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계몽주의 정신을 대표하는 건축운동으로 합리주의를 들 수 있다. 합리주의는 엄밀한 의미의 양식사조보다는 건축을 바라보는 기본 태도와 방법론을 지칭

[운영자]

18세기 계몽주의 정신을 대표하는 건축운동으로 합리주의를 들 수 있다. 합리주의는 엄밀한 의미의 양식사조보다는 건축을 바라보는 기본 태도와 방법론을 지칭하는 명칭에 가깝다. 건축의 창작 기준을 직관이나 심미성이 아니라 합리적 논리에 두고 가능한 한 객관적 결정을 하자는 태도이다. 어느 시대나 건축을 합리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늘 있었는데 18세기에는 구조 합리주의가 대표적인 예였다. 미시적으로는 앞 시대 바로크 건축의 과도한 장식과 주관적 비정형주의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거시적으로는 서양건축사의 긴 흐름 속에서 최초로 구조 합리성이 구체적 양식사조로 등장한 것이었다.

직접적 배경으로 과학정신과 이신론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과학정신은 17세기 후반에 시작된 과학혁명의 산물로, 기존의 선험적 규범을 거부하고 경험적 확신에 의해서 건축을 운용하려는 새로운 방법론을 의미한다. 과학정신으로 무장한 일단의 건축가들은 인문학-예술 중심으로 답습해오던 건축의 전통적 규칙, 구체적으로는 고전주의 이론과 바로크 장식주의를 거부하고 현장 실험에 의거한 효율을 최우선 가치로 추구할 것을 주장했다. 선례 양식 속에 숨어있는 합리적 특성을 찾아내어 18세기에 맞는 새로운 건축 원리와 표현 체계를 찾아내려는 해석 운동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이신론과 합해지면서 ‘그레코-고딕 아이디얼(Greco-Gothic Ideal)’을 대표적 성과물로 남겼다.

이신론과 순결주의

이신론(理神論, deism)은 기독교 내부에서 발생한 개혁운동인데 종교운동에 머물지 않고 18세기 합리주의 건축운동이 형성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이신론은 교리적으로는 성경 중심의 중세 신탁론을 비판하며 자연신론을 주장했다. 과학혁명에 따른 자연과학의 발달, 영국의 경험주의와 주관주의의 형성, 신대륙의 발견 등 서구 문명이 급변하면서 전통적 기독교관이 많은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 결과 신은 자연을 창조만 해놓고 손을 떼었으며 인간사에는 간여하지 않는다는 자연신론을 주장하는 이신론이 탄생했다. 이들은 신의 섭리는 쓸데없는 욕심이나 불필요한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자연법칙 자체라고 믿었다.

클로드 페로의. 전원 오두막. 이미 17세기 후반에 건축의 원형에 대한 탐구를 통해 18세기 이신교 논쟁에 영향을 끼친 스케치이다.

이신론의 성직자들은 교회 건축에도 관심이 많아서 바로크 교회의 과도한 장식을 기독교가 세속화 권력화된 현상과 같은 것으로 보며 비판했다. 일부는 전문적인 건축지식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바로크 교회를 이루는 구조 골격인 로마 고전주의의 벽체 건축을 지나친 장식주의의 주범으로 공격했다. 벽체 구조가 장식이 놓이는 바탕 면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장식주의의 원인 제공자일 뿐 아니라 건축적으로 봐도 실내를 어둡고 둔탁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그 대안으로 ‘밝은 빛으로 가득 찬 가볍고 경쾌한 교회 실내’를 제시했다. 자연신론에 대응되는 건축적 상징 매개로 ‘빛’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 대안으로 기둥 구조만으로 이루어져 역학적 효율을 자랑하는 합리적 교회 실내를 주장했다. 교회 건축이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합리적 자연법칙으로 존재하는 신의 섭리일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레코-고딕 아이디얼과 새로운 교회 유형

