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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열왕기상3장1~15절
제목 : 솔로몬의 소원
솔로몬은 순리적으로 다윗의 유언대로 아도니아와 요압과 아비아달과 시므이를 제거하고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졌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일천 번제를 드린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그가 백성을 잘 다스리기 위해 구한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뿐 아니라 부와 영광과 장수의 복도 약속하십니다.
성전 건축 이전의 솔로몬 치세(1~3절)
1) 솔로몬과 바로의 딸과의 정략 결혼을 합니다(1절).
“[1]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
솔로몬이 애굽 왕 바로로 더불어 인연을 맺어. - 여기서 '인연을 맺어'에 해당하는 기본 동사 '하탄'은 '결혼으로 인척 관계를 형성하다'란 뜻으로서,
보다 구체적으로는 장인과 사위 관계를 강조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솔로몬과 바로의 딸과의 결혼이 국가적인 정략 결혼임을 강조하는 말입니다(Patterson).
이처럼 솔로몬은 내부의 적들을 제거한 뒤(2장),
외국과의 동맹을 통해 왕국을 강화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왕국 강화의 일환으로서 솔로몬은 정략(政略) 결혼을 통해 애굽과 동맹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바로 왕은 애굽 21대 왕조(Tanitic)의 마지막 왕으로서 35년간
애굽을 통치한 프수센네스 왕으로 추정됩니다(Ewald, Winter),
왜냐하면 다음에 이어지는 22대 왕조(Bubastic)의 초대 왕 쉐숑크(Sheshonk)는 르호보암 5년에 예루살렘을 침략했던(14:25) 시삭(Shishak)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적대적 관계인 22대 왕조 이전에 상호 동맹이 있었으리라고 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당시 애굽이 왜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으려 했는지 분명치 않으나, 당시 다윗과 솔로몬 치하의 이스라엘이 매우 강력했던 사실이 그 주요 이유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대국의 왕인 애굽왕들이 다른 국가에게 딸을 주는 일은 이례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딸을 취하고. - 솔로몬이 애굽 이방 여인과 결혼한 것 자체가 율법에 위배된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즉 일찍이 요셉과 모세에게서도 그러한 전례(前例)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창 41:45;민 12:1), 모세 율법에 명시 된 바 가나안족과의 혼인 금지 조항에 저촉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출 34:16;신 7:3).
오히려 율법은 전쟁 시에 취한 이방 여인과 결혼도 허용했습니다(신 21:13).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솔로몬의 결혼을 타락행위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부자연스럽습니다.
이는 후일에 솔로몬에게 우상 숭배의 악영향을 끼친 왕비들 중(11:1-7) 바로의 딸이 제외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해 보다 분명해집니다.
그런고로 본절은 다만 솔로몬의 위세가 바로의 딸을 취할 수 있었으리만치 강력했다는 점과 함께 이후 계속되는 이방 여인들과 결혼이 시작되었음을 소개하는 구절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무난합니다.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 여기서 바로의 딸이 자신을 위한 궁(宮)이 지어지기까지 임시적으로 거주한 '다윗 성'(이르 다윗)은 일찍이 요새화된 고대 예루살렘성을 가리킵니다.
이는 여호와의 궤가 위치한 영역으로 보이는 '다윗 궁'(베트 다윗)과는 구별되는데, 이러한 사실은 대하 8:11의 언급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즉 역대하 8:11에 따르면, 바로의 딸은 다윗 궁에 거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궤(법궤)가 안치된 장막이 다윗 궁 안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다윗 궁은 특별히 거룩한 곳으로 선포되었고, 따라서 솔로몬은 이방 여인인 바로의 딸이 그것에 거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바로의 딸은 다윗 성으로 불리워 예루살렘성에 거주하기는 했지만,
다윗 궁 안에 거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중 궁전공사가 필역된 후, 솔로몬은 바로의 딸을 위해 지은 궁으로 그녀를 인도했던 것입니다(9:24).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 - 솔로몬은 즉위 4년 즉 B.C. 966년경에 성전 건축을 시작하여,
즉위 11년 B.C. 959년 경에 완공하였습니다(6:1,38).
이처럼 7년에 걸쳐 성전 건축을 필역한 다음 솔로몬은 바로 궁전 건축에 착수하였습니다.
