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노래하다 / 박미숙
개학하고 첫 국어 시간이었다. 1단원 ‘장면을 상상하며’의 준비 차시로 <좋아하는 이야기 소개하기>가 나왔다. 우리 반은 평소 책을 읽고 독서 기록표에 느낌을 한 두줄씩 꾸준히 적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수업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발표가 끝나고 나도 개학 직전 감명 깊게 읽은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 이야기를 해 주었다. 책 제목을 칠판에 적자, 솜이가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어떤 곳이지?”라고 혼잣말을 한다. 가재는 아주 조용한 곳에서 지내는데 노래를 할 수 있는 곳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깊은 습지라고 답해주고 말을 이어나갔다. 카야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폭력적인 아빠와 함께 살 수 없어 집을 떠났으며,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해 겨우 여덟 살에 홍합을 캐서 생필품과 바꿔 살아갔다, 학교에 하루 가보고 다시 가고 싶지 않아 글을 모르는 채로 살다가 테드가 글을 가르쳐 주어 자신이 평소 수집하고 연구한 습지 생물들을 다섯 권이나 책으로 펴내게 되었다, 카야가 이렇게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기까지 점프 아저씨 부부의 도움도 컸다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 말해 주었다. 집중하여 듣고 있던 아이들은 '실제 있었던 이야기냐, 왜 가정폭력, 아동학대 신고를 하지 않았냐?' 등의 질문을 했다. 제목에 궁금증을 나타냈던 솜이는 “그러니까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도 꿈을 가지고 있으면 이루어지는 것이네요.”라고 단번에 책의 주제도 짚어낸다. 아직 어린아이인데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 나가는 카야가 너무 안쓰러워 눈물 흘리고, 버림받은 습지의 소녀에서 자연과 가장 가까운 습지의 생태학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내 마음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내친김에 ‘꿈꾸지 않으면’ 노래를 불렀다. 간디학교의 교가인 이 곡을 참 좋아하는데, 요즘 아이들 정서와는 좀 맞지 않아서 그냥 들려주면 지겹다고 잘 부르지 않는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우리 알고 있네 우리 알고 있네/ 배운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이라는 마지막 부분의 가사가 너무 아름답다. 테드에게 글을 배웠기에 카야는 책을 펴낼 수 있는 꿈을 꾸었고, 테드 역시 카야를 가르치면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는 얘기도 해 주었다. 우리들이 이렇게 함께 공부하는 것도 꿈을 이루는 과정이라는 것까지. 책의 의미가 더해진지라 온 힘을 다해 부르는 노랫소리가 교실에 아름답게 울려 퍼지며 우리 모두의 마음을 적셨다.
며칠 뒤 솜이는 학교 도서관에서『꿈꾸지 않으면』책을 찾아왔다. 간디학교 교장이셨던 양희창 선생님의 시가 그림과 함께 한 권의 책으로 되어 있었다. 아주 좋은 시는 노래로 만들어진다고 자주 말했는데 그것을 입증이나 하듯이. 요즘 즐겨 부르는 곡의 가사가 그대로 적혀있는 책을 발견하였으니, 아이들이 이 노래를 좋아할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겼다.
주말에는 서점이나 도서관 방문하기 과제를 낸다. 월요일에 일기를 검사하다 보면 서점에서 어떤 책을 샀으며, 이번에는 어느 도서관을 갔다는 내용이 많다. 광양과 순천에 좋은 곳이 많으니, 주말마다 차례로 돌아다니는 아이도 있다. '네가 산 책 선생님에게도 좀 빌려줄래? 광양의 희망도서관도 좋으니 방문해 봐라'는 댓글을 적어주며, 가족과 함께 책과 가까워질 기회를 더 가지도록 부추긴다.
그래서인지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2학년답지 않게 깊은 생각을 하는 것을 종종 본다. 양성평등의 날을 맞이하여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 책』을 읽어주고 <엄마가 집을 나간 것은 잘한 일인가?>라는 주제로 가치 수직선 토론을 했는데, 모두가 잘한 일이라고 하였으나 주말마다 도서관 순례를 하는 다영이 혼자 잘못했다고 한다. 이유는 본인이 매우 힘들다고 가족회의에서 말하고 도움을 요청해 보지도 않고 그냥 집을 나가는 것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놀랍다. 다영이의 말을 들으며, 처음 생각과 바뀌었다는 아이들도 여러 명 있었다. 아빠와 아이들이 밥을 잘할 수 있도록 해놓고 나갔어야 한다고 했다. 학년 초 상담 시간에 다영이 엄마가 세 살 때 아빠가 뇌출혈로 쓰러져 돌아가시는 것을 다영이가 직접 봐서 가슴에 상처가 있어 걱정이라고 했는데, 책을 많이 읽으며 이렇게 생각이 깊은 아이로 자라는 것을 보니 안심해도 되겠다.
도서관 폐기 도서 중 깨끗한 것을 골라 오고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을 함께 꽂아두어 교실 책꽂이는 그림책으로 빼곡하다. 아침마다 책을 읽고 생각을 다듬으며 책과 함께 커나가는 우리 반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난 희망을 노래한다. 책으로 시작하며 끊임없이 생각을 나누는 이번 2학기엔 더 큰 꿈을 키워나갈 수 있으리라고.
첫댓글 오, 저도 카야를 좋아해요. 읽으며 2박3일 울었던 것 같아요. 하하하.
정말 좋은 선생님이십니다.
저는 아이들이 내 품보다 훨씬 클 때 뿌듯하면서 슬프더라고요.
잘 자라서 좋습니다.
선생님은 따뜻한 분입니다. 글도 그렇구요.
2학년도 그런 수준의 책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니 신기해요.
내 외손녀도 2학년인데 틈만 나면 학교 도서실에 간다고 하는데
만화책만 몇 권씩 읽는다고 해요,
선생님의 열정과 독서 지도의 관심이 아이들의 생각을 깊게 만들었네요. 교육의 힘 위대합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저도 올해서야 참 재밌게 읽었어요. 아이들에게만 하라고 하지 않고 선생님이 읽은 책도 이야기해 주시니 아이들이 독서에 더 빠져들 것 같습니다.
글도 재밌게 잘 읽었어요.
우와! 제대로 된 국어 수업이네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다른 맛을 봅니다.
<돼지 책> 저도 좋아하는데 다영이의 새로운 관점에서는 한 수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