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시총서]<시향만리>(2010.6집)<한국시 특집>수록 작품
<한국시 대특집>
◇서지월 시-'' 외20편
<한국시 특집>
◇강문숙 시-'자루 속에서' 외2편
◇진명주 시-'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외2편
◇정이랑 시-'겨울 떡갈나무' 외2편
◇고희림 시-'방향에 대하여' 외2편
◇정경진 시-'난 빙의에 걸렸나 보다' 외2편
◇고안나 시-'꽃진 자리' 외2편
◇김남희 시-'초승달' 외2편
◇김금란 시-'전골 냄비' 외2편
◇김명음 시-'해바라기' 외2편
◇이 곡 시-'낮에 나온 반달' 외2편
◇김청수 시-'마른 연밥 앞에 앉아' 외2편
◇이민영 시-'이성(理性)에 대하여' 외2편
◇문태성 시-''사랑 그네' 외2편
[연변시총서]<시향만리>(2010.6집)< 한국시특집>강문숙 시-'자루 속에서' 외2편
자루 속에서
강 문 숙
자루의 주둥이가 풀리면서
묵은 완두콩이 쏟아졌다. 쪼그라든
껍질, 낱알마다 동그랗게 구멍이 뚫린 채
견딜 수 없이 가벼워진 목숨.
아직도 구멍 속에 코를 박고 있는 바구미들.
수많은 낮 밤을 완두콩과, 완두콩을 갉아먹는
벌레들로, 자루의 속은 얼마나 들썩거렸을까.
푸른 떡잎과 싱싱한 넝쿨손을 갉아 먹히면서
완두콩은 또 얼마나 아팠을까.
벌레를 껴안고 사방으로 굴러가는 완두콩
자루가 해탈한 표정으로 보고 있다.
무한천공을 떠다니는 지구 덩어리
거대한 자루 속, 함께 들썩거리며
나도 쉬지 않고 세상을 갉아먹고 있는 중이다.
완두콩과 벌레와 자루가 서로 껴안고 구를 때
삶은 굴렁쇠처럼 반짝이고 있다.
따뜻한 종이컵
강 문 숙
종이컵이 따뜻하다.
공원 한 귀퉁이에 허름한 중년처럼
앉아 있는 자판기.
커피 한 잔 뽑아 마시다가, 문득
객쩍은 생각을 해본다.
짚둥우리 속에서 막 꺼낸 달걀은
암탉의 항문으로 나온 게 안 믿어질 만큼
희고 따뜻하다, 매끈하다.
혓바닥 아래 고인 침처럼 상긋하게
피어난 옥잠화의 흰 살결.
벌의 항문을 거쳐서 피어난 꽃들,
그 향기도 대저 항문의 그것이니
쿰쿰한 엄마를 열고 나온
신생의 애물단지들아.
희고 아름다운, 향기롭고
따뜻한 것들의 떠나온 문은 하나다.
종이컵을 내려놓고, 슬쩍
만져본다.
왜가리, 외다리로 서다
강 문 숙
늦은 추수 끝나고
농부들도 돌아간 빈 들판.
홀로 서서 먼 곳을 바라보는
저 수도승.
상한 부리를 제 날갯죽지에 파묻고
왜가리는 외다리로 서 있다.
세상 바라보는 일
한쪽을 포기하지 않으면
전부가 무너지는 것.
그 엄격함으로, 새는
투명한 정신의 깃을 세운다.
<약력>
▲경북 안동 출생.
▲199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1993년, 『 작가세계 』 신인상 당선.
▲한국시인협회. 대구시인협회 회원.
▲「시. 열림」동인.
▲시집: 『 잠그는 것들의 방향은? 』,『 탁자 위의 사막 』,『 따뜻한 종이컵』,
『 보고 싶다 』(공동시집) 있음.
