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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광은 1951년 2월 21일 삼척군 시루뫼마을(증산리)에서 4남 3녀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중학교를 졸업 후에는 1년간 아버지로부터 농사일과 고깃배 타는 법을 배웠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강릉교육대학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 첫 발령을 받은 학교는 남진원이 73년부터 근무하던 태백시 화전국민학교였다. 그곳에서 남진원은 최도규를 만나 문학적 영향을 받고 김진광은 남진원의 영향을 받아 문학공부를 함께 하였다. 그후 마석규가 이 학교에 오는데 마석규는 김진광의 영향을 받아 글을 쓴다. 김진광이 화전국민학교로 왔을 때 최도규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간 후였다. 당시 인근학교에 김완성과 최도규가 있었기에 김진광은 남진원, 최도규, 김완성 등과 어울리며 자주 문학 모임을 가졌다. 그 당시 서울 『소년』편집부에 근무하던 김원석을 초대하였다. 김원석은 2010년 대 후반,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장을 지냈다. 김원석, 최도규, 김완성, 남진원, 마석규 등이 한데 어울려 문학 정담을 나누기도 하였다. 최도규는 강원도의 특색을 살린 문학단체를 만들었는데 ❰감자❱동인이었다. 1집에서 5집까지 냈는데 감자 동인에는 최도규, 김종영, 권영상, 장영철, 김진광, 남진원, 마석규 등이 참여하였다. 권영상은 강릉교육대학을 졸업후 강원도에서 교직에 있다가 곧 서울로 올라갔다. 권영상이 ❰감자❱동인으로 활동할 당시 권영상은 서울의 초등학교에 근무하였다. 그러나 이 모임은 최도규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사망한 후부터 없어졌다.
김진광은 교단작가로써 다른 교사 생활을 한 문인들처럼 교직에 몸 담으면서 글을 공부하고 문단에 등단함으로써 교직에서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문학 활동을 활발하게 하였다.
1964년 삼척국민학교를 졸업하고 1967년 삼척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71년 삼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부를 위해 강릉으로 자리를 옮긴다. 1971년 고등학교 졸업 후, 강릉교육대학 부설 초등교원양성소를 수료한다. 1972년에는 다시 강릉교육대학에 입학한다. 그리고 1974년 졸업한 후, 태백시 화전국민학교에 발령을 받아 근무하였다.
1981년에는 관동대학교 국어교육과에 편입한 후 1984년 졸업을 한다. 이를 발판으로 초등학교에서 중고등학교로 전직을 한다. 1985년부터 중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교감으로 승진한 후, 하장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임을 한다.
문학적 성과를 보면, 1979년 기독교아동문학상에 동시 「콩고르기」, 「물새 알」이 당선하였다. 1980년『소년』에 동시 「해돋이」외 4편이 추천완료 되었다. 이해에 『새교실』에도 동시가 3회로 추천완료를 하였다. 1982년 월간문학신인상에 동시 「감나무골 아이들」이 당선되었다. 1984년 매일신문신춘문에에 동시 「그네」가 당선되었다. 1984년 동시집 『바람개비』를 아동문예사에서 상재하였다. 1986년『현대시학(전봉건 주간)』에 시 「김옥균」외 4편이 추천되었다. 1987년 강원아동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88년 서사동시집 『시루뫼 마실 이야기』를 아동문예사에서 출간하고 한국동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91년 동시집 『물새는 이쁜 발로 시를 쓴다』새남출판사에서 상재하였다. 한정동아동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94년엔 시집 『벽은 가슴에 박힌 못을 사랑으로 만든다』 문예사조사에서 출간한다. 1996년 강원문학상을 수상한다.
1999년 강릉원주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전공)을 졸업한다. 석사학위 논문 「박목월 동시의 형태적 특성에 관한 연구」이다. 1999년 동시집 『참 매미는 참 말만 한다』붓다가야 출판사에서 출간한다. 2001년에서 2005년은 중고등학교 교감(정선군의 함백중고등학교, 삼척여자고등학교)으로 근무한다. 2004년에는 시집 『모시나비』(오감도)로 관동문학상 본상을 수상한다. 같은 해 삼척시민상(본상)을 받는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는 중,고등학교 교장(삼척시 미로중학교, 삼척여자고등학교, 하장중고등학교)으로 근무한다.
2007년에는 삼척문인협회 회장(2007-2009)을 지내고 월인문학상을 수상한다. 2008년에는 이육사 문학상, 강원도지사 공로패 수상을 하였다. 2009년에는 강원예술문화상, 라이너마리아릴케 창작상을 수상하였다. 2010년에는 동시집 『아이, 깜짝이야』를 아동문학세상에서 출간한다. 이해에 한국아동문학창작상, 어효선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한다. 2011년에는 검정교과서 중학교 2-1 국어교과서(금성출판사)에 시 「담쟁이 넝쿨」이 수록된다. 2013년에는 한국동시문학회 부회장을 맡는다. 2월에는 하장중고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정년 퇴임을 한다. 녹조근정훈장을 받는다. 2016년에는 평론집 『한국현대 동시 논평과 해설』(아침마중)을 발간한다. 대한민국환경예술축제 환경부장상(노래경연대회 대상)을 수상한다. 2017년 6월에는 시집 『시가 쌀이 되는 날』(시와 소금)을 발간한다. 제28회 찬불가 가요 가사 현상공모에서 가곡 부문에 「산사의 풍경소리」가 당선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
김진광의 작품세계는 다양하나 일상적인 삶과 고향을 자기만의 독특한 렌즈와 신선한 기법으로 시를 형상화한다. 시인은 시인의 얼굴과 소리가 아닌 빛나는 언어로 그의 몸짓을 대신한다. 거울에 비친 부끄러운 모습 들여다보기, 아픔을 치유하는 환상의 소리와 사물에 눈뜨기, 철저한 자기반성으로부터 비롯되는 정화, 세상을 향해 보내는 그리움의 눈빛 등은 그가 언어로 빚어낸 환상적 꿈꾸기와 색깔들이다. 꾸준히 진행해 온 일련의 작업 속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지적 순환의 긍정적 의미와 배반적 의미를 축으로 하여 시적 진리를 신화적 물음에 의해 환상으로 선택하는 작업을 하는 일이다.
김진광은 강원도 삼척의 시루뫼 마을이라는 작은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유년기 소년기를 고향 마을에서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벗하며 살아왔다.
엄기원은 김진광의 동시세계를 동시집『아이, 깜짝이야!』에서「동시에 덧칠하지 않은 소박한 자연미」라고 하였다. 그리고 김진광의 문학세계는 소박한 서민의 모습과 마음이 그대로 배어있다고 하였다.
김진광은 자신의 고향인 시루뫼 마을의 이야기를 서사적으로 그린 동시집도 내었다. 본인은 동해안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어촌 풍경들과 어부들의 원초적인 인간 냄새, 끈질긴 생명력, 노동의 현장, 가난, 죽음, 전설, 인정 등을 산문서사시로 처음 시도해보았다고 말한다. 엄창섭은 김진광의 시루뫼마실 이야기는 동시로 해양문학의 지평을 열었다고 말했다.
이 작품들은 역사성과 시골의 전통적 특징들이 그대로 들어내었고 하나의 어촌 마을 내력을 감성적 언어와 역사적 이미지로 그린 작품들이다. 아동문학의 작품 중에서 위인들의 이야기를 시로 형상화한 동시들은 많이 있지만 지역적 특색을 살려낸 이런 신화와 설화를 끄집어내어 동시로 형상화 한 글은 좀체로 보기 드문 동시들이다. 동시의 역사적 흐름에서 볼 때 매우 유의성이 있고 높은 가치성을 지난 작품들이라고 보여진다. 김진광은 시인으로, 아동문학가로,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하는 작가이다. 여기서는 김진광의 아동문학적인 입장에서만을 중점으로 다루었다.
