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 일주여행 <2011.5.21~31>
1989년 여행자유화가 시작되면서 그간 서유럽,동유럽,북유럽,스페인폴투갈,터키.그리스 등지를 상대로 여행상품이 나왔으나 유럽국가 중에서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화약고라는 이미지를 가진 발칸반도의 국가들은 여행의 사각지대였었다. 작년부터 발칸여행이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면서 급속도로 이 지역에 관심이 폭주하면서 여행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발칸반도에 있는 여러나라들은 아직 우리에겐 생소한 이름들이 많다.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세르비아,마케도니아,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몬테네그로,알바니아,불가리아,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연방국가들이 분리독립하여 6나라로 나뉘어졌고, 그간 공산주의 체제였던 나라들이 모두 민주국가로 바뀌어졌다. 그리고 민족과 종교가 다른 나라들이라 특히 종교문제는 늘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오랜 전쟁의 피해와 상처를 알기에 서로가 전쟁을 피하는 상황이다. 그런 연유로 당분간 평화가 유지될 전망이다. 오랜 전쟁의 상흔으로 슬픈 가슴을 간직하고 있지만, 한마디로 때묻지 않은 순박한 사람들, 여러종교가 남긴 문화유적들, 그림처럼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으로 비록 늦게 개방된 여행지역이지만 단연 인기최고지역이 되었다. 작년부터 발칸지역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이 기회가 되어 지난 2011년 5월21일부터 11일간의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여행일자 순으로 총 6편으로 나누어 여행기와 사진을 소개한다. 발칸반도는 어디에 있는가? 지도로 먼저 이해하자.
1.<5월21일~22일>발칸의 서유럽 -슬로베니아- 5월20일 밤 10시 공항 출국장에 집합하였다. 21일 0시 5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다. 이번 여행은 친구 동행이 없이 우리부부만 패키지 팀에 합류하였다. 식사테이블에는 늘 네명씩 한조를 이루므로 상대가 누구인가에 신경이 쓰인다. 부산에서 온 박사장 내외가 한조가 되었다. 인천을 출발한 비행기는 멀리 카타르의 도하공항에서 갈아타고 독일 뮌헨에 도착하니 현지시간으로오후 1시20분. 시차는 7시간이 서울보다 늦다. 50인승 버스에 여행사 인솔자까지 18명이 타니 한사람이 두자리씩 차지하고도 남아 자리를 옮겨가며 편한 여행이 되었다.
독일 로젠하임의 생맥주 뮌헨에서 처음으로 찾은 곳이 독일 남동부의 '장미의 도시'로 유명한 로젠하임이었다. 뮌헨에서 70km의 거리로 40분만에 로젠하임에 도착하였다. 인구 6만의 작은 소도시이고 인공천이 유별나게 많은 도시이다. 로젠하임은 알프스 자락에 위치하여 우선 경치가 빼어났다. 뮌헨 인근 도시 중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창문과 발코니가 꽃으로 장식되어 있고 건물 간에 틈이 없이 붙여지은 인잘자흐(Inn-Salzach)방식의 파스텔톤의 건축물이 늘어서 있다. 도시의 중앙에는 항상교회와 광장이 있게 마련이다.
로젠하임 대성당(일명 니클라우스 성당)은 외관 뿐만 아니라 내부도 너무 아름다웠다. 뒷쪽의 파이프오르간은 전 유럽에서도 유명하다고 한다. 구 시청청사 '라트하우스'는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한다고 하는데 역시 명건축물에 속한다. 보헤미안 지방의 건축양식인 양파양식의 건축물은 단연 돋보이게 마련이다. 어떤 교회는 십자가의 가로막대가 두개인 것도 있어 시선을 끌었다. 중심지 막스요셉광장을 둘러싼 아기자기한 카페와 상점가들 앞에서 사진 찍기에 바쁘다. 독일의 생맥주를 마실 좋은 기회이다. 우리도 흑맥주를 시켜 마시면서 예전 이미 고인이 된 친구M부부와 같이 하이델벨크 관광시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의 촬영장소로 유명한 '줌로텐옥센 맥주홀 '에서 흑맥주를 마시던 생각이 문득 났다. 인솔자는 생맥주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했다.2000년이 시작되는 해 뉴욕타임스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로마카토릭의 부패를 개혁하는데 선봉이었던 "마틴루터"가 뽑혔다. 당연히 이곳 주민들이 환호를 하였다. 그 마틴루터가 요도결석에 걸려 1주일이면 죽게되는 시한부 인생이 되었다. 당시의 의술로서는 이해가 된다. 곧 삶을 정리해야 하는 긴박한 순간이라 모든 걸 포기하고 그가 좋아하는 맥주나 싫컷 마시고 죽겠다며 매일 맥주를 마시고 포장 되지 않은 길을 마차로 흔들리며 다니다 보니 저절로 병이 나아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그 이후로 10년이나 더 살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1시간 가량 예쁜 도시경관을 구경하고 버스에 올랐다. 목적지는 슬로베니아의 숙소도시인 보힌이다. 오스트리아 나라 전체를 관통하면서 무려 320km를 5시간 반동안 달린다.영화 '사운드오브뮤직'의 '짤스부르크' '짤스감마굿'을 지난다. 예전에 다녀간 곳이지만 다시 내려서 보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수려한 산과 호수 풍광을 차창 밖으로 흘려 보면서차는 열심히 달린다. 녹색 잔디에 파란 하늘을 이고 한가로이 풀을 뜯는 젓소- 역시 행복한 젓소이리라.독일인이 가장 선호한다는 킨제(Chienje)호수가 보인다. 아돌프힛틀러의 별장도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요트가 많이 보인다. 발가벗고 일광욕을 하는 모습도--
바다인지,호수인지 한없이 넓고 크다.오른쪽으로 독일의 남부알프스가 아직 흰 눈모자를 벗지 못하고 우리에게 인사한다. 여름이 다가서는데 흰눈 산을 보니 모두 탄성을 지른다. 6월초까지도 눈이 녹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 유럽국가들의 지붕도 눈여겨 봄직하다 지붕의 경사가 급하고 뾰죽하다. 겨울 눈이 많이 오는 지방은 경사가 심하고 그렇지 않으면 완만하다고 한다. 또 붉은 기와가 주류를 이룬다. 푸른 삼림과 보색관계를 이루니 자연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 북쪽 추운지방에는 혹 검정 지붕이 있는데 이는 겨울추위에 햇볕을 많이 흡수하려는 목적이란다. 6.6km의 긴 터널이 지난다.