즉 솔로몬은 즉위 11년 즉 B.C.959년에 궁전 건축을 시작하여 즉위 11년 즉 B.C. 946년에 궁전 건축을 완공하였습니다.
따라서 궁전 건축에는 13년이 걸렸습니다(7:1).
결국 솔로몬의 주요 건축 공사는 도합 20년의 세월에 걸쳐 완공되었습니다.
2) 성전 건축하기 전까지는 산당에서 제사 하였습니다(2절)
“[2] 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성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혹자는 본절의 산당(山堂) 제사를 백성들의 종교적 결함으로 해석합니다.
그런데 원문을 순서대로 번역하면 '다만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전이 아직 건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본절의 의미는 아직 유일한 제사 성소인 성전이 없었으므로 백성들이 불가피하게 산당 제사를 했던 당시 형편을 알리는 것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이런 점에서 여기 '산당'(바마)은 우상 숭배 장소인 가나안 족속들의 산당과는 구별되는 곳으로, 단순히 제사와 기도의 장소일 뿐이었습니다(Keil).
드보(De Vaux)는 당시 산당의 형태는 흙무덤 같은 작은 언덕이었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하나의 '제단'(미즈베아흐)으로 구성되었지만, 때로는 제단 곁에 여러 개의 부속 시설을 갖추는 등 꽤 정교하게 구성된 산당도 있었다고 전합니다.
한편, 이처럼 솔로몬 시대에 산당 제사가 보편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엘리 시대에 블레셋 족속들에게 법궤를 탈취당한 이후(삼상 4:11),
그 법궤가 실로 놉(삼상 21:1-9) 기브온(대상16:37-40) 예루살렘(삼하6:16) 등으로 옮겨 다닌 결과 백성들은 제사의 구심 장소를 상실하고 각자 나름대로 산당을 만들어 제사드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3)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습니다(3절)
“[3]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 율법의 첫째가는 계명은 여호와를 사랑하는 일입니다(신 6:5;30:16;마22:37;눅 10:27).
*신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30:16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마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눅10: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솔로몬의 번영과 업적은 이처럼 여호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율법에 순종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2:3).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 다윗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도록 특별히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입니다(8:16).
그리하여 다윗은 그 자신의 시대를 넘어 이스라엘 역사 내내 그의 가치를 인정받아, 향후 이스라엘 모든 왕들이 따라야 할 의(義)의 척도로 등장합니다.
그런고로 백성들은 하나님을 다윗의 하나님으로 알았고, 이후 이스라엘 왕들은 축복을 받으리면 다윗의 행함을 본받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PEB;9:5;왕하 20 :5;대하 21:12).
결국 본 절은 솔로몬 치세의 번영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 대부분이 주석가들이 본질을 부정적의미로 해석합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정복 당시 여호와께로부터 가나안 족속의 '산당'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받았고(민 33:52), 이후 열왕기에서 '산당'은 우상 숭배와 밀접히 관련된 부정적 의미로 나타남을 기억할 때 그것은 타당합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역사의 황금기를 회상하며 기록했을 열왕기사가는 여기 본절에서 솔로몬 왕국의 번영 이유와 타락 이유를 나란히 기록했음직도 합니다.
그러나 당시 여호와의 성전이 지어지기 전이고(2절),
다음 장면에서 산당은 솔로몬이 여호와께 지혜를 받는 긍정적 장소로 나타나는 점을 고려할 때(4-15절),
아직 지나치게 부정적 의미를 부여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다만 위험한 가능성을 가질 뿐입니다.
그 위험의 가능성은 다음 두 가지입니다.
즉 여호와의 유일 중앙 성소 명령(신 12:5-14,18 ,21,26)을 소홀히 할 위험성과 산당을 중심으로 드려지는(신 12:2,3) 가나안 족속의 우상 숭배 행위를 본받을 위험성입니다(Patterson).
그런고로 여호와의 성전이 완공된 이후,
이러한 산당은 전혀 불필요했고 또한 결코 합법적이 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철저한 파괴의 대상이 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과 통치자들은 너무나 오래도록 산당 제사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선왕(善王)들 조차도 산당을 훼파하는 데 소홀히 했으며, 이로 인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당으로 말미암아 우상 숭배 행위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2.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4~9절)
1)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4절)
“[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기브온...산당이 큼이라. - '기브온'(Gubeon)은 예루살렘 북서쪽 약 10km지점에 위치한 해발 722m 가량의 이스라엘 중부의 주요 성읍입니다(수 9:3;10:2;18:25;21:17;삼하 21:1).
