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예레미야애가5장1~10절
제목 : 고아 같은 백성을 보소서
22절로 되어있지만 앞 장들과 다르게 알파벳 시는 아닙니다.
시인은 4장에서 예루살렘의 극심한 기근과 굶주림에 대해 말하며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책임이 지도자들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5장에서는 하나님께 자신들의 형편을 보고 기억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시인은 다시 시온 백성의 비참한 처지를 구구절절 아룁니다.
그는 현재의 상황이 조상들의 죗값을 후손들이 치르는 것이라고 인식합니다.
1. 기업을 잃음(1~3절)
“[1] 여호와여 우리가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받은 치욕을 살펴보옵소서 [2] 우리의 기업이 외인들에게, 우리의 집들도 이방인들에게 돌아갔나이다 [3] 우리는 아버지 없는 고아들이오며 우리의 어머니는 과부들 같으니”
1) 다시 하나님께 기억해 달라고 간구합니다(1절)
“[1] 여호와여 우리가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받은 치욕을 살펴보옵소서”
하나님께 기억해달라고 강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3:19에서처럼 또 다시 하나님께 기억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기억은 하나님께서 어려운 현재의 상황에 개입하고 구원하시는 처음 단계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혹독한 노예의 삶을 살아갈 때 모세를 보내 구원하기로 하신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출2:25).
그런 이유로 여기서도 기억해달라, 봐달라고 요청는 것입니다.
기억하시고(제코르)라는 말은 단순한 회고의 차원을 넘어 구체적인 결과를 낳는 행동을 취한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의 적극적 개입을 촉구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겠습니다.
‘주목하여 보소서’라는 뜻의 단어 하베트를 첨가하여 봐달라는 것을 반복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합니다.
그동안 시인은 혼자 기도했지만 지금은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 공동체가 같이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2) 우리의 기업이 낯선 사람에게, 우리의 집이 이방인들에게 넘어갔다고 호소합니다(2절)
“[2] 우리의 기업이 외인들에게, 우리의 집들도 이방인들에게 돌아갔나이다”
우리의 기업이 외인들에게. - '기업'으로 번역된 '나할라'는 '점유', '세습 재산'(patrimony, NEB). '유산'(inheritance, KJV, NIV, RSV)등의 뜻을 지니며,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부터 할당받은 가나안 땅을 가리킵니다.
이 땅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에게 약속의 땅으로 주어져서 여호수아 시대에 비로소 정복되었습니다(창 12:1; 13:14-17; 수21:43-45).
그런데 이 땅이 이제 이방인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삶의 터전을 완전히 빼앗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신명기 28장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심판 목록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범죄 함으로써 이 축복의 땅을 상실하였던 것입니다.
완전히 멸망당하는 고통을 겪기 전에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는 것이 지혜입니다.
3) 시인은 자신들의 형편을 아버지 없는 고아와 어머니를 과부에 비유합니다(3절).
“[3] 우리는 아버지 없는 고아들이오며 우리의 어머니는 과부들 같으니”
아버지 없는 고아들이오며 우리의 어머니는 과부. – 성경에서 고아와 과부는 의지할 길 없는 사회적 약자로서 특별한 보살핌의 대상으로 자주 언급됩니다(출 22:22; 신 24:17; 26:12; 잠 23:10; 사 1:17; 약1:27).
본절은 기근과 살상으로 인해 유다 내에 실제로 고아와 과부가 급증한 사실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유다의 버림받은 상황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서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을 갈망하는 호소이기도 합니다.
