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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다니엘4장19~37절
제목 :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한 다니엘의 충고는 왕이 하늘의 순찰자를 통해 지극히 높으신 자를 의식하며 살게 하는 데 있습니다.
4장에서는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처럼 보입니다.
1. 다니엘의 해석과 충고(19~27절)
“[19]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이 한동안 놀라며 마음으로 번민하는지라 왕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벨드사살아 너는 이 꿈과 그 해석으로 말미암아 번민할 것이 아니니라 벨드사살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20] 왕께서 보신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21]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은 그 아래에 살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었나이다[22]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이는 왕이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하사 하늘에 닿으시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심이니이다[23] 왕이 보신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어 없애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 두고 쇠와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 풀 가운데에 두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또 들짐승들과 더불어 제 몫을 얻으며 일곱 때를 지내리라 하였나이다[24] 왕이여 그 해석은 이러하니이다 곧 지극히 높으신 이가 명령하신 것이 내 주 왕에게 미칠 것이라[25]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26] 또 그들이 그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27]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
1) 다니엘이 한동안 놀라며 마음으로 번민함(19절)
“[19]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이 한동안 놀라며 마음으로 번민하는지라 왕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벨드사살아 너는 이 꿈과 그 해석으로 말미암아 번민할 것이 아니니라 벨드사살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
놀라며 마음으로 범민하는 지라 - 다니엘은 신하로서 왕의 심판에 대한 계시를 듣고 연민의 정과 아울러 심각한 내면적 갈등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마음으로 번민'이라는 표현과 느부갓네살의 신하로서 그에게 드리는 절절한 충정이 잘 반영된 하 반절 '그 꿈은...응하기를 원하나이다'란 다니엘의 말에서 더욱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2) 느부가넷살 왕의 꿈 내용(20~23절)
“[20] 왕께서 보신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21]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은 그 아래에 살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었나이다[22]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이는 왕이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하사 하늘에 닿으시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심이니이다[23] 왕이 보신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어 없애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 두고 쇠와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 풀 가운데에 두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또 들짐승들과 더불어 제 몫을 얻으며 일곱 때를 지내리라 하였나이다”
느부갓네살이 꾼 꿈이 다니엘의 입을 통해 동일하게 반복된다(10-16절 주석 참조).
3) 다니엘의 꿈 해석 (24~26절)
“[24] 왕이여 그 해석은 이러하니이다 곧 지극히 높으신 이가 명령하신 것이 내 주 왕에게 미칠 것이라[25]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26] 또 그들이 그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명령하신 것(게제러트) - 본 구절은 느부갓네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확실하게 성취될 것임을 분명하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22절과 함께 다니엘에 의한 본격적인 꿈의 해석입니다(14-17절 주석참조).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 느부갓네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는 개인적인 영역과 아울러 인간 전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느부갓네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목적을 분명하게 제시해주는 구절로,
느부갓네살이 제국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시인하고,
자신의 교만을 회개할 때에 다시 회복될 것임을 제시합니다.
4)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27절)
“[27]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7년에 걸친 고통스러운 기간을 예시해 보이면서,
이러한 연단이 유예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통치를 하라는 간절한 충고로 이 해석을 마무리 합니다.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 본절은 느부갓네살로 하여금 이제까지의 불의한 상태를 변화시켜
'공의'의 시행 곧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통치와 가난한 자에 대한 긍휼을 시행함으로써 이전의 죄악된 상태와 단절하고 떠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꿈대로 낮아진 느부갓네살(28~33절)
“[28] 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느니라[29]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30]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31]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32]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33] 바로 그 때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
1) 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느니라(28절)
이제까지 언급된 예언의 성취를 확인하는 말로서 느부갓네살의 선언에 의해 다니엘의 해석의 진실성과 역사성이 입증됩니다.
2)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29절)
열 두 달이 지난 후에 - 이는 곧 왕의 꿈에 대한 다니엘의 해석과 충고가 있은지 1년이 지난 때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로 하여금 다니엘의 충고(27절)대로 그의 자세를 변화시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셨음을 암시합니다.
바벧론 궁 지붕에서 거닐새 - '궁의 지붕'은 왕이 산책할 수 있는 평평한 지붕을 가리킵니다(삼하 11:2).
