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十六章
(이른바, 임금은 유위有爲가) 텅 빈 바(虛; 性·道·自然)와 (무위無爲가) 끝점에 다다른 바(極; 命·德)에 나아가야 한다. (『흠정사고전서欽定四庫全書』 자부14子部十四 『노자익老子翼』 16장에서) 『개원소開元疏』는 일컫는다. “치致는 반드시 스스로 찾아들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른바, (치致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노선공魯宣公 12년十二年)이 “(초楚나라 장莊 임금은 허백許伯御이 전차戰車의 중앙에서 말을 몰게 하고, 낙백樂伯이 허백의 왼쪽에서 화살과 활을 들게 하며, 섭숙攝叔이 허백의 오른쪽에서 창과 방패를 들게 한 채, 진晉나라) 군대에게 나아가 (싸우겠다는 의지와 자세를 보여주)게 했다”(라고 할 때)의 나아간다(는 뜻), 이것일 따름이다. (이른바, 임금은 유위有爲가) 조용하고, (무위無爲가) 도타운 바를 지켜야 한다. (이른바) 만물은 (무위無爲와) 더불어 하고, (무위無爲를) 일으키는데, 나는 따라서 (임금이 무위無爲를) 돌이켜야 함을 살핀다. 이른바, 만물은 무성해지고 무성해지는데, (만물은) 모두 그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무위無爲한) 뿌리(根; 性·命·道·德·自然)를 돌이키고, (그것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른바, 임금은 그) 뿌리로 돌아가야 하고, (따라서) 이른바 (백성이 유위有爲에 대해) 조용해지게 된다. (임금인) 내가 (유위有爲에 대해 시끄럽지) 않게 되면, (백성이 유위有爲) 그것을 조용해지게 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른바, 임금은 유위有爲에 대해) 조용해져야 하고, (따라서) 이른바 (백성이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무위無爲한 성性과) 명命을 돌이키게 된다. (이른바, 임금은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무위無爲한 성性과) 명命을 돌이켜야 하고, (따라서) 이른바 (백성이 무위無爲에 대해) 늘 그러하게 된다. (이른바, 임금은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무위無爲한 성性과 명命을 일부러 일삼아) 어그러뜨리거나 바뀌게 해서는 안 된다. (이른바, 임금은 무위無爲에 대해) 늘 그러할 줄 알아야 하고, (따라서) 이른바 (백성이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무위無爲한 성性과 명命에 대해) 밝아지게 된다. (이른바, 임금이 무위無爲에 대해) 늘 그러할 줄 모르게 되면, (백성이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무위無爲한 성性과 명命을) 어긋난 채, 흉한 바(兇; 有爲)를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임금은 무위無爲에 대해) 늘 그러할 줄 안 채, (무위無爲에 대해 늘 그러한 바를) 품어야 한다. (따라서 임금이 백성을) 바꾸는 많은 일이 (무위無爲에 대해 늘 그러한 바를) 머금게 된다. (이른바, 임금이 무위無爲에 대해 늘 그러한 바를) 품어야 하는데, (따라서 임금은) 이내 (무위無爲에 대해 늘 그러한 바를) 숨김없이 드러내게 된다. (따라서 임금은 유위有爲에 대해 늘 그러한 바를 일삼기를) 잘하는 바를 기대는 바를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게 된다. (이른바, 임금은 무위無爲에 대해 늘 그러한 바를) 숨김없이 드러내야 하는데, (따라서 임금은) 이내 (그러한) 임금이 되게 된다. 백성이 (스스로 자신에게) 찾아드는 바를 건네받는. (이른바, 그러한) 임금이 되면, 이내 하늘(天; 性·命·道·德·自然·無爲)과 더불어 어우러지게 되고, 하늘과 더불어 어우러지게 되면, 이내 도道와 더불어 어우러지게 되며, 도道와 더불어 어우러지게 되면, 이내 (몸이) 오래 보여지게 되고, 몸이 다하도록 위태롭지 않게 된다.
