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세상속으로
9월 9일 오후 1시15분에 출발해야할 KAL은 휴가철 때문인지 중국 상공의 트래픽 잼으로 한 시간 동안 인천공항 활주로에서 이륙 대기하다가 2시 20분에야 출발하여 7시간 시차가 있는 스위스의 취리히공항에 같은 날 저녁 7시에 사뿐이 앉았다. 한 11시간은 걸린 것이다. 중국과 소련 상공을 지나기 때문에 그것도 많이 단축된 거란다. 옛날 31살에 하와이 경유하여 L.A,를 통하여 중남미 파나마 갈 때 24시간 족히 걸리는 데도 한창 나이인지라 피곤한 줄은 몰랐는데 흐르는 세월에는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설레인 마음으로 가득 찬 우리 일행은 오전 8시 30분에 제주를 출발하여 김포공항에 내린 후 다시 KAL 리무진에 30분쯤 실려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피곤함도 잊은 채 먼 이국땅으로 떠나는 여행의 장도에 드디어 올랐던 것이다. 아내와 친구들이 같이 해외여행하기 위해 5년 전부터 푼푼히 모아둔 돈으로 가는 것이라 공짜로 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부담도 덜되고 아내에게도 생색을 낼 수 있는 기분 좋은 여행인 것이다. 아내의 한 친구는 시장에서 옷 장사를 하는데 남편이 여중 영어 교사로 재직하다가 2년 전에 정년퇴임한 나의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의 5년 선배이다. 또 한 친구의 남편은 고등학교 1년 후배인데 역시 같은 여중의 과학교사이다, 이렇게 여섯이 여행하기로 했는데 한 남자(강선배님)가 더 끼어 제주에서 떠나는 사람은 일곱이 되었다, 이 분도 나의 3년 선배인데 부인은 벌써 그 지역을 여행했기 때문에 혼자만 우리와 합류하게 된 것이다.
취리히 공항은 착륙할 때 제주공항에 내리는 것처럼 관광객이 많이 들락거림에도 아담하게 보였는데 활주로에서 버스로 이동하여 청사로 들어선 다음에는 전동차를 타야 입국 심사장으로 갈 수 있는걸 봐서는 외관상 보이는 것과는 달리 매우 큰 공항이다. 거기에서 간단한 수속(여권에 도장도 안 찍음)을 마친 다음 짐을 찾고 가이드가 지정한 곳에 모였다. 친정어머니와 중3, 대1의 두 딸과 함께 온 40대 초반의 경상도 여인, 중2의 아들과 같이 온 40대 초반의 충청도 여인, 대1의 여동생과 막내 중1의 남동생과 함께 온 삼수 끝에 한의대에 들어 간 처녀, 그리고 혼자 여행 온 40대 초반의 여인과 서로 인사를 나누고는 예약된 버스에 올라 숙소가 있는 인터라켄으로 한 시간 정도 달리는데 차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매료되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정말 영화 속에서나 봤던 별장 같은 집들이 산 중턱에 형성된 마을에 그림 같이 잘 정돈되어 있고. 굉장히 큰 호수를 따라 만들어진 도로를 따라 미끄러지는 버스에 앉은 우리는 영화 속의 등장인물 같았다.
인터라켄이란 독일어로 호수사이란 말인데 옛날 하나였던 호수를 중간에 매립하여 마을을 만들어 두개의 호수로 나누어 졌고 알프스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로 장관을 이루는 것이다. 다음날 알프스를 구경키로 되어 있어 일부로 산 중턱에 있는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호텔이라 바야 한국의 장급 여관만도 못한데 역사는 오래 됐다. 유럽에는 오랠수록 유명한 호텔이란다. 앞에 현대식 호텔이 멋있게 자리 잡아 있는 걸 보면서, 가이드가 비용 아끼기 위해 하는 말이겠지 하며 속으로 혼자 웃고 말았다. 하기야 가만히 있어도 그리고 불친절해도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넘치는 곳이라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면서 쓴 웃음이 절로 난다.
다음날 새벽에 잠이 깨어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니 아직도 어둠이 개슴프레 깔려있는데, 앞에 있는 현대식 호텔 지붕 위와 그리고 왼쪽으로 딱 버티고 서있는 두개의 커다랗고 웅장한 바위에 저절로 움칫해 지는 게 아닌가. 자세히 보니 알프스 산봉우리가 이렇게 가깝게 보인 것이다. 조금 늦게 일어나 이 광경을 본 아내의 탄성에 세계적인 관광지에 와있는 실감이 유감없이 느껴지는 것이다.
오늘은 알프스 산의 릉푸라우를 관광한 다음 이태리로 이동하는 날이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기다란 빵조각, 요쿠르트, 하얀 치즈, 햄, 쏘세지, 과일, 우유, 커피 등으로 이루어진 아침식사를 하고 호텔 길에서 새벽에 봤던 봉우리와 건물을 배경 삼아 사진을 몇 장 찍고는 한 십분 걸어 내려가니 그린데발트 역에 도달 했다. 육지 어느 아주 작은 역과 같은데 건물, 전동차의 색깔이 주변과 어우러져 파스텔 풍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일단 크라이네덱역으로 가는 중에도 스위스 고유의 경사지붕으로 된 연한 빨간색의 집들이 어떤 데는 모여 있는 곳도 있고 언덕에 한 채만 놓여있기도 하면서 백설로 덮인 알프스 산을 배경으로 주변과 어우러지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압도하는 듯하였다, 크리이네덱역에 내려 알프스의 세 봉우리를 배경으로 사진들을 찍고는 릉파라우로 향하는 전동차에 갈아타고 경사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희한하게도 레일 가운데로 설치된 톱니가 전동차와 맞물리기 때문에 느리지만 경사를 쉽고 안전하게 오르고 내릴 수 있게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산위에 지어진 얼음궁전을 보는 일행들의 표정은 신비로움에 가득 찬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었고. 관망대에서 밑에 펼쳐지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설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거기에서 전동차를 다시 갈아타고는 릉파라우에 도착하여 세계에서 제일 높은 데에 있는 우체통에 엽서를 부치기도 하고 다시 엘리베이터로 100 미터를 올라 해발 4,200 미터의 정상에 도착하였는데 다행히도 염려하였던 고지대에서의 어지러움 증상을 호소하는 일행은 없었다.