그가 장엄한 왕궁의 성벽과 망대를 둘러 본 후에 교만한 말(30절)을 했으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3) 느부갓네살이 교만한 말(30절)
“[30]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이 큰 바벧론'은 느부갓네살이 궁 안에서 바라본 도성의 모습을 가리키는데, 676구역으로 구성된 바벧론의 장엄함과 위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고대 국가에 있어서 왕의 권세는 그 수도의 장엄함과 곧잘 비교되었다는 점에서 그가 바라 본 수도의 웅장함은 자신이 누리는 영화의 상징과 같은
것이었습니다(Thomson).
따라서 본절은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경고를 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왕국의 장엄함을
자신의 공적으로만 돌리는 교만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4) 그때에 하나님의 소리가 들립니다(31~32절)
“[31]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32]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이 말이 오히려 나 왕의 입에 있을 때 - 곧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란 듯으로 하나님의 징계의 신속성을 강조합니다.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 여기서 '하늘'(쉐마야)은 26절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을 지칭하는 말입니다(26절 주석 참조).
다라서 본절에 언급된 '(경고의) 소리'가 곧 '하나님의 음성'임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느부갓네살의 정신병이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기인한 것임을 암시합니다.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 여기서 '떠났느니라'(아다트)은 왕권의 박탈이 하나님에 의한 것임을 명백하게 제시함과 동시에 왕권의 박탈이 이미 성취된 것임을 암시합니다(그 동시에...응하므로, 33절).
한편 32절은 15, 17, 25, 26절 주석을 참조하라.
5) 꿈의 일이 느부갓네살에게 응함(33절)
“[33] 바로 그 때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
자신을 짐승으로 생각하고 짐승의 생활 방식을 따르게 되는 질병을
'인사니아 조안 트로피카'(insania zoan thropica)라고 명명하는데,
아마도 느부갓네살이 이러한 정신병적 증세를 보인 듯합니다(Delitzsch).
3. 회복된 느부갓네살의 찬양(34~37절)
“[34]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35]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36] 그 때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의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찾아오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받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37]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1) 기한이 차매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34절)
“[34]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7년간의 정신병에서 다시 회복된 느부갓네살의 겸허한 하나님 찬양이 마지막 37절까지 이어집니다.
그 기한이 차매 - 구루터기를 남겨두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투영된 구절로 느부갓네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제한된(약속된) 기간인 7년이 다했음을 보여줍니다.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 문자적으로는 '나의 눈을 하늘을 향해 들었다'로서,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도움을 바란 사실(시 121:1,2; 123:1-3)을 시사합니다.
즉 왕의 그 회개와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세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한편, 완고한 느부갓네살의 변화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딤전 2:4;벧후 3:9).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 그가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회개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응답하셨음이 드러납니다.
여기서 '총명'(만다)은 '지혜', '명철', '이성', '지식' 등의 다양한 뜻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다운 온전한 의식 상태를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돌아온지라'(투브)는 '회복되었다'(was restored, NIV)란 뜻으로,
느부갓네살의 의식이 다시 온전한 인간의 상태로 회복되었음을 알게 합니다.
영생하시는 자(레하 알레마) - 죽음 앞에 무력한 인간과는 달리 영존하시는 초월자 곧 하나님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2) 하나님의 절대성을 강조(35절)
“[35]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인간들의 수가 아무리 많고 세력이 강대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한낱 미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절대성과 전능하심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하늘의 군사'는 하늘에 있는 영적 존재, 곧 '천사'들을 일컫는 말로서, '땅의 거민'과 함께 하나님의 주권이 인간의 영역뿐 아니라 영계를 포함한 전우주적인 것임을 시사합니다.
손을 금하든지...할 자가 없도다 - 하나님은 당신의 절대 주권 속에서 피조 세계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으시는 유일한 전능자라는 사실을 설파합니다(롬 9:20).
3) 그 때에 총명이 왕께 돌아오심(36절)
“[36] 그 때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의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찾아오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받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총명의 회복이 34절에 이어 다시 반복된 것은 총명의 회복과 왕권의 회복에 대한 밀접한 연관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집니다(Delitzsch).
나의 모사들과...다시 세움을 입고 - 자신이 병을 앓은 동안에 국정을 대신 맡아 수행하던 모든 관리들이 다시 이전처럼 모든 국사를 보고하고 결재를 요청했다는 뜻으로서 다시 바벧론의 왕으로 세워졌다는 감사의 고백입니다.
