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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로드 2/15구간
2020년 6월 13일 02:27 - 14일 08:22
66km 29시간 42분(이동 16시간 08분)
차동고개 02:27 - 갈재고개 09:34
갈재고개 09:34 - 차령고개 15:45
차령고개 16:40 - 양곡마을 19:51
요셉의집입구 03:03 - 응원리 동원시스템즈 08:22
차동고개 - 294 - 서낭당고개 - 서재 - 바람 - 340 - 불운리고개 - 절대봉 - 명우산 - 극정봉(422) - 전망 - 오지재 - 356 - 부엉산(403) - 천방산(470) - 탑산리고개 - 470 - 봉수산(535) - 각흘고개 - 금북헬기장 - 갈재고개 - 출 - 벌목지 - 646(태화산 천자봉) - 639 - 갓바위 - 벼락바위 - 553봉(까막봉) - 바람쉼터 - 곡두재 - 440 - 426 - 475 - 개치고개 - 석지골고개 - 개치고개 - 인제원고개 - 도 - 차령고개(윈터고개, 쌍령고개) - 임도 - 밤나무 - 밤나무과수원 - 국수봉 - 임도 - 산길진입 - 되재고개 - 금북전월분기봉 - 임도 - 산길 - 356 - 부대우회 - 임도 - 임도사면 - 세종미래산업단지 - 스마트이브이 - 오케이식당수도 - 달서정 - 요셉의집입구 - 요셉의집 - 잠긴 철문 - 골프장길 - 세종에머슨주차장 - 연수원길 - 수도 - 배드민턴장 - 고등이고개 - 매실로 - 고려산(307) - 애미기고개(아야목고개) - 굴머리고개 - 한치고개 - 오디 - 돌고개(도장고개) - 옥자봉(210) - 동원
1 차동고개 - 갈재고개
종주길은 한 편의 영화와도 같다. 고난의 들머리와 고도의 상승, 새벽에 열리는 화려한 조망과 거친 바위능선, 여러 산과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고난의 날머리 능선. 기승전결이 있는 한 편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그에 비하면 백두대간이나 태극로드 연속극이다. 한 번에 어찌해 볼 수 없다. 따라서 때론 지루한 구간도 걷게 되지만 전체에 필요한 구간이다.
이번 구간이 그런 경우다. 도로 구간 포함 70여 킬로에 달하지만 비석은 겨우 두 개에 지나니 않는다. 봉수산과 공주 태화산. 등성이는 낮고 평이하다. 어디에도 특별히 불거진 봉우리가 없다.
1구간 보령에서 시작하여 청양, 부여, 공주를 지났고 2구간은 다시 예산, 공주, 아산, 세종 그리고 천안에 걸친 산줄기를 지난다. 산줄기는 오래도록 이 자리에 있었고, 삼국의 접경지였고, 사람들이 넘나든 여러 고갯길이 있다.
지난달에 벌목지를 지나 내려왔던 차동고개에 도착했다. 오늘도 비 예보가 있고 이미 낮에 내린 비에 초목이 젖어있다. 예보된 비는 아직 내리지 않고 있고 차동고개의 검은 새벽은 지난 낮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고요하고 쓸쓸한 고개에 하얀 버스 한 대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났을 것이다. 차 서방이 동쪽에서 산삼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고 인근 차동마을이 있다. 산경표에는 차유령으로 되어 있다. ‘수레가 넘는 고개’란 의미인데 이런 수레와 관련된 이름은 ‘수리’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높다’라는 의미다.
임도로 들어서서 능선에 올랐다. 지난달부터 궁금하던 산길, 어떤 길이 펼쳐질지 설렌다. 부쩍 자란 초목은 빗물의 무게가 더해져 산길로 기울었다. 대장은 가슴에 닿고 나는 눈에 닿는다. 초목을 헤치고 가지만 다행히 물은 많지 않아 살짝 젖는 정도다. 오히려 몸이 젖어 시원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 나쁘지 않다. 등성이에 올라서자 초목은 사라졌다. 나무가 빽빽하면 관목은 옅다. 294고지를 넘자 그리 크지 않은 나무 밑동에 사기그릇 한 점과 또 다른 깨진 사기그릇이 놓여 있고 그 옆에 서낭당고개라는 코팅된 표지가 놓여있다. 소박하다. 대개 서낭당은 커다란 신목이 있고 누석단이 있는데 이곳은 나무도 그리 크지 않고 돌무더기도 없다. 돌 세 개를 얹고 세 번 절을 한 다음 침을 세 번 뱉으면 재수가 좋다고 한다.
서재를 지나 340고지 앞 봉우리에 올랐다. 사람들이 두 팔을 벌리고 간격을 두며 우아하게 서 있다. 벌목지다. 유독 시원한 바람이 유구로부터 산줄기를 넘고 있다. 잔잔한 바람은 살짝 젖은 옷깃의 수분을 훑어내며 몸의 열기를 가져가니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그토록 명당이라는 유구는 온통 검기만 하다. 희미한 마을의 조명조차 닿지 않는다.
불운리고개는 보이지 않고 이름과 위치가 혼란스러운 절대봉에 도착했다. 다소 낙엽이 많거나 제법 가파른 내리막도 있지만 좋은 길이다. 명우산으로 추정되는 봉우리 어깨 길이 선명하다. 궁금하여 잠시 올라가 보았지만 ‘천방산 3-6’ 이정목 하나가 보일 뿐 특색이 없어 보인다. 우는 소의 모습을 띠고 있다고 하던데 우는 소는 어떤 모습일지 연상이 되지 않는다.
