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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역대상11장1~19절
제목 : 충성으로 여는 나라
11장은 10장 마지막 절을 이어받아 다윗이 왕이 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사무엘서처럼 온 이스라엘 왕이 되는 복잡한 정치적 상황과 과정에 대한 언급은 생략되었고, 헤브론에서 온 이스라엘이 자발적으로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11장은 전체적으로 다윗이 왕이 된 이야기와 다윗의 용사 명단으로 이루어져 있스니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그가 여기까지 올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목숨을 걸고 그의 곁을 지킨 충성스런 용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 이스라엘 왕 다윗(1~3절)
이 단락은 사무엘하 5:1~3을 그대로 반복하면서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1) 다윗이 왕이 될 기본적인 자격이 있음을 인정합니다(1절)
“[1]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모여 다윗을 보고 이르되 우리는 왕의 가까운 혈족이니이다”
본절로부터 3절까지는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 지파의 왕이 되는 대관식 장면이다.
이처럼 본서 저자는 다윗 왕조에 관한 기록의 초두에서부터 다윗을 통일된 이스라엘의 왕으로 소개하고 있다.
즉, 본장 초두는 사무엘하에 기초하고 있으면서도 그곳에 나오는 다윗과 관련된 많은 기사를 생략한 채 곧바로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을 기술하고 있다.
본서에 생략된 다윗과의 관련 기사들을 살펴보면,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이 되는 장면(삼하 2:1-4). 다윗과 이스보셋 사이의 대치(삼하 2:8-32), 요압의 비 윤리적이고 야만적인 행위(삼하 3:27), 다윗의 범죄와 그의 집안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행위들, 다윗에게 임한 재앙들 등이 있다.
그런데 이처럼 저자가 본서에서 다윗 왕조의 부정적인 면을 생략하고 긍정적인 면만을 기록한 것은 다윗 왕조의 신정 국가적(神政國家的) 탁월성을 크게 부각시키기 위함이었다.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장 초두는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장면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모여 - 병행 구절인 삼하 5:1에서의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본절에서는 '온 이스라엘'로 표기되었다.
그런데 사무엘하에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는 틀림없이 유다 지파를 제외한 북쪽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그 문맥의 초점은 이스보셋(사울의 집)을 따르던 이스라엘 지파들이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여 다윗에게 나아올 수 밖에 없었던 사실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삼하 5:1-3 주석 참조.
반면, 본절에서 '온 이스라엘'은 언약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 전체(유다지파를 포함한)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Curtis).
이렇게 주장할수 있는 근거는
(1) 이스라엘이란 용어가 언약 공동체를 총칭(總稱)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2) 무엇보다도 본서 저자가 다윗의 7년간의 유다 지파 통치사(삼하 2-4장)를 지나쳐 곧바로 이스라엘 전체 통치사를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해석은 다윗 왕조를 신정 국가적 표상으로 다루고 있는 본서의 특징과도 잘어울린다.
한편, 헤브론(Hebron)은 이스라엘이 통일되기 이전 유다 왕조의 수도였다. 이곳은 예루살렘 남서쪽약 40km 지점으로서 옛날에는 기럇아르바(Kirjath-Arba)로 불리웠다(수 15:13). 삼하2:1 주석 참조.
우리는 왕의 골육이니이다 - 헤브론에 모인 온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왕이 되어줄것을 설득하는 장면이다.
즉 백성들은 다윗과 자신들 상호간의 혈육 관계를 강조하면서 다윗에 대한 자신들의 전적 신뢰를 표한 것이다.
더욱이 율법에는 신정 국가의 왕은 반드시 동족인(同族人)이어야 한다는 사실이 규정되어 있다(신 17:15).
때문에 이러한 율법 조항에 근거하여서도 백성들은 왕이 될 기본적인 자격이다윗에게 있음을 더욱더 강조한 것이다. 삼하 5:1 주석 참조.