[연변시총서]<시향만리>(2010.6집)< 한국시특집>진명주 시-'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외2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진 명 주
꽃 질 때 떠나 다행이다 꽃 지고 마음 따라 지니 다행이다 한번도 이 꽃 지지 않을 거란 생각 없었으니 다행이다 다행이다 예감은 언제부턴가 적중했다 꽃망울 가득한 나무 아래서 가고 오지 않는 시간에 대해 얘기하면 잔을 비울 때마다 시야를 가리는 건 화무십일홍 빈 잔 가득 청매화 홍매화 넘쳐난다 꽃 질 줄 알아 다행이다 주구장창 피어나는 이 사무치는 언어들이 팝콘처럼 펑펑 피어나면 감당하기 힘든 일 꽃 지니 좋다 가슴에 품은 나무 한 그루 오늘 꽃 지었으니 새들도 울지 않겠다
아름다운 길
진 명 주
골목이 아름다운 건 굽은 힘이 있기 때문이다 탄력으로 보란듯이 반짝 일어서는 골목을 걷다 보면 하염없이 생각을 따라 가다 보면 막다른 벽에 이르게 된다 환하게 터져 나오는 햇살에 끌려 발을 디디노라면 참 골목이라는 그 용의주도한 놈이란 생각이 들더군 드러나지 않는 당신처럼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나를 끌어당기던 굽은 눈빛 오래된 길과 오래 지켜본 길은 다르다 그림자보다 먼저 환한 햇살보다 먼저 들어서는 당신의 익숙한 발소리로 후딱 일어서는 그늘, 그늘을 짚고 일어서는 그림자 그림자와 그늘은 다르다는 것을 골목 속 오래 휘어져 보고서야 안다
꽃에 대한 기억
진 명 주
그리움이 시가 되는 시간이 있다 턱을 고이면 그리움은 추억의 돌기를 타고 구석구석 피돌기를 시작하여 모든 추억을 발그레 만든다 사계절 꽃집을 지나 서라벌 인쇄소를 지나 마른기침이 자작자작 터지는 안압지에 앉아 그리움의 꽃눈으로 물수제비를 뜬다 푸득 갈기를 세우며 피어나는 어리연 하나, 찻집 가득 순을 치는 꽃무늬 벽지처럼 사방연속무늬를 키우며 당신은 웃었다 서둘러 나오느라 허리끈을 채 묶지 못한 꽃송이가 프린팅 되어 있는 후란넷 치마, 찻잔에 남은 차를 꽃몽오리께에 쏟아 부으면 에취, 어린 꽃들은 진저리를 쳤다 싸리비가 세워진 마당에는 에둘러간 자전거 자국, 마루 위 던져진 편지봉투처럼 때 없이 피어난 기억들이 안간힘으로 벋어간다 채송화며 씨알 굵은 맨드라미도 따라 힘차게 몸을 올린다 우리 그리운 기억의 모퉁이를 지켜
<약력>
▲진명주(陳明姝)·시인. 1962년 충남 연기 출생. ▲1996년 『 문학도시』로 등단. ▲시집 『 소리 없이 새는 것이 있다』있음. ▲부산작가회 회원. ▲작가와사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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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시총서]<시향만리>(2010.6집)< 한국시특집>정이랑 시-'겨울 떡갈나무' 외2편
겨울 떡갈나무
정 이 랑
산중턱에 내몰린 날
혼자 서는 법 배워야 했을까
생살 찢으며 지층을 오르는 뿌리들
우리는 어디쯤 멈춰 서서 편히 쉴 수 있을까
아랫입술 깨물고 쳐다보던 닿을 수 없는 저편
새들이 떠나면서 길 하나 내려놓으면
가지마다 달아둔 지난 시간들 풀숲에 떨구는 일
발가락 없어도 걸어가는 나뭇잎들이여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
꾸역꾸역 자신을 밀어넣는구나
밤의 뚜껑 열고 찌르레기 칭얼대는데
눈 코 귀 입술까지 떼어내며
허물 벗어 몸뚱아리 흔드는 달을 떠올린다
누에고치의 잠속 같은 숲 들락거리던 바람처럼
헐벗은 꿈의 비탈 뛰어내릴 수 있을까
별이 빛나는 밤에
정 이 랑
잎 떠나간 자리마다 별이 내려앉는 밤
홀로 어둠에 기대어 서서 서쪽부터
가장 잘 보이는 별의 이름을 부른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다시 봄이 오기까지
가슴속으로만 흐르던 용암 같은 은하물
산밑을 기어다니는 지맥에 다다르기까지
잘려나간 머리카락에서 뛰어다니던
눈부신 이슬을 생각한다
산이 몇 번씩 부엉이 울음 뱉어내면
다시는 부를 수 없는 설움의 강에서
나는 발목이 젖도록
희미해지는 너의 이마를 더듬어
보이지 않는 계곡의 겨드랑이 바윗틈
엉겅퀴 꽃잎에 누워 끝내는 잠에 빠지리라
가끔씩 늑골을 타고 날개 꺾인 바람이 밀려들어
꿈속 깊숙이 초록으로 발돋움하는 물소리
어느 곳 빗장을 지른 방문이 열린다
열린 문틈으로 내려앉은 별들이
부르튼 껍질을 벗고 깜빡이며 들어선다
물기 젖은 뼈마다 꿈의 관절을 말린다
겨울산에 와서
정 이 랑
사람의 도시 멀리하고 물러앉은 굴참나무 사이
시간의 계단 오르는 햇살, 눈이 부시다
무채색 하늘의 심장 걸어가고픈 나뭇가지들의 꿈
여름 한때 왕성한 청춘의 잎잎들, 산허리 돌아나오는
돌층계 밑에서 젖은 흙으로 덮여 잠들었는가
내려가라 내려가라
두 귀 세우고 어디서 훔쳐보고 있다가
길 낚아챈 토끼 한 마리 바위처럼 돌아앉는다
손톱 끝에 와닿는 싸늘한 바람의 숨소리
생각없이 흘러온 나날 버섯처럼 자라나고
언젠가는 몇 가닥 어둠의 톱날에 무너질 세월
봉우리마다 피 토해내는 계곡 어디쯤
발견할 수 있을까 불 켜고 비상을 꿈꾸는
반딧불 같은 내 속의 나
가야할 곳 어디인가 가리울 것 없는 숲에 서면
서편하늘 불타는 구름 따라 마음도 흐른다
잠시 풀어놓은 계절의 옷고름 잡고
천상의 사닥다리 놓으며 머리 위 걸어가는 별
돌아가자 돌아가자
낯익은 눈빛 등불처럼 켜있는 산아래 마을
굴참나무 흰 손바닥 툭툭 등을 두드린다
<약력>
▲1969년 경북 의성 출생. 본명 정은희.