이런 내용은 단순한 주장에 머물지 않고 18세기 구조 합리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그레코-고딕 아이디얼 운동으로 발전했다. 성직자인 장 루이 드코르드무아(Jean Louis de Cordemoy, 연도 미상)가 깃발을 올렸고 마크앙투안 로지에(Marc-Antoine Laugier, 1713~69)가 받아서 건축적 논의로 확장시켰다. 코르드무아는 바로크 교회 건축에 대한 대안으로 ‘고딕 건축과 그리스 건축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적 효율성’을 들었다. 두 건축방식은 양식적으로는 반대편에 섰지만 불필요한 장식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구조만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공유했다. 두 방식의 이상적 내용만 따와서 하나로 합한다는 의미로 ‘그레코-고딕 아이디얼’이라는 개념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서양건축의 역사에서 그리스 고전주의와 고딕 건축의 정수를 구조적 효율성의 관점에서 파악한 것과 둘을 하나로 합해서 새로운 건축방식으로 만들 생각을 한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 주장은 족보가 있는 것이었다.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자들 사이에는 독립 원형기둥만으로 볼트나 돔 천장을 받칠 수 있는가를 놓고 논쟁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것을 이어받아 기둥만으로 실내가 이루어지는 새로운 교회 공간 유형을 제시한 것이다. 이런 생각은 클로드 페로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로지에가 [건축 에세이, 1753] 에서 이신교 사상을 반영해서 18세기의 새로운 교회유형으로 제창한 원시 오두막 그림

코르드므와의 [건축의 모든 것 혹은 축조술에 대한 새로운 소고, 1706]에 나오는 코린트식 오더 그림. 고전 장식과 가구식 구조의 효율성 사이에서 고민한 내용을 보여준다.

당시 기술로 돔을 받치는 것은 무리여서 렌이 월브룩의 성 스테파노에서 이 시도를 하다가 결국 돔 무게를 줄이기 위해 반구가 아닌 접시형으로 처리한 것이 좋은 선례였다. 코르드무아의 주장은 결국 독립 원형기둥을 기본 구조 방식으로 사용한 바실리카 교회의 원형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방향이 모아졌다. 나아가 그리스 가구식 구조로 고딕 네이브 월의 ‘아케이드-트리포리엄-천측창’의 3분법을 구현하자는 것이었다.

이것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사람이 로지에였다. 코르드무아보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레코-고딕 아이디얼의 이상적 예로 ‘원시 오두막’이라는 구체적 구조물을 제시했다. 네 개의 기둥, 바닥, 보, 지붕만으로 이루어진 가장 단순하고 근원적인 구조체였다. ‘숭고한 원시주의’와 ‘단순한 자연’이라는 낭만주의 사상과도 맞닿아 있는 주장이었다. 인간의 욕심이 개입하기 이전의 가장 기본적 원형을 교회 건축의 이상적 모델로 제시한 점에서 매우 과격한 개혁 운동이었으며 이런 점에서 순결주의로 부르기도 한다.

수플로와 파리 판테온

자크-제르멩 수플로. 파리 판테온. 로마의 성 베드로와 런던의 성 바오로에 이어 파리를 대표하는 성당으로 18세기 구조 합리주의에 따라 지어졌다.

로지에의 원시 오두막은 극단적인 이상주의이긴 했지만 그만큼 파급 효과가 커서 바로크를 대신할 구체적인 합리주의 교회 모델을 찾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이것을 이끈 것은 자크-가브리엘 수플로(Jacques-Gabriel Soufflot, 1713~80)였다. 탄생 연도로 보았을 때 가브리엘과 페이르 & 드베일리 사이에 낀 세대였는데 이런 애매함을 구조 합리주의로 극복했다. 젊은 건축가, 엔지니어, 과학자 등과 교류하며 새로운 시대정신과 사조를 접했다. 개인적으로 기하학, 역학, 지리학, 물리학, 화학, 기술공학 등에서 일정한 수준에 오르면서 자신만의 특징을 구조 합리주의로 정의했다.