2. 생존의 위협(4~10절)
“[4] 우리가 은을 주고 물을 마시며 값을 주고 나무들을 가져오며 [5]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우리의 목을 눌렀사오니 우리가 기진하여 쉴 수 없나이다 [6] 우리가 애굽 사람과 앗수르 사람과 악수하고 양식을 얻어 배불리고자 하였나이다 [7] 우리의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8] 종들이 우리를 지배함이여 그들의 손에서 건져낼 자가 없나이다 [9] 광야에는 칼이 있으므로 죽기를 무릅써야 양식을 얻사오니 [10] 굶주림의 열기로 말미암아 우리의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으니이다”
1) 시인은 물과 나무를 돈 주고 사와야 한다고 말합니다(4절)
“[4] 우리가 은을 주고 물을 마시며 값을 주고 나무들을 가져오며”
나무와 물은 생필품으로 당시 자연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물은 마을의 공동 우물에서, 나무는 산이나 들에서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마을과 산과 모든 곳을 점령하였기 때문에 예루살렘 사람들은 자유롭게 물을 떠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 산이나 들에서 나무를 할 수도 없는 통제되고 억압된 상황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에서 예루살렘 사람들은 물 한 모금을 구하기 위해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왕하24:14; 25:12; 렘 39:10등에 의하면, 예루살렘 함락이후 유다에 남은 자들은 빈천한 자들이 주종을 이루었는데, 그들은 유다 땅을 기껏 경작해 보았자 바벨론 제국에서 상납해야 하는 식민지 백성의 설움을 겪어야 했던 것입니다.
2) 억눌리고 평안이 없는 삶을 묘사합니다(5절).
“[5]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우리의 목을 눌렀사오니 우리가 기진하여 쉴 수 없나이다”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우리 목을 눌렀사오니(알 차와레누 니르다페누) - 문자적으로는 '우리는 우리의 목을 추적당했다'입니다.
유다 백성은 마치 멍에 메기를 거부하는 완고한 짐승처럼 하나님께 대해 목을 곧게 한 결과(출 32:9), 이방인에 의해 멍에로 메어진 꼴이 되고만 것입니다.
한편, 본절은 항복한 대적의 목에다 발을 얹었던 승리자의 모습과 관련하여 해석되기도 합니다(수 10:24; 사51:23 참조. Harrison).
시인은 자신들이 시온에서 겪는 심각한 상황을 토로하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기억하고 돌아보시길 기원합니다.
3) 이방을 의지한 죄를 고백(6~7절).
(1) 주변 강대국을 의지한 것에 대한 죄를 고백합니다(6절).
“[6] 우리가 애굽 사람과 앗수르 사람과 악수하고 양식을 얻어 배불리고자 하였나이다”
유다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이후 내내 앗수르의 속국으로 있으면서 그들을 의지했습니다.
앗수르가 멸망한 후에는 애굽의 속국이 되어 애굽을 의지 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이 침략하였을 때에는 애굽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와 예레미야는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계속 경고하였습니다(사19장, 30:2~7, 31:1~3, 렘42:14~19).
하지만 유다 사람들은 예언자들을 통한 경고를 듣지 않고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애굽을 의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먹을 것을 주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셨지만(신8:9~10), 이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방을 의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저버린 것입니다.
악수하고(나타누 야드) - 문자적으로는 '우리가 손을 주었다'는 뜻입니다.
이는 단순한 우정의 의미에서 주고받는 악수보다는 주종(主從)관계를 밝히는 어떤 조약을 체결하는 것을 암시합니다(Hillers).
(2) 조상들이 범죄하여 없어졌고, 그들의 죗값을 현재의 공동체가 대신 짊어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7절).
“[7] 우리의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시인은 여기서 자신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다고 말한 것과 달리 자신들이 조상들의 죗값을 대신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보듯이 시인은 자신들의 죄에 대해 눈을 돌린 적이 없으며, 자신들이 무죄하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현재 심판이 조상 때부터 저지른 죄와 자신들의 죄의 산물이라는 뜻입니다.
한편으로는 몇 세대에 걸친 죄의 무게가 매우 무겁다는 뜻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참으로 오랫동안 하나님이 참으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 이는 열조의 범죄로 말미암아 유다의 국운(國運)이 점점 위태해져 갔고 그들의 악영향을 답습한 후 손들의 범죄로 인해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가득 차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궁극적으로 죄에 대한 심판은 각 개인의 행위에 따라 주어진다는 사실은 겔 18:1 이하에서 강변되고 있습니다.