▲1989년 다인종합고등학교를 졸업.
▲1999년 스승 서지월시인과 19일간 중국 옛 고구려땅을 밟음.
▲1997년 「한국여성문학상」 수상. 대한불교조계종 불교문학상 당선.
▲1997년「꽃씨를 뿌리며」외 4편으로 『문학사상』신인발굴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1998년 「대산문화재단 문학인 창작지원금」500만원 수혜시인으로 선정됨.
▲2000년『현대시학』집중발굴 <시인을 찾아서>에 선정됨.
▲2005년 첫시집, 『떡갈나무 잎들이 길을 흔들고('황금알')』발간.
▲2010년 현재, 대구시인학교 <사림시>및 <시원> 동인으로 활동.
▲한국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 대구시인협회 회원.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 상임시인.「해란강여울소리」편집위원.
*주소: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 서문시장 2지구 지하 2층 674호 헬로우천
*전화번호: 053)256-2258 휴대폰: 010-7229-2258
*e메일주소: irang6912@hanmail.net
[연변시총서]『 시향만리』(2010.6호)<한국시 특집>고희림 시-'방향에 대하여' 외2편
방향에 대하여
고 희 림
한강물이 반짝거리며 계속 한길로 한길로 모아집니다 마포대교의 양끝은 벌써 몇방향입니까 강물은 서쪽 바다로 풀리겠지만 나는 강물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는 한쪽에 앉아 있었고 여느 때와 같은 그런 자리쯤에 그도 있었겠지요 모든 것들이라고 말해야 할지 자리의 방향이 얼만큼씩 달랐습니다 도시의 지붕위로 달빛도 기울고요 사람들, 서로 평행을 그으며 눈 치뜨고 팔 흔들고 있었지만 바라보는 쪽과 가고 있는 방향은 무엇이 그렇게 다른가요 나는 그 남자가 바라보는 쪽을 어렴풋이 바라보았지요 바라다 보아야 할 어떤 지경에 처해서 말입니다.
길엔 이름이 쫙 깔렸어
고 희 림
길엔 이름이 쫙 깔렸어 늦은 밤, 양쪽의 가로등이 허공에 뜬 이름을 비춘다 유령 같았어 앞에 있다 사라지고 뒤로 보면 사라지고 없다고 생각하면 나타나고 흰옷을 걸친 채 순백인 양
주문리 향호리 입암리 동산리 북분리 잔교리 기사문리 어성진 여룬포리 말곡리 하조대 지나 동해 강릉 지나 속초바다 갯배를 저어 청호동*까지 흘렀어
살아 있지만 보이진 않는 이산의 전리품 죽은 이의 姓과 살은 이의 이름이 들러붙어 있었어 가로등은 증명꾼이지 저녁 6시에 탁 새벽 6시에 탁 하루에 두 번
이른 새벽의 탁 소린 죽는다는 엄살 저녁녘의 탁 소린 다시 살아났다는 비탄이지
가로등들은 너덜너덜하도록 현재를 저장하지 그 놈의 이름 때문이라고들 하지 잠 못드는 밤마다 이름들은 눈물이 되었지 길이 끊기고 사람들의 집에는 돌아오지 않는 姓主들이 가득하지
새벽6시부터 저녁 6시 사이 죽었다가 깨어나기 위해 희망과 절망 사이에 있는 새로운 현재들을 연습하지
죽음과 소생을 이으려 현재들은 손수건을 마련하지, 미래를 감당하려 하지**
*실향민 마을
空房
고 희 림
전언해야할 할 그 무엇의 주파수가 칭얼거린다 소식 다 끊길듯 우두망찰 비마저 뿌린다 자신의 방에 유유히 살고 있는 현재의 장롱처럼 그리하여 라디오의 붕붕거리는 소리처럼
처음 우려낸 국물 다 짜 먹고 내일치 물 받아 재탕이다 살짐과 뼈와 껍질 서로 분리되어 불길 속으로 설설 뒷걸음질 치고 줄인 불에 空房은 사려깊게 존다 국물이 말갛게 될 때까지
<약력>
▲1960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 ▲봉초, 정화여중, 효성여고, 숙명여대 정외과 졸업, ▲현재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과 재학 ▲2009년, 대구문학상 수상. ▲1999년,『 작가세계』로 등단. ▲2003년, 시집 『 평화의 속도』 펴냄 ▲현재, 남부도서관 맟 대구교대 평생교육원 시창작 강사.