4)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며 자기를 낮추심(37절)
“[37]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하늘의 왕 - 하나님의 위대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칼빈은 느부갓네살이 자신에게 임한 징계를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이르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본절에 드러난 느부갓네살의 회개는 생명에 이르는 참된 회개로 인정하기가 어렵다(Delitzsch).
따라서 '그의 행위'는 인간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섭리와 간섭이 온전히 공의롭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 큰 나무를 느부갓네살 왕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역사적으로 그대로 실시되었습니다.
이것의 영적 교훈은 교만한 자는 느부갓네살 왕처럼 망하게 될 것이며, 인간은 자기의 힘만으로는 살 수 없고 역사의 배후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영적인 교훈, 말세적인 교훈을 줍니다.
(1) 영적인 교훈
이 꿈은 역사적으로 느부갓네살 왕의 번영과 폐위를 말하며,
영적으로는 급성장하고 높이 성장하는 사람들이 조심하지 않으면 교만해지고, 또한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사정없이 내리치신다는 교훈입니다.
우리는 겸손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겸손하게 낮추심으로 됩니다.
(2) 말세적인 해석
4장은 요한계시록 8장과 9장에 해당합니다.
말세의 바벨탑을 파괴하기 위하여 일으키는 것이 바로 4장과 요한계시록 8장과 9장에 나오는 부분과 파괴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겸손케 하시는 방법은 4장3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0]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나”라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첫째는 내가 했다이고, 그 다음에는 내 것이다이며, 마지막으로는 나를 위해서이다.
일이 잘되었을 때에는 자기가 잘해서 잘 되는 것이고,
일이 잘 못되는 경우에는 자라목 같이 쑥 들어가 버리고 마는 것이 인간의 생리입니다.
이 세가지가 입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하나님이 느부갓네살 왕을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그부갓네살 왕은 짐승같이 되었습니다.
교만은 사람을 이렇게 망신시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자기 잘난 맛에 머리털도 독수리꼴로, 손톱도 새 발톱같이 만들고 다녔습니다. 결국 짐승취급 밖에 못받게 된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훈련을 통하여 제자리에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첫째 하늘을 우러러 보는 일입니다.
둘째 자기 존재에 대한 분명한 인식입니다(35절)
“믿음은 은혜 받는 비결이고, 순종은 축복의 비결이며, 겸손은 받은 은혜와 축복을 지키는 비결이다‘
은혜받는 비결은 믿음이고, 축복받는 비결은 순종이며, 받은 은혜와 축복을 간직하는 비결은 겸손입니다.
그러면 더 큰 은혜와 더 큰 축복을 받는 비결은 받은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겸손은 받은 것을 지키고 유지하게하지만 나누는 일은 받은 것을 더 풍성하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8~33절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자신을 높인 느부갓네살의 왕권을 거두어가십니다.
느부갓네살이 왕궁을 거닐며 자신이 이룬 제국의 영광을 스스로 자랑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그 왕위를 거두어가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느부갓네살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진정한 주권자이심을 인정하기까지 왕위를 잃고 들짐승처럼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이룬 업적을 스스로 대견스럽게 여기며 중얼거리는 소리를 다 듣고 계십니다.
34~36절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
마치 자기가 하늘인 양 행세하던 느부갓네살이 비천한 자리에서 겸허히 하늘을 우러러보자 하나님은 그에게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징벌의 기간 후에 그를 회복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은 세계를 제패한 막강한 권력자로서 자신이 세상의 운명을 쥐고 있는 줄 알았지만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짐승의 처지로 전락한 후에 비로소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통치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회복은 하나님을 이 세상의 진정한 왕으로 인정하고 겸손히 하늘의 긍휼을 바랄 때 이루어집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2
7절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은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김으로 죄에서 용서받는 것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권력을 행사하는 모든 자가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시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들이 다스리는 곳에 가난한 자가 없게 하는 것입니다.
본래 권력이나 부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선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섬기기 위해 잠시 빌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게 있는 것으로 나를 위해 사용하기 전에 더 필요한 사람이 없는지 돌아봅시다.
요한도 세례(침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를 향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외쳤는데, 나는 회개에 합당한 공의와 자비를 나타내고 있습니까?
기도
공동체-주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죄에 빠지지 말고, 주 앞에 항상 겸손하게 하소서.
열방-국민 대다수가 빈민층인 나이지리아는 지난 50년 동안 400조 원이 넘은 돈이 국고에서 사라질 정도로 부패가 만연하다. 인구의 절반인 그리스도인이 먼저 정직한 삶을 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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