아래의 작품들은 2011년 발간된『삼척문학 통사』에 수록된 김진광 본인이 수록해놓은 작품과 해설을 참고하였다.
옥수수밭에 가면/울며 보채는/아기를 업은/우리 어머니들을 만난다.//아기만이 아니다./배고파 우는/형도/누나도/나도/데불고/비탈밭에 섰다.//7월의 옥수수 밭에 가면/울며 보채는/아기를 업은/땡볕의 어머니를 만나다.
- 김진광,「옥수수 밭에 가면」-
위의 작품은 ‘한국동시 100년에 빛나는 동시 100편에 선정된 작품이라고 밝혔다. 또한 지은이는 ’한국동시 100년에 발자취를 남긴 동시인 100명에 선정되었다고 하였다.
그네
김진광
동산 위로
아이들이
해를 차 올린다.
한 번 구르면
언덕.
또 한 번 구르면
연이 되어 펄럭인다.
햇살을 문 아버지
열 두 살 골목이 떠오른다.
두 손에 힘을 모아
두 발에 힘을 모아
내딛는 발길.
우리 할머니 설움을 밀어내고
우리 어머니적 가난을 밀어내고
동산 위로
튼튼하고 빛나는
해를 차 올린다.
위의 작품은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작이며 구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고 하였다.
담쟁이 넝쿨
김진광
무척 궁금한 가 봐
누구한테서
편지가 왔는지.
담쟁이 넝쿨이
발돋움으로
대문의 편지통을
들여다보고 있다.
일학년 아이들처럼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글자를 읽고 있다.
위 작품은 2011년 현재로 중학교 2-1학기 국어교과서(금성출판사)에 실린 작품이라고 하였다.
1970년대의 작가로 밝고 따듯하며 건강미가 넘치는 글을 쓰는 작가로는 조무근(1941 - )이 있다.
조무근은 함북 성진에서 출생하였지만 강릉에서 성장하였다. 1970년대 후반 초등학교 교사로 직장인 경상도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1977년 경남아동문학회를 창립하고 사무국장과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1979년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고 이어 월간문학 신인상에도 동시가 당선되었다. 아동문학평론에도 동시가 천료된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83년엔 거제문인협회 사무국장과 부회장을 지낸다. 이 기간에 영남아동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90년엔 포항문인협회 부지부장을 맡는다. 여러 문학 단체에 소속하여 글을 쓰며, 펜클럽 한국본부 경북지역위원회에서도 활동하였다. 2000년대까지 경상도에서 지내다가 직장을 그만 두고 강릉으로 거주지를 옮겨 강릉에서 활동한다. 2010년엔 강릉의 솔바람동요문학회 회장을 맡아 많은 활동을 벌였다. 강릉문인협회, 한국동요음악협회 회원이다.
1989년 한국아동문학 작가상(한국아동문학회)을 수상하고 1993년엔 영남아동문학상, 2007년엔 한정동아동문학상을 수상, 2012년엔 한국동요음악대상 작사부문을 수상한다. 2012년엔 한국아동문화예술상을 수상하였다. 2000년엔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6년엔 강원아동문학상을 받았다.
개인 저서로는 1979년에 『하늘을 도는 굴렁쇠』(새로출판사), 1983년에 『동그란 욕심』(해조문화사), 1989년 『허물 벗는 아이들』(대일출판사), 1996년에 『꿈나무들아』(윤진출판사), 2000년에 『허물 벗은 집』(한국아동교육원), 2003년에 『질러서도 가 봤다가, 돌아서도 가 봤다가』(도서출판 그루), 2006년에 동시 선집『자연의 버릇』(도서출판 그루), 2009년에 『엉덩방아 찧는 빗망울』(파스텔 출판사), 2013년에 『생명 발견』(도서출판 순리), 2011년 영역동시집인『이슬의 비밀』(소년문학사) 등이 있고 그 외 노랫말 동요곡집, 전래동화집, 위인 전기 등이 있다.
조무근은 강원아동문학상을 수상하며 밝힌 소감 중에 동시쓰기는 생활의 필수라고 말하였다.
조무근은 40여 년간 경상도 생활을 청산하고 귀향 10여년 만에 고향땅에서 받은 첫 상이라고 하며 기뻐하였다. 퇴직하면서 만성신부전과 2급 장애인으로 이틀에 한 번 꼴로 4시간 넘게 혈액투석을 받는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동시 쓰기와 독서가 투병생활을 완화시켜 준다는 사실을 뒤늦게 서야 깨달았다면서 병을 고치는 것도 문학 활동이 한몫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본인에게는 동시쓰기와 독서가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하였다.
연잎 마당
조무근
연잎 마당에서
빗방울이 구슬치기 한다
비오는 날 골라잡아
구슬치기 한다
또르르르 …
또르르르 …
하얀 웃음 굴리면서
구슬치기 한다
연꽃 등 아래에서
연잎 마당에서
- 제 35회 강원아동문학상 수상작 -
조무근의 동요집 속에 담긴 내용과 이미지를 살펴보면 밝고 따뜻할 뿐만 아니라 건강미가 넘치는 글들이다.
거미줄(2)
조무근
미술시간인가 봐요
꽃잎도 나뭇잎도 몇 장씩이나
저녁놀에 물든 구름 몇 조각이나
뜯어 붙인 모자이크 아름다워요
공작시간인가 봐요
이슬 방울 조롱조롱 꿰어 달고서
바람이 살랑살랑 흔들어 보면
해님도 모빌 작품 감상하지요.
동요이면서도 동시 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거미줄에 걸린 꽃잎과 나뭇잎 그리고 이슬방울 들을 보고 미적 충동을 일으킨다. 사물을 대하면서 사물에 대한 미의식을 느끼는 것은 순수한 동심이 내면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감각적 아름다움을 살려내는 것은 동시의 효용적인 측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사물 자체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안목을 갖게 해 준다. 이밖에 많은 동요작품에서도 감각적 아름다움을 노래하여 큰 즐거움을 주고 있다.
조무근의 작품에서 또 하나 두드러진 특징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시들이 많다는 점이다. 읽고 난 후 되돌아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은 정신의 깊이를 더해준다.
작은 꽃밭은
조무근
이렇게 높은 곳
작은 꽃밭은
이슬이라도
제대로 받아먹고 자라야 되는데
물이라도
추기면서 자라야 되는데
할머닌 손주 돌보듯
며칠마다 한 번 씩 물을 주신다
파란 하늘 맘껏 바라보고
수많은 별 친구와
얘기 나누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단다
고층 아파트 베란다
작은 꽃밭은.
위의 동시 「작은 꽃밭은」 을 읽으면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 텃밭이나 담장 가에 화단을 만들어 온갖 꽃들을 가꾸던 풍요로운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할머니로부터 귀여움과 사랑을 받으며 자란 유년의 아름답고 행복했던 추억이 생각나기도 한다.
어제보단 오늘을
오늘보다는 내일을 위해
잎을 떨굴 줄 아는
벌거숭이 겨울 나무
용기 좀 보려부나
우리 허물일랑 땅에다 묻고
저 울창한 숲 사이 사이
글러오는 아름다운 새소리까지
감상하는 나무
나무야
- 「나무야」의 끝 부분 -
내일을 위해 잎을 떨굴 줄 아는 벌거숭이 겨울나무는 바로 참다운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다. 허물일랑 땅에다 묻고 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삶은 어찌 보면 달관의 경지에 오른 삶이 아닐까.
또한 조무근의 동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자연과의 친교이다. 여러 편의 자연을 소재로 한 동요에선, 자연은 위대하며 사람들에게 친근한 벗이라는 점을 신선한 이미지로 제시하고 있다.
