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느헤미야9장1~8절
제목 : 참회의 고백
이스라엘 백성이 초막절이 끝난 지 이틀 후 7월 24일 한 날을 정해 백성들이 대대적으로 모여 성회를 갖습니다.
모인 시간의 절반은 율법을 읽고, 절반은 엎드려 자복하고 참회합니다.
지금까지 율법을 깨닫도록 도움을 준 레위인들도 이 대열에 합류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소리 높여 여호와를 송축한 후,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회고합니다.
이를 통해 백성들은 한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며, 다른 한편으로 그 크신 은혜를 저버린 조상들과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합니다.
.
1. 유다 백성의 참회(1~3절)
1) 회개(1~2절)
(1) 초막절 집회가 끝난 직후 곧 바로 금식 성회를 개최합니다(1절)
“[1] 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 '스무나흗 날'은 초막절 행사가 완전히 끝난 22일의 이틀 후였습니다.
따라서 여기 언급되는 백성들의 회집(會集)은 초막절 행사와는 관계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백성들이 다시 모인 것은 하나님께 대한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칠 월 초하루 날에 죄를 인하여 슬피 울기는 했지만(8:9), 나팔절과 초막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온전한 회개를 할 수 없었습니다(8:9,10).
따라서 에스라는 중요한 절기들이 지난 한 날을 택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철저한 회개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한 것입니다.
금식...굵은 베...티끌. - 이것은 죄의 자각(自覺)으로 인한 애통한 마음의 외적인 표시입니다(Fensham).
죄의 회개와 관련하여 금식만 언급되는 부분은 삼상 7:6,
굵은 베옷을 입고 우는 경우는 창 37:34과 왕상 21:27,
그리고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는 것은 삼상 4:12등 입니다.
(2)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신의 죄와 조상의 허물을 자복합니다(2절)
“[2]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 여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어 왔습니다. 거기에는
⓵ 본장이 에스라 10장 다음에 놓여져야 한다고 보고 여기의 '절교'가 이방 여인들과의 집단적 이혼 사실(스 9,10장)을 가리킨다고 하는 견해(Rudolph, Myers),
⓶ 여기에는 상세한 언급이 생략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본절의 '절교'는 그때에 백성들이이방 여인들을 내어 보냄으로써 실제로 이루어졌었다고 보는 견해(Keil),
⓷ 통혼(通婚)으로 인한 문제와는 무리한 것으로 보고, 여기의 '절교'는 사업상으로 친교를 갖던 이방인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기로 헌신, 결단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하는 견해(Rawlinson, Schultz, Kidner),
⓸ 그 당시에 자격이 없는 이방인들이 초막절 행사 등에 참여했었던 것으로 보고. 본절의 '절교'는 백성들이 '금식...굵은 베...티끌 등을 함으로써 이방인들이 그것을 견디지 못하여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갔다고 하는 견해(Batten)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첫째, 성경의 한 부분을 충분한 증거가 없이 떼어내어 다른 부분과 연결시키는 것은 극히 위험하며
둘째, 이방 여인을 내어보내는 일이 단 하루 혹은 2,3일 만에 이루어질 수는 없었을 것이며
셋째, 그 당시에는 예루살렘에 사업상 상주하던 이방인들이 있었다(13:16)는 점 등으로 볼 때, 위의 네 견해 중 세 번째의 것이 가장 타당한 듯합니다,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 이와 같이 죄에 대한 책임의 연대 의식은 구약에서 종종 발견됩니다(시 106:6).
이러한 연대성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와 언약을 맺으셨다는 사실에 기반을 둡니다.
그리고 실제로 본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상들의 죄로 인한 고통을 여전히 받고 있었습니다(1:3).
이 같은 사실은, 조상들의 죄가 후손들과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에 대한 긍극적 책임은 엄연히 각 개인에게 있습니다(겔 18장 주제 강해, '조상의 죄에 대한 책임의 연대성과 개별성' 참조).
