잿더미가 되었다. 단 하나 그들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있다고 한다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자기들의 조상이 믿었던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 여기며 위대한 족장들의 신앙을 물려받아 그 덕으로 살아가고 있는 민족인데, 세계 역사상 조상에게 가장 큰 덕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그들은 세계를 주름잡는 인물들을 낳는 위대한 민족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우리의 조상들로부터 받은 유산은 무엇인가? 많은 가문의 족보를 물려받았나? 명예를 물려받았나? 아니면 재산을 물려받았나? 그러나 이 세계 역사를 볼 때 조상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문화유산을 많이 받은 민족치고 잘 되는 민족은 없다. 그 덕택으로 일하지 않고 먹고 사니까 다 게을러지고 타락해가고 쇠퇴해 간다. 미국의 넓은 땅덩이를 유산으로 받은 저들은 청소년들이 마약중독으로 죽어가고 있으며, 퇴폐와 향락으로 병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어느 자식 하나 병든 것 없이, 어느 자식 하나 못난 것 없이, 어느 자식 하나 무식한 자녀 없이 전부 다 정신력이 투철하여 사막 위에 놓아도 사막을 일구고, 바다 가운데 던져도 솟아나오고, 광야에 던져 놓아도 줄기차게 살아가는 위대한 승리자들의 후손을 둔 이스라엘 사람들, 오늘 우리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피 속에 흐르고 있는 아브라함의 위대한 신앙정신을 보게 된다.
이 귀한 시간에 우리 후손들도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큰 축복이겠나? 우리가 한강의 기적을 낳았다고 한참 떠들썩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반짝하고 끝나게 될 비극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온 세게가 한국은 장차 일본을 능가할 것이고 혜성처럼 나타난 선진국이라고 떠들어댈 때, 일본의 한 학자는 ‘한국인의 비극’이라는 책에서 한국인의 기적, 이것은 결코 길게 가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그 이유로 두가지를 설명했다. ‘한강의 기적은 잠시다. 그 이유는 첫째, 한국 사람들은 양반 기질을 가지고 상놈들만 일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돈벌면 일 안한다. 왜? 일하는 것을 천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한국 사람은 돈 벌면 일 안한다. 왜? 돈 때문에 일하니까 돈 벌면 일 안한다.’ 그런데 그것은 딱 들어맞았다. 한국 사람은 돈 벌면 일 안한다. 일하는 것을 천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일 안한다. 요즘 3D라는 것이 있다.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말한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의 경제성장은 곧 끝날 것이라는 그 말이 들어맞고 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민족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 무엇인가? 이 민족의 후손들의 심령 속에 역사하는 저 아브라함의 신앙의 얼이 심어져야만 이 민족은 소망이 있다. 세계 역사상 신앙을 최고의 유산으로 받고 그것 때문에 살고, 그것을 자랑을 삼는 유일한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이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그들의 신앙고백은 참으로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고 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그토록 위대한 조상이 되었으며, 그렇게 위대한 유산을 물려주었으며, 왜 그토록 자손들을 축복한 조상이 되었나? 그는 배운 사람도 어니었고, 잘난 사람도 아니다. 그는 똑똑한 사람도 아니고, 권세있는 사람도 아니다. 성경이 말한대로 그는 보통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신앙이었다.