동요의 내용은 어린이의 희망찬 마음을 담은 것과 자연을 대상으로 한 것 등이 대부분이다. 요즘은 유달리 이상한 대중가요가 등장하여 청소년들은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가수와 노래에 마취 당해 가고 있다. 노래의 내용도 의미 있는 것이 드물고 행동도 난잡하여 정신을 고양시키는 것이 아니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우리 주위에는 활력이 넘치는 건강한 동요들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무근의 동요와 동시는 쉽고 재미있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어린이들이 한 번 씩은 꼭 읽고 거기에 담겨있는 좋은 노래들을 많이 불리게 하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권영상(1952 - ), 그는 강릉이 낳은 아동문학가이다.
가랑잎
권영상
가랑잎이 떨어진다.
또 떨어진다.
먼저 떨어진 가랑잎이
나중 떨어진 가랑잎 곁에
다가가 묻는다.
-어디 다친 데는 없니?
- 동시집 『엄마와 털실뭉치』(문학과지성사, 2012) -
눈사람과 아기
권영상
아저씨, 우리 집에
좀, 놀러 와요!
아기의 말에
눈사람 아저씨가
반가워 묻습니다.
느네 집 따뜻하니?
- 동시집 『실끝을 따라가면 뭐가 나오지』 (국민서관 2004) -
담요 한 장 속에
권영상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이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꼼지락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
― 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 동시집 『밥풀』 (동화문학사, 1991) -
권영상, 그는 오랫동안 호수와 바다와 산과 가까이 지내왔고, 오랫동안 동시를 손에서 놓지 않고 살아왔다. 이 일을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권영상의 동시엔 어머니가 없어.” 그런 말을 더러 듣는다. “어머니 자리에 아버지가 들어와 있는 것 같아.” 그런 말도 종종 듣는다. 그의 산문집 ≪뒤에 서는 기쁨≫을 읽고서야 비로소 어머니가 들어설 자리에 왜 아버지가 들어와 있는지를 알겠다는 이들도 있다.
권영상은 1952년 3월 1일(법적으로는 1953년 4월 10일)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361번지 아랫말에서 태어났다. 아랫말은 아버지 네 형제분이 한데 모여 사시는, 안동 권씨 집성, 권촌마을이다. 아버지를 포함해 백부님들은 모두 유교의 가풍을 지키셨고, 어머니를 위시한 백모님들은 부처님을 받들러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산중의 절간을 신봉하셨다. 요즘에야 알았지만 조선을 달려온 주자의 학문은 중국으로 들어온 인도 불교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런 까닭에 한 집안에서 유교와 불교가 공존한 듯 하다.
아버지는 권정수, 길러 주신 어머니는 영산 신씨 신재화. 두 분은 아들 셋, 딸 셋을 낳으셨는데 6남매의 막내아들이다. 아버지는 초등학교(동명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보고 싶어 나이 여섯 살 접어들던 해에 10여 리 학교로 보내셨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은 굉장히 성실하셨다. 분가를 해 나오신 두 분은 그가 중학교에 다닐 적에 이미 농토를 크게 넓히셨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대가족 4형제 막내로 평생을 세 분 형님들 밑에서 숨죽여 사셨다. 그런 습성이 자식들에게도 미쳐 아버지는 아들에게 한 번도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으셨다. 이를테면 공부해라 마라, 학교 가라 마라, 일해라 마라, 그 말씀을 일절 하지 않으셨다. 그 덕분에 오로지 스스로 세상일에 부딪혀 보며 갈 길을 만들어 왔다. 그런가 하면 1911년에 태어나신 영산 신씨 어머니는 훈장이신 외할아버지 밑에서 글공부를 마치고 열아홉에 시집을 오셨다. 오실 때는 고전소설 『박부인뎐』, 『임진록』 등과 다양한 종류의 화전가(花煎歌)를 손수 필사해 오셨다. 어머니는 그걸 귀가 닳도록 수십 수백 번을 읽어 주셨다. 또한 총명하셔서 남의 집 굿을 보고 오시면 그 사설을 일거에 다 외우실 정도였다.
그러던 어머니가 나이 열네 살 강릉중학교 2학년 시절, 형수님의 요절로 충격을 받아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그 후로 어머니는 무려 15∼16년 동안 이승과 저승을 오가듯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다.
권영상의 신산한 삶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중학교 3학년 동안은 어머니가 입원하신 읍내의 1인 병실에서 학교의 절반을 다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3년 동안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빈둥거렸다. 그때 아버지의 농사일을 돕거나 공사판을 전전하며 막노동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집 뒤 경포 호숫가에 나가 남으로 내리달리는 대관령을 바라보며 무료한 세월을 보냈다. 그 무렵부터 기다리는 법을 익혔고, 외롭다는 게 무엇인지 절실하게 알았다. 그때 나이 열여섯 살이거나 아니면 열일곱 살이거나.
산다는 게 외로워 경포 호숫가에 주로 나가 배회했다. 나이 또래의 넝마주이 친구를 알았다. 그 친구는 유원지의 종이와 넝마를 주워 가족을 먹여 살렸다. 그와 만나 자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주먹질을 잠깐 잠깐씩 배우고 익혔다. 그러던 넝마주이 친구는 짐 지워진 저의 생애가 너무 무거워 어느 가을날 경포 호수 맑은 물에 꽃다운 몸을 던졌다.
그 후 고향 초당에 서울에서 허균을 공부하러 온 대학생들이 있었는데, 그때 그들로부터 타고르의 <기탄잘리>를 처음 알게 되었다. 또한 아랫말에 포도밭을 만들기 위해 내려온 경섭이 아저씨(동화집 『개미꼬비』 속의 「남종이 아저씨네 포도밭」 주인공)를 통해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 무렵부터 문학 쪽으로 깊이 경도 되었고, 신산했던 어린 시절도 그쯤에서 끝을 냈다.
열여덟 살 되던 1971년, 강릉상업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 그 후 강릉교육대학을 마쳤고, 다시 관동대학교 국어교육과에 편입학하였다. 이때의 학과 분위기는 지도교수나 학생 모두 문학지며 신춘문예 열병에 빠져있었다. 문학 근처를 얼쩡대던 권영상도 그만 어쩔 수 없이 그 대열에 들어서고 말았다. 졸업과 동시에 경북 영주시 소재 대영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교직에 첫발을 디뎠다. 이어 강원도로 돌아와 초등학교 7년 근무를 마치고, 다시 근무지를 서울로 옮겼고, 1987년에 성균관대학교 교육대학원을 마쳤다. 서울시 소재 사립 배문중학교와 서문여자중학교에서 27년여를 근무했고, 2013년 2월 문득 당신의 땅을 당신 손으로 갈아엎어 농업을 하셨던 아버지의 인생이 부러워 교직을 파하고 안성에 작은 일터를 마련했다.
1977년 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함백초등학교 근무 시절이다. 그때 거기 도서실에서 엄기원선생님의 동시집 『아기와 염소』, 윤석중 선생께서 엮으신 『물소리 새소리』, 유경환 선생님의 『겨울 들새』를 만났다. 그 길로 동시에 손을 댔는데 1979년 『아동문예』에 동시 「새」가 천료되었다. 이듬해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길」이 당선되었고, 1982년 소년중앙문학상에 유경환 선생님 심사로 동시가 당선되었다.
그 후, 1990년 『한국문학』에 수필 「난」이 당선(윤모촌, 박연구) 되었고, 1991년 『시대문학』에 시 「발」이 당선(성춘복)되었다. 그리고 1993년 MBC동화 대상 단편 부문에 동화 「주라기 아저씨와 구두」가 당선(조장희, 신지식)되었다.