가나안 정복 후 처음 이곳은 베냐민 지파에게 분배되었으나(수 18:25),
후에 레위 지파의 성읍으로 구별되었습니다(수 21:17).
이곳 기브온의 산당이 특별히 유명하게 된 것은 사울의 놉(Nob) 제사장 학살 사건(삼상 22:11-19)이후 놉에 있던 여호와의 장막이 기브온으로 옮겨지고 나서 부터였습니다(대상 16:39;대하 1:3).
즉 그 때 이후로 여호와의 장막(모세의 장막)이 있는 기브온과 여호와의 법궤(언약궤)가 있는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2대 제사 중심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한편, 즉위 후 솔로몬은 '일천 번제'라는 대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놋단'이 있는 기브온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하고, 신하들과 백성의 대표들을 이끌고 기브온으로 올라갔던 것 같습니다(대하 1:2-6).
그 제단에. - 기브온 산당의 모세 성막(출 27:1-2;38:1,2) 안에 있던 놋 제단을 가리킵니다(대하 1:3-6).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 일천의 숫자가 횟수인지 양(量)인지 분명치는 않으나 어느 쪽이든 엄청난 규모임엔 틀림없습니다.
솔로몬은 백성들에 대한 통치를 시작하기 전 무엇보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정립하기 원했습니다.
따라서 솔로몬은 신하들과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모두 이끌고 기브온 산당으로 올라가 자신과 백성들을 하나님께 전적 헌신하는 하나의 신상 고백으로서 '일친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과 이스라엘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한편, '번제(올라)는 희생제물을 통째로 제단 위에서 불사르는 제사로서,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 정립을 원할 때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기를 원할 때 누구든지 자발적으로 드릴 수 있는 자원제입니다(레 1:3).
그러므로 솔로몬도 이러한 목적으로 그의 통치 초기에 왕 개인과 이스라엘 공동체의 헌신을 위하여 이처럼 기브온 산당에서 이 '올라'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특기할만한 사실은 무엇보다도 그 규모면에서 '일천 번제' (엘레프 올로트)라는 전무후무성인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전적헌신의 징표일 뿐 아니라, 즉위 초 솔로몬의 강렬한 헌신과 순종에의 열의가 반영된 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혹자는 이 제사 제물들을 힘껏 드린다 할지라도 최소한 칠 일 또는 팔일이 소요된다고 보았습니다.
여하튼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은 신하가 군주에게 예물을 바치는 것처럼 충성과 헌신의 표시로 생각되었습니다(시68:18).
그러므로 일천 번제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으로 믿고 모시는 솔로몬과 백성들의 신앙 고백 행위인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합니다(5절).
“[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꿈에 나타나시니라. - '나타나셨다'(니레아)는 말은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의 뜻을 계시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형체를 구체적으로 보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한편 '꿈'(할롬)은 특히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밝혀 주는 특별한 계시 방편으로 자주 등장합니다(창 15:12;28 :12;욥 33:15,16;마 1:20-23;2:12).
내가 네게 무엇을 출꼬 너는 구하라. -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솔로몬의 강렬한 헌신인 일천 번제에 이어 발생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희생 제물을 기쁘게 받으셨음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통해 큰일을 하시고자 했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솔로몬의 일천 번제는 이제 시작될 통치에 대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청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Keil).
따라서 솔로몬에게는 여호와의 뜻에 부합될 정당한 간구를 할 만반의 채비가 갖추어져 있었습니다(마 6:33;7:7;약 4:3).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약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3) 솔로몬은 자신의 소원을 말하기 전에 먼저 이미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6절)
“[6]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이처럼 과거에 이미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기억하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은 모든 간구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 자세입니다.
성실과 공의(公義)와 정직한 마음. -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것은
원래 하나님의 속성 입니다(신 32:4).
*신32:4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 다윗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을 수 있었던 2대 비결입니다.