[연변시총서]<시향만리>(2010.6집)< 한국시특집>정경진 시-'난 빙의에 걸렸나 보다' 외2편
난 빙의에 걸렸나 보다
정 경 진
처마 아래 풍경 매달아 두듯 내 마음 구석구석 초인종 달아 두었다 뿌리 없는 시가 주름투성이인 못물같은 나에게 다가와 여기 저기 눌러도 보고 수박껍질에 줄을 긋듯 상어 지느러미같은 자로 대어 보기도 하고 기웃 기웃 찔러도 보고 흔들어 보기도 한다 온몸 와들와들 떨리고 머리끝이 쮸뼛쮸뼛 선다 알고 있는 지나온 모든 길들에게 염증 느끼는 열병에 휩싸였다 난 빙의에 걸렸나 보다 마술에 걸린 듯 연필 쥐고 안주하지 못한 꿈에 부푼 흰 종이 위에 열병에 걸린 빙의그림 마구 그린다 잉크 다 떨어질때까지 아니 지쳐 쓰러지기 전까지 널 쏟아낸다 그런 후 내 이름 석자 꺼내어 적는다 내 몸에 물고기떼 노니는 강물소리 세차게 흐른다 드디어 내 몸 따뜻해진다
복숭아 과수원 옆 고추밭의 붉은 고추
정 경 진
복숭아는 일편단심 복숭아와 복숭아쨈으로 그 일생을 마감하지만, 복숭아 애벌레처럼 한 가지 생각만으로 다가오는 사람 반갑게 맞이하고 가는 사람 잘 가라 매너있게 인사하는 정류장 그곳에 모인 가야 할 곳 다른 사람들처럼 거둬내는 고추밭에 아기 울음소리 내는 아기고추 아이들처럼 재잘거리는 풋고추 겨울나기 위해 몸단장 열심인 붉은고추, 어른들 헛기침 소리는 손에 손 잡은 고춧잎들과 잘 어우러져 있다. 이것은 무름하고 저것은 나물 요것은 된장과 된장찌게에 저것은 고추장에 찍어 먹어야지 웅얼거리며 다가오는 일손이 뚝 따는 대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놈 잘 났네 대문앞 금줄에 엮이고 삼월 삼짓날 간장항아리 안에 담기고 김장김치 양념으로 가야 하는 새로운 길이 있다 정해진 운명이라도 개척해 앞장 서서 나가는 순례자의 길은 햇살 기분좋게 내려앉은 마당의 멍석밭 거쳐야 갈 수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겨울 송화강에 와서
정 경 진
폭설 걷어내고 맨손으로 다가가면 쩌억 쩍! 하나로 들어붙는 눈빛 속에 현상되지 않은 필름이 들어 있다
조각조각 동화마을로 인화 되어 내딛는 발자국마다 한 장씩의 꽃잎 같은 것
난생처음 와 본 곳에서 어디 갔는지 사공의 노젓는 소리는 빈 들에 바람만 목놓아 울고 가듯 내가 배경이 되어 찍히고 있다
<약력>
▲1954년 부산 출생 ▲동아대학교 원예학과 졸업 ▲2001년 계간 <詩現實> 봄호로 등단 ▲2003년 제4회「적벽강시문학상」 수상. ▲2005년, 중앙일보 주관, 제1회「미당문학제」시부문 대상 수상. ▲한국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 대구시인협회 회원. ▲현재, 사림시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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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시총서]『 시향만리』(2010.6호)<한국시 특집>고안나 시-'꽃진 자리' 외2편
꽃진 자리
고 안 나
한 때의 영광 촉수 세우던 때는 몰랐다 화사한 웃음 떨어지는 몇 장의 꽃잎 그 뒤 일은 여백이다 눈부신 햇살 바람 불어오는 쪽과 불어가는 곳에 상처가 있다 베인 살에 피 흐르듯 솟구치던 심장의 맥박 꽃잎 뚝뚝 떨어지던 자리 생채기마다 찰라였음을 깨닫는 순간 평생이 가버렸다
꽃기린 화분이 놓인 창가에서
고 안 나
술래잡기 하던 별똥별 몇 개 창가에 내려와 앉은 밤 아가의 오무린 입술 열어 보이듯 손톱같은 붉은 꽃잎 우우 일어선다
제자리 찾아간 것일까 창문 가득 어둠만 잡힌 채 꽃잎보다 더 환할 수 없는 전등 불빛 내려다 보고있다
고사리 손 활짝 펼쳐 보이던 때 솜털보다 예리한 가시 목 비튼 채 등 부비며 자라던 것을 수 천개의 송곳같은 가시들 내 속에 핏빛으로 일어서던 때 모른척 눈 감고 있었다