뜬금없이 비가 차창에 뿌리더니 터널을 나오자 햇빛이 눈부시다. 아주 작은 우산을 가져 왔는데 비가 자주 내린다는 말에 은근히 걱정이 된다. 7,684m나 되는 아까보다 더 긴 터널을 지나니 곧 국경이 나오고 입국절차를 밟고 드디어 슬로베니아에 도착했다. 모두 힘찬 박수로 입국을 스스로 자축했다.내일 첫 방문지인 불래드섬이 불빛에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벌써 흥분이 되는 순간이다.숙소인 보힌(Bohin)의 쩨쩨로호텔(Jezero Hotel)에 도착하였다. 호텔식당에서 밤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긴 여정의 하루를 마감했다.
슬로베니아
발칸반도 서북쪽 면적 : 20,300평방키로(한반도의 1/12 전라남북도크기) 인구 : 207만명 수도: 류불라나 35만인구 종교 : 전국민의 58% 카토릭신자 28% 개신교 이슬람 3% 국민소득 : 인당 24,400불(2008년기준) 발칸에서 가장 높은 국민소득 가장 서구화된 나라 서부유럽과 유사
그림같은 "블래드섬" 첫밤을 보내고 아침 6시 기상이다. 늦게 도착하여 피곤했지만 여행지의 아침산보는 습관이 되어 호텔 밖으로 나왔다. 아침 새소리에 놀라 깨었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곳은 처음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잤던가 싶은게 감동 그 자체였다. 호텔 바깥 주위에는 강인지 바다인지 아주 맑은 물이 흐르고 물고기들이 훤히 보이는 맑은 강에는 물오리가 한가로이 헤엄치고 있다. 우리나라 여인의 고무신 같이생긴 예쁜 색동보트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도 멋있어 보인다. 이른 새벽인데도 물안개 속에 고기잡이 보트가 떠 있다. 마치 동양화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 하다. 7시가 되자 동네 종소리가 들린다. 아침 식사시간이라 호텔로 돌아왔다. 식사하면서 이구동성으로 아침산보에 느낀 감동을 말하고 있었다.
오늘 첫 관광지는 블래드성이다. 20~25분 거리이다. 블래드성을 보기 전에 호수 가운데 서 있는 인공섬 블래드섬을 선택옵션으로 전원이 구경하기로 했다. 블래드섬은 멀리서 보는 외관 그자체로도 너무 아름다워 탄성을 나오게 한다. 한배에 타고 호수안으로 들어갔다. 이 배의 사공은 72세의 노인으로 야네스(영어식 죤)이란 사람으로 51년간 뱃사공 일을 보고 있단다. 물론 배는 무동력으로 저어가는 배이다. 불래드 섬에는 성모승천교회가 있다. 이 성은 종교개혁 전에 지은 교회라 교회 장식이 화려했다. 입구에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상이 있고 교회 안에도 화려한 이콘들이 많았다. 정면은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의 상이 있고 천사들이 주위를 호위하고 있다. 예수의 고행을 그린 성화들이 벽면에 그려져 있어 시선을 떼지 못할 정도다. 교회 안에는 종을 치는 줄이 있어 이 곳에 오는 관광객들이 모두 한번식 줄을 당기며 종을 친다. 딱한가지 소원을 마음 속으로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두가지 이상 소원을 기원해도 되느냐고 물으니 한가지 이상이면 무효가 된다고 헤서 모두들 웃었다. 바깥에서 들리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호수로 퍼져 나간다. 호수 주변에는 울창한 숲과 예쁜 건물들이 보인다. 특히 '티토스하우스'라는 하얀 건물이 시선을 끈다. 유고연방 전 대통령 티토가 영빈관으로 사용한 건물이다.북한 김일성 주석이 이곳을 방문했을 시 숙소로 사용되었는데 경치에 반해 당초 예정보다 이틀이나 더 묵었다고 한다.
섬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불래드 성으로 향한다. 블래드 성은 산 정상 100m 높이에 세워져 있다. 블래드성은 서기 1004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4세가 빅센에 사는 주교 얄뷴공작에게 봉토로 하사한 곳이다. 영주로서 성을 쌓았으며 외부침공을 감시하기 위해 둥근 첨탑도 세웠다. 1041년 바로코 양식과 로코코 양식의 조화를 이룬 건축물을 세웠고 1500년 이후 루네쌍스식을 도입하여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아름다운 성이 되었다.성주가 거주하던 곳이라 호수와 숲 그리고 마을 풍경을 내다 볼 수 있는 창문도 예쁘게 달려 있다. 당시의 철갑 옷도 전시되어 있고 목욕탕도 있었다. 3천년전의 눈속에서 발견된 스무살 되는 여인의 미이라도 전시되고 있다. 천년이 넘는 역사를 품고 있는 블래드성은 주변의 블래드성과 성모승천교회를 위하여 조성된 블래드 마을까지 같이 조화를 이루며 동화 속의 성곽 같은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성당 앞마당에서는 한달에 한번 열린다는 브래스밴드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한층 분위기를 열띄우고-제복을 입은 배드맨들이 열심히 악기를 불고 있었다. 또 당시의 인쇄기와 인쇄된 인쇄물을 보여주는 인쇄소가 있어 주목을 끌었다.