즉 다윗은 하나님과 함께(cum Deo),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행하였기 때문에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고, 백성들을 통치할 수 있었습니다다.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 '큰 은혜'(헤세드 가돌)의 문자적 의미는 '크신 친절'(great kindness) 또는 '크신 긍휼'(great mercy)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미 베푸신 것들은 다만 행한 대로의 보답이 아닌 오직 은총일 따름이라고 솔로몬은 겸손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헤세드)는 보통 '언약'과 같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8:23;신 7:9,12;느 9:32;단 9:4;미 7:20 등).
즉 언약 관계 하에서 주어지는 친절, 사랑, 긍휼, 호의 등이 바로 은혜('헤세드')인 것입니다.
이런 맥락 하에서 특별히 여기서는 당신의 언약을 따라 다윗 가문을 선택하셔서 영구한 왕위를 주신 하나님의 크신 호의를 의미합니다(1:48;2:4,45;대하1:8,9).
*1:48 “또한 이르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내 왕위에 앉을 자를 주사 내 눈으로 보게 하셨도다 하셨나이다 하니”
*2:4,45 “[4]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45]그러나 솔로몬 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왕위는 영원히 여호와 앞에서 견고히 서리라 하고”
4)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됐으나 부족함을 고백합니다(7절)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종은 작은 아이라. - 주석가들은 이때의 솔로몬의 나이를 보통20세 전후로 봅니다(B hr , Keil 등).
그러나 여기서 솔로몬의 이 고백은 반드시 나이의 문제라기보다는 솔로몬의 자기 겸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수많은 백성을 통치해야 하는 책임의 막중함에 비해 자신의 경험 미숙과 연약함을 절실히 느끼고 고백하는 말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의 소명에 임하는 인물들은 대개 이와 같이 자신의 부족함과 부적격함을 토로하고 있습니다(출 3:11;삿 6:15;렘 1:6,7 등).
그러나 이것은 도리어 그 임무가 하나님의 능력에 전적 의존되어 있음을 보존합니다.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 '출입하다'( 야차 와보)란 말을 직역하면 '나가고 들어오다'(go out and come in)란 뜻인데, 이는 곧 맡은 바 자신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키 위하여 공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성경의 관용적 표현입니다.
따라서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한다'는 솔로몬의 말은 왕으로서 어떻게 백성들
을 성공적으로 잘 다스려야 할 지 모르겠다는 말입니다(민 27:17;신 28:6;31:2;삼상 18:13;시 121:8).
5) 백성이 많아 수효를 셀 수도, 기록할 수도 없습니다(8절).
“[8]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주께서 택하신 백성. -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중에서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신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로(신 7:6), 직역하면 "주께서 선택하신 주의백성"이란 의미입니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이 말은 일찍이 조상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회상하며 한 말입니다(창 13:16;15:5;22:17).
한편, 솔로몬 당시의 인구가 얼마였는지 확실치 않으나, 다윗이 그의 말년에 인구 조사를 실시했을 때 20세 이상의 성인 남자만 130만 명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삼하 24:9).
*삼하24:9 “요압이 백성의 수를 왕께 보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 명이었더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그 후손들로 '땅의 티끌'(창13:16), '하늘의 뭇별'(창15:5), '바닷가의 모래'(창22:17) 같이 많이 번성하도록 축복하겠다고 약속하신 바 있었습니다.
6) 듣는 마음을 주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9절)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 '재판하다'(솨파트)는 성경에서 주로 '다스리다'로 번역되었습니다(삿 12:11;삼상 8:5,20).
왕정(王政) 시대 이전에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사사(士師)들의 임무는 재판관(쉐파트, '사사'로 번역됨)으로서 사회의 각종 분규를 매듭짓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왕정 시대에 들어와서도 재판은 통치의 주된 기능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실제로 고대 국가의 왕들은 통치자인 동시에 최고 재판관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 지혜를 받은 후 솔로몬이 한 통치의 첫 업무는 재판이었습니다(16절 이하).
그리고 그 재판이 곧 왕의 권위를 인정받게 하였습니다(28절).
듣는 마음. - '듣는 마음'(레브쇼메아)은 곧, '지혜로운 마음'입니다.
그런데 '듣다'란 동사 '솨마'는 '복종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루터(Luther)가 이를 '순종하는 마음'으로 번역한 것은 의미가 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智慧)'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잘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데서 얻는다고 보기 때문입니다(시 119:97-99;잠 2:6-9).
여하튼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올바르게 통치하고 재판하기 위해 요구되는 총명과 분별력을 구했습니다.