한 가지에서 붉은 꽃 검은 꽃 더러는 별똥별처럼 숨어버리고 싶은 순간 까칠한 내 눈앞에 저항할 때 삐쩍 마른 가지 하나 송곳같은 가시 뾰족하게 세워 소름돋은 어둠 찌르는 비명소리 듣고있다
꽃을 위하여
고 안 나
지난 겨울 회색빛으로 폭삭 늙어버린 베란다 나비를 희롱했던 무지개같은 날들 아담한 꽃밭 하나 가슴에 품었는데 동상에 걸린 발목 아프게 잘랐다
슬프지는 눈망울 꽃 피웠던 많은 날들이 구석에 있는 화분들을 툭툭 깨워 기억을 불러낸다
일어서고 싶었던 씨앗들의 외침, 캄캄한 절망 속에서 진동했던 날들 날아 오르던 초록의 날개들 잠깐씩 멈춰선 햇살 너머로 절망을 툭툭 털어 버리듯 나비 한 마리, 눈부시게 날아오른다
<약력>
▲1958년 경남 고성 출생. 본명 고혜은. ▲부산시인협회 주관,『부산시인』신인상 시당선. ▲시전문지『심상 』등으로 작품활동. ▲요산문학제, 부산일보, 한국예총 문예공모 수상. ▲호미곶문학상 수상. 백산여성문예상 수상.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 부산시인협회 회원. ▲한국낭송가협회 시낭송가 데뷔 ▲한중공동시전문지『 두견화(杜鵑花)』편집위원. ▲대구시인학교 문화부장. <사림시> 동인.
부산시 영도구 청학2동 150-23.20/3 H.P:010-2598-8182 E-mail : 59881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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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시총서]『 시향만리』(2010.6호)<한국시 특집>김남희 시-'초승달' 외2편
초승달
김 남 희
저것 봐 언니야 무심코 쳐다본 하늘
숯검뎅이로 눈썹 그려 마주보고 깔깔 대던 흰 버선발 치마폭에 감춘 속눈썹이 유난히 길었던 언니야
저것 봐 저것 봐 댓돌위 코고무신 한 짝 초승달로 떴다야
한 획 그어 문양새긴 초저녁 달
빗방울
김 남 희
차창밖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빗방울 길을 찿는디 담담히 뛰어 내렸을 그도 집을 찾는지 살아 남을 수 있는 곳 온통 그 생각으로 헐떡이며 뛰어 내린다 나는 지금 흠뻑 젖은 알몸으로 그대를 맞이하네 생콩 냄새 덮쳐오는 세포들 하나씩 깨어나는 비내리는 봄 날 환각인지 환멸인지 모를 늪에 빠진 달뜬 마음 유리창에 몸을 눕혀야 겠네
그 여자가 사는 법
김 남 희
뒤란 장짓문 자주 열어보는 까닭은 무언가 특별한 것들 있기 때문이다
와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풍경들 새는 새소리로 꽃은 꽃숨결로 저마다 몸짓가진 근사한 소통
눈 맞추는 일 뛰는 가슴 나누는 일 탱탱하게 마음 포개는 일
이 눈부신 교감 접목시키면 어떤 단맛 나올까
휘돌아가던 바람 잠시 멈춘 텃밭 바람잡아 그네뛰는 민들레 씨앗
<약력>
▲경남 사천시 삼천포 출생. ▲시전문지 『심상 』,『장백산 』,『시향만리 』등으로 작품 활동. ▲한국가람문학상 수상. ▲시집 「미완성 인생」,「햇살 한 줌 사랑 하나」,「달빛이 숨어들어」 있음. ▲한국문인협회, 부산문인협회, 부산시인협회, 심상문학회 회원. ▲<사림시>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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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시총서]<시향만리>(2010.6집)< 한국시특집>김금란 시-'전골 냄비' 외2편
전골 냄비
김 금 란
가스렌지 위에 전골냄비 올려놓고 잠시잠깐 한눈 팔다가 새까맣게 타버렸네 짠 맛 매운 맛 너무 힘들어 속이 얼마나 들끓었으면 견디다 못해 숯덩이가 되었을라구
이제는 버려야겠구나 하면서도 손때 묻은 정 아쉬워 선뜻 버리지 못하고 세제로 씻어보고 수세미로 닦고 또 닦아보는데 선반 위에 먼지 쓴 냄비들 눈빛이 반짝반짝 서로 아우성이다