꼬마기차를 타고 보는 포스토이나 야마동굴 다음 찾은 곳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길다고 하는 포스토이나 야마동굴이다. 총 길이가 21km에 달한다. 관광용으로 개방된 곳은 5.2km. 현지 외국인 가이드가 동굴내를 동행하면서 설명했다. 이 동굴은 유럽에서 유명한 카르스트 동굴이다. 종유석과 석순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꼬마열차를 타고 10분간 들어가서 1시간을 걸으면서 관광을 한다. 마지막 10분은 또 열차를 타고 출구로 나오게 된다. 종유석이 천장에서 뻗어 내리고 석순이 자라 맞닿아 기둥이 된 신기한 모습을 보게 된다. 모양이 아이스크림 생겼다 해서 아이스크림 석순이라 명명된 것도 있고 스파게티 면발천장이라는 곳을 보니 과연 가는 면발을 닮았다. 1만명을 수용하는 콘서트홀이라는 광장은 1929년이후 무려 1만명의 공연도 열렸다는데 파파로티의 콘서트 공연도 이곳에서 있었다고 한다. 2000년 이후 붕괴의 위험으로 연주공연은 중단되었다고 한다. 러시아 포로들이 강제노동으로 다리를 놓은 러시안 브릿지를 지날 때 우리는 이미 지하 120m에 내려온 것이란다. 밑으로 뷰카강이 흐른다. 동굴 내부는 항상 섭씨 10도를 유지한다고 한다. 동굴관광중 특이한 것은 이 동굴에 서식하는 휴먼피쉬라는 손발이 있고 얼굴이 마치 인간을 닮은 동물이 살고 있는데 눈은 퇴화되어 없고 어두운 곳에서 살며 수명이 80년이나 된다고 한다. 빛이 들어가면 두달도 견디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동굴 밖에서 팔고 있는 인형,장난감등 중에 이 동물의 모형을 이용한 것이 많았다.동굴관광을 마치고 숙소인 오토체로 향했다. 내일은 슬로베니아를 떠나 클로아티아로 간다. 이번 여행의 핵심 관광지 세계자연유산인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도시락을 사들고 하루를 즐기는 날이다. 발칸관광의 하이라이트 중의 하나라니 기대가 크다.
블래드섬의 아름다운 자태
블래드 섬에서 내려다 본 옥색의 호수
포스토이나 야마 동굴 스파게티 면빨 천정이라고 하는 종유석
<5월23일> 클로아티아
클로아티아 공화국
면적 : 54,000평방키로 한반도의 1/4 위치 발칸반도 서북 아드리아해 연안국 북은 슬로베니아와 헝가리 남은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동은 세르비아와 국경을 마주함 수도 : 쟈그레브 인구 : 449만명 언어 : 클로아티아어(슬라브계) 민족 : 크로아티아인 91% 세르비아인 4.5% 종교 : 로마카토릭 91% 세르비아인은 동방정교 국민소득 : 인당 14,000불(2008년 기준) 발칸반도 중 2번째 높음
유럽 최고의 비경-세계자연유산에 빛나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오늘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의 하나인 클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를 가는 날이다. 보통 패키지여행의 경우 두시간 정도 구경을 한다는데 우리는 무려 5시간을 이 국립공원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즐기기 때문에 너무나 기대가 크다. 보통날 보다 30분 일찍 7시30분에 출발했다. 어제 저녁은 오토체(Otocec)호텔에서 일부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해외여행 하다보면 잠이 부족하여 차에서는 늘 졸고 바깥구경도, 설명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면 그만큼 손해이다. 특히 오늘은 졸지 않으려고들 노력하는 표정들이다. 아침 날씨는 화창하고 새소리가 요란하여 더 이상 잠잘수도 없었다. 정말 복받은 땅이란 느낌을 받았다. 역시 호수가 있는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잔디밭에는 예쁜 꽃들이 멀리 이국에서 온 우리를 반가이 맞는다. 식당에 들르니 가이드가 이곳 사과쥬스는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사과쥬스이니 많이 마시라고 테이불마다 일러준다. 차 안에서도 강조한다. 일생 한번뿐인 여행이니 구경도 사진도 열심히 찍으란다. 오토체에서 플리트비체 까지는 250km. 국경을 넘어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수많은 학생들이 플리트비체로 여행을 가는지 왁작지끌하다. 같이 사진도 찍고 좋아한다. 째째로호텔에서 미일박스(도시락)을 배급받아 각자 지참하고 국립공원으로 들어섰다. 표사는 시간도 많이 걸리는 모양이다. 크로아티아 국기와 국립공원 깃발이 휘날린다. 단체입장이 시작되었다. 일렬로 들어서니 우선 폭포가 시선을 끈다. 바위,숲,호수,나무다리,갈대,예쁜 꽃, 진한 옥색의 물 이 모두 황홀한 느낌으로 흥분시킨다. 서서히 공원 안으로들어선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발칸반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워낙 유명한 국립공원이다. 발칸반도에서는 유일하게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1979년)되었고 푸른 나무가 울창하고 표고차 150m나 되는 형형색색의 16개 호수, 120개가 넘는 아름다운 폭포들. 호수 주변에는 너도밤나무,삼나무,전나무들이 빽빽하다. 폭포를 보다 땅을 보면 예쁜야생화들이 지천이다. 시멘트나 플라스틱 인공물이 전혀 없다. 다리도 보도도 모두 나무로 되어 있다. 휴지통도 예쁘게 나무로 만들었다. 벤치에 쉬면서 각자 느낌을 가지면서 산책을 한다. 이 공원은 모두 19.5헥타르로 전부다 보려면 사흘이 걸린단다. 1년에 90만명 이상이 다녀간다고 한다. 넓은 광장이 나타났다. 여기서 배를 타고 간단다. 갖고온 도시락을 이곳의 식탁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식사를 하였다. 식사후에는 배를 타고 15분가량 P2지점으로 간다. 배는 100명이 정원이다. 배를 건너서 다시 본격적인 산책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가는 코스는 H코스이다. 