한편, 본장 내용 중 '자기의 죄'는 33-37절에 그리고 '조상들의 허물'은 16-7절에 각각 언급됩니다.
2) 율법 낭독(3절)
“[3] 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낮 사분지 일. - 고대 유대인들은 하루를 밤과 낮의 각 사등분씩 팔등분(八等分)했습니다.
본절의 '낮 사분지 일'은 오전 6시부터 9시까지를 가리킵니다.
그 제자리에 서서...율법책을 낭독하고. - '율법책을 낭독하고'는 백성들이 직접 '율법책'을 읽은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에스라가 높은 강단위에서 낭독하면(8:3,4) 백성들 중간 중간에 위치했던 레위인들이 백성들의 상용어인 아람어로 번역해주는 것으로 봄이 무난합니다(8:7,8).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 여기의 '낮 사분지 일'은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죄를 자복하며'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결과입니다(8:9;행2:37).
2. 레위 사람들의 찬송(4~8절)
1) 레위인의 기도(4절)
8명의 레위인이 단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4]레위 사람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분니와 세레뱌와 바니와 그나니는 단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고 ”
레위 사람 예수아...그나니는 단에 올라서서. - 한편, 본절에 열거되는 사람들의 신상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고 그들의 맡은 역할 또한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 문구를 '예수아...그나니는 레위 사람의 단에 올라서서'로 번역함이 더 낫다(Rawlinson)는 점에 근거해 볼 때(KJV, the stairs of the Levites ; RSV,the stairs of Levites)이들을 모두 레위인 출신으로 보아도 무방하겠습니다(LB, NIV)).
한편, '예수아'는 에스라를 도와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해석해주었던 레위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8:7).
큰 소리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고. - 여기서 '부르짖고'(자아크)는 고난을 당하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 위하여 소리 내어 간구하는 행동을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됩니다(삿 6:7;삼상 8:18;대상 5:20;시 22:5).
따라서 본 문구는 이스라엘의 죄 문제 해결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행동으로 보면 적절할 것입니다.
2)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라(5절)
“[5] 또 레위 사람 예수아와 갓미엘과 바니와 하삽느야와 세레뱌와 호디야와 스바냐와 브다히야는 이르기를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어다 주여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 ”
본절에 등장하는 사람들 또한 4절에서의 '단'에 올라 있었던 자들로 짐작됩니다. 그 근거로서 4절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은' 레위 사람 중 세 사람이 본절에서 다시 언급됩니다.
갓미엘 - '하나님의 존전'의 의미입니다.
이 사람은 10:9의 '갓미엘'과 동일인 일 것입니다.
하삽느야 - '여호와께서 생각하심'의 의미입니다.
에스라와 함께 바벨론에서 귀환했던 '하사뱌'(10:11)와 동일인물로 추정됩니다.
호디야 - 8:7주석을 참조하라.
스바냐 - '여호와께서 숨기셨다'의 뜻입니다.
브다히야 - '여호와께서 여셨다'의 의미입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 하나님의 초월적 속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 - 이것은 여호와께서 백성들의 신뢰의 대상이 될 만하며, 또한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구원을 배푸시는 분임을 강조합니다(습 3:17).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 - 주의 이름을 높이는 것은 성경 전반의 한결같은 명령입니다(Rawlinson, 출 20:7;시 72:19;계 15:4).
여호와께서는 무엇이 부족하여 우리의 송축으로 그 부족을 채우시려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행 17:25).
하지만 사람을 만드신 목적 중 하나가 사람과 인격적 교제를 나누며 또 사람으로부터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 위함인 것은 분명합니다(사 43:21).
따라서 우리가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은 의무이자 영광스러운 특권이기도 합니다. 한편, '이름'은 히브리적 사고를 통해서 볼 때 '인격'과 동일합니다(창 25:19-26 주제 강해, '이름 짓기' 참조).