파리 판테온 실내. 두꺼운 벽과 화려한 장식의 바로크 양식을 거부하고 기둥만으로 돔을 받치려던 고민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를 바탕으로 그레코-고딕 아이디얼 논쟁에 뛰어들어 실제 건물로 지어 보이는 시도를 했는데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파리 판테온(=성 주느비에브, 1755~80/사후 완공)이었다. 이 건물은 수플로 개인의 대표작일 뿐 아니라 18세기 구조 합리주의, 나아가 18세기 프랑스 건축 전체를 대표하는 주요 작품이었다. 로마의 성 베드로와 런던의 성 바오로에 견주어 파리를 대표하는 교회 건축이 된 것이다. 클라이맥스는 21미터 지름의 돔을 받치는 구조 방식이었다. 수플로는 세 개의 독립 원형기둥만으로 돔을 받칠 수 있다고 보고 그대로 설계와 시공을 감행했다. 그레코-고딕 아이디얼을 그대로 구현한 것이었는데 당시 기술 수준에서는 파격적이다 못해 무모한 것이었다. 당장 엔지니어 그룹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면서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려 오랜 논쟁이 계속되었다. 보수적 엔지니어들은 수플로의 안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비판하며 건물이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수플로 사후에 당시에 새롭게 발명된 미적분법을 동원해서 수플로의 안이 역학적으로 무리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시공 중에 발생한 균열은 여전히 문제가 되어서 세 개의 독립 원형기둥 사이를 막아서 삼각형 모양의 벽체로 만들고 기둥 구조에 철물 보강을 하는 선에서 논쟁은 마무리 되었다. 수플로의 부분 판정승이라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바로크 교회의 표준형인 두껍고 둔탁한 벽체 구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탄생했다. 콜로네이드 위에는 천측창을 냈고 다시 그 위로 접시 형 돔으로 천장을 덮었다. 기둥 열이 끊어지지 않고 네 팔을 돌아가며 에워쌌다. 실내에는 기둥 숲밖에 안 보였다. 실내는 그리스 가구식의 밝고 경쾌한 분위기와 구조적 효율성으로 가득 찬 모습으로 나타났다.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동서양을 막론한 건축역사와 이론을 주 전공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명비평도 함께 한다. 현재까지 37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공부로 익힌 건축이론을 설계에 응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jyimis@empas.com