2) 다윗이 왕이 되는 당위성으로 탁월한 지도력과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셨다는 것입니다(2절)
“[2] 전에 곧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입하게 한 자가 왕이시었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한 자 - 여기서 '출입하게 한 자'란 '지휘력(指揮力)이 있는 자', '전쟁에 나가 연전연승하는 자'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삼하 5:2 주석 참조.
이는 곧 온 이스라엘이 다윗의 탁월한 지도력을 내세워 다윗이 반드시 통일 왕국의 왕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두 번째로 표현한 것입니다.
사실 다윗은 이전 사울 통치하에서 탁월한 지도력으로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었으며(삼상 18:5-16) 심지어 사울왕의 후계자로까지 인정을 받았었습니다(삼상 23:17;25:30).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하셨나이다 -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야 할 세 번째 당위성입니다.
즉 신정 국가의 왕은 반드시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기름 부음 받은 자)라야 하였는데(신 17:15) 다윗이 바로 그러한 자였습니다.
다윗은 약 20년 전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기름부음을 받았었습니다(삼상 16:13). 때문에 그 같은 사실에 근거하여 백성들은 기필코 다윗을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왕으로 추대하려 한 것입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주권자가 되리라. - 본서 저자는 다윗을 진정한 목자이며, 주권자이신 여호와의 대리자로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해 한 목자를 세우리라는 예언은 역대기 저자의 동시대인들 특히 포로 귀환민들에게 있어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예언은 다윗의 자손 예수께서 자신을 목자라고 지칭하신 비유(요 10:11)를 통해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3) 헤브론에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삽습니다(3절)
“[3]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있는 왕에게로 나아가니 헤브론에서 다윗이 그들과 여호와 앞에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전하신 말씀대로 되었더라”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삼으니 - 이스라엘 사회에 있어서 제사장직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을 주무로 삼았다면, 장로직은 백성을 치리(治理)하는 일을 주무로 삼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신 21:18-21).
본절의 회집 광경은 마치 이스라엘 최고 회의 같은 묵직한 권위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다윗은 백성들에게 왕으로서 준수해야 할 일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하며 율법에 의한 규례대로 대관식을 거행합니다.
이 규례는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는 것으로, 기름 부음은 성별되었음을 의미합니다(출30:25-29).
이 같은 기름 부음의 의식은 신정 정치의 특성을 반영한 동시에(삼상24:6, 10), 신약 시대에 메시야가 받을 표징의 하나였습니다.
한편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음 받음으로써 메시야를 기다린 백성의 염원을 성취하셨습니다(행 10:38).
다윗이 그들과 여호와 앞에 언약을 맺으매 - 여기서 언약의 주체는 이스라엘이아니라 다윗인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언약의 성격이 쌍방적인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것임을 시사해 줍니다.
즉, 이 언약은 군주와 백성간의 합의에 의한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이 왕으로 지목하신 다윗을 무조건적으로 백성들이 자기의 왕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일종의 서약이었습니다.
이 언약에서 백성들은 다윗 왕에게 충성을 서약하였습니다(de Vaux).
이 언약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5:3 주석을 참조하라.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 다윗에게 있어서 이는 세 번째 기름 부음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사무엘을 통하여,
두 번째는 유다 지파의 장로들을 통하여 받았었습니다(삼상16:13;삼하 2:4). 삼하 5:3 주석 참조.
여호와께서 사무엘로 전하신 말씀대로 되었더라 - 이는 병행 구절인 삼하 5:3에는 나타나지 않는 구절로서 저자의 첨언(添言)입니다.
저자는 이 말을 통하여 다윗 왕조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 하에 세워졌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삼상 16:1-13).
2. 예루살렘 점령(4~9절)
이 단락은 다윗이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예루살렘을 정복한 이야기이며, 사무엘하 5:6~10의 내용을 바탕으로 일부는 삭제하고 일부는 첨가하고 있습니다.
1)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여부스를 점령하기 위한 전쟁을 준비합니다(4절).