오랫동안 글을 써 오면서 그는 가끔씩 드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결핍 많던 소년 시절, 술꾼이 되거나 주먹잡이가 되는 길로 들어서지 않고, 아무 힘없는 미약한 글쟁이가 되었을까. 나는 왜 네가 아니고 내가 되어 있을까.’ 인생의 뒤에 숨어있는 이 비밀 같은 의문의 대답이 그는 궁금했다. 그가 하는 이 문학이라는 것도 어쩌면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도정이 아닐까 싶다.
(『권영상 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5. 4. 15 재수록 된 글을 참고하였다.)
코딱지를 돌돌돌 말아서. 꼭꼭꼭 눌러서. 빈대떡처럼 납작납작 눌러서. 그래선 강아지 밥그릇에 뚝뚝뚝 수제비처럼 뜯어 넣었어. 그랬더니 강아지가 밥을 먹다 말고 그러잖겠니.
-오늘은 밥이 짭짤한데. 왠지 간이 맞어.
이 이야기 동시는 10번째 동시집 『신발코 안에는 새앙쥐가 산다』(문원, 1999)에 실려 있는 「나만 모르게」이다. 어린이들이 참 재미나게 읽었다는 동시다. 이 동시집엔 이야기 동시 63편이 실려 있다. 이 동시집을 내고 권영상은 많은 어린이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주로 그들이 들려준 찬사는 ‘근데 왜 이렇게 재미난 동시를 쓰셨어요?’ 였다. 때로는 엄마 손을 잡고 근무하는 학교로 찾아온 어린이들도 있었다고 하였다.
아동문학 강의를 듣는 대학생도 여럿 찾아왔었다. 어린이들과 달리 이미 어른이 된 그들의 질문은 달랐다. 동시는 어린이들이 읽는 시이니까 행과 연이 있어야 하고, 주제를 음미할 수 있는 의미가 있어야 하고, 교육성도 고려해야 하는 건데 동시가 이래도 되느냐는 거였다. 그를 찾아온 독자들은 이미 가장 경계해야할 동시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당시의 동시들은 대개 지나치게 의미추구에 전념하느라 독자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동화는 약진하는데 동시는 장르 자체의 존립이 불안했다. 1996년, 한 달간의 인도여행을 다녀온 후 나는 달라졌다, 그럴 듯한 말로 그럴 듯하게 점잔을 빼는 동시를 버렸다. 동시에 나를 지배해온 동시에 대한 고정관념도 버렸다.
떨어진 감잎에 강아지가 똥을 눈다. 감잎이 그 순간 두 눈을 꼭 감고 온몸을 옹크린다. 콩, 강아지 똥이 떨어진다. 강아지 똥에서 찡, 흩어지는 냄새. 강아지가 침을 뱉듯 쨀끔 오줌을 눈다. 바람이 강아지와 함께 코를 막고 저만큼 달아난다. 그 사이 감잎이 강아지 똥을 받아 돌돌돌 감싸 안는다. 오, 귀한 것! 하고.
역시 같은 동시집에 실린 동시 「감잎은 정말 착해」이다.
동시가 일회용 반창고쯤이면 안 될까, 가지고 놀다가 버리는 장난감쯤이면 안 될까. 별 영양가는 없어도 껌처럼 달콤하고 가벼우면 안 될까. 배꼽 잡고 한번 웃어볼 정도면 안 될까. 그런 질문 끝에 만든 동시집이 고정관념을 벗어던진 『신발코 안에는 새앙쥐가 산다』이다. 근데 의외로 어린이들이 좋아했다. 두 편 모두 교사용지도서에 실렸고, 같은 해에 출간된 『월화수목금토일별요일』(재미마주)의 「그애 앞에 서면」은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밥상을 들고 나간 자리에
밥풀 하나가 오도마니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바깥을 나가려든 참에 다시 되돌아보아도
밥풀은 흰 성자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앉았다.
바쁜 발걸음 아래에서도 발길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밟히면 그 순간 으깨어지고 마는 두려움,
그런 두려움도 없이
이 아침, 분주한 방바닥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이 어린 성자의 얼굴로.
이 동시는 1991년에 출간된 6번째 동시집 『밥풀』(동화문학사)의 표제시다. 이해인 수녀님이 중앙일보 ‘나를 흔든 시 한 줄’에, 또한 그분 저서 『기쁨이 열리는 창』(마음산책)에 소개하면서 알려진 동시다.
이 시에는 언제 밟힐지 모르는 약자인 밥풀과 언제 밟을지를 예고하지 않는 강자인 발의 대결구도가 있다. ‘발’은 군부와 연계된 권력자들이다. 군부독재 시절 나는 퇴근을 하면 남대문로나 세종로에 나가 매일같이 시위 대열에 끼어들었다. 직장에선 ‘데모꾼’ 소리를 들었다. 길고 긴 시위는 명동성당 옆 중앙극장 골목 계단에 은신해 밤을 새운 이튿날, 대통령 직선제 선언으로 끝이 났다.
그 무렵 그의 고민은 억압받는 약자들의 삶을 어떻게 동시라는 그릇 속에 담아낼 수 있을까, 그것이었다. 동시집 『밥풀』의 부제는 ‘작은 것을 아끼는 시집’이다. 그러니까 그 당시의 약자들을 이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물들에 비유했다. 동시집의 중심 제재들인 길바닥에 떨어져 밟히는 단추, 구겨진 종잇조각, 몽당연필, 아무렇게나 쓰여진 낙서, 밥풀, 깃털, 하루살이, 성냥개비, 목장갑, 개미, 말뚝 등이 그들이다.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이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꼼지락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 한 목소리
― 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역시 같은 동시집 『밥풀』에 수록된 「담요 한 장 속에」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이불 속에서 나란히 누워 잠을 자고 있다. 한밤중 눈을 뜬 아버지는 이불을 내차고 자는 아들의 발을 덮어준다. 잠을 자던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기척에 잠에서 깬다. 아버지의 따스한 부정에 꼼지락 돌아눕거나 다리를 오므리거나 하는 방식으로 고마움을 표하면서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권위로 상대를 지배하고 굴종을 강요하던 사회가 그 무렵의 우리 사회였다. 그러나 권영상이 꿈꾸던 이상은 서로 잠자리를 보살펴 주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와 같기를 바랐다.
구방아, 목욕 가자.
아빠는 뭐가 무섭다고
혼자 가도 될 목욕탕을
꼭 나랑 같이 가자 하시지요.
구방아, 산에 가자.
아빠는 뭐가 무섭다고
만날 가는 산을
꼭 나랑 같이 가자 하시지요.
넌 이거도 못하냐,
그러며 날 놀리는 아빠는
어디 갈 때면
꼭 나를 앞세우려 하시지요.
구방아, 이모네 가자.
이것 좀 봐요.
사계절출판사에서 2009년에 나온 『구방아, 목욕 가자』의 표제시다. ‘아버지’가 ‘아빠’로 변한 걸 볼 수 있다. 아버지가 암만 살가운 부정을 보여준다고 해도 역시 아버지는 아버지가 갖는 권위자로 남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좁히기 어렵다.
이 시 속의 구방이와 아빠는 그 이전의 부자관계와 사뭇 다르다. 아버지의 권위나 체통, 위엄을 다 내려놓고 있다. 목욕탕에 갈 때도, 산에 갈 때도 같이 가자고 한다. 아니 길 건너 이모네 갈 때에도 혼자 못 가고 나랑 같이 가자 한다.