조금 올라가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주위에 있는 대피소 정자아래로 모여들었다. 우리 뿐만아니라 독일노인네들까지 무려 60여명이 비 그치기를 기다리며 수다를 떨고--15분가량 지나서 비는 그치고 언제 그랬나 싶게 햇살이 비친다. 비온 후라 더욱 공기도 맑고 초록 나뭇잎도 호수도 싱그럽게 느껴진다. 폭포수도 많고 산뜻하다. H코스에서 보는 폭포는 아까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호수에 그늘진 나무 그림자,산과 구름의 그림자가 한폭의 그림을 만든다. 물에는 청둥오리가 물반 고기반의 맑은 물위를 고기와 같이 재잘거리며 놀고 있다. 다시 배를 타고 가장 큰 코즈악 호수를 가로질러 돌아나왔다. 너무 좋은 코스로 플리츠비체의 진수를 다 본 것 같다. 운도 좋았다. 만일 비가 계속 되었더라면 완전 망가질뻔 한 게 아닌가-- 모두들 행복한 마음으로 버스에 오른다. 내일 스플릿으로 가기 위해 가까운 시베닉으로 달린다. 아드리아해안의 아름다운 풍경이 도저히 시선을 뗄 수가 없다. 또 산간에 펼쳐진 목초지대에는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젓소들의 모습도 평화스러워 보인다. 확실히 숲이 많은 나라이다. 녹색 숲과 빨간 농촌지붕이 너무 잘 어울린다. 시베닉 까지는 190km나 된다. 호텔에 도착하니 벌써 8시나 되었다. 호텔에서는 환영하는 악대의 음악소리가 요란하다. 기분이 우쭐해진다. 식사 중에는 악기로 생음악을 계속 연주해 주었다. 이곳은 리조트호텔로 바로 아드리아 바닷가에 붙어 있어서 내일 아침 산책코스도 기대가 되었다.
<5월24일) 클로아티아 스플릿 디오클레시안 궁전 벌써 여행 4일째이다. 아침 산보를 위해 해변으로 나섰다. 여름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이곳 호텔 주변은 수영장과 각종 오락,술집,레스토랑이 즐비하다. 수많은 파라솔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해적선을 만들어 술집으로,파티장으로 레스토랑으로 손님을 유혹한다. 해적선 안으로 구경을 다녔다. 지중해성 기후라 열대성야자수들이 풍치를 돋운다. 오늘 첫 관광지는 시베닉에서 약 90km 떨어진 스플릿의 디오클라시안 궁전이다. 아드리아해변을 우측으로 끼고 차는 달린다.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숙박을 한 탓인지 9시20분부터 관광을 시작할 수 있었다. 외국 관광객이 엄청 몰리는 곳이라는데 다행이 아침 일찍 서두른 탓에 불편없이 구경할 수 있었다. 궁전 앞에서 베스나 라고 하는 현지 가이드를 만났다. 궁전안을 돌며 설명을 하고 우리 인솔자가 통역을 하였다. 디오클레시안 궁전이 위치한 스플릿은 중부 '달마시안의 황홀한 꽃' 이라 일컫는 곳으로 예로부터 무역 중심지로 번창하였고 목재와 대리석의 교역지였다. 인구 20만의 아드리아 해 연안 관광휴양도시로 기후가 좋아서 유럽 사람들이 즐겨찾는 곳이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폴로'가 이곳 출신이어서 더욱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있는 '디오클레시안 궁전'은 로마유적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뛰어난 유적으로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AD 305년부터 10년에 걸쳐 세워졌으며 사방이 난공불락의 요새화된 성벽과 주택 등 건물 대부분은 '스플릿' 앞바다의 브라체섬에서 캐온 질좋은 석회암을, 그리스와 이태리에서 수입한 대리석, 이집트에서 기둥과 스핑크스를 가져와 완공했으며, 성벽을 돌아가며 4개의 면중앙에 서로 다른 예술적 가치를 지닌 문들이 있다. 북쪽은 '황금의 문', 남쪽은 "청동의 문', 동쪽은 '은의 문', 서쪽은 '철의 문'이 있다
디오클레시안 궁전(Palais de Deocletien)은 로마의 수도가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기기 전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 바로 전 황제 디오클레디아누스 황제에 의해 건설되었다. 스플릿이란 도시는 그의 고향이었다. 노예출신인 이 황제는 병사에서 로마의 황제에 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퇴임 후 그는 고향인 이곳에서 살기 위해 10년간이나 공을 들여 궁전을 건설하였으나 궁전이 완성 되던해 세상을 떠났다. 1700년 전의 역사깊은 도시로 로마 초기의 여러 풍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석회암과 대리석을 사용한 이 궁전은 동서남북으로 네구분 되고 25m 한개면은 바다를 향해 있다.바다쪽은 황제와 친척이 반대쪽은 군사들이 거주 했다. 황제가 죽은 후 이곳에 묻혔으나 지금은 파괴되고 성당이 건축되었다. 중앙광장 중심의 도미니우스 성당이다. 4개의 성루가 있고 가로 세로 200m씩 정방형 성곽이다. 7세기에 지은 석루는 무척 아름다웠다. 피아짜스티것 거리는 우리의 명동거리와 같이 인파가 많은 상점가이다. 성곽 바깥은 물론 성곽 안에도 노천 카페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뛰어난 문인으로 이름을 떨친 마르코마르루치(1450~1524)의 동상이 시선을 끌었다. 궁전 남쪽문은 바다쪽으로 나오는 문으로 항구도시로 활발한 모습을 보인다. 바다에 떠 있는 대형 크루즈 선박이 두대나 정박하고 있었다. 베네치아와 아테네,이스탄불을 왕래하는 선박들이다. 수많은 배 그리고 요트들이 활발한 무역과 관광도시도시임을 증명한다. 달마치아 시절에는 아주 큰 도시였었다. 스프릿은축구도시로서도 유명하다. 크로아티아가 월드컵 때 4강에 오른 기억을 하면 이 작은 나라가 얼마나 축구에 열정을 쏟는가를 알 수 있다. 449만 인구의 나라에 축구 성인클럽이 2800개나 된다고 하니--이곳에 쟈그레브(수도)에 이어 두번째로 큰 경기장을 갖고 있다. 궁전 내부를 관람하던 도중 12명으로 구성된 아카펠라의 정수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달마시안의 전통음악을 CD에 팔고 있어서 여행기 배경음악에 쓰려고 하나 샀다. 여행중 차에서 틀어서 일행이 같이 들을 수 있어 좋았다.
