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9일(월) 광주일보
정재영과 전도연이라는 한국 영화의 대표 남녀 배우가 주연한 영화 <카운트다운>은 전형적인 한국형 액션영화다.
태건호(정재영)는 5년전 장애인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해리성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채권추심원으로 살아가던 그는, 어느날 간암 말기 판정을 받는다. 10일 내에 간이식 수술을 하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상황. 그는 자신의 아들에게 심장을 기증받은 미모의 사기전과자 차하연(전도연)에게 간 이식수술을 받기로 하고 그녀와 거래를 한다.
영화는 얼핏 평면적인 액션물로 보이지만, 피아노를 치던 장애인 아들의 죽음에 관한 트라우마를 해결하지 못한 아빠로서 태건호의 모습은 영화의 요소요소에 등장하며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내러티브를 끌고가는 큰 축으로 활용된다.
태건호의 아들은 지체아로 태어났지만, 쇼팽의 음악을 연주하는 피아노에 특출난 재능이 있는 아이다. 영화의 전반부에는 쇼팽의 에튜드와 녹턴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영화의 절정은 태건호가 기억을 되돌려 아들이 죽은 순간을 기억하는 병원 시퀀스다. 그는 산소호흡기를 입에 물고 사경을 헤매던 순간,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을 떠올려내고,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에 휩싸인다.
아들의 목소리가 녹음된 카세트테잎을 듣는 태건호. 수없는 질문을 쏟아내는 아들의 녹음된 음성을 들으며 그 질문에 답을 해주기 위해 그는 스스로 산소호흡기를 떼어내고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 죽어가며 아들에게 해주지 못했던 대답을 하는 그의 모습은 처연하지만 아름다운 진짜 아빠의 모습이다. 이 안타까운 마지막 순간을 뒤덮으며 구슬프게 울리던 그 음악, 바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2악장이다.
쇼팽의 협주곡 2악장은 영화의 마지막까지 10여분에 가까운 아주 긴 시간 동안 클래식 음악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로 관객들을 감정의 사선으로 몰고간다.
쇼팽은 모두 두 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다. 실제로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2번 협주곡이 먼저 작곡되었으며, 소개하는 1번 협주곡이 더 후일 작곡되었다. 작품번호가 뒤바뀐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쇼팽 자신은 1번 협주곡을 훨씬 만족스러워 하였으며, 본인 스스로도 더 자주 연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협주곡에 역사적인 명연들이 많지만 가장 우선 순위로 추천하고 싶은 녹음은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침머만이 직접 폴란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녹음한 도이치 그라마폰 음반이다.
침머만은 거장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와 협연하여 이미 녹음을 내놓은바 있지만, 연주의 완성도와 깊이는 후자가 훨씬 앞선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내린 흐린 폴란드 거리를 거니는 것처럼 아주 진한 페이소스가 담겨있는 침머만의 연주는 애수의 그림자를 더욱 부각시키고 다른 연주와는 확연히 다른 액센트의 활용 덕분에 쇼팽의 음표들이 가슴에 날아와 박히는 느낌이다.
영화 속 태건호의 죽음위에 아름답게 흐르던 쇼팽의 선율, 어쩌면 아들의 영혼과 조우하던 순간, 그 마지막 순간에 가장 듣고싶은 선율이 아니었을까?
힘겹게 달려왔던 삶의 마지막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래도 한 평생 아름다웠노라고 추억케 할 수 있는 절정의 멜로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2악장 로망스다.
<독립영화감독/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