아빠는 아들 구방이의 명실상부한 친구가 되었다. 그 친숙미를 살리려 이름도 거꾸로 읽으면 ‘방구’인 구방이다.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지원받았던 국가부도 위기 사태는 1997년에 일어났다. 기업이 연쇄 도산되고, 외환보유고가 바닥나고, 가계가 휘청거리더니 끝내 그 폭풍이 가정으로 몰아쳤다. 이혼이 급증하면서 가정은 파산되고 어린 자녀들은 길거리로 내몰렸다.
무너지는 가정을 지키자는 심정으로 출간한 동시집이 『구방아, 목욕가자』이다. 구방이를 중심인물로 하는 가족 구성원들 간의 탄탄한 연대의식과 사랑을 중심 테마로 삼았다. 동화로 읽는 동시집을 만든 셈이다.
언젠가는 나도
늠름한 줄무늬 개구리가 되겠지.
지금은 볼품없는 꽁지로
숨죽여 사는 올챙이지만
언젠가는 나도 굵고 큼직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겠지.
지금은 좁은 물웅덩이에 갇혀 사는
어린 올챙이지만
언젠가는 나도
더 큰 세상으로 껑충 뛰어오르는
늠름한 줄무늬 개구리가 되겠지.
이 역시 『구방아, 목욕가자』에 실린 「언젠가는 나도」이다. 5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렸다. 지금은 비록 볼품없는 꼬리를 달고 사는 올챙이지만 언젠가는 좁은 물웅덩이를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는 꿈을 심어주는 동시다.
비록 엄마 아빠와 헤어져 살지만, 비록 외로워 숨죽이고 살지만 언젠가는 늠름한 줄무늬 개구리가 되어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로 개굴개굴 울 수 있는 그때를 꿈꾸는 노래.
이 시에서 놓쳐서는 안 될 말이 ‘껑충’이다. ‘껑충’이란 헤엄쳐 다니는 올챙이로선 감히 넘볼 수 없는 비약이다. 하지만 한 생명이 넓은 세상으로 비약하는 데엔 자신이 의지하고 살았던 꽁지를 버릴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껑충’이 가능해진다.
호박 구덩이에
뒷거름 넣고
호박씨를 묻었다.
참 얼마나 기막힌 일인지
그 냄새나는 구덩이에서
푸른 깃발을
찾아 들고 나왔다.
2012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동시집 『엄마와 털실뭉치』가 나왔다. 『엄마와 털실뭉치』는 기획예산부가 후원하는 ‘우수도서’로 선정 되었다. 이 동시는 거기 앞부분에 실려 있는 ‘호박씨’다. 앞의 동시 ‘언젠가는 나도’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언젠가는 나도’가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어 좁은 웅덩이를 벗어나는 거라면 ‘호박씨’는 뒷거름을 넣은 냄새나는 구덩이에서 호박씨가 푸른 깃발을 찾아들고 나온다는 노래다. 두 시 모두 비약과 도약을 노래한다. 인내와 먼 미래에 대한 꿈을 노래한다.
마른 땅을 헤치고 솟는 씨앗의 힘이란 도전적이며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씨앗이 품고 있는 잃지 않으려는 꿈 때문이다. 부모가 아닌 타인의 손에 의해 지금은 힘겹게 산다 해도 내부에 꿈이 있다면 언제든 키워올릴 수 있다는 시이다.
이 땅에 태어난 씨앗이라면 크거나 작거나, 튼실하거나 미약하거나, 좋은 땅에 묻히거나 박토에 묻히거나 그들은 그들의 꿈을 기어코 이루리라는 믿음이 내게 있다.
아주 옛날, 여우는
숲에서 태어나 마을을 오가며
부지런히 살았다.
그간 자식도 여럿 두었다.
벵골여우, 검은여우, 모래여우, 은여우, 삼손여우, 티베트여우……
그러면서도
제 임무를 충실히 다 했다.
그 결과 여우는
이 땅에 이런 말을 남겼다.
여우비, 여우볕, 여우사이, 여우오줌풀, 여우콩……
여우에 홀리다,
여우같다,
여우는 같은 덫에 두 번 걸리지 않는다.
2015년 계간 『오늘의 동시문학』에 실렸던 동시 「여우에 대하여」이다. 한국아동문학인 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좋은 동시’다.
여우는 이 세상에 태어나 인간들로부터 무수히 많은 오해를 받아왔지만, 여우는 여우로서 여우에게 맡겨진 하늘로부터 받은 임무를 충실히 다 했다. 그 결과 여우는 수없이 많은 인생의 지침과 명언과 교훈을 이 땅에 남겼다. 여우의 생명이 더없이 아름다운 이유다.
그는 시대와 함께 문학의 길을 같이 걸어왔다. 그러는 동안 맡겨진 임무처럼 동시를 썼다. 아프게 살아왔건, 추운 땅에서 꿈 없이 살아왔건 그의 동시들은 시대와 함께 그려낸 빛과 그림자의 무늬들이다. 그는 말한다. “내게 주어진 이 길을 오래 걷고 싶다. 동시 쓰는 일이 좋다.”라고 ….
( 『동화 읽은 어른』 어린이도서연구회, 2017. 11 재수록한 글을 참고하였다.)
권영상의 동시집은 『단풍을 몰고오는 바람』, 창조의 샘, 1981. 『햇살에서 나오는 아이들』, 아동문예, 1985. 서사동시집 『동트는 하늘』, 아동문예, 1987. 『한해를 살면』, 대교출판, 1987. 『버려진 땅의 가시나무』, 도서출판 남광, 1988. 『밥풀』, 동화문학사, 1991. 『벙어리 장갑』, 계몽사, 1992. 『납작납작한 코끼리』, 상서각, 1993. 『아흔아홉개의 꿈』, 미리내, 1996. 이야기 동시집 『신발코 안에는 새앙쥐가 산다』, 도서출판 문원, 1999. 이야기 동시집 『월화수목금토별요일』, 재미마주, 1999. 『실끝을 따라가면 뭐가 나오지』, 국민서관, 2004. 『구방아, 목욕가자』, 사계절출판사, 2009. 『잘 커다오, 꽝꽝나무야』, 문학동네, 2009. 『엄마와 털실뭉치』, 문학과 지성사, 2012. 『권영상 동시선집』, 지식을만드는지식, 2015. 『아, 너였구나!』, 국민서관, 2015. 『나만 몰랐네』, 문학과 지성사, 2016 . 등의 저서가 있다.
동화집에는, 장편동화집 『숨쉬는 말촉마을』, 대교출판, 1994. 장편동화집 『내별에는 풍차가 있다』, 두산동아, 1995. 장편동화집 『춤추는 원숭이 치치』, 중앙일보사, 1995. 장편동화집 『나무도 시를 좋아하지요』, 학생과학문고, 1996. 단편동화집 『도시로 날아온 꽃씨』, 학생과학 문고, 1996. 단편동화집 『다락방 코끼리 아저씨』, 책만드는집, 1996. 단편동화집 『물오름 마을의 겨울눈』, 국민서관, 1997. 단편동화집 『대장장이 작은 옹당씨』, 오늘, 1997. 단편동화집 『아버지가 데려온 쑥곰』, 대원사, 1997. 단편동화집 『개미꼬비』, 도서출판 문원, 1998. 단편동화집 『순복이 할아버지와 호박순』, 대교출판, 2001. 장편동화집 『우리도 어른이 된다』, 두산동아, 2001. 단편동화집 『형, 모래모치한테 인사해』,진선출판사, 2003. 단편동화집 『수피』, 도서출판 문원, 2005. 장편소년소설 『둥글이 누나』,사계절출판사, 2007 등이 있다.