이주
김 금 란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사는데 우리집 꽃밭에는 봉숭아 채송화 뿐 반은 양지에서 그 반은 음지에서 그런대로 불평없이 살아간다
어느 날 갑자기 터전 잃어버린 꽃과 화분들이 이주해 왔다 초라하던 꽃밭이 차고 넘치도록
팔공산에서 자생한다는 난 한 송이 하늘 향해 연약한 목 길게 치켜들고 딸애 꽃망울 닳았다
낯선 이름의 사랑초, 풍로초, 베고니아, 허브부초, 바이올렛, 사파니아, 사크라멘, 가랑코에 꽃들도 낯가림 하나 보네
물도 주고 사랑도 주었지만 제 자리 아닌 듯 시들기만 하네 지구를 떠돌던 난민들 지금쯤 어디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을까
콩
김 금 란
보면 볼수록 살가운 너는 혼자는 서지도 못하는 것이 요리조리 수평따라 굴러다니지 옆에 있으면 절로 손이 간다는 너는 인간의 필수 영양소 중에 으뜸 흰 옷, 누른 옷, 푸른 옷, 검은 옷 입은 작은 우주
곡식 중에서도 몸집이 커 오곡밥을 지어도 실눈 뜬 채로 가장 먼저 얼굴 내미는 너는 된장, 간장, 두부, 두유, 식용유, 자자손손 이어온 먹거리의 으뜸
<약력>
▲1937년 안동 풍산 출생. ▲ 의성여고 졸업. ▲경주대학교 사회교육원 문예창작전공 수료. ▲2010년, 달구벌전국여성백일장 최고상 장원 수상 ▲2010년, 시전문지 『심상 』으로 작품 활동. ▲시집 『돌이 되고 싶었네』출간. ▲대구시인학교 사림시 동인.
[연변시총서]<시향만리>(2010.6집)< 한국시특집>김명음 시-'해바라기' 외2편
해바라기
김 명 음
길가에 높이 앉았다 알알이 박힌 열매들 어우러져 밝은 해를 따라 고개 돌리며 세상 슬픔과 미움 엮어
잠자리 날아들어 맴도는 꽃그림자 길게 늘이며 고개 숙여 머문 자리 땅위의 풀벌레소리 엿듣는다
천태산 은행나무
김 명 음
천년을 살라 했다 아랑곳 하지 않고 하늘 떠받들고 그렇게 살라 했다 노랗게 물든 잎들 바람 벗 삼아 한점 부끄럼 없이 우수수 떨어져도 하늘 우러르며 살라 했다
* 천태산: 충북 영동 소재
낙엽
김 명 음
바짝 마른 몸으로 뒹굴뒹굴 굴러 이리저리 힘없이 어디로 떠나가는지
짝 잃은 기러기인 양 쓸쓸한 바람 맞으며 어디로 가는지
찢기고 찢긴 쓰라린 마음으로 누굴 찾아 떠나는지
소리없이 부는 바람 빈 하늘 채색하듯 바스락바스락 떠나는 소리 점점 멀어지는 기러기 날개짓 소리
<약력>
▲계명대학교 대학원 유아교육학과(문학석사)를 졸업. ▲한국상화시낭송대회 최우수상, 한국시사랑낭송대회, 한국심연수시낭송대회, 경북재능시낭송대회 등 수상. ▲제5회 전국 육사시낭송대회에서 대상(大賞) 수상. ▲색동회 회원, ▲인형극단「놀이터 친구들」단장, ▲감성놀이학교「벨트라움」원장. ▲안동대학교 평생교육원 동화구연 외래교수, ▲대구시인학교 사림시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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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시총서]<시향만리>(2010.6집)< 한국시특집>이곡 시-'낮에 나온 반달' 외2편
낮에 나온 반달
이 곡
굽이 돌려놓은 강기슭 외로운 나룻배 한 척
출렁이는 비단물결 이랑 사이 서성이던 소슬바람
버드나무에 걸터앉아 노란 이파리 한 장씩 따서 던지면 목줄 붙잡혀 있던 나룻배 이파리 세며 고이 받아안는다
나그네 강 건너려 하는데 뱃사공은 없고 빈 배는 떠날 의향 없다며 온몸 흔들어댄다
기러기 날아간 하늘엔 반달 한 척 말없이 떠간다
조각 꿈
이 곡
살기 팍팍한 세상 장사나 할까 마음 먹고 장삿길로 나섰다 옹기 한 짐 사서 지개에 짊어지고 나선 유월 염천 고갯마루 정자나무 밑에 지개 고아놓고 깜빡 잠 들었는데