오늘 본문은 백살에 낳은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에 가서 번제를 드리라는 명령이다. 아브라함은 지체없이 순종하여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간다. 하나님께서 지시한 그 산 밑에 왔을 때 나귀와 하인은 산 밑에 두고 장작을 이삭에게 지우고 산에 오른다. 산 중턱에 올라왔을 때 이삭이 묻는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그리고 하나님이 지시한 곳에 장작을 내려놓고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단을 쌓은 후 이렇게 말한다. ‘이삭아, 네가 번제할 양이다.’ 이 번제라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제사법인데, 짐승을 잡아서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불을 살라서 그 향기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놀라운 상황이다. 아들을 잡아서 제사드리는 상황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순종했다. 그리고 아들을 장작더미 위에 꽁꽁 묶어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의 목에 칼을 막 대었을 때, 하늘로부터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아들 이삭에게 손대지 말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했다. 눈을 들어 본즉 뿔달린 양이 수풀에 걸려 있었다. 그래서 아들 이삭의 결박을 풀고 이삭 대신 그 양을 잡아서 불살라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다. 이 재사를 드린 후에 하늘로부터 들려온 음성이 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이 시간 우리에게 들려준 이 놀라운 음성은 ‘네 아들이 바로 번제할 양이다’이다. 오늘 이 귀중한 아들을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서 결박하라는 것이다. 사실 생각하면 우리의 자녀들을 묶어서 하나님께 귀한 제물로 드릴 때만 축복의 후손이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부모가 할 최선의 일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모리아산에서 ‘네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물로 드리라’ 하신 이 말씀은 놀라운 명령이다. 결박은 꽁꽁 묶는 것인데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무얼로 묶어야 하나? 신앙으로 결박하는 부모가 되라는 말이다. 아브라함이 결박한 장소는 어디인가? 모리아산이다. 대하 3:1절을 보면 모리아산은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터라고 말한다. 모리아산에 이스라엘 민족이 성전을 지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을 이 성전에 결박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을 성민공동체로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은 세가지 끈을 주셨다. 자손들을 거기에 결박하는 끈인데 첫째가 율법이요, 둘째가 안식일이요, 셋째가 제사장이다. 이게 바로 유대인들을 결박하는 끈이다. 이 끈으로 결박해서 자손들이 대대로 성전을 중심으로 살도록 만든 것이다. 여러분의 자손들도 이 끈으로 결박되어 교회를 중심으로 살기를 바란다.
첫째, 하나님 말씀으로 결박해야 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한 것은 하나님 말씀으로 결박한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오직 말씀으로 결박되기를 바란다. 유대인들은 평생에 율법을 떠나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아침에 일어나도 말씀을 듣는다. 신 6:4-5절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말씀은 길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항상 가르치고 강론하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을 말씀으로 결박하는 일이었다. 이들의 문설주에 보면 쪽지가 하나 놓여있다. 돌돌 말은 쪽지에 신 6:4-5절에 있는 말씀이 적혀 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또 하나는 이 문 속에 조그마하게 붙이는 표가 있는데 손과 이마에 말씀을 붙이고 소매에 붙이고 눈썹 사이에 붙이는데, 이것이 곧 그들을 완전히 말씀으로 결박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오늘 여러분들도 말씀에 결박되기를 바란다. 또 우리 자녀들도 말씀으로 결박해야 한다.
둘째, 안식일(주일)로 결박해야 한다.
자녀들이 주일날은 꼭 교회에 가도록 부모가 인도를 해야 한다. 유대인들은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자손들에게 부지런히 안식일을 지키도록 가르쳤더니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지켜주셨다’라고 말한다. 부지런히 성전에 살도록 지켜주셨다. 히브리어로 ‘토라, 호라, 모라’라는 말이 있는데 토라는 율법이고 호라는 부모이고 모라는 선생이란 뜻이다. 이 말들은 ‘야라’라고 하는 ‘가르친다, 교훈한다’는 뜻에서 온 것인데, 부모는 선생이 되어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래서 유대인의 입장에서 부모는 낳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러니까 이 부모는 반드시 생명을 전수할 뿐만 아니라 신앙을 동시에 전수하는 족장이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의 자녀들이 주일에는 언제나 교회에 나와서 지낼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주일날 하루 공부 안시켜도 괜찮다. 공부를 많이 해서 위대해 지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성적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력에 달려있다. 하나님의 사명을 알고 내가 살아야 할 목적을 알고 내가 왜 이 땅에 존재해야 되는가를 분명히 인식하고 나면 그때부터 생이 달라진다. 책상머리에 오래 앉아있어도 소용이 없다. 교회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엿새 공부했으면 하루 쉬어야 머리가 잘 돌아간다. 계속 집어넣으면 전혀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유대인들을 보라. 한국사람같이 공부시켰나? 그 사람들 엿새는 공부하고 하루는 아무 것도 안한다. 책도 보지 않는다. 그런데 노벨상은 다 타니 이게 뭡니까?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래서 주일날은 꼭 교회에 나오는 날로 결박하기 바란다.