릉프라우 관광을 무사히 마치고 크라이네덱역에서 톱니레일을 따라 발트역까지 내려 갔고 거기서 부터 인터라켄오스트역까지는 평지로 되어 있어 톱니 없는 레일 위를 달려갔다. 그때서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우리를 마중 나온 전세버스에 올라 태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백화점에서 쇼핑을 간단히 하고는 이탈리아의 밀라노로 향했다.
밀라노까지는 무쏘리니가 만들었다는 고소도로를 따라 버스로 4시간이나 걸렸다. 세계적인 패션의 중심지이고 이탈리아 경제와 산업의 중심지인 밀라노는 전 세계 음악가들의 꿈꾸는 세계 최고의 오페라 무대이기도 하단다. 유럽 3대 오페라 극장중 하나인 스칼라 극장을 밖에서 둘러보고 두오모 성당으로 갔는데 건축하는데 600년이나 걸렸다는 걸 보면 건축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다. 성당의 꼭대기에는 황금색의 성모 마리아상이 있고 벽에는 약 2,000개의 성인상과 135개의 소첨탑으로 장식되어 있어 웅장할 뿐만 아니라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두오모 광장에는 약 170년전에 이탈리아를 통일시킨 비또리오 엠마뉴엘 2세의 동상이 딱 버티고 있다. 이탈리아에는 곳곳에 두오모 성당이 있다. 두오모는 영어로 돔인데 추기경을 배출시킨 성당에 두오모가 붙여진단다.
밀라노에서 1박하고 다음날 아침 식사후 바로 “베니스의 상인”이란 세익스피어의 소설로 유명한 베네치아로 향했다.베네치아로 가는 길도 잘 딱여진 고속도로인데 4시간은 버스로 족히 걸렸다. 안내원이
제일 먼저 안내한 곳은 의외로 검문소였다. 거기에서 베네치아를 관광할 수 있는 라이센스(버스당 100유로)를 먼저 구입해서 버스 앞 유리에 부착시켜야 한단다. 그것뿐만 아니라 현지인 가이드가 있어야 한단다. 거기에 현지 한국인 가이드(앞으로 한국가이드라 하겠음)가 붙어야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이래저래 동양인들이 서구를 구경하려면 이중 삼중으로 비용이 든다. 그 비용은 한 사람이 하루에 10유로씩 팁이란 명목으로 갹출(9일*10유로*17명=1,530유로)한 돈으로 충당하는데 안내자는 그걸로 현지인가이드, 한국가이드와 버스운전사 일당을 지급하고 남는 것은 자기의 몫으로 챙긴다. 그리고 관광지 마다 정해진 스케쥴외에 대개 옵션이 붙어 추가로 돈이 들어간다. 이번에 들어간 비용을 계산해보면 항공료와 숙박비 그리고 식대, 버스 임대료 등 여행사에 지불한 돈이 한 사람당 3,200,000원에 팁 90유로 베네치아 수상택시 40유로, 카프리섬 관광 120유로, 로마 벤츠관광 50유로, 파리 세느강 야간 관광 50유로 등으로 해서 추가로 350유로(약435,000원)가 더들어갔다. 물론 옵션을 안 하면 될게 아니냐 하겠지만 그 먼 곳까지 가서 안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베네치아는 호수 위에 세워진 물의 도시란 명성에 걸맞게 120개 이상의 작은 섬과 400개 이상의 다리로 이루어져 있고 중세에는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서 번영을 누렸고 지금도 베니스 영화제와 비엔날레등 문화 관광 상업의 중심지가 되어 밀라노와 함께 부호들이 많은 곳이란다. 배로 한 20분 정도 가니까 주요 섬에 도착하였다, 섬들은 대분 인공적으로 만들어 졌는데 섬과 섬 사이를 운하가 흐르고 운하 위로 여러 개의 다리가 세워져 섬과 섬을 연결하는 독특한 구조로 수상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이탈리아는 광장문화가 굉장히 발달된 나라라고 한다. 광장에는 대부분 성당이 있고 유명한 사람들의 동상이 있다.
베네치아에는 유명한 산 마르코 광장이 있는데 거기에서 마르코 복음을 쓴 성 마르코 시신이 있는 산 마르코 두오모 성당을 구경하고는 크리스탈 공장으로 안내되어 거기 즉석에서 크리스탈로 멋진 새 한 마리를 순식간에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는 바로 크리스탈 매장으로 안내되어서 우리의 지갑을 가볍게 만들기도 하였다. 다리를 건넌다는 것은 다른 섬으로 이동한다는 것인데 다리 길이가 5미터 내외가 되는 겉 같았고 5분 내지 10분 정도 걸으면 또 다른 다리가 나타나곤 하였다. 영화에서 많이 봤던 길죽한 곤돌라를 타는데 사공들은 좁은 운하를 장대로 밀고 발로 벽을 차면서 반대 방향에서 오는 곤돌라를 요리 저리 피하며 관광객들에게 멋진 솜씨를 마음껏 보여 주곤 한다. 곤돌라 탑승을 마치고는 수상택시 타는 곳으로 걸어서 가는데 도처에 깔린 소매치기들의 경계를 잠시도 늦출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