“[4] 다윗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예루살렘 곧 여부스에 이르니 여부스 땅의 주민들이 거기에 거주하였더라”
다윗이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 이제 본절에서부터 9절에 이르기까지는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통일 왕국의 수도로 삼는 장면입니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5:6에서는 다윗 '왕과 그 종자들'만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본절에서는 다윗과 함께 '온 이스라엘'이 올라간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는 1절의 '온 이스라엘'과 같은 개념으로 본서 저자가 신정 국가의 새 수도인 예루살렘이 일부 정예 부대에 의해서가 아니라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 전체에 의해 정복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Curtis).
예루살렘 곧 여부스에 이르니 - 예루살렘(Jerusalem)은
(1) 온 이스라엘 지형의 중심부에 위치했으며
(2) 천혜의 방어 요새지였습니다. 그리고
(3) 충분한 수자원이 있었고(수 15:7, 8)
(4) 또한 상전 건축의 최적소(最適所)로 여겨졌습니다.
때문에 다윗 왕은 그의 즉위 초기에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통일 왕국의 수도로 삼고자 했습니다.
한편 여부스(Jebus)는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다윗 당시에 이곳에 여부스 족속(Jebusites)이 거주해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일 것입니다(Curtis).
이 여부스 족속은 여호수아 당시 유다 지파의 침공을 받고 예루살렘에서 일시적으로 물러났으나 다시금 돌아와 예루살렘을 차지하였습니다(수15:63;삿 1:21).
그 이후 거의 400년 동안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탈취해 오지 못하다가 다윗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탈취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본장 4-9절 강해, '예루살렘'을 보다 참조하라.
2) 다윗이 시온 산 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입니다(5절)
“[5] 여부스 원주민이 다윗에게 이르기를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나 다윗이 시온 산 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 이스라엘이 지난 400여년 동안 예루살렘을 점령하지 못한 사실에 근거하여 여부스 족속이 큰 소리를 치는 장면입니다.
사실 예루살렘은
(1) 가나안을 남북으로 연결시켜 주고 있는 '왕의 대로'(신 2:27)에서 떨어져 있었고
(2) 남과 동의 성벽은 가파른 언덕에 세웠으며
(3) 서쪽에는 깊은 골짜기가 놓여 있는 등 천혜의 방어 기지였기 때문에 외부의 적이 쉽게 공략할 수 없었습니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5:6에는 여부스 족속이 다윗을 향해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고 조롱한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본장에는 그 말이 생략되어 있는데 아마도 본서 저자가 그 말이 신정 국가의 왕 다윗의 영광을 깍아 내리는 것으로 생각하여 의도적으로 생략한 듯합니다. 삼하 5:6 주석 참조.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 시온(Zion)은 예루살렘 남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구릉(丘陵)의 이름입니다.
삼하 5:9에 의하면, 다윗은 이곳을 빼앗아 이곳에 거처하면서 다윗 성(the city of David)이라 이름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7절).
3) 여부스 사람을 친 사람은 스루야의 아들 요압입니다(6,7절)
“[6] 다윗이 이르되 먼저 여부스 사람을 치는 자는 우두머리와 지휘관으로 삼으리라 하였더니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먼저 올라갔으므로 우두머리가 되었고[7] 다윗이 그 산성에 살았으므로 무리가 다윗 성이라 불렀으며”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먼저 올라갔으므로 -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병행 구절인 삼하 5:8에 의하면 다윗의 군대 장관인 요압(Joab)은 수구(水口)를 통해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수구는 예루살렘 남동쪽에 있는 기혼 샘에서 남쪽 저수지로 흘러들어온 물을 성안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파놓은 수직의 갱도였습니다.
요압과 그의 부대원들은 이곳을 통과하여 예루살렘 성 안으로 잠입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 이후에 요압은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이 되었습니다. 삼하 5:8 주석 참조.
한편 스루야(Zeruiah)는 다윗의 이부(異父) 누이입니다. 삼상 26:6 주석 참조. 따라서 요압은 다윗의 조카인 셈입니다.
