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아이
/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주위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가족으로부터도 영향을 받고, 친척, 친구, 학교 선생님으로부터도 영향을 받고, 읽었던 책이나 영화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한다.
타고난 성품과 이러한 영향들이 모여 한 사람을 이룬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한 개인이 살아가면서 받는 영향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으로부터 받는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가족이란 태어나서 가장 먼저 접촉하고 가장 장기간 같이 생활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어렸을 때 가족으로부터 받은 영향은 한 사람의 인격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형성하게 된다.
정신의학에서는 대인관계의 기본적인 틀이 어렸을 때 가족 사이에서 형성된다고 본다. 우리나라 속담에서도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고 서양에서도 ‘요람을 흔드는 손이 세계를 움직인다.’는 말이 있다. 아렸을 때 가정에서 인격의 주된 부분이 형성되고 그것이 평생을 지속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아이들이 가족으로부터 받는 영향이란 주로 부모에게서 받는 것이고 부모가 만드는 가정 분위기를 통해서 영향을 받는다. 가정 분위기란 정신적인 공기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을 아이들은 마시면서 자란다.
공기가 맑고 신선할수록 그 속에 사는 사람은 건강하다. 공기가 탁하고 오염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서서히 병들어 가듯이 가정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집안의 분위기가 좋지 않으면 그 구성원들은 서서히 정신적으로 병들어 간다. 그 중에서도 저항력이 약한 아이들은 더욱 더 쉽게 병이 든다.실제로 진료실에서 보는 환자들이 “집에 들어가면 가슴이 답답해서 들어가기 싫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마치 우리가 나쁜 유독한 공기를 억지로 마셔야 될 때 가슴이 답답한 것과 똑같다. 진료실에서 가끔 보는 가출학생들은 하나 같이 “집이 싫다. 집의 분위기가 싫고 집에 있으면 답답하고 미칠 것 같다.”는 말을 한다.
부모가 싸우고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때 아이들은 힘이 없고 안목이 좁기 때문에 그것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속으로 생각을 많이 한다.어떤 아이는 공상 속으로 달아나 상상 속에서 사이가 좋은 부모를 새로 만들고 자기도 그런 부모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는 아이로 만들어 항상 그런 공상 속에서 산다. 또 어떤 아이는 원래 공부를 잘했는데 부모가 자꾸 싸우자 ‘엄마, 아버지는 맨날 저렇게 싸우는데 내가 공부해서 뭘 하겠나. 내가 자기들 때문에 공부 못해야 정신차리겠지.'라고 생각하고 공부를 안하였는데 그 기간이 오래 되자 공부의 기초도 없어지고 공부하는 습관도 없어져 공부를 못하게 되기도 한다.
오래전에 우리 사회를 풍자하는 노래를 불러 크게 히트 친 여자 연예인이 신문 대담에서 어렸을 때 부모님이 너무 싸워 자신은 결혼할 나이가 지났는데도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이야기한 것을 봤는데 부모들이 싸울 때 마음속으로 ‘나는 커서 절대 이렇게 살지 않겠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았나 하고 추측된다. 그래서 나는 진료실에서 부모가 많이 싸우는 아이에게는 그 때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꼭 물어본다.
가족으로부터 받는 영향 중에 형제간에 받는 영향도 있지만 형제 간에 대한 것도 부모의 영향으로 오는 것이 크므로 부모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불 때 부모 사이 즉 부부 간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부부 사이가 얼마나 사랑을 바탕으로 하고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가정 분위기가 달라진다.그러면 어떻게 해야 부부 사이가 좋아서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건강하게 클 수 있을까.
필자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서로 다른 문제를 가지고 진료실에 오더라도 결국은 이 문제로 귀착되는 것을 항상 보아왔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이 문제의 중요성을 절감하여 어떻게 하면 부부 사이가 좋을 수 있나를 항상 생각한다.
필자의 생각으로 집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집안 분위기이다. 집안 분위기가 어떠냐에 따라 가족 구성원이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모든 판단기준은 집안 분위기 또는 부부 사이가 되어야 한다. 보통은 부부 당사자가 ‘나는 잘 하는데 저 사람이 잘못한다.’라고 생각을 하는데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고 부부 사이가 나쁘면 내가 잘못한다고 판단해야 한다. 왜냐하면 설사 내가 맞다하더라도 상대방에게 맞지 않는 방법을 쓴 것은 자기 잘못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남자가 성인군자 같다 할지라도 부인이 아무런 신체적인 질병이 없는데도 시들시들 생기가 없고 아이들이 즐겁지 못하고 기가 죽는다면 그 남자는 뭔가 잘못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자가 아무리 요조숙녀라 할지라도 남편이 기가 죽고 집안 분위기가 안 좋으면 그 여자에게도 뭔가 잘못이 있다고 생각해야 된다.잘못된 부부 사이, 집안 분위기를 바로 잡으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눈앞의 배우자를 인정하고 그 사람과 더불어 어떻게 노력할 때 그렇게 되나를 진지하게 연구해야 한다. 위에서 인용한 부처님의 말씀에도 상대방이 어느 정도 지키고 있나를 보기보다는 내가 얼마나 지키고 있나를 봐야 한다. 내가 어떻게 하겠다라든가 내가 어떻게 변화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하다.
다툼이 있는 부부를 보면 항상 서로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충돌한다. 부부 사이에는 먼저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기려고 하면 지고 지려고 하면 이긴다. 그래서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시야를 넓혀서 나보다는 내 가족이 어떻게 되고 있나를 보고 성실하게 대책을 세울 때 집안 분위기는 좋아지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