3)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고백(6절)
“[6]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
여기서부터 본장의 마지막 부분인 38절까지는 백성들의 회개기도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를 인도한 것은 일단의 레위인들 이었고(5절) 에스라는 이들의 배후에서 교육하고 인도하는 역할을 감당한 듯합니다.
이 기도문을 가리켜 혹자는 시편 밖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예배 기도문들 중의 하나라고 평합니다(Michaeli).
백성들의 거듭되는 배역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이 기도 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을 다음과 같이 회고합니다.
(1) 창조에 있어(6절), (2) 예굽과 홍해에서(9-11절), (3)광야와 시내에서(12-21절),(4)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22-25절), (5) 사사들을 통해서(26-28절), (6)선지자들을 통해서, 그리고 (7) 현재의 상황을 통해(32-37절).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 '여호와'는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뜻으로서'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이라는 문구(5절)와 매우 잘 어울립니다.
이 칭호는 하나님께서 인위적으로 조작된 이방신들과는 비교될 수 없는 존재이심을 강조하는 것임이 분명합니다(시86:10).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 - '하늘'은 대기권 혹은 궁창(창 1:8)을, '하늘들의 하늘'은 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하늘, 즉 우주를 가리킵니다(신 10:14;왕상 8:27;시 148:4).
일월성신. - 문자적으로는 '모든 군대들'의 뜻으로서, 주로 '천사들'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본절에서 '천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체바'와 동일한 단어임).
그러나 여기서는 문맥상 '별들'을 가리킨다고 봐야 합니다(창 1:16,17;시 95:4,5;104편;136:5-9).
한편, 이 천사들이나 별들은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면에서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 줍니다(시 148:3;사 6:1-4;계4:8,9).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 - 지구와 (창1:1,9,10),지구에서 살도록 창조된 모든 동식물과 사람을 가리킵니다(창 1:20-30).
지으시고(아사) - '만들다'의 의미입니다.
여기에는 창조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창 1:16).
보존하시오니(하야) - '생명을 주어보존하다'의 뜻입니다(Keil).
이것은 하나님께서
⓵ 자연 세계를 만드시고 그것의 질서가 유지되도록 섭리하시는 것(벧후 3:7)
⓶ 생물을 지시고 그 생명을 계속 연장시켜 주시는 것을 가리킵니다(시 36:6).
따라서 일단 창조된 피조물은 스스로 자기 보존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Rawlinson).
4) 하나님의 선택과 언약(7~8절)
(1) 레위인들의 기도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고백에 이어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에 대한 회고로 이어집니다(7절)
“[7]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
본절에서는 그 많은 사람들 중 오직 '아브람'만을 택하신 사실로 인하여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 히브리 원문은 본 문구가 관계 대명사 '아쉐르'에 이끌리는 그 다음 문구들에 의하여 수식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 하나님께서 메소포타미아 땅에서 우상을 섬기던 아브람(수 24:2)에게 영광 중에 임하여서(행 7:2) 고향을 떠날 것을 명령하신 사실을 가리킵니다(창 11:31;12:1;행 7:3).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 우상을 섬기던 아브람을 본토에서 떠나게 한것은 실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이요 그야말로 찬양받을 만 한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갈대아'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지역 전체를 가리킵니다.
한편, '우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중 페르시아 만에서 약 250km쯤 떨어진 남부에 위치했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주로 거주했던 '닙불'은 우르로부터 북쪽으로 약 150km 정도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 하나님이 아브람과 더불어 후손에 관한 언약을 맺으면서 그에게 '열국의 아버지' 란 뜻의 아브라함 이라는 이름을 주신 것을 뜻합니다(창 17:1-8).