4)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두루 성을 쌓았습니다(8절)
“[8]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두루 성을 쌓았고 그 성의 나머지는 요압이 중수하였더라”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두루 성을 쌓았고 - '채우다'는 뜻의 '말레아'에서 파생한 '밀로'는 대체로 흙이나 돌로 쌓아올린 성채(城砦)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지나 그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예루살렘 성에 있어서 북쪽이 가장 취약 지구였다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이것은 북동쪽, 또는 북서쪽의 한쪽모퉁이에 위치한 성채였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Hertzberg, Keil, Lange, Rust).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밀로(Millo)를 중심으로 성벽을 보강함으로써 다윗이 외세 확장의 기틀과 여호와의 중앙 성소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입니다. 삼하 5:9 주석 참조.
요압이 중수하였더라 - 여기서 '중수(重修)하였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예하예'는 '살다'는 뜻의 '하야'의 피엘형(강의형 능동태)으로서 직역하면 '살게 하다', '재상하다'란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기존의 성을 '보수하다' 또는 '보강하다'(왕상 18:30)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5)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하므로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갔습니다(9절)
“[9]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만군의 여호와 - 이에 해당하는 '야웨 체바오트'는 '천군천사의 여호와'란 뜻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큰 권능과 위엄을 강조하는 신명(神名)입니다. 삼하 5:10 주석 참조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 '만군의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심의 결과입니다.
그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다윗이 사방의 열국들을 다 정복하고서 그 명성(名聲)을 널리 떨친 점을 들 수 있습니다(14:1-17;18:1-20:8).
이와 관련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5:10, 12 주석을 참조하라.
3. 충성된 용사들(10~19절)
이 단락은 10~47절까지 나오는 다윗의 용사들 명단의 일부분입니다.
10절은 서론이며, 11절에서는 용사의 우두머리 야소브암을 소개하고 12~13절에서는 세 용사 중 하나인 엘르아살을 소개하고, 14~19절에서는 다윗에게 물을 가져다 준 세 용사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 다윗의 용사들을 소개하기 위한 서론입니다(10절)
“[10]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우두머리는 이러하니라 이 사람들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다윗을 힘껏 도와 나라를 얻게 하고 그를 세워 왕으로 삼았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신 말씀대로 함이었더라”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두목은 이러하니라 - 본절에서 마지막 절까지는 다윗의 용사들의 명단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10-14절은 다윗의 첫 번째 세 용사에 관한 기록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들이 기록된 이유는 다윗이 왕위에 오르고 예루살렘에 도읍지를 정하는데 중요한 보조 역할을 하는 등 신정 국가 건설에 그들이 큰 공헌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러한 본문은 주로 삼하 23:8-39의 기록에 근거하고 있으니 참조하라.
이 사람들이...왕을 삼았으니...말씀대로 함이었더라 - 본절은 삼하의 기록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구절로서 저자의 해설적 첨언입니다.
한편, 여기서 '이는...말씀대로 함이었더라'는 구절은 여호와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이르신 말씀(삼상 16:1;삼하3:9, 18)을 지칭하는 구절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해당 부분의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2) 학몬 사람의 아들 야소브암(11절)
“[11]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수효가 이러하니라 학몬 사람의 아들 야소브암은 삼십 명의 우두머리라 그가 창을 들어 한꺼번에 삼백 명을 죽였고”
학몬 사람의 아들 야소브암 - 야소브암(Jashobeam)은 시글락에서 다윗과 합류한 자로서(12:6) 다윗의 상비군 중 정월반(正月班)의 반장이었습니다(27:2).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23:8에서 그는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벱이라고도 하고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하는 자'로 소개되었습니다.
여기서 '다그몬'은 '학몬'에 대한 필사자의 오기(誤記)이며 '요셉밧세벱'은 '밧세벱에 거주하는 자'라는 뜻으로 고유의 이름이 아닙니다.