선악을 분별하게. - 통치자로서 백성들의 제반 문제에 대해 '옳고 그름'을 잘 재판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만일 통치자가 백성들 사이의 제반 문제에 대해 시시비비를 옳게 가려 주지 못한다면, 그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대리자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자격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무엇보다 통치자로서 백성들을 잘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는 '지혜로운 마음'을 구했던 것입니다.
한편 솔로몬이 구한 이러한 지혜는 결코 사색적이고 추상적인 지혜가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지혜로서, 그 일례가 16-28절의 판결 속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3. 솔로몬의 간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10~15절)
1) 솔로몬이 지혜를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들었습니다(10절)
“[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주의 마음에 든지라. - 직역하면 '주의 눈에 좋았다'란 뜻입니다.
즉 솔로몬은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의 택한 백성을 맡아 다스릴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참된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무엇보다도 올바른 통치와 재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혜를 요청했기 때문입니다<9절>.
2) 솔로몬의 구함이 주의 마음에 맞았습니다(11절)
“[11]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 직역하면 '주의 눈에 좋았다'란 뜻이다.
즉 솔로몬은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의 택한 백성을 맡아 다스릴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참된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무엇보다도 올바른 통치와 재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혜를 요청했기 때문입니다<9절>.
3)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었습니다(12절)
“[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원문에는 본절의 초두에 '보라'(힌네)란 말이 있어 하나님의 응답이 생생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Keil).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 후일 역대기 기자는 하나님의 이 약속이 역사 속에서 그대로 성취된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대상 29:25;대하 9:22).
4)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하지도 않은 부귀와 영광도 주었습니다(13절)
“[13]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 이스라엘 역사에서 부와 영광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잊은 채 그 자체를 목적으로 구하는 자들에게는 엄중한 경고가 내려졌습니다(신8:17;삼하12장;사10:3;렘 5:27;겔 7:11;호 12:8;미 6:12).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것이 우선되면(10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여타 모든 것을 더해 주십니다(마 6:32, 33;약 1:5).
*마6:32,33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약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5)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네 날을 길게 하리라(14절)
“[14]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 다윗의 행적은 후대 역사가들에 의해 열왕(列王)들의 선악을 판별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9:4;15:11 등).
그런데 후일 솔로몬의 행적은 다윗의 기준에 못 미쳤던 것으로 판정되고 말았습니다(11:4,6).
법도와 명령. - 하나님의 모든 율법과 교훈을 강조하여 지칭하는 증언법적 표현입니다. 2:3;신 4:1 주석 참조.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 간구한 대로 솔로몬이 총명한 지혜를 받을 수 있었고, 덧붙여 수(壽)와 부(富)와 권세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따라 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3절).
따라서 솔로몬이 이후 계속해서 그 같은 지복(至福)의 상태를 누리려면,
변함없이 즉위 초기와 같은 순수하고 경건한 신앙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솔로몬은 말년에 이를수록 점점 여호와의 길로부터 벗어나 타락하고 말았습니다(11:9-13).
그 결과 솔로몬은 "네 날을 길게 하리라"는 여호와의 축복을 받아 누리지 못했습니다(Keil, Hammond).
왜냐하면 구약 시대의 관념상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은 비단 영적인 의미 뿐 아니라 보다 실제적인 의미를 지녔다는 점에서, 솔로몬이 60세 안팎의 나이로 죽고 말았다는 사실로 미루어 결코 그가 장수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6) 솔로몬이 하나님께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잔치를 하였습니다(15절).
“[15] 솔로몬이 깨어 보니 꿈이더라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모든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하였더라”
솔로몬이 깨어보니 꿈이더라. –여기서 '꿈'(할롬)은 일반적인 평범한 꿈이 아니라, 특별한 꿈으로서 곧 하나님이 주신 꿈이요 그 꿈을 통한 계시였습니다.
즉 구약 시대에 이러한 꿈은 외부의 변화 없이 인간 내면의 사고 작용과 감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계시 방편이었습니다(창 20:6;삼상 28:6;단 2:4).