셋째, 제사장인 부모님의 신앙으로 결박해야 한다.
여기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에 오를 때 꼭 동행을 했다. 하인들을 밑에 두고 나귀도 산밑에 두고 모리아산까지 간다. 그 산이야 나귀 몰고 얼마든지 갈 수 있었지만 직접 가게 했다. 장작더미를 자기 등에 짊어지고 직접 갔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교회는 다른 사람 손에 붙들려 보내는 곳이 아니다. 학교는 다른 사람 손에 붙들려 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만나는 곳은 꼭 부모의 손을 잡고 가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짊어져야 할 번제의 장작더미를 지고 가야 한다.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자녀들에게 성경을 자기 손으로 들고 가게 해야 한다. 또 헌금도 자기 손으로 들고 가게 해야 한다. 부모님이 헌금 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헌금을 들고 가게 해야 한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한가지 원리를 알아야 한다. 자기의 것은 주일날 밖에 없다. 냉정히 생각하면 요즘 자녀들이 공부하면 제 공부하나? 제 공부가 아니다. 남의 공부하는 것이다. 억지로 공부하기 때문에 남의 공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주일날은 내 날로 살라고 하셨다. 그렇지 않은가? 주일날 하루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명령을 받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날 일터에서 일하는 것을 보라. 자기 일인가? 이게 명령으로 하고 있는 일이다. 돈의 명령을 따라서 하는 일이다. 그러면 이 날은 무슨 날인가? 내 날이다. 하나님이 유일하게 나에게 준 날이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날이다. 안식일은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내 날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 맘대로 사는 날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날이다. 이 엄청난 축복을 빼앗기는 자는 불행하다.
아버지가 아들을 결박하는 것은 아버지는 가정에서 제사장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이삭은 야곱에게, 야곱은 요셉의 자녀와 자기 아들들에게 축복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축복하고, 아들을 전도해서 복음을 심어주고,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도가 필요없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신앙이 계속 심어졌기 때문에 그냥 전부 믿는 사람이지 안 믿는 사람이 없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아버지가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아버지가 제사자이 되어서 자식을 축복하고 신앙을 전수시키는 신앙의 부모가 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 성도들도 그렇게 해주면 좋겠다. 아버지가 교회 안다니면 어머니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목포에 가면 남양어망을 하는 기장 소속인 유달제일교회에 홍순기 장로님이 계신다. 홍 장로님 아들이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왔는데 직장이 서울로 결장이 되었다. 그런데 장로님 내외가 30이 넘은 아들을 서울 한신교회로 데리고 와서 목사님에게 ‘우리 아들을 잘 부탁합니다’ 하고 내려갔다. 참으로 자녀를 위해 신앙으로 기르려는 그 열성이 감동적이었다. 우리 교회 장로님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지금 자녀들 중에 이곳에 없는 자녀들이 전주에서 교회에 참석했다고 보는가? 갈보리교회를 모리아산으로 생각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은 하나라고 믿듯이, 본 고향 교회를가 성전으로 생각하고 주일은 무조건 이곳에 와서 주일을 지키라고 하기 바란다. 이곳에 올 날도 몇 년 남지 않았다. 나중에 후회 할 날이 올 것이다. 영원히 볼 수 없는 곳이 된다. 신앙이 없어도 억지로라도 교회 나오다 보면 부모님 신앙을 본받게 된다. 아들을 신앙적으로 이끌어가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브라함에게서 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중요한 것은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하듯 우리 자녀들이 다 이 성전에 와서 말씀으로, 주일로, 그리고 제사장에게 결박을 당하고 부모의 신앙으로 결박을 당해서 말씀릏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경지까지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199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