또한 아디노는 야소브암의 별명이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삼하 23:8 주석 참조.
삼십 명의 우두머리라 - 여기서 30인이란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에 즉위한 직후 조직한 용사들로서 다윗의 신정 국가 건설에 큰 공헌을 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삼하23:24-39 주석 참조.
그런데 이러한 삼십인의 우두머리로 소개된 야소브암은 삼하 23:8에서는 왕의 호위병들을 지휘한 '군장'(솰리쉬)의 두목으로 소개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그가 창을 들어 한꺼번에 삼백 명을 죽였고. - 병행 구절인 삼하 23:8에서는 야소브암이 팔백 인을 쳐 죽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 혹자는 사본 상의 오류가있는 것으로 보고 삼하의 기록인 팔백 인을 정확한 기록으로 간주하였습니다(Payne,Curtis).
첫째 삼인에 미치지 못하는 둘째 삼인 중의 한 사람인 아비새가 삼백인을 죽
인 것을 볼 때(20절) 그 같은 주장은 상당히 타당성이 있습니다.
한편, 여기서 '한 때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파암 에핫'은 '한 사건 안에'라는 뜻으로 야소브암이 한번의 전투에서 올린 전과(戰果)를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즉 이 말로써 저자는 야소브암이 아비새보다 월등했음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습니다.
3) 세 용사를 소개합니다(12~14절)
“[12] 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도의 아들 엘르아살이니 세 용사 중 하나이라 [13] 그가 바스담밈에서 다윗과 함께 있었더니 블레셋 사람들이 그 곳에 모여와서 치니 거기에 보리가 많이 난 밭이 있더라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되[14] 그가 그 밭 가운데에 서서 그 밭을 보호하여 블레셋 사람들을 죽였으니 여호와께서 큰 구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아호아 사람 도도의 아들 엘르아살 - 첫 삼인 중 한 사람인 엘르아살(Eleazar)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아호아 사람(Ahohite)의 아들로서(8:4) 이만 사천 명으로 구성된 이월반(二月班)의 반장이었습니다(27:4).
그는 또한 야소브암, 삼마와 더불어 다윗의 '솰리쉬'(군장)로 활약하였습니다(삼하 23:8-12).
한편 여기서 '아호아 사람'은 가문의 명칭인지 아니면 지리적 명칭인지 분명치 않습니다.
그가 바스담밈에서 다윗과 함께 있었더니(12절) - 여기서 바스담밈(Pas-dammim)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잦은 전투를 벌였던 에베스 담밈(Ephes-dammim)을 가리키킵니다(삼상17:1).
그곳은 이스라엘과 블레셋 간의 국경 지대인 엘라 골짜기에 위치하였는데 과거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곳입니다.
그리고 이 지명의 뜻은 '피의 경계선'입니다.
한편, 13,14절은 삼하 23:9, 10에나오는 엘르아살의 전공(戰功)을 보충해 주는내용입니다(Payne, Lange).
물론 이 구절들 안에는 삼마의 전공에 관한 기록과 유사한 부분이 있긴 합니다(삼하 23:11, 12).
그러나 결정적으로 본 구절들은 엘르아살이 소개된 바로 다음에 이어지고 있으니 엘르아살에 관한 언급임에 분명합니다.
백성들이...도망하되 - 여기서 '도망하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누스'는 전투에서 패배하여 달아나거나 미리 겁을 먹고 도망한다는 의미의 말입니다(삼하10:14;왕상 20:30).
이렇게 볼 때 엘르아살은 쳐들어오는 블레셋 군대를 맞이하여 홀로 대처했던 것 같습니다. 삼하 23:9, 10 주석 참조.
그가 그 밭 가운데에 서서(14절) - 병행 구절인 삼하 23:10에 비추어 볼 때 여기서 복수형태인 '그가...서서'는 단수 형태인 '그가...서서'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럴 경우 '그'란 '엘르아살'을 가리킵니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23장에는 첫 삼인의 용사로서 야소브암과 엘르아살 외에도 삼마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본 문맥에서는 생략되어 있으니 삼마(Shammah)에 관해서는 삼하 23:11, 12을 참조하라.