(2)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앞으로 전개될 이스라엘의 구원을 준비하고,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주십니다(8절)
“[8] 그의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그와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의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매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
그 마음이...충성됨을 보시고...언약을 세우사. -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어떤 선행이나 공로 때문에 그와 언약을 맺으셨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을 때(창 15:6; 롬 4:1-1)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롭다 하셨고, 그 의(義) 때문에 그는 언약 백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의 믿음 조차도 그의 공로가 될 수 없는 것은(롬 4:2). 그것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이기 때문입니다(행7:2,3;엡2:8,9).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 외아들 이삭을 희생 제물로 기꺼이 바치고자 했던 실천적 신앙 또한 간과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창 22장).
가나안 족속과...기르가스 족속의 땅을...주리라. -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기로 약속하신 사실을 가리킵니다(창 15:7,18-21).
이 약속이 이루어진 것은, 약속이 있은 지 430년이 지난 후였습니다(출 12:40;갈 3:17).
즉, 그 약속은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그 땅을 정복함으로써 성취된 것입니다.
한편, 가나안 정복 당시 가나안 땅에 거주했던 대표적인 일곱 족속 중에는 본문의 아모리 족속 대신 히위 족속과 블레셋 족속이 들어갑니다(수 9:1,2 주제 강해, '가나안의 일곱 족속 참조).
그리고 아브라함 당시의 가나안 땅에는 초기 원주민들, 곧 르바, 엡, 호리, 수스, 아낙 족속 등이 거주하였습니다.
주는 의로우심 이로 소이다. - 본 문구 앞에는 개역 성경에서 번역치 아니한 접속사 '키'가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 '왜냐하면 당신은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의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질 수밖에 없었던 필연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앙 공동체의 갱신과 변화는 탁월한 프로그램이나 인위적인 강령에 의해 성취되지 않습니다.
우리 내면에서부터 시작되고, 공동체 전체가 한마음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돌이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면서, 선한 뜻을 갖고 계신 하나님을 찬양할 때, 공동체와 사회 전체를 변화로 이끄는 힘찬 물줄기가 형성됩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물결은 내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레위 사람들이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는 하나님’,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을 송축하라고 촉구합니다(5~8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불신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 죄가 얼마나 큰지 그들은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알아야 자신들의 불신과 불순종이 얼마나 큰 죄였는지 짐작이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참회의 집회는 하나님을 고백하는 노래로 시작합니다.
모세는 출애굽 백성에게 ‘창조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을 선포했습니다.
이제 레위 사람들도 자신들을 지으시고, 구원하시고,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지금 우리도 우리의 존재 이유와 삶의 목적과 소명을 창조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새롭게 정립합시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이스라엘 자손이 금식하고 베옷을 입고 티끌을 뒤집어쓴 모습으로 나왔습니다(1,2절).
죗값으로 죽어 마땅한 죄인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그저 입바른 회개가 아니라 옛 삶을 돌이키며 하나님께로 나왔습니다.
그들은 참회를 위해 나오기 전에 이방 사람들과 먼저 절교합니다.
그것은 이방 사람의 종교, 문화, 삶의 방식과 단절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정신을 거스르는 죄의 습관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회개도 죄와 단절하는 삶의 결단 없이는 결단코 회개의 진정성을 보장받지 못할 것입니다.
2) 참회 의식은 율법을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3,4절).
낮 시간의 사분의 일, 즉 두세 시간 동안 율법을 낭독했고, 사람들은 서서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두세 시간 동안 죄를 참회하며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단 위에 올라가서 큰 소리로 참회의 기도를 인도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참회는 사죄의 공식을 따라 사람 편에서 입력하는 일방적인 죄의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의 빛 앞에서 자신의 부정한 죄를 확인한 이들이, 도무지 그 죗값을 치를 수 없는 자신의 무능함을 발견하고는, 하늘을 향해 자격 없는 이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비는 처절한 기도입니다.
용서는 권리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기도
공동체-말씀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주시고 말씀으로 저희 삶을 고쳐주소서.
열방-베트남에서는 많은 소수 부족 기독교인들이 지역 당국과 사회로부터 차별과 탄압을 받고 있다. 베트남 정부가 부당한 종교 탄압과 차별 근절을 위해 노력하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