4) 적의 핍박으로 배고픈 백성들(8~10절)
(1) 종들이 우리를 지배한다고 말합니다(8절)
“[8] 종들이 우리를 지배함이여 그들의 손에서 건져낼 자가 없나이다”
그들은 이전에 종들이었던 자들의 지배을 받습니다.
종들이 우리를 지배함이여. - '종들'이란 바벨론의 하급 관리들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상황의 역전을 효과적으로 나타냅니다.
유다는 자국의 왕을 모시지 못하고 대신 이들의 압제와 간섭에 시달려야 했으며, 아무리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탄원할 법정마저 없었습니다(Ellison).
(2) 양식을 구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말합니다(9절).
“[9] 광야에는 칼이 있으므로 죽기를 무릅써야 양식을 얻사오니 ”
광야에는 칼이 있으므로. - '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레브'는 '가뭄'이라는 뜻도 지닙니다.
여기서는 '칼'로 번역하여, 광야 지대로부터 습격해 들어와 약탈을 일삼았던 도적들에 대한 언급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광야'(미드바르)란 주로 사막을 뜻하며 다음 절에서도 기근에 관한 언급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본절은 '사막에는 기근이 있으므로'라고 번역되어도 무방하겠습니다(Calvin).
(3) 심각한 영양실조로 말미암아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게 되었습니다(10절).
“[10] 굶주림의 열기로 말미암아 우리의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으니이다”
극심한 영양 실조 현상으로 인해 가죽만 남은 피부가 거무틱틱하게 수척해진 모습을, 검댕과 열기에 의해 계속 찌그러들고 검게 변한 가마솥에다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표현은 4:8; 욥 30:30에도 나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선지자는 유다가 겪은 모든 고초는 자초한 것이지만, ‘인생으로 고생하고 근심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님’을 알기에 다시 중보자적 기도를 드립니다.
자신들이 당한 것을 기억하고 수욕을 돌아봐달라고 요청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징계를 할지라도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믿음으로 구할 때에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약속의 땅의 상속자였던 이스라엘이 일터와 살터를 빼앗기고, 아버지를 잃은 고아가 됩니다(1~3절).
하늘 아버지께서 그들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살아갈 소망이 없어진 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자신들을 버리신 주님께 자비를 구하는 길뿐입니다.
그래서 침묵하고 얼굴을 돌리고 모습조차 감추신 하나님을 향해, 제발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의 비참한 처지를 살펴보시고 부르짖습니다.
주님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고, 주님을 기업으로 모시면 모든 것을 소유합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기업을 잃은 백성들의 삶은 곤궁하고 피곤합니다(4,5절).
우물물도 맘대로 길어오지 못하고, 밥을 짓고 밤 추위를 견딜 땔감도 값을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악한 지배자들이 심하게 억압했기에 생존을 위해 한시간 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부재가 안식의 상실로 이어진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이 자유를 줄 것 같지만, 그 세상은 폭군의 놀이터가 되기 시비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린 삶이 참된 자유를 누리며 진정한 쉼을 얻는 길입니다.
오늘 하루, 말씀이 주는 풍요와 자유와 안식을 누립시다.
2) 애굽의 지배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에서 자유를 누리던 이스라엘이 스스로 애굽과 앗수르의 노예가 되는 길을 선택합니다(6,7절).
징계를 받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돌이키는 대신 주변 강대국의 힘을 의지하는 악수(惡手)를 두어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어려움에 직면할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합니까?
불의하고 불법한 세상 방식을 따르지는 않습니까?
악한 세상의 노예로 속박되기 전에 세상과 맛잡은 손을 속히 거두어들입시다.
3) 이스라엘 백성들의 곤궁한 삶을 이용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8~10절).
정복자들의 편에 서서 동족을 짓밟는 기회주의자들(8절)과 굶주린 백성을 기다리는 광야의 약탈자들(9절)이 바로 그들입니다.
하나님은 이웃의 불행을 이용하여 자신의 배를 불리는 악인을 받드시 심판하십니다(신23:15,1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