4)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30인 부대의 일원인 세 명의 용사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15~19절)
(1) 삼십 우두머리 중 세 사람이 바위로 내려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을 쳤습니다(15절)
“[15] 삼십 우두머리 중 세 사람이 바위로 내려가서 아둘람 굴 다윗에게 이를 때에 블레셋 군대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삼십 두목 중 세 사람 - 이들은 둘째 삼인으로서 아비새, 브나야, 그리고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또 한 사람입니다(20, 21, 24, 25절).
즉 본절서부터 25절까지에서는 다윗의 두 번째 용사 삼인이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이들은 능력면에서는 첫째 삼인에 미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으나 다윗에 대한 충성심에 있어서만큼은 결코 그들에 뒤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16-19절).
바위로 내려가서 아둘람 굴 다윗에게 이를 때에 - 여기서 바위는 당시 다윗이 있던 아둘람(Adullam) 굴의 바위를 의미합니다.
즉 이들은 아둘람 굴 근처의 바위에서 다윗 왕을 배알(拜謁)한 것입니다.
한편, 아둘람 굴은 가드와 베들레헴 중간에 위치한 곳으로 가드 남동쪽 약 16km 지점입니다.
최근 한 고고학자는 이곳의 산중턱에서 약 400명 정도가 거처할 만한 동굴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아둘람'은 본래 '은신처'라는 뜻입니다.
과거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하여 이곳에 은신한 적이 있습니다(삼상 22:1, 2). 그리고 지금은 다윗 왕이 자신을 잡으러 온 블레셋에 대항하기 위해 이곳에 임시 본부를 차렸음이 분명합니다.
블레셋 군대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쳤더라. - 본절은 본 문맥이 다윗 왕의 즉위 초에 있었던 바알브라심 사건을 다루고 있음을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에도 블레셋 군대는 르바임 골짜기에 총 집결하였었기 때문입니다(삼하 5:17-25).
이 전투는 통일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의 세력이 크게 확장될 것을 우려한 블레셋 족속이 다윗 왕을 공격함으로써 발발되었습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23:13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르바임 골짜기(the valley of Rephaim)는 예루살렘 서남쪽에 위치한 골짜기로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지였습니다.
블레셋인들이 르바임 골짜기를 총집결지로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삼하 5:18 주석에서 상세히 언급하였으니 그곳을 보다 참조하라.
(2) 양 진영을 소개합니다(16절)
“[16]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은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다윗은 산성에 있고 - 이 산성은 아둘람 굴 근처에 있던 산성을 의미합니다.
당시는 다윗 왕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그는 이곳에 본부를 두었던 것입니다. 삼하 23:14 주석 참조.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은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 여기서 진영은 수비대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한편 블레셋 족속은 아마도 길보아 전투 때(삼상 31:1-7)에 베들레헴을 차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같은 블레셋인들을 완전히 격퇴시켰으니(14:8-17) 다시금 베들레헴은 탈환되었음이 분명합니다.
훗날 이스라엘이 남북 왕국으로 나뉘었을 때 르호보암은 베들레헴에 요새를 설치하였습니다(대하 11:6).
(3) 다윗이 갈망하여 우물 물을 원했습니다(17절)
“[17] 다윗이 갈망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꼬 하매”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 -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깊은 우물로부터 솟아나오는 이물은 시원하고 깨끗한 냉수였다고 합니다(Ritter).
이곳 베들레헴 태생인 다윗(삼상16:18)은 분명히 어려서부터 이 물을 마셨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당시 아둘람 근처의 물은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다윗 왕은 더욱더 이 물을 사모하게 되었을 것입니다(The Interpreter's Bible Commentary, Lange). 삼하 23:15 주석 참조.
