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은 올렸는데 손님이 없다. 손님이 오면 어떻게 대해야할지 그리고 틀리면 어떡하나? 등 불안감이 많았다. 10년 이상 학원에 다니는 사람들도 자신이 없어 고민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들의 말이 신경쓰인다. 신문기자출신이라 말은 잘 할테니 어물쩡 넘기는 재주도 겸해서 연습삼아 하다보면 자신감이 생긴다는 조언을 자주 받았다. 하지만 자존심이라는 놈이 고개를 든다. 어물쩡 넘어가는 것은 체질에 맞지가 않다. 간판 올릴때 가까운 선후배 그리고 친구들 몇명이 다녀갔다. 그렇지만 고향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한때는 잘 나갔던 놈이라는 자존심이 일어난다.
고창에 '총각점쟁이'라 불리우는 친구가 떠올랐다. 점집에 잘 다니지 않는 성격인데 10여년전에 친구 권유로 한번 갔었다. 시원한 개량한복에 반지,목걸이를 하고 무스로 빚어넘긴 머리카락이 멋있었다. 일반 무속인의 꾀죄죄한 이미지와 정 반대였다. 처음에는 점 치러 갔었는데 그가 봤던 스크린대로 한달 후 그런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어느날 문득 그 무속인이 보고 싶어 찾아갔는데 무척 반긴다. 나는 도 공부 해야할 사람이라며 친구로 지내자고 했다. 나보다 2살이 많았다.
그는 지방의 짱짱한 대학을 나와 직장생활을 하다 어느날 신을 받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점집을 차렸다. 교회 25년동안 다니던 모범 신도였다. 점집에 피아노가 있었고 틈틈이 찬송가도 부르며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전주가 고향인데 가족,친구들도 시골에서 점집 하는 것을 전혀 모른다기에 물었더니 "쪽 팔리게 누구한테 말합니까?'라 했다. 쪽 팔리게......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많았다. 혼자 곰곰 생각해보면 슬픔이 북받치기도 했다. 참 묘한 운명이다. 운명이라는 것은 이런 것인가보다. 한치 앞을 알기 어렵거늘 어찌 스스로 잘 낫다며 세상 사람을 무시하며 거드름을 피운단 말인가. 어떤때는 그냥 시골 가서 신문기자나 계속할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신문기자는 돈은 못 벌어도 어딜 가나 폼 잡고 다니는데........수많은 생각들이 교차하며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날 드뎌 문이 울렸다. 손님이 찾아 온 것이다.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예우를 했다. 그러자 그 손님이 당황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쥔은 폼 잡고 앉아 가볍게 인사만 해야 하는 것이었다. 손님들은 정중히 찾아뵙는 것이 충분히 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쥔이 예우를 하면 손님들로부터 무시당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도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상황에 맞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남편의 바람끼에 대해 상담하러 왔다. 사주를 풀려고 하니 앞이 캄캄했다. 책상위에 둔 만세력이 보이지 않는다. 만세력을 찾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세상 흘러가는 단순한 이야기였다. 서두가 길어지면서 뒤적거리며 찾던 만세력은 책상위에 그대로 있었고 그 위에 책 한권이 있었는데 긴장하다보니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학원에서 배운대로 '격국'을 따져보았다. 년월일시를 갑자,을축,,,,등 사주를 세운 후 목,화,토,금,수 등 어느 기운으로 세력이 모이는가를 따진다. 보통 사주로 건강을 살피고 생식을 권유하는 사람들이 잘 쓰는 세력과 조금 다르다. 오행의 글자가 많고 적음으로 세력을 따지는 것이 틀리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정밀도에 있어서는 많이 떨어져 보인다. 천간지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지지 속에 감춰진 천간도 함께 살펴야 한다. 가령 남자의 일주에서 천간에 해당하는 글자는 본인이며 밑에 있는 지지는 부인의 자리인데 월지,시지,년지 등에 일주의 천간과 合을 이루는 글자가 많으면 바람피울 사주로 일단 간주한다.
합이 이리 저리 많으면 '드러내놓고 바람피운다'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사주라는 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러니 참 묘한 일이다. 30년 이상 강단에 서서 가르쳤던 원장님이 푼 사주에 '천성적인 바람둥이'라고 못을 박았던 사주는 잘 아는 선배였다. 그로인해 가정 풍파가 잦다고 명백히 못 박으며 책장을 덮었지만 전혀 아니다. 살아오면서 단 한차례도 바람을 피우지 않았고 그럴 베짱도 없는 선배다. 바람을 피운다는 것은 날 믿고 시집 온 부인에 대한 배신행위라 여기는 선배다. 이렇듯 사주감정에서는 주의해야할 일이 많다.
