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기도 /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무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시 감상
1957년 12월10일 '金顯承詩抄(김현승시초)'에 수록된 시다. 이 시는 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 중에 하나이다.
하늘이 높아 서늘한 바람이 맘껏 나래를 필 때 짐승인 말마저 살찌고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풍성한 한가위도 지나가면 서늘해 진다.
신록이 너울져 파도치던 푸른 잎사귀들은 단풍이 되었다가 낙엽이 되어 한 잎 두 잎 우리 곁에서 지고마는 것.
가을이란 허전함과 쓸쓸함을 동시에 느끼는 계절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현승 시인은 절대자에게 가을에는 겸허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감사사는 마음으로 기도하고살 수 있도록 청원기도를 한다.
요즘 같이 각박한 세상에선 툭하면 남 원망이나 하고 모든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시점에서 이 시는 자신을 한번 쯤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마냥 높고 푸른 하늘, 솜털같은 뭉개 구름, 아기 손 같은 단풍잎만 보아도 이 순간 행복하다고 감사기도를 드리는 이의 마음은 가을이 가고 눈보라 휘몰아치는 겨울이 와도 따뜻하리. < 이담하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