(4) 이 세 사람이 블레셋 군대를 돌파하고 그 물을 다윗에게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 부었습니다(18절)
“[18] 이 세 사람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리고”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돌파하고 지나가서 - 여기서 '돌파하고 지나가서'란 말은 이들이 베들레헴에 주둔하던 블레셋 군대를 꿰뚫고 목적지로 나아갔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삼하 23:16, 17 주석 참조.
한편 혹자는 이와 관련 이들이 아마도 밤중에나 혹은 적의 부주의함을 틈타 블레셋의 방어선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Curtis).
마시기를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리고 - 다윗은 이처럼 용사들이 길어 온 물을 여호와께 전제물(奠祭物)로 부어드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물은 세 용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떠온 물로서 그들의 피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삼하 23:16, 17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한편, 당시 아둘람 근처에는 여호와의 제단이 있었을리 없었으니 다윗은 분명 그 물을 땅에 부어드리면서 여호와를 기억했을 것입니다(Lange).
(5) 세 용사의 용맹을 찬양합니다(19절)
“[19] 이르되 내 하나님이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이 사람들의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 하고 그들이 자기 생명도 돌보지 아니하고 이것을 가져왔으므로 그것을 마시기를 원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 - 다윗 왕은 용사들이 떠온 물 속에 그들의 생명이 담겨있음을 생각하고 이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피와 생명을 동일시한 히브리적 사고방식에 입각해서(창 9:4;레 3:17;7:26) 다윗 왕은 이들이 생명을 바쳐 떠온 물을 피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피를 먹지 말라'(레 17:10)는 율법의 조항과 '제단에 붓지 않으면 물같이 땅에 쏟으라'(신 12:16)는 조항을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때문에 그는 그 물을 마시지 아니하고 땅에 부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3절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십니다.
다윗은 그의 생애 동안 총 세 번의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맨 처음 사무엘에게(삼상 16장 13절), 그 다음은 유다 백성에게(삼하 2장 4절), 마지막은 온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기름부음을 받습니다(삼하 5장 3절).
목동 시절에 기름부음을 받은 이후, 통일 왕국의 왕으로 세워지기까지 그에게는 인고의 세월이 있었습니다.
그는 잘 인내하며 믿음으로 행했기에 반쪽 왕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울은 제 왕위를 염려하여 하나님을 불신하다 망했지만, 다윗은 스스로 왕위를 탐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옳은 일을 행하며, 바른 길을 걸었기에 하나님이 그를 왕위에 세우신 것입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4~8절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후 곧바로 예루살렘 성을 점령합니다. 그 땅은 여부스 주민에 의해 오랫동안 점유된 땅입니다.
예루살렘이 천혜의 요새이기도 하지만, 유다 지파도 나머지 지파도 점유하지 않은 중립 지역이기에 그는 통일 왕국을 지향하여 그 땅을 점령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점령한 다윗은 헤브론의 왕이 아니라 비로소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통치하게 됩니다.
이념과 교리와 욕심 때문에 나뉘고 분열하여 갈라진 우리나라와 민족, 또 이 땅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통치 아래 하나가 되도록 늘 기도합시다.
9~14절 다윗을 돕는 첫 그룹의 ‘세 용사’는 요압처럼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나라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충성은 단지 한 개인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향한 충성이었습니다.
15~19절 다윗이 블레셋과 대치하면서 무심코 내뱉은 말에 세 용사는 목숨을 걸었습니다.
다윗은 부하들의 생명과 맞바꾼 물을 마실 수 없었습니다.
다윗을 위해 몸을 바친 부하의 충성도 귀하지만, 그 충성을 당연한 것으로 받지 않은 다윗의 지도력도 귀합니다.
지도자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도, 성도의 헌신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귀하게 받는 지도자, 우리가 섬김과 사랑으로 견고하게 만들어가야 할 공동체입니다.
[기도]
공동체 말씀 안에서 서로 충성하며 사랑으로 격려하는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소서.
열방 최근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가정교회 단속으로 폐쇄되거나 파괴되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활동을 보호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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