첫 손님은 바람둥이 남편에 대한 고민이라고 말했다. 사주를 풀어보니 성격이 쾌활한 편이다. 바람피우는 형국도 보이지만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쾌활한 성격때문에 직장에서 여성들로부터 인기가 좋아 친구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결코 바람을 피우지는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안심하는 얼굴빛으로 바뀌며 의심많은 자신을 탓하며 기쁜 마음으로 돌아갔다. 어떤 경우는 자신이 바람을 피우면서 남편이 바람 피울까봐 겁을 내는 여인들도 있었다. 참 묘한 일이다. 상담하러 온 손님의 90%는 여인들인데 남녀문제,경제문제,자녀문제의 순이었으며 고민거리의 해답은 이미 그들이 알려준다.
일단 사주를 풀면서 몇가지 이야기를 하면 금새 화색이 돌면서 '맞습니다.선생님!'하면서 입을 열기 시작한다. 여자들은 잠시라도 입을 그냥 놔두면 안되는 모양이다. 그녀들이 일단 입을 열기 시작하면 줄줄줄 다 나온다. 그 말을 잘 들으며 메모를 해 둔다. 메모를 하며 차근 차근 정리를 했던 말을 모아 그녀에게 해 주기만 하면 감탄을 한다. 이렇게 '쪽집게'는 탄생하는 것이다. 말만 잘 들어주면 앉아서 돈 버는 직업이 철학관이다. 손님의 비위만 잘 맞춰주면 되는 것이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어느날 인천에서 이쁜 아줌마가 찾아왔다. 첫눈에 호감이 가는 젊은 여인이다. 나이는 나와 별 차이가 없는데 몸 관리를 잘해 더 젊어 보인다. 직업이 좋아 돈 잘 벌고 있으며 아파트도 2채를 갖고 있었다. 역시 남편의 바람끼로 고민하고 있다. 바람 피운다는 사실은 결혼했던 18년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어느날 노래방에서 남녀가 술 마시며 뒤섞여 놀때 자신의 바람피우는 것을 모르는 부인을 '바보!'라 말했고 그 말이 한바퀴 돌아 부인의 귀로 들어갔다. 이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런대로 참으며 묵인했지만 도저히 참기 어려워 난리를 쳤고 남편은 무릎꿇고 잘못을 빌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혼소송을 냈다. 7억원에 해당하는 아파트 한 채를 줄테니 이혼하자며 서류를 내밀었지만 남편은 잘못을 빌며 한번도 하지 않던 설겆이, 빨래를 도맡아 하기 시작했다. 절대 충성!을 맹세하며 빌고 또 빌었다. 이런 남편이 측은해 보이기도 했지만 20여년 가까이 참았던 울분이 터진지라 어쩔 수 없었다. 자녀들도 평소 바람피우는 아빠가 싫어 엄마한테 이혼을 요구하며 재미있게 엄마의 인생을 살라고 수차에 걸쳐 말을 해 왔지만 참았던 여인이다. 그녀는 아이들이 커 대학을 마칠때까지만 참고 살며 이후 이혼하여 자신의 인생을 즐기겠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인내심의 여인이었다.
괜찮은 직장을 다니는 남편이지만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1억원 정도 되는 자가용을 사 주었고 차량운영비로 월 100만원씩 주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여인이 어디 있겠는가!!! 절대 충성을 해도 부족할텐데 말이다. 그녀의 사주에 독수공방할 수 있는 기운이 보였다. 그 말을 했더니 지금껏 부부관계도 애 낳을때 이후 별로 하지를 않았고 자신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 침대에서 생활하지만 남남인 셈이었다. 이혼소송에서 승소하겠지만 별거를 하지도 못할 성격이라 말했더니 곰곰 생각하더니 자신의 성격이 그렇다고 한다.
결국 서류 이혼은 했지만 한 침대에서 벗어나 방만 달리했을뿐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남편은 이후 아주 얌전해졌다. 위자료로 아파트만 한채 주게 되었다. 이 여인은 유명한 무속인 찾아가 2시간씩 기다렸다가 10분 상담하는 것보다 날 찾는 것이 훨씬 낫다며 단골이 되었고 직원과 친구들한테 소개를 많이 했다. 이 상담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잘 들으며 메모지에 잘 적으며 중요한 이야기는 밑줄을 그어 놓았다가 정리를 해서 말해주었을 뿐이다. 물론 중간 중간에 사주 용어 섞어가며 코멘트를 해줬다. 또 세상만사 듣고 보았던 이야기를 간간히 해 주니 무척 좋아한다.
참 묘한 세상 재미있는 일 들이다..........2008.3.6 목 군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