(이상 권영상에 대한 글은, 본인이 보내온 자료를 위주로 하였음)
장영철(1947 – 2006) 동시의 특징은 탄광촌의 슬픔을 그린 점이다. 장영철은 때로는 어두운 현실을 직시하며 극복하는 아린이의 상을 부각시키고 희망과 꿈을 키우는 작품으로 승화하였다. 탄광촌인 정선 고한초등학교 교사 시절에는 산촌이 갖고 있는 특수한 환경인 사회적 현실을 모성적인 생명력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탄광촌 노동자와 그 가족이 겪어온 삶의 현장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동시를 형상화하였다.
앞을 보아도 산 / 뒤를 보아도 산 / 바람 속애 자고 새는 아이들 // 오늘도 우수수 빠져나간다. / 지영이는 부천으로 / 선희는 동해로 / 민수는 성남으로 / 모레도 가고 // 가출한 엄마 때문에 / 못 떠나는 순이는 / 자꾸만 / 창 밖만 내다본다.
- 「고한리 아이들」 -
탄광촌에서 사는 아이들의 슬픔을 그리고 있다. 장영철에게 오면 동심천사주의는 없다. 다만 부모를 잃고 슬퍼하는 아이들의 커다란 눈망울만 있을 뿐이다.
1947년 강원도 삼척시 원덕면 임원리에서 출생하였다. 삼척공업고등학교를 거쳐 부설 교원양성소를 졸업하여 교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교직에 있으면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초등교육과를 졸업하였고 평생을 초등학교에서 봉직하였다. 지병으로 옥계 남양분교장에서 명예퇴직을 한다.
1981년 『기독교 아동문학』에 동시가 당선하여 등단한다. 이후 남진원의 주선(周旋)으로 1987년 월간 『아동문학』 신인상에 당선한다. 장영철의 동요 「언덕에 오르며」(정금자 작곡)는 1988년 제6회 MBC창작동요제에서 동상을 수상한다. 「아카시아 피는 언덕」은 TV에 동요곡으로 방영되는 유명세를 탔다. 또 1996년 동요 「나의 꿈은」(이동재 작곡)은 국악동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다.
솔바람동요문학회 4대 회장, 조약돌아동문학회 회원, 두타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장영철은 강릉의 남강국민학교에 엄성기와 같이 근무한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은 퇴근을 하고나면 음식점에서 술을 들며 정담을 나누곤 하였다. 많은 동료가 있었지만 같은 문우로 한 학교에 근무하였기에 더욱 정이 두터웠던 것이다. 장영철은 고향이 삼척의 바닷가 마을인 임원이었다. 그래서 바다를 소재로 한 동시가 많았다.
온화한 성품으로 항상 미소 띈 얼굴의 주인공, 장영철. 대인관계에서는 늘 원만하여 누구든지 가깝게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이호성은 회고했다.
장영철은 이호성과 각별하였다. 장영철이 아산병원이 입원했을 때 이호성이 문병을 가면 “형님!”하고 불렀다고 한다. 그 말이 조금도 어색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장영철은 삼척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쳤는데 이호성의 동생과는 동창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호성은 장영철에 대해 말한다. “솔바람동요문학회 회장을 맡으면서 헌신적인 활동으로 발전을 이끌었고 회원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고 하였다.
장영철의 많은 동시들은 모두 불태워져 남아 있는 작품이 많지 않다.
장영철이 첫 동시집을 준비하는 동안 암 진단을 받고 생을 달리하였다. 본인이 유언으로 남은 작품을 모두 불태우라고 하였기에 모두 태웠다고 하였다.
장영철은 주로 초등학교에서 경험한 사실들이 시적 체험의 바탕이 되었다. 이러한 예는 비단 장영철 뿐만이 아니다. 강릉아동문학사에서 김원기, 엄기원, 김완기, 엄성기, 최도규, 남진원, 김완성, 권영상, 김진광, 이호성, 전세준, 장병훈 등 대부분의 작가들이 초등학교 교원이었음을 감안할 때 교원문단이라 불릴 수 있을 정도로 교원 작가들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이들에겐 산자수려한 강원도의 자연 환경이란 배경이 크게 작용하였다. 특히 장영철은 어린 시절 바다와 산을 중심으로 한 성장과정이 있었다. 고향과 아이들에 대한 마음은 성인이 되었을 때 원초적인 그리움으로 움돋았다.
장영철은 동요를 통해 ‘그리움’이란 서정의 사진을 찍는다.
복사꽃 필 때
장영철
고향집 산 언덕에 곱게 핀 복사꽃
달려온 강바람이 흔들고 가면
눈송이 내리듯 꽃잎을 타고
그리운 친구가 달려옵니다.
고향집 뒷동산에 수줍게 핀 복사꽃
지나가던 산바람이 간질거리면
함박눈 내리듯 꽃잎을 타고
헤어진 친구가 달려옵니다.
위의 작품을 읽으면 아름답고 감미롭기까지 하다. 서정의 꽃물이 뚝뚝 떨어지는 가운데 멀리 간 친구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람에 대해 ‘잊지 않고 그리워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서정성이다. 장영철은 동시 동요를 통해 순박하고 질박한 농촌 정서를 시 속에 녹이며 향토성과 서정성을 뽑아내었다.
장영철은 우리의 옛 정서를 잘 살려내고 있다. ‘누나의 꽃가마’, ‘신방’, ‘할머니의 꽃상여’등 전통적인 언어를 즐겨 사용한다.
달빛 가득한/한 여름밤//누나가 길어오는/두레박 안에/달님이 사알짝/담겨 왔어요.//갈바람에/파란 잎이/이울어 갈 때//강건너 꽃마을로/시집가는/누나의 꽃가마에/실어 보냈다가//새 형수가 오던 날 밤/형의 신방에/어머니는 달님을/걸어두었다가//먼 하늘나라/찾아서 가는/할머니의 꽃상여 위에/띄워 보냈어요.
- 장영철의 동시 「달님」 -
이상과 꿈을 간직한 영원한 소년이고 싶었던 장영철, 그는 바다가 보이는 언덕과 들판이 보이는 언덕을 오르는 것을 즐거워하고 동경 하였다. 하늘만큼 마음이 넓어지고 가슴이 활짝 열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그리움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가슴에 간직하고 산 영원한 어린이 마음의 동시작가였다. 특히 고향과 전통, 향수 등을 통해 편안한 서정을 노래하였다. 다소 어른의 입장에서 쓰여진 정서이기에 어린이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둘 수밖에 없는 시어들이었다.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함께 열어가고자 하는 소통의 동시 작품 「대문」의 주인공은 이호성이다.
이호성(李鎬成1941 - )의 호(號)는 산호(山湖), 삼척시 원덕읍 호산에서 태어났다. 1954년 호산초등학교, 1957년 원덕중학교, 1960년 강릉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한 후에 초등학교 교단에서 교편 생활을 하였다. 1986년에는 한국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고 1994년엔 강원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삼척시 임원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을 하였다.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이호성은 강원아동문학회가 발족(1972)된 해에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이때 영동지역 회원으로는 이호성 외에도 김종영, 김지도, 전세준 등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호성은 1972년부터 문학활동에 참여하였던 것이다.
이호성은『교육자료』에서 동시가 천료되고 1986년 『아동문학연구』3집에서 동시 「산골짜기에서」외 1편으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을 하였다. 엄기원이 한국아동문학연구소를 세우고 발간한 후 첫 문인을 등단시킨 첫 주자였다. 이후 이호성은 1999년 ≪강원아동문학상≫, 2003년 ≪한국아동문학 창작상≫, 2008년 ≪관동문학상≫을 수상하였다. 2017년 강원아동문학회에서 수여하는 ≪좋은 작품상≫을 작품 「대문」으로 수상하였다. 솔바람 동요문학회에서 활동하며 많은 동요 작품을 발표하였다. 동시집으로 『해망산이 있는 바닷가 아이들』(아동문예, 1991), 『별이 내리는 밤이면』(아동문예, 2001), 『솔바람이 사는 산 밑 집』(아동문예, 2003), 『바람과 나뭇잎』(아동문예, 2005), 『파도가 속삭이는 말』(아동문예, 2008), 『나뭇잎들이 다른 것처럼』(아동문예, 2010) 등의 저서가 있다.