발행일 2011.08.10

컨텐츠 제공: 이화여대 임석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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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0~1830낭만주의 건축운동	미크(1728~1794) 베르사유 궁전 트리아농 시골 마을(1783~85) 켄트(1685~1748) 성 요한 복음 성당, 숍던(1746) 랭글리(1696~1751) [규범과 비례에 의해 향상된 고딕, 1747] 월폴(1717~1797) 튀크넘 스트로베리 힐(1747~63) [영국 회화의 선례, 1762~71] [오트란토 성, 1764] [스트로베리 힐의 호러스 월폴 빌라 안내서, 1774/1784] 와이엇(1746~1813) 런던 판테온 어셈블리 룸스(1770~72) 켄트 리 수도원(1785) 윌트셔 폰틸 수도원(1795~1807) 하트퍼드셔 애슈리지 하우스(1806~1818년경)	프랑스공화국(제1공화국) 프랑스 제1공화국 성립(1792-1804) 국민공회 성립 - 왕정폐지(1792) 혁명적 코뮌 성립 - 공화정 선언(1792) 기독교 기원년 폐지 - 공화국 기원 1년(1792) 루이 16세 처형(1793) 10월 공포정치(1793-1794) 마리 앙투아네트 처형(1793) 혁명재판소 폐지, 국민공회 해산(1795) 에콜폴리테크니크 창설(1795)	조선 정약용, 해미로 유배(1790) 북경 주교, 교황에 조선교회 창설 보고(1792) 정약용, 기중기 발명(1792) 청의 신부 주문모, 밀입국 상경(1794) 수원성 축성(1794~1796) 박제가 [북학의](1798) 청나라 영국 사절, 북경 방문 네덜란드 사절, 청나라 내방(1794) 청, 네덜란드에 국서 보냄(1795) 인종(1796~1820, 가경제) 아편수입 금지(1796) 고증학자 단옥재(1735~1815) 영국인 피어슨, 종두법 전함(1805) 서양인 출판과 전도 금지(1805) 소설가 이여진(1763~1830) 영국선, 마카오 일시 점령(1808) 아편수입 엄금(1815)
1730~1770폐허운동과 18세기 그릭 리바이벌	르게이(1710~1786년경)와 클레리소(1721~1820)의 폐허 수채화운동 르루아(1724~1803) [그리스의 가장 아름다운 폐허 기념비, 1758] 제임스 스튜어트(1713-88) [아테네의 유적, 1762] 마운트 슈어트의 연회당(1780년경) 레베트(1720~1804) [아테네의 유적, 1762]
1760~1830영국의 낭만적 고전주의	체임버스(1723-1796) [중국 건물 디자인, 1757] 더블린 마리노 별장(1758~76) 서리 로햄프턴 하우스(1760) 런던 큐가든 벨로나 신전(1760) 런던 큐가든 파고다(1763년경) [동양조경에 관한 논고, 1772] 더블린 트리니티칼리지(1775~86) 런던 소머셋 하우스(1776~?) [공공건축의 장식적 측면에 관한 소고, 1791] 댄스2세(1741~1825) 런던 뉴게이트 감옥(1765~85, 철거) 런던 길드홀(1777~89) 햄프셔 크랜배리 파크(1770년경~81) 존 손(1753~1837) 런던 영국은행(1788~1833, 철거) 일링, 히츠케입브리지셔 웜플홀(1791) 행거 장원(1800~02 철거) 덜위치 칼리지 미술관(1811~14) 런던 링컨스 인 필즈(1812~13) 웨스트민스터 대법원(1820~26, 철거) 웨스트민스터 재정법원(1820~26, 철거)	영국 1월 아일랜드 병합(1801) 트레비시크, 증기기관차 제작(1802) 최초의 공장법 제정(1802) 런던에 가스등 점화(1807)	조선 순조(1800-1834) 정약종 순교(1801) 인정전 낙성(1804) 안동 김씨 세도정치(1805-1863) 홍경래, 평안도에서 농민전쟁(1811-1812) 충청·강원에서 천주교 탄압(1815) 정약용 [목민심서] 완성(1818) 로마 교황청, 조선교구 창설(1831) 추사 김정희(1786-1856)
1780~1800혁명기 건축	불레(1728~99) [건축, 예술론, 1793] 르두(1736~1806) 브장송 오페라 극장(1775~80) 아르케스낭 왕립 소금 공장(1775~79) 파리 몽소 징수소(1784~89) 파리 라빌레트 징수소(1784~89) 파리 트론 징수소(1784~89) [예술, 관습, 규범과의 관계에서 살펴본 건축, 1804]	총재정부(1795-1799)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원정(1796) 나폴레옹, 오스트리아군 대파 베네치아 점령(1797) 나폴레옹, 이집트 원정 - 로제타석 발견(1798~1799) 30일의 쿠데타(1799) 나폴레옹, 임시통령 됨(1799~1804) 루네빌 조약 - 라인강 좌측 전체 프랑스령(1801) 나폴레옹, 교황 비오7세와 화해 종교협약(1801, 콩코르다트)	청나라 선종(1820-1850, 도광제) 임칙서, 호광 총독이 됨(1837) 영국인, 아편 3만4천 상자 반입(1837) 임칙서, 아편 2만 상자 몰수 소각(1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