"옹기를 다 팔면 병아리 사고 병아리가 커서 알 낳고 하면 강아지 사고 강아지가 큰 개 되면 팔아 돼지를 사야지 돼지가 새끼 낳아 늘면 팔아 송아지 사서 큰 소가 되면 새끼 낳고 새끼가 새끼 낳으면 큰 목장을 해야지 드넓은 초원에 방목을 하면 금방 큰 부자가 될꺼야 그러면 이쁜 색시 얻어 고래등 같은 집 짓고 아들 딸 낳아 행복하게 살꺼야 " 다리 쭉 뻗는 순간, 와장창 깨어지는 소리에 놀라 눈 떠 보니 다리에 걸려 지개는 넘어지고 옹기는 산산이 깨어져 까만 조각들만 흩어져 나뒹굴어 있지 않는가
이슬 앉은 풀잎
이 곡
순간의 이별이 서럽다 울지를 말아라
한 방울 눈물에도 익사할 것 같으니
한 시절 남아 있는 가슴 또 만날 날을 위하여
못 만나거든 실컷 울어라 이른 새벽 님 오실 길섶에 나그네 발목이라도 잡으며
<약력>
▲1951년 경북 안동 출생. 본명 이세진. ▲달성시인대학 수료. ▲박재삼문학제 시부문 수상. ▲대구문인협회, 달성문인회 회원 ▲<사림시>동인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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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시총서]<시향만리>(2010.6집)< 한국시특집>김청수 시-'마른 연밥 앞에 앉아' 외2편
마른 연밥 앞에 앉아
김 청 수
책상 위 연필통에
꽂혀있는 마른 연밥
詩를 쓰라고
시린 겨울바람 소리로 운다
하늘 높이 빳빳이 고개 쳐들고
새벽이슬에 순정을 다 바친
지금, 차디찬 겨울바람 앞에 서걱거림으로
누구나 한 시절 푸르지 않았던 生이 있으랴
남평문씨 할머니
김 청 수
남평문씨 할머니가
18살 선산 김씨 가문에 출가하여 죽는 날까지
혈혈단신 신랑을 기다리다 떠나간
그 빈집 앞마당에 들어서면
먼지 쌓인 채 걸려 있는 슬픔이
곳곳에 묻어 있다, 왠지 모르게
그 옛날 할머니의 서간체 편지글을
화장실 갈 때 똥 닦기로 쓴 기억이 있다
비에 젖은 흙돌담은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쓰러지고
고철 붙이는 고물장수가
싹 업고 간 지 오래
사랑방에 빗물이 스며든 젖은 벽지가
갓 허물을 벗기 시작하고
덜컹거리며 달린 문짝들이며
배고픈 아궁이가 입을 쩍 벌린 채
떠나고 없는 주인의 손길 기다리는
열기는 식었지만
비에 젖은 흙냄새가
내 기억의 촉수를 더듬어
훨훨 타오르게 한다
히말라야 나무의 심장 소리 듣던 밤
김 청 수
하얀 안전모에 붉은 조끼를 걸친 무리가
기계톱을 휘두르며 떠나간 자리
목이 잘린 히말라야 가로수 허연 피를 토해놓고
가지마다 달린 둥근 눈알이 퉁퉁
도로 위에 튕겨 오른다
바람에 일렁이며 춤추던 잎이며
가지마다 둥지 턴 새들의 합창 소리도
이젠, 허공의 메아리일 뿐
잠시 우주공간 생멸을 따라 흘러가는
시가 되지 못한 문장들을 붙들고
언제까지 몸부림쳐야 하는가 하얗게
겁에 질린 히말라야 나무의 심장 소리 듣던 밤
春雪은 하얀 눈꽃으로 피어났다
<약력>
▲1966년 경북 고령 개실마을 출생. 호 범관(範官)
▲한국문인협회 고령지부 회원
▲대구문인협회 회원
▲달성문인협회 회원
▲태화문학동인
▲시집 『 개실마을에 눈이오면』(2005.만인사), 『 차 한 잔하실래요 』(2007.만인사),
『 생의 무게를 저울로 달까』(2008, 창작과 의식)
주소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 138-1번지
태왕리더스 107동 1003호
휴대폰 010-6646-5832
이메일 chng66@hanmail.net
[연변시총서]<시향만리>(2010.6집)< 한국시특집>이민영 시-'이성(理性)에 대하여' 외2편
이성(理性)에 대하여
이 민 영
우주는 그대가 아닌 그대를 덮는 이불이다
우주가 아침 일찍 서산에 서성이는 것은
그대가 아닌 세상의 불을 재워주는 물 때문이다
우주는 찬 이슬로도
뚝뚝 이별을 흘리기도 하지만
그날 아침 억만 겁 셈틀속에 좌정하여
불창(佛窓)에 눕다간다
(물고기의 눈으로는 물을 볼 수 없다, 매일 마시는 공기인데도
고마움을 느낄 수 없었다)
태우는 적혈구의 모성 속에서도
숨 쉬지 못하는 사랑이여
여인 앞에 내내 부끄러운 세월
찻잎에 띄워보내는 그대의 이별이다.