한국아동문학연구 부회장, 한국아동문학회 강릉지부장, 강원아동문학회 이사, 강원펜문학 동시분과위원장 등을 지냈다. 솔바람동요문학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호성은 강원아동문학회 초창기 발족회원으로 활동한 후 14년이 지난 1986년, 정식으로 등단의 과정을 밟는다. 그는 왜 이리 늦은 등단을 하였던 것일까? 사람들이 약삭빠르게 글을 써서 등단을 했지만 이호성은 천성이 자연을 닮아 그런 곳에 눈을 돌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며 그냥 아이들이 좋아 글을 쓰는 데만 노력하였던 것이다. 이런 점은 그의 동시들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마음이 따뜻하고 자연과 같은 사람, 바다와 고향을 사랑하고 어린이들을 깊이 위하는 사람, 그런 분이 바로 이호성이다. 이런 마음은 그의 작품을 통해서 그대로 드러난다.
대문
이호성
집을 돌아오는 길에
대문이 활짝 열린 집을 보았다.
꽃밭에 접시꽃이
빨간 옷 차려 입고
큰 키를 자랑하고 있었다.
내 마음이 밝아졌다.
얼마 쯤 오다
닫힌 대문 앞에서
컹 컹 컹 사나운 개가
마구 짖고 있었다.
내 심장이 콩알만해졌다.
우리 집은
마침, 대문이 없다.
봉숭아 꽃잎 따러 오는 분도 있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분도 있다.
그래서
우리 집이 좋다.
대문이 없는 집에 사는 사람, 누구든지 꽃잎도 따고 화장실을 드나들 수 있게 하는 사람, 그런 분이 이호성이다. 강릉의 도시에서 살지만 순박한 고향 같은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며 자연과 사람들과의 소통을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요즘 보기 드문 분임을 알 수 있다.
다음의 글은 「대문」으로 2017년 강원아동문학회에서 ≪좋은 작품상≫을 받고 소감을 밝힌 일부이다.
뜻밖이란 말을 이때 사용하는 말인가 봅니다. 요즘 능력을 갖추고 힘차게 성장하는 젊은 작가들이 많아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는데, 그 자리를 빼앗은 기분입니다. 요즈음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하늘을 자주 쳐다보고 구름들이 참 아름답다고 감탄을 합니다. 이따금 듣는 까치 울음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여름철이면 으레 듣던 뻐꾸기 노래, 꿩들이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던 모습, 전깃줄에 악보처럼 앉았던 제비들 다들 어딜 갔는지…. 어린이들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잃은 것 같습니다. (이하 줄임)
위의 소감을 읽으면 이 분의 마음이 얼마나 맑고 순수한지를 알 수 있다.그리고 발간한 동시집의 동시들을 읽고 있으면 고향집처럼 푸근하고 편안한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마음이 동심 속에서 티 없이 깨끗하게 살아왔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가습기
이호성
첫눈 오던 날 어린이공원에 뛰어 나가
친구들과 눈사람 만들며 신나게 놀았지
그날 밤 감기 몸살로 열이 불같이 오르자
약 먹이고도 엄마 아빠 걱정은 태산 같았지
가습기도 잠 못 이루고 밤을 꼬박 새웠지
하얀 입김으로 호호 하며 열심히 간호했지
- 동시집 『파도가 속삭이는 말』에서 -
1970년대와 1980년대는 강릉의 아동문학가들이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였고 그 성과 또한 눈부셨다고 할 수 있다.
엄성기, 김종영, 김지도, 권오훈, 전세준, 최도규, 김완성, 남진원, 김진광, 조무근, 권영상, 장영철, 이호성 등이 괄목할만한 활동을 하였다. 이와 더불어 이동운, 정태모, 심복수, 박영규, 조영주, 고성주 등도 기억할 수 있는 작가들이다.
이동운(李東雲 1917~ ?)은 197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고니」가 당선되며 주목을 받는다. 그는 조도전대(早稻田大)에서 교외교육(校外敎育)을 수료했다. 같은 해에 작품 「에밀레」,「가시랑비」,「학」등으로 윤석중이 운영하는 새싹문학상을 수상한다. 이해가 그의 나이 61세였다. 그의 집필 특징은 매우 특이하다. 햇볕이 나지 않으면 붓을 들지 못한다고 하였다. 1948년 무렵 그는 병으로 쓰러진 후 실명상태에서도 글을 썼다고 한다.
고니
이동운
흰구름 건져 먹고
별 건져 먹고
새하얀 꽃이 된다
연꽃이 된다
갈대숲에도 한 송이
조으는 듯 동동
바윗 그늘에도 한 송이
꿈꾸는 듯 동동
흰구름 건져 먹고
달 건져 먹고
떠다니는 꽃이 된다
연꽃이 된다
이 작품은 경포 호수에 나타나는 고니들을 보고 형상화한 작품인 것 같다. 경포 호수에는 매년 고니들이 찾아온다. 호수에 떠다니는 고니들을 보고 떠다니는 새하얀 꽃, 연꽃으로 본 심미안이 한 폭의 한국화를 보는 듯하다. 어린이와 어른 할 것 없이 미적 감동에 젖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빼어난 작품이다. 유미주의(唯美主義) 작품으로 1970년대의 새로운 동시문학의 장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정태모(1927 – 2010)는 1927년 평창에서 태어났다. 시조시인이며 아호(雅號)는 무염거사(無染居士)이다. 1949년부터 교직생활을 하다가 1988년 퇴직한다. 1988년에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으셨다. 평창군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퇴직을 한 후에는 강릉으로 내려와 살며 창작 활동을 하였다. 강릉에 온 후로는 ≪솔바람동요문학회≫에 가입하여 많은 동요를 창작하였다. 196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조「새 판도를 그려야지」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77년 강원도 문화상을 받았고, 1988년 강원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 수필, 평론 분야에서도 활약하고 있으며 시조집 『새 판도를 그려야지』, 시집『착한 나귀를 오해 마시오』, 『회복기 전후』, 『산을 타는 사람』, 『산행서곡(육필시집)』, 『장편108』, 『귀소』 등이 있다. 동시집에는『 초롱꽃』, 『아기손』, 『아기학』등이 있다.
정태모는 한국불교문인협회 고문, 해동문인협회 고문, 남한강문학회 고문, 한국농민문학회 이사, 문학동해안시대 고문, 관동문학회 자문위원, 돌기와문학회장, 벗지문학회 회장, 백오문학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한국교단문인협회, 한국아동문학연구회, 조약돌아동문학회, 솔바람동요문학회, 해안문학회 회원, 평창의 돌기와 동인 등 많은 문학단체에서 활동하였다. 강원도문화상 문학부문, 강원문학상, 관동문학상 본상, 강원시조문학상, 한국농민문학상 본상, 한국불교문학상 대상 등을 받으셨다.
정태모는 줄곧 내곡동 한옥에서 기거하면서 집필 활동을 하였다. 길에서 가끔 뵈올 때에는 우편물을 부치려고 힘든 다리를 절면서 강릉우체국으로 가는 길이었다. 인근 청탑다방에 모시고 가서 차를 대접해 드렸다. 정태모는 당시 강릉문단의 원로로 후배 문인들에게 늘 강조하신 말이 있다. 문인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 관한 일이었다. 문학회 모임이 끝나고 나면 문인들이 모두 모여 기념촬영을 했다. 그때 문단의 후배가 앞 자리 중앙에 먼저 자리를 잡고 떡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얼굴을 붉히시던 일이 떠오른다. 늘 후배 문인들을 만나면 글보다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 준엄함이 있으면서도 후배 문인들을 아끼는 따뜻한 분이셨다.