폴리트비체 국립공원 관광객들
폴리트비체 국립공원 쪽빛 호수 수많은 폭포수가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관광객들의 휴식
스프릿 부근 시베닉 해안의 아침산책에서 해적선에 오르다. 디오클레시안 궁전 성곽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조각상
디오클레시안 성곽 조감도
보스니아 헤르츠코비나
보스니아 헤르츠코비나 연방공화국
면적 : 54,000평방키로 위치 : 발칸바도 북서 크로아티아 동 세르비아 남 몬테네그로 인구 : 470만명 수도 : 사라예보 국가체제 : 보스니아 헤르츠코비나 연방공화국 스루비스카 연방공화국(세르비아계) 두개의 연방공화국 체제이나 국가명은 보스니아 헤르츠코 비나 연방공화국으로 부름 종교 : 이슬람교 42% (터키족과 알바니아인인 일리리아인) 세르비아정교 30% 기독교 15% 국민소득 : 4,700불 대신 물가가 싸다.
모스타르 / 스타리 모스트 다리 호텔 야르당에서 스파게티로 중식을 먹었다. 모처럼 먹는 스파게티 별미였다. 오후 일정은 보스니아 헤르츠코비나로 국경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유명한 모스트 다리를 보기 위해 135km를 달렸다.세르비아와 6년이 넘는 전쟁으로 이 아름다운 모스트 다리가 파괴되었으나 부서진 잔해를 모아 원형과 똑 같이 복구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기록을 갖는 다리이다.원형이 파괴된 것이 복구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란 여간 어렵지 않은 것이어서 의미가 깊다.오스만터키가 이 지방을 지배하여 이슬람교를 권장(강제가 아니)하는 관용정책을 쓰서 42%의 이슬람교인을 가졌다. 이곳 모스타르 지역은 모스트 다리 하나로 한쪽은 이슬람교 반대쪽은 세르비아정교를 믿는다. 각기 다른 교회가 서 있다. 오랜 전쟁을 극복하고 다른 종교를 인정하며 화합과 상생의 공존부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래서 더 유명하다. 1566년에 건설된 아치형 이 다리는 1993년 보스니아 내전으로 완전 파괴 되었으나 잔해를 모아 2005년도에 완전 복구되었다. 내전의 아픔을 간직한채 지금은 사랑과 평화의 염원이 담긴 다리라 특별히 사랑을 받는 것 같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모스트 다리를 우산을 쓰고 건넜다. 다리의 바닥 돌은 너무 아름다워 보인다. 이 다리는 오스만터키 시절 9년에 걸쳐 건설하였다고 한다. 건너편은 이슬람의 모스크가 서 있다. 이스람타운의 거리 상점가를 산책하였다. 다리 정경이 잘 나오는 지점에서 사진을 찍으니 과연 다리모습이 예쁘다. 모스트라는 말은 오래된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크지는 않지만 깊고 진한 쪽빛의 레아르바강에 걸쳐 있는 모스트 다리는 높이 24m , 길이가 30m이고 폭이 5m이다. 건너편 세르비아(동방)정교는 검소한 자태를 보인다. 모든 교회가 화려함을 피한다. 한시간 반 가량 구시가지를 거닌후 6시나 되어서야 드브로니크로 향했다. 드브로니크까지는 135km라고 하니 아마도 두시간30분은 걸릴 것이다. 오늘밤도 늦기 마련- 꼬불꼬불한 산길과 아드리아해의 푸른 바다와 섬을 보며 차는 달린다. 붉은 저녁노을이 한층 풍광을 멋있게 꾸민다. 늦은 대신 반짝이는 드브로니크의 야경을 구경할 수 있는 혜택이 있었다. 여행작가 권삼윤씨의 이태리와 발칸여행 책의 제목이 "드브로니크는 그날도 눈부셨다"이다. 드브로니크가 여행가들에 얼마나 감동을 주는지를 이로서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모스크 다리/조각난 다리를 복구 세계문화유산 등재
<5월25일> 크로아티아
두브로니크는 오늘도 빛나고--
발칸여행의 핵심 두부로니크 여행이 시작되는 날이다. 여의날과 같이 바닷가로 산보를 나갔다. 일행 중에도 늘 나오는 사람들과 마주쳐 아침인사를 나눈다. 두브로니크는 호텔에서 불과 30분 거리이다. 올드타운으로 향했다. 구시가지 중심 필레게이트 앞에서 현지가이드를 만났다. 내려다 보이는 주차장에는 벌써 만차이다. 높은 성벽이 바다에 면해 우뚝 서 있다. 마치 영화 빠삐용의 감옥을 보는 것 같다. 두브로니크궁은 7세기부터 구축하기 시작했다. 2km에 걸쳐 구축된 이 성의 안쪽이 구 두브로니크 시가지이다. 높은 성은 11세기 베네치아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세운 성채이다. 7세기 이후부터 구시가지는 두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졌다. 라구라공화국과 민치타 지역으로 분리되었다. 두브로니크라는 이름은 '두부라바'라는 오크(oak)나무의 일종의 이름에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성채의 가장 중요한 필레게이트를 들어섰다. 출입문 조각에 세인트브레즈의 조각상이 시선을 끈다. 두브로니크는 라구라 공화국시 베네치아에 대항할 정도로 큰 도시를 이루고 자유무역이 번성했던 도시이다. 결국에는 베네치아에 점령되었지만--두브로니크는 아드리아 해안 중 가장 큰 도시였다. 7세기 베네치아에 대항,세금을 철폐한 자유도시로 이름을 날렸다. 가죽,금,은 등을 전유럽에 수출입했다. 지중해까지 모든 지역에 무역을 전개하여 15~16세기에는 가장 번창한 시기였었다. 스페인 폴투갈과 함꼐 무역의 중심역할을 했었다. 스페인 폴투갈 처럼 진취적이지 못해 결국 패망하기에 이른다 가장 메인스트리트인 플라차거리(닉네임: 스트라툰)를 중심으로 하고 292m의 긴 스트리트를 좌우로 비잔틴과 로마네스크식 건축물이 늘어서 있다. 