밤에게
이 민 영
어둠이 밝지못한 것은
아픔만이 있어서가 아니다
하루가 모여 밤이 될무렵이면
토닥거려야할 작은 이야기까지
잠들지 못하고 뛰쳐 나온다
혼자란 그렇게 아까워하며 보내는 것인데
어느 순간부터 밤에 기댄 내가 되었다
칠흑 네모상자 안 어두움을 조망하는 별빛
나무 꼭대기,소망의 침엽이 가르키는 하늘에는 구름은 없고
자정은 알람처럼 표시된 한 자리에 머무는데
어두워질때 밤은 빛난다,
반짝이면서 겸허해진 잃어가는 상실이여
밤이 밝지않는 것은
어두음을 위한 인종의 빈곤을
대신 울어주는 어머니의 옷고름 같은 것이 아닌가
국어책은 밤에만 읽는다.
용서에게
이 민 영
너그럽다는 것에는 여유가 있을 것이다. 쉼없는 혈류의 노래가 한 박자 쉬어간다, 바지가랭이 제집 드나들듯 여름 바람은 시원했다. 고독한 밤에게는 함성이 없는 법이다 베푼다는 가슴의 소리만 있었다. 낮의 미간과 밤의 입술 사이엔 석양이란 것이 있어서 촉촉한 뒷산을 빛깔로 부시게 한다. 부신 빛깔이 갈 곳을 헤맬 때, 만질 수 없는 눈으로 대지를 안아볼 때, 퇴로가 막힌 추적자의 그대가 면벽에서 직진과 역주행의 판단 사이를 헤맬 때, 세월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생각이 부족하여 사랑하는 글조차 써지질 않을, 해를 보내는 십이월의 祭夜에, 사멸과 회생 사이에서 단정은 기우란 것, 밝은 것과 어두움의 이음새에는 파도처럼 흔들리는 기억의 그 것, 멈춤과 움직임 사이에 생존하는 뉴우톤의 만유인력, 여기 달콤한 육체의 S라인 마다 꿈틀거리는 발의 마당, 만남을 위하여 남겨진 인연도 하나 있어서 오밀조밀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차양 밑, 살아 움직이는 것과 살아있는 것이 오히려 힘들다는 것들 사이에는 상존하는 것, 너와 나 사이에는 자유로운 용서가 있었다, 헤어져 있어야하는 이별도 미련같은 약속이었다.
<약력>
▲1953년 전남 보성 출생.
▲월간「심상」으로 작품활동.
▲제1회 시사랑사람들 문학상 수상.
▲미디어다음 <시사랑사람들> 대표.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 상임시인.
[연변시총서]<시향만리>(2010.6집)< 한국시특집>문태성 시-'사랑 그네' 외2편*****
사랑 그네
문 태 성
그대와 난 두 뼘 구름판 위를 짝이되어 밟았어라.
숨 고르고 얼굴 마주보며 힘 주어 내리 누를 때 그넷줄도 흔들렸어라.
오르면 내릴세라 내리면 오를세라 우리 사랑은 한 몸이 되어 가슴속까지도 팔딱거렸어라.
꼭 잡은 손 마주 닿은 옷깃에 사랑도 우리를 놓칠까봐 밧줄에 매달려 하늘로 솟아 올랐어라.
허천(虛天)에서 우리 사랑은 날다가 미끄러져 새콤한 사랑이 되어 그만 숨이 멈추었어라.
어화둥둥 사랑
문 태 성
때로는 두 눈을 감으면 신명나는 사랑이 보인다.
버선발을 들고 장고 장단에 껴앉고 돌아가는 허리춤을 만지작거리는 춤사위가 어르댄다.
마치 꼬깃하게 꼬불친 할머니 쌈지주머니 같은 비밀스런 보재기 속에서 나오는 그런 사랑이 가물댄다.
어디보자 어화둥 안아보자 어여둥둥 끼고돌자 어우동동.
천상으로 날아가 버릴까 봐 꼭 안아주고 싶은 그런 사랑이 있다.
검정 고무신
문 태 성
미리 큰 걸로 사 왔던 까막 고무신 무지 질겼어 밑바닥이 다 닿도록 한 겨울에도 동무였지.
꽁꽁 언발을 녹이려다 불에 양말이 타들어 갔어도 훤히 보였지 친구의 마음 부저로 지진 구멍.
초등학교 운동회날 맨발로 달음박질하고, 실로 꿰멘 주인 표식 나만 알고 싶었는데 고무신이 먼저 반겨주었었지.
사랑방 댓돌에 마실 와서 정겹게 모여 아이들따라 누운 신발 자유로히 짝 맞춘 동심(童心).
호롱불 같이 흔들리던 어둡지만 훈훈했던 시절들을 언제 다시 만나랴 그 때 그 주인들.
*부저 : 화롯불의 불젓가락 *마실 : 동네에 놀러 감
<약력>
▲문태성(文台成), 1958년 강원 영월 출생, 아호 榮鹿 ▲정치학 박사 ▲2001년 문학공간 신인상 수상. ▲2010년 황희문화예술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모닥불문학회 회장. ▲시집 <동강 어라연>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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