致虛極. 『開元疏』雲: 致者, 令必自來. 如『春秋』; 致師之致. 是已. 守靜篤. 萬物並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歸根曰靜. 非我靜之. 靜曰復命. 復命曰常. 不可復渝變.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兇. 知常容. 萬變可函. 容乃公. 不私據善. 公乃王. 受物之往.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이른바, 아주 먼 옛날, 백성을 다스리는 수준이) 가장 높았던 (어떤) 임금은 (무위無爲를 자신의 위로 높이고, 자신을 무위無爲의) 아래가 되게 했다. (따라서 그는 유위有爲가) 가득 찬 바와 (더불어) 부딪혔다. (그러나) 그 (수준이) 아래인 임금은 (무위無爲가) 텅 빈 바(虛; 有爲)를 맞이했다. (이른바, 아주 먼 옛날, 백성을 다스리는 수준이) 가장 높았던 (어떤) 임금은 (무위無爲를 자신의 위로 높이고, 자신을 무위無爲의) 아래가 되게 했다. (따라서 그는 무위無爲가) 시끄러운 바(動; 性·道·自然)를 얻었다. (그러나) 그 (수준이) 아래인 임금은 (무위無爲가) 조용한 바(靜; 有爲)를 붙잡았다. (이른바, 아주 먼 옛날, 백성을 다스리는 수준이 가장 높았던 어떤) 두 임금은 (무위無爲가) 가득 찬 바(實; 命·德)의 가운데 자리했다. 따라서 (그들이 다스렸던 백성은) 저절로 그러했다. (이른바, 그들이 다스렸던) 백성은 (무위無爲를) 일삼는 바가 (그) 끝점을 다했다. (유위有爲가) 조용했다. 저절로 그러한 바(自; 動)를 근본으로 삼았다. (저절로 그러한 바實를) 돌이켰다. (이른바, 아주 먼 옛날, 백성을 다스리는 수준이 가장 높았던 어떤 두 임금은 유위有爲를) 맞이하지 않았고, (유위有爲를) 붙잡지 않았는데, (따라서 백성은) 이내 (무위無爲의) 끝점을 다하게 되었고, 이내 (무위無爲가) 도타워지게 되었다.
最, 下. 擊實, 其次, 邀虛. 最, 下. 取動, 其次, 執靜. 兩, 實之中, 虛. 故自然. 眾動之, 極, 靜, 原自, 復. 不邀不執, 乃極乃篤.
어찌 이른바 그 (아주 먼 옛날, 어떤 두 임금이 다스린 백성은) 저절로 그러한 바(然; 性·命·道·德·自然·無爲)에 대해 밝아지게 되었는가? (이른바) 만물은 (무위無爲를) 더불어 하고, (무위無爲를) 일으킨다. 따라서 (만물은) 무성해지고 무성해지게 된다. (이른바, 만물의) 형세는 (무위無爲의 끝점을) 다한다. 따라서 (만물은) 그 (무성해지고 무성해지는 바가) 저절로 그러하게 찾아드는 바로 돌아가게 된다. 이러한 까닭에, (아주 먼 옛날, 선인仙人이었던 과부誇父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가 자라난 나무인) 등림鄧林의 잎은 (일부러 일삼은) 산가지를 가지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수數를 헤아리기를 잘했다. 천리千里에 걸쳐 내리던 비는 (일부러 일삼은) 바가지를 가지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땅을 적시기를 잘했다. 따라서 (아주 먼 옛날의 등림의 잎이나 천리의 비의 모습) 이것을 버린 채, (일부러 일삼은 산가지와 바가지를 줍는 바를) 일으키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는 (지금의) 임금, 그를 일컬어 (어찌 백성이 무성해지고 무성해지는 바를 일부러 일삼아) 어긋나는 임금이라 하지 않겠는가?
何以明其然也? 萬物, 並作. 而芸芸者. 勢盡, 而反其所自來也. 是故鄧林之葉, 可無籌, 而數. 千里之雨, 可無器, 而量. 猶舍是而有作, 其, 不謂之妄乎?
따라서 (지금의 임금인 나는) 일부러 일삼는 바(事·有爲를 가지는 바)가 있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어야 한다. 따라서 천하는 (그러한) 나의 모습을 (모범으로 삼는 바를) 일삼게 되고, (그러한 나의 모습을 모범으로 삼는 바로) 쓰게 된다. (따라서) 그 (천하에서 유위有爲의) 이치가 쓰여지거나 일어나지 않게 된다. 따라서 (그 천하에서 무위無爲의 이치道·德·自然·無爲·性·命가) 쓰여지고 살펴지게 된다. 관觀은 (눈으로) 살핀다는 뜻이다. (이른바, 지금의 임금이 무위無爲를 살피게 되면, 천하가 무위無爲를) 살피게 되는데, 따라서 (천하가 유위有爲를) 일으키지 않게 된다. (따라서 눈으로) 살핀다는 말은 이른바 (본래 저절로 그러한 성性·명命대로 무위無爲한) 배腹의 모습이 된다는 뜻이다.
故無所有事. 而天下, 為我, 用. 其道, 不用作, 而用觀. 觀, 目也. 觀, 而不作, 目, 亦腹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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