양쪽의 건축 양식이 다른 특이한 모습이다. 거리의 오른쪽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왼쪽은 크로아티아 식으로 식당과 쇼핑가가 늘어서 있는 것이다. 라이벌 의식으로 전혀 협조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공동체로서 관리,운영된다고 한다. 주요 건물로는 대성당,수도원이 있고 거리 끝에는 성블레즈 성당과 렉터 궁전이 위치해 있다. 종루 시계탑은 정시가 되면 두명의 군인이 나타나 종을 친다. 18세기에 재건된 로마카토릭 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바로크 양식으로 내부 건축양식과 이콘이 매우호화롭다. 이탈리아 조각가가 설계하였으며 교회내 파이프 오르간으로 연주회가 열리며 특히 금년 여름축제 때 한국관연악단과 공연을 한다고 한다. 일행들은 그때 다시 오자고 하며 흐뭇해 한다. 둥근 돔 형태의 분수대 "오노프리오 분수"가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한다. 원래 분수 개념은 이런 것이었다. 물을 가득 담은 이 분수는 기온을 낮추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1324년에 최초로 건축되었으나 유고내전 때 총탄의 자국을 내기도 했다. 가이드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약국이 있었다. 1391년열린 이 약국은 당시 수도원 내에서 수도사를 치료하기 위해 지으졌으며 지금도 약국 기능을 하고 있다.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을 들여다 보면 집의 구조가 특이하다. 부억이 항상 맨 윗층에 위치하는데 이는 주방요리시 연기를 위로 빠지게 함이고 또 화재시 불끄기가 쉽도록 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란다. 음식물을 아래로 내릴 때 줄을 이용하는 방법이 이 때 처음으로 생겼다고 한다. 1272년부터 이런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골목 끝 높은 곳으로 성벽문이 있다. 위급시 성벽 밖으로 나가기 위함이다. 구 성곽 내에는 2천명이 살고 있으나 유동인구까지 포함하면 17,000명이나 된다. 루시아광장 국기 게양대 아래 기둥에 칼을 들고 서 있는 동상은 올란드 기사상으로 이 곳을 지켜달라는 염원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두브로니크의 수호성인 성 블레즈 대성당은 10세기 베네치아의 공격으로부터 도시를 지켜낸 성블르즈를 기념해 지은 교회로 대성당 내 보물실에 아직도 그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손에 도시 모형을 들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떤 건물은 건물 위는 고딕식이고 아래 부분은 루네상스식으로 조화를 이루며 건축되었다. 거리는 모두 바로크 양식이며 건물 발코니 부분에 커피를 마시는 제복입은 여인이 있어 사진을 찍었더니 이곳이 두브로니크 시청이란다. 시청앞에는 마린드리시(성직자이며 희극작가)의 동상이 서 있었다. 렉터궁은 지금은 박물관으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달마치아 건축의 최고걸작이라는 아케이드가 달려 있다. 렉터궁 안으로 들어갔다. 두브로니크 행정책임자가 재임기간인 한달동안 이 렉터궁에 살면서 모든 업무를 보았다. 지붕은 17세기초 루네상스식으로 지은 것이 전쟁으로 파괴되어 최근 보수된 것이다. 내부는 14세기 유행했던 금분기법으로 화려하게 꾸몄고 접견실은 로코코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이 도시의 수호성인인 세인트 블레이스(성블레즈)가 성곽을 들고 있는 조각이 이채로웠다. 1백7십만불의 금괴를 보관하는 금고도 시선을 끌었다. 남을 속이는 죄가 가장 큰 죄로 취급되던 당시의 감옥도 볼 수 있었다. 2층 집무실은 로코코 양식의 의자.가구가 보이는데 이태리로부터 도입하여 발전시킨 것이라 한다. 원자구조를 처음 발견한 과학자인 루더보스코비치의 300주년 전시회 포스타가 곳곳에 붙어 있다. 그는 음악당을 설계한 건축가이기도 하다. 세인트메리 대성당 입구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하고 있었다. 이 성당은 12세기 무너진 것을 재건하였으며 이 성당을 지은후 전쟁이 더이상 없기를 바랬으나 또다시 전쟁이 발발하여 세인트블레즈 성을 지은 것이라 한다. 성벽 밖으로 나오니 구 항구가 나왔다. 성벽의 길이가 2km나 되는데 한눈에 들어온다. 좌측 성루와 성벽은 1991년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전쟁으로 집중포격을 받아 파괴되었으나 97년 서유럽의 지원으로 재건되었다. 성 밖도 아름답고 양쪽 옆의 집들 모두가 아름답게 보인다. 두브로니크를 떠나면서 언덕위 차길에서 잠시 차를 멈추고 내려다 보이는 두브로니크는 어떤 사진 보다도 예쁜 한폭의 그림이다. 몇장이고 카메라 샷다를 누른다. 노란 유채꽃이 배경으로 어우러져 최고의 걸작품으로 만들어진다. 역시 두므로니크는 '클로아티아의 진주'라는 말이 실감난다. 일찌기 영국의 극작가이며 노벨문학상을 탄 조지버나드쇼는 "이 세상에서 천국을 찾는 자는 두브로니크를 가라"고 했다. 여행가 권삼윤씨도 그의 여행기 제목에서 "두브로니크는 그날도 눈부셨다"고 했나보다. 나는말하고 싶다. "두브로니크는 오늘도 역시 눈부시다"고--
두브로니크 외곽성곽(영화 빠삐용 연상) 두브로니크 메인 스트리트 플라자 거리 세인트메리 대성당 두브로니크 전경
오늘도 두브로니크는 빛나고 있다.