그의 작품 세계는 불교적 세계에 닿아 있다. 평소에는 집에서 불교에 심취하셔서 불경을 읽으며 지내신다고 하셨다. 아호가 무염거사인데 무염(無染)이란 말은 세속에 물들지 않는 청정불심을 상장하는 말이다. 정태모는 그런 마음으로 한 평생을 시조, 동요, 시를 쓰며 문인의 길을 걸었다.
사실, 정태모는 강릉문학사에서는 1960년대 작가로 시조 부문에서 거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동문학사에도 빠질 수 없는 이유는 정태모는 2000년대 무렵부터 솔바람 동요문학회에 참여하여 동요를 많이 지었기 때문이다.
시나 시조를 쓰다가 다른 장르로 뒤늦게 활동하는 작가로는 또 한 분, 장병훈이다. 장병훈은 1974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지만 아동문학은 2016년『아동문예』에 「제비」외 4편이 당선되면서부터였다.
각설(却說)하고, 정태모는 시조시인이면서도 동시조 창작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1985년, 시조문학 42호에「동시조 중흥의 가능성」이란 아동문학평론을 기고하였고 1986년 시문학 187호에 「동시조 중흥을 위한 제문제」를 발표하였다.
말년에는 동요에 전념하여 많은 동요 작품을 남겼다. 정태모는 동물에 대한 사랑을 형상화하여 생태 환경적인 작품을 쓴 것이 적지 않다. 정태모의 동시 ‘아기잠자리’가 그 하나이다.
새로 돋은 풀잎이다/가만 앉아라/이슬도 옥구슬로/맺혀가는데/날개가 여리구나/조심하여라//새로 피는 꽃잎이다/사쁜 앉아라/안개가 마알갛게/걷혀 가는데/실바람 불어온다/나풀 날아라
- 정태모의 동시 ‘아기잠자리’(솔바람 169호, 2001.8) -
잠자리에게 말을 건넨다. 새로 돋은 풀잎이라고 가만히 앉으라고 주문하고 꽃잎 위엔 사뿐이 앉으라고 말한다. 잠자리의 날개가 여리니 앉을 때에 조심하라고 한다. 자연에 대한 사랑의 눈으로 글을 쓰고 있다.
하늘
정태모
여름내 참매미가 우는 소리로
말갛게 닦여진 하늘은 호수
저녁노을 붉게 물든 창가에 서니
기러기 남매들이 헤엄쳐오네
여름내 참매미가 우는 소리로
말갛게 닦여진 하늘은 호수
흰구름 한떨기가 돛단배 되어
파란 호수 위로 헤엄쳐오네
이미지가 선명하여 그림을 그려놓은 듯한 동요 작품이다. 여름 내 참매미가 우는 소리로 하늘이 닦여지는 푸른 하늘은 그대로 호수가 되었다. 그 호수에 기러기가 헤엄쳐 오고 구름은 돛단배가 어 밀려온다. 꿈과 상상의 아름다움을 어린이들에게 선물로 주고 있다.
조영주는 춘천교육대학을 졸업하고 1980년 대에 아동문학평론지에 동시 추천을 받았다. 한동안 교직에 있다가 퇴직한 후 홀로 살다가 언제 작고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
동물에 대한 사랑은 조영주 시인의 눈에 담긴다. 동시 ‘제비’, ‘뻐꾸기’ 등은 동물에 대한 따스한 눈길이 있었기에 쓴 시라 할 수 있다. 섬세한 이미지가 매우 돋보인다.
다음은 『교육자료』와 『조약돌』에 발표한 작품이다.
한입/봄을 물고 와/처마밑 둥우리/담아 놓고//빨랫줄/봄 내다거느라/지지배배-/지지배배-//티끌 발린/부신 눈을 굴리며//풀빛 바람/귀연 숨결에/깃을 보듬다/보듬다가//첨벙거릴 하늘 속/어디론가/봄을 물어 나른다.
-조영주의 동시 ‘제비’ (교육자료.1977.5)-
아가 업고 자장자장/앞마당 돌때/앞산 위 뻐꾸기/뻐꾹 뻐꾹/아가는 등에 업혀/잠이 들어요.//강아지랑 쫄랑쫄랑/심부름 갈 때/앞산 위 뻐꾸기/뻐꾹 뻐꾹/강아지도 따라서/방울 흔들죠.
-조영주의 동시 ‘뻐꾸기’(조약돌 11집.1983)-
1973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한 심복수는 초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한동안 작품 활동과 글짓기지도에 힘썼다. 동시 「산위에서」,「산」등의 작품에 나타난 서정적인 작품세계는 자연친화적이고 목가적이다.
마음이 아플 때/뒷동산에 올라/마을을 내려다보며/마을은 저녁놀에 물들어 있었다.//동구 밖에서 떼 /멀리 떨어진 논둑길엔/아이가 소를 몰고/마을로 들어서고 있었다.//가을 벌판으로 나들이 나갔던/새 떼들이/보금자리를 찾아 돌아오면/미루나무 잎들은/새 떼 소리로 술렁이고 있었다.//노을이 고개 너머에 지고/새 떼들이 잠이 들면/문득 발 밑엔 가을꽃 하나/바람에 떨고 있었다.
- 심복수, 「산 위에서」, (관동문학 창간호, 1987) -
창문을 사이에 두고/마주 앉으면/내 손이 닿을 듯/가까이 있는/먼 산//내 어릴 때/고향을 찾은 듯/가슴을 활짝 열고/반기는 산//강물처럼 흐르는/숲은/이파리 마다/빛살이 출렁이고//초록빛 숨소리/언제나/내 가슴에 와 닿는다.
- 심복수,「산」,(관동문학 창간호, 1987) -
박영규는 강릉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교원으로 재직하였다. 1980년 월간문학에 동시가 당선하여 등단하였으며, 1981년 월간문학사에서 발행한 동시집 『초여름 바다』가 있다. 박영규의 동시에는 ‘자연과의 교감’을 바라는 동심이 담겨있다.
산 도랑에서
박영규
돌돌돌돌
돌틈 사이로 흐르는
아무도 없는 산도랑
발긋한 햇빛만
오르며 내리며
하루를 놀다 간다.
속까지 환히 뵈는
물이 맑아서
조용히 발 담가놓고
마음 확 터놓고
심심한 이야기랑
나누다 간다.
- 박영규, 「산도랑에서」, (관동문학 창간호, 1987) -
강릉아동문학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동극부문에 창작을 한 작가로는 고성주(1942-2008)가 있다. 고성주는 1987, 월간문학 신인상에 동극이 당선하였다. 강원도 양양 출생으로 강릉사범학교와 명지대학을 졸업하였다. 초등학교에 계시면서 아동 극본을 많이 집필하였다. 받은 상으로는 대한민국 문학상, 한국어린이도서상, 한국동극문학상, 눈솔상, 창작희곡상, 박홍근아동문학상, 한국희곡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동극집『희망의 속삭임』,『노란 은행잎의 꿈』,『외로운 별』,『슬픔이 가득한 가을이야기』,『1등이 있으면 꼴찌가 있어야 할 텐데』등이 있고 이론서로는 『아동극의 이론과 실제』가 있다. 서울 반포초등학교 교장으로 있었다.
한국희곡작가 협회 부회장, 한국아동문학인협회 부회장, 한국동극작가협회 회장을 지냈다. 고성주는 우리나라 몇 안 되는 동극작가로 우리나라 동극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3. 1990년대 2000년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