*창20:6[아브라함,아비멜렉.사라]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삼상28:6[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찾다]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단2:4[[느부갓네살의 꿈] “갈대아 술사들이 아람 말로 왕에게 말하되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왕께서 그 꿈을 종들에게 이르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하는지라”
따라서 이러한 꿈을 꾼 자는 꿈을 깬 이후에도 꿈의 내용을 생생히 기억할 수 있었으며, 또한 자신의 꿈속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일찍이 야곱(창 28:10-22=야곱이 벧엘에서 꿈을 꾸다),
요셉(창 37:5-11=요셉과 형제들, 해와 달과 열한별이 요셉에게 절함),
바로(창 41:1-7=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하다)도 이 같은 꿈을 꾸었었습니다.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잔치하였더라. - 기브온 산당의 제사를 모두 마친 후 솔로몬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법궤가 있는 시온 산 제단에서 새로 번제와 수은제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기브온에서 와는 달리 예루살렘에서는 특별히 수은제(쉘라밈)가 추가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수은제(酬恩祭)는 곧 레 3:1-17; 7:11-21,28-34에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화목제'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것은 감사를 표시하는 제사입니다.
즉 솔로몬은 기브온의 일천 제사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과 약속을 얻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 마자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이 화목 제사에 쓰인 제물들은 신하들과의 잔치에 사용되었을 것입니다(레 7:15,31;삼상 2:16).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 다윗 통치이후 솔로몬 성전이 완공될 때까지 이스라엘에는 두 개의 장막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기브온에 있는 원래의 장막이고(대하 1:3),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의 시온 산 위에 있는 임시 장막입니다(삼하 6:17).
그런데 기브온 장막은 원래 모세의 장막과 같은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는 있었지만, 여호와의 궤(법궤, 언약궤)가 없었습니다.
반면 시온 산 위의 장막 속에는 여호와의 궤가 안치되어 있었지
만, 온전한 장막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즉 두 개의 장막이 불완전한 상태로 유지되어 왔던 것입니다.
이에 따라 다윗시대에는 사독과 아비아달이 양쪽에서 이중으로 대제사장직을 수행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은 왜 언약궤와 장막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지 않았을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영구한 여호와의 성전 건축 계획이 있었으므로,
무리하게 한 쪽을 철회시키지 않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연유로 인해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제사를 필한 후, 예루살렘의 시온 산에 있는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응답에 대한 감사와 헌신의 표시로서 새롭게 번제와 수은제를 드린 것입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애굽과의 혼인 관계는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적법한 왕이고, “솔로몬의 손에 나라가 견고히 서 있음”(2:46)을 확인해 줍니다(1절).
이것은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요청하여 왕위를 노리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것(2:13~25)과 대조됩니다.
스스로 왕위를 넘보지 않을 때, 하나님은 “작은 아이”(7절)가 상상할 수도 없던 왕위를 맡기셨고, 날로 견고해져 가는 나라를 출범하게 하셨습니다.
2) 성전이 건축되기 전이기에, 왕과 백성은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2,3절).
산당이 우상숭배의 잔재라고 해서 솔로몬이 우상을 의지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했고 다윗의 유언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문제는 애굽과의 혼인(1절)이나 산당 제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사랑)을 지키지 못했기에,
훗날 애굽과 우상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그러니 생명의 중심인 마음을 사랑과 말씀으로 채워 잘 지키십시오.
3) 왕이 된 솔로몬은 하나님께 제사하는 일을 우선시합니다(4,5절).
많은 제물을 번제로 드리며 하나님을 향한 헌신을 다짐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통치가 내 삶에 실현되는 것이,
내가 사는 이유이고, 내 기도와 수고와 열망의 목표입니까?
4) 솔로몬은 왕의 자리가 선물이고, 그 역할을 감당하기엔 미숙하다고 고백합니다(6~8,14절).
이 백성도 자신의 야망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택함 받은 백성임을 알았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사명(사역)은 경외와 겸손을 통해 계승됩니다.
5) 솔로몬이 구한 것은 ‘듣는 마음’입니다(9~14절).
강력한 왕권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부귀와 장수와 승리가 아니라,
백성의 송사를 잘 듣고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합니다.
유명(有名)해지는 지혜가 아니라 유익(有益)을 끼치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지혜입니다.
내가 구하는 것이 내 믿음의 현주소입니다.
하나님이 내 소원을 물으시면 어떻게 대답하렵니까?
하나님이 내 기도에 흡족해 하실까요?
작은 기도지만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의와 뜻을 정직히 구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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