<5월25일> 몬테네그로
몬테네그로 공화국 (Montenegro)
면적 : 14,026평방킬로 인구 : 72만명 수도 : 포드고리차(Podgorica) 언어 : 세르비아어 종교 : 그리스정교/이스람교,로마카토릭
세계문화유산 도시 - 코토르
크로아티아의 진주라고 불리는 두브로니크의 감동을 뒤로 한채 다음 여정인 몬테네그로 코토르를 향해 달린다. 거기 가서 현지가이드와 함께 점심을 먹고 오후 관광을 하게 되어 있다. 이름도 생소한 나라. 그러나 유고연방의 일원이었고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코토르가 있는 몬테네그로는 모든 여행객들의 동경의 대상이다. 코토르는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마치 타임캡슐을 타고 과거로 회귀하는 상상을 해본다. 또 지진이 잦은 지역이라 세계위험문화유산지역으로 등재되기도 한 지역이다. 몬테네그로는 유고 연방국가중 가장 늦게 독립한 나라이다. 연방국가중 네나라가 독립하고 나서 세르비아에서 독립을 못하고 신유고연방으로 남았다가 최근인 2006년에야 겨우 독립할 수 있었다. 몬테네그로라는 말은 "몬테= 산, 네그로= 검은"의 뜻으로 알 수 있듯이 검은산이라는 뜻이다. 산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짙은 검은색으로 금새 이 나라의 이름의 연유를 알게 된다. 몬테네그로는 총인구 62만명의 소국이다. 인구 62만명 중 43%가 몬테네그로인이고 32%가 세르비아인이다. 제1종교는 그리스정교이고 다음은 이스람교,로만카토릭 순이다. 우리가 찾는 코토르는 항구도시이다. 통화는 유러화를 사용한다 몬테네그로는 불가리아제국에 이어 베네치아공국,오스만터키, 그뒤 오스트리아,헝거리의 지배를 받다가 2차대전시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는 등 수없이 외세에 휘말렸다. 1945년 유고연방에 가입하였다가 분리되는 것도 가장 늦게 2006년에야 완전 독립을 이루었다. 아직 미비한 점이 많다고 한다. 몬테네그로로 가는 길은 백두산 천지 모양의 호수 같은 둘레를 계속 돌아서 간다. 호수가 아니다. 바다가 깊숙히 들어와 만을 이루고 있다. 아드리아해를 끼고 해안가에는 별장들이 많이 보였고 바다 가운데 자그만 섬에도 별장을 지어 시선을 끌었다. 코토르스키만을 돌아 건너편이 코토르 란다. 파란 바다물을 보며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는 기분으로 제법 긴 거리를 달린다. 일행중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하여 조그만 상점 옆에 정차 했는데 4명이 4유러를 줘야만 했다고--소변 잠시 보는데 6천원을 주고 보니 너무 하다고 불평. 한국 같은 나라도 없나 보다. 10분 정도 가면 된다던 목적지는 30분이 지나도 차가 설줄을 모른다. 역시 소변이 급한 일행이 하는 말 "역시 하느님을 제외하곤 아무도 못믿겠다" 고 하여 한바탕 웃었다. 여행 중에 가장 골치 아픈 것이 소변 보는 일이다. 마치 전염병 같다. 옆사람이 소변 마렵다면 같이 전염이 되는 것 같다. 2시간마다 차가 서는데도 늘 도중에 한번 더 서게 되니-- 코토르 성벽은 험하고 높은 바위산(로브첸산:1749m)에 세워져 있다. 성벽 넘어는 세르비아이다. 낮은 도시 주변은 해자로 둘러져저 있고 앞면은 바다를 면하고 있어 천연요새로 침략에 대한 방어를 하고 있다. 성벽의 길이는 4.5km에 달한다. 바다에는 큰 크루즈 배들이 정박하고 있었다. 아마도 관광하는 외국손님들이 많은가 보다. 현지 가이드와 함께 코토르 시가지의 광장을 중심으로 성트리폰 성당,성누가교회,가장 오래되었다는 초기기독교 정교회를 둘러 보았다. 그레차 광장에 위치한 성누가교회는 로마,비잔틴,코토르 양식이 고루 갖추어져 있고 원래는 카토릭교회였으나 동방정교로 바뀌어 카토릭과 동방정교가 같이 사용하는 특이한 교회이다. 교회 내부 바닥에는 코토르 시민의 무덤이 있다. 큰 지진이 일어나서 많은 건물이 파괴 되었으나 성누가교회만은 그대로 보존 되었다고 한다. 성트리폰교회는 1162년 코토르의 수호자인 성트리폰을 기리기 위해 프레스코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1979년 대지진으로 파괴되어 다시 재건한 성당이다. 14세기 성화 등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코토르 특유의 양식은 천정에는 아무 것도 없으면서도 벽에는 화려한 장식을 하고 있다. 좀처럼 보기 힘든 가로막대가 두개인 십자가가 교회 첨탑에 보인다. 25분간 자유시간을 주었다. 우리는 골목골목을 누비며 상가며 카페며 성당을 기웃거렸다. 비록 지배의 연속으로 슬픈 역사를 가졌지만 시민들은 활기차고 관광과 무역의 항구도시로서 번잡스런 풍경이었다. 지진이 많은 나라라 이 것 또한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현지 가이드 말로는 올해 한국팀을 6번째 맞는다고 한다. 아마도 전체적으로 10여팀이 될 것이라니 아직 한국의 해외 관광객에게는 좀 생소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점차 많은 한국인들의 관광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 몬테네그로 다음 목표지는 알바니아 이다. 알바니아 수도인 티라너까지 가야한다. 숙소가 티라너에 있으니-- 아드리아도 마지막이라고 잠자지 말고 차창너머로 바다구경을 열심히 하라고-- 과연 알바니아로 가는 길은 험준했다. 도무지 이정표도 없고 S자로 꼬불꼬불한산길을 넘는다. 근 6시가 가까울 무렵 알바니아 국경으로 들어섰다. 지루한 기다림 끝이라 기쁨의 박수가 터진다. 인터넷의 속도가 늦어 입국수속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하니 할말이 없다. 알바니아는 좋게 말해 가장 자연적인 곳이었다. 도로포장이 안된 곳이 많아 터덜거리는 버스로 속이 울렁거리고-- 인솔자는 가까운 곳을 보지 말고 먼 경치를 보는 게 좋다고 강조한다. 먼지나고 터덜거리는 거 생각말고 먼 산의 자연 풍경을 보란다. 쌍두독수리의 나라답게 산세나 지형이 웅장하다. 미개발되고 낙후되었지만 순박하고 자연 그대로의 나라라 좋은 점이 많다고--아스팔트 길이 나오니 또 박수가 터진다. 스쿠드라 라는 인구 25만의 도시를 지난다. 차들이 모두 벤츠차이다 택시도 버스도 모두 벤츠차이다.이상해서 물었더니 독일이 고물차를 알바니아에 팔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버스 차장은 남자로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에 과연 후진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밤늦게 숙소에 도착했다. 참 피곤한 날이었다. 여행은 고생한 만큼 기억이 많이 남는 법이다. 비록 고생은 되었지만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몬테네그로는 검은산이라는 의미. 높은 코토르 성벽 바깥은 깊은 해자 1200년 역사의 코토르
성누가 교회
알바니아
알바니아 공화국 면적 : 28,748평방킬로 수도 : 티라나 종족 : 알바니아인 95% 그리스인 3% 공용어 : 알바니아아,그리스어 종교 : 이슬람교 70% 알바니아 정교 20% 카토릭 10% 통화 : 레크(Lek)
아름다운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에서 하루밤을 보냈다. 티라나 시내관광으로 부터 오늘 일정이 시작된다. 정식 명칭은 알바니아공화국(Republic of Albania)이며, 알바니아인(人)은 '슈키퍼리아'(독수리의 나라)라고 부른다. 발칸 제국 중에서 작은 나라의 하나로, 동쪽으로 마케도니아, 남쪽으로 그리스, 서쪽으로 아드리아해(海), 북쪽으로 몬테네그로, 북동쪽으로는 세르비아의 코소보메토히야 자치주, 남서쪽으로 이오니아해에 면한다. 알바니아계 주민이 90%에 달하는 세르비아의 코소보메토히야 자치주를 둘러싸고 1998년의 코소보 사태 등 알바니아와 세르비아 양국 간에는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1479년 투르크령이 되었다가 1908~1912년의 범민족적 독립운동의 결과로 1912년 11월 독립을 선언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공산국이 수립되었지만,1992년 민주주의 국가로 바뀌었다.
360여만 알바니아 인구 중 이곳 티라나에 38만명이 거주한다. 티라나는 알바니아의 정치.경제.문화. 행정의 중심으로 현재는 민주공화국으로 대통령 중심제이다. 과거 공산주의 색채가 남아 경찰의 파워도 세고 도심 행정기관은 사진촬영도 불가하다. 알바니아는 그리스와 함께 오스만터키의 지배를 가장 오랫동안 받아온 나라이다. 너무 긴(412년간) 지배를 받아 국민들 스스로가 식민지였다는 의식을 못할정도라니--그래서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고 한다. 알바니아는 일리리아 사람으로 남슬라브와는 다르다. 그리스인을 닮았다. 그래서인지 인물들이 좋다. 인류학자들은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가장 미인이 많다고 평가한다.또 이들은 색감이뛰어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파트도 원색에 가까운 색을,또는 파스텔톤을 사용하여 건축한다.
티라나 관광이 시작되었다. 해외여행객들에겐 늘 방향의 길잡이 되는 건물이 있게 마련이다. 티라나 시내 중심에 있는 시계탑(clock tower 38m)이 우뚝하게 서 있다. 근처에 티라나대학이 있었다. 이 대학은 인문대학의 심리학과 자연계의 화학과가 유명한 대학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화학공장,도자기,약품공장이 많다고--우리의 광화문 광장 같은 넓은 광장이 나왔다. 광장에는 높이 선 기마동상이 시선을 끈다. 오스만터키로부터의 해방을 이끈 독립투사의 동상이다. 도시의 도로가 넓고 건물도 크다. 모두 공산주의의 영향이라고 한다.
역시 오스만터키의 영향으로 모스크가 많다. 동방정교 교회도 많다. 러시아가 지었다는 오페라하우스도 명물 중의 하나이다.엔버호자 정권이 무너지고 그의 동상이 철거된 자리에는 국립역사박물관이 세워져 있었다. 길거리에는 히잡과 차돌을 한 여인이 많았다. 의외로 매연이 심하다. 독일에서 수입한 폐차해야 할 차들이 매연을 뿌리기 때문이란다.
명동거리 같은 번화가에서 자유시간을 갖고 다음 목표인 마케도니아의 오호리드를 향해 출발했다. 오호리드 까지는 150km. 3시간반 예정이란다. 산을 넘으며 산위에 쌓아놓은 여러 성을 보면서 과연 오스만터키가 성을 쌓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터키의 에베소(셀축)성을 쌓은 시기와 같다고 한다. 앨바산 소도시를 지나가고 있다. 휴게실에서 잠시 쉬고 강을 끼고 산악지대를 넘어 계속 달린다. 오후 2시가 가까워질 무렵 마케도니아에 입국했다. 이제 국경을 지날때면 의례 박수가 터진다. 인원이 적어서 망정이지 많을 경우 시간이 많이 걸려 짜증이 나게 된다.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 중심지
티타나 최고 명물 시계탑(38m)
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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