홍길동이 유구천 건너 금계산에서 활을 쏘고 활보다 빨리 말을 몰아 화살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이를 걱정을 하여 걱정봉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른 이야기도 있지만 역시 ‘걱정’이다. 금계산엔 홍길동 성도 있고 무덤도 있다고 하는데 일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야기의 스케일이 마음에 든다. 극정봉 하산은 상당히 가팔랐다. 홍길동은 어디로 올라왔을까? 계곡길이던 등성이이던 상당히 가팔라 말이 힘깨나 썼을 것 같다.
벌목지가 있는 능선에 왔다. (4:44) 푸른 전망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이티천에서 피어오른 구름이 검은 산 아래 가득하고 산줄기 너머로 안락산과 도고산 산줄기가 구름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봉수산에서 도고산으로 연결되는 송전탑의 붉은 조명이 쪼르르 불 밝히며 하늘의 옅은 붉은빛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조망처는 한곳이 아니라 올라갈수록 전경이 바뀌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준다. 이티리로 뻗은 다양한 산줄기가 드러나며 골짜기마다 하얀 안개가 피어나 산줄기를 다듬은 물길이 드러나는데 모두 중앙의 한곳으로 모였다. 화산천 일대의 하얀 구름은 하늘의 구름과 뒤엉켜 구분이 가지 않고 그 높이가 적당하여 낮은 산들이 머리를 내밀었다.
오지재(소거리고개, 덕곡리고개)는 별다른 표식 없이 소거리/머그네미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부엉산도 별다른 표지가 없고 천방산조차 이정표 기둥에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 전부다. 겨우 470미터 지만 ‘하늘을 향해 찌를듯한 기세’ 란 의미의 이름을 지니고 있다. 그만한 지는 이곳에서 알지 못하지만 탑산리고개로 내려가는 긴 하산길을 보니 낮지 만은 않은 것 같다.
탑산리고개 지나 서쪽 조림지 전망이 열렸다. 방산리 계곡을 따라 좁은 들이 펼쳐졌고 방산저수지에서 산줄기가 틀어지며 여러 산줄기가 모여 앉았다. 천방산에서 뻗은 산줄기는 실례봉으로 솟았다가 다시 화산천에 다가가 가라앉았고, 봉황의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470고지 능선은 바람에 일렁거리듯 출렁이며 저수지 방향으로 흐른다. 그러다 갈막고개 깃털 하나 떨구고 대곡천과 달천이 화산천까지 길게 이끄니 꼬리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화산천 일대는 여전히 안개가 가득하고 깎인 안락산과 주변 산이 안개 위로 솟았다. 산군 너머로 무한천과 삽교천에서 피어오른 안내가 내포를 가득 덮었고, 멀리 아마도 가야산이 마루를 내밀며 희미한 하늘과의 경계가 겨우 가늠할 만했다. 이곳 천방산 방향의 산줄기는 우익을 담당하니 지금 나는 봉황의 날개를 타고 있다.
470봉이 어려운 편이고 봉수산은 오히려 쉬웠다. 머릿속 그림과는 달리 베틀고개 반대 방향으로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는 진행이다. 베틀고개가 언제 나올지 기다리다 문득 꼭대기에 다가서니 거저 올라온 기분이다. 언젠가 아산기맥 중 알바를 했던 곳으로 올라온 셈이다. 봉황의 머리에 해당한다. 봉곡사 방향의 산줄기는 좌익을 담당한다.
봉수산부터 금북헬기장까지는 아산기맥과 아프리카종주로 몇 차례 와 본 구간이다. 아산은 아산기맥을 잘 관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익숙한 각흘고개까지 산책을 하듯 편안하게 걷고 좀 불편한 벌목지를 지나 금북헬기장까지 왔다. 광덕산에서 이곳에 와서 각흘고개 방향으로 가며 늘 궁금해하던 길로 오늘 가 본다. 길은 너븐 임도로 이어지다 얼마 못 가 갈재고개로 떨어졌다. 길이 임도 수준으로 잘 난 이유는 금북헬기장 아래 여러 묘지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차동고개 들머리 능선
명우산 인근
극정봉 내려와 벌목지에서 바라보는 전망
부엉산 앞 봉우리 휴식
부엉산으로 가는 길
부엉산
천방산
탑산리고개
470고지 전망
470고지 휴식
봉수산 가는길
봉수산
2 갈재고개 - 차령고개
비 예보는 뒤로 밀렸다. 구름조차 흩어지고 투명한 대기에 햇살이 그대로 떨어졌다. 다행히 숲은 그늘졌지만 벌목지대 햇살은 견디기 어렵다. 벌목지에 올라서자 파란 하늘이 눈부시다. 송전선 철탑이 갈재고개와 각흘고개를 지나 봉수산을 건너 도고산으로 넘어가는 라인이 그대로 드러난다. 산은 사면 도처에 새로 조림이 되어 마치 서로 다른 시기에 새로 깎은 털에 새 털이 자라듯 얼룩졌다.
몸은 더위에 속수무책이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더 많은 혈류가 필요하고 심박은 높아진다. 적응 과정이 필요하다. 아직 적응이 되지 않은 초여름 산은 밤과는 달리 상당한 부담을 주기 마련이다. 태화산은 삼거리에서 벗어나 있다. 아산의 태화산이 연상이 되고 낮게 느껴져 아류 정도로 느껴지지만 문금리나 주막거리에서 올려다보자면 상당히 높아 ‘크고 아름답다’는 의미의 이름이 어울려 보인다. 누군가 작은 푯돌을 세워두었다. 이정표는 진해 방향 신비의샘, 천상의문 / 다람쥐숲, 주막봉오리 라고 적고 있다. 다람쥐숲, 주막봉오리는 우리가 가는 방향이고 가까운 거리지만 해당 안내판을 보지 못했다.
조금 더 가면 649봉을 만나게 되고 안부로 내려서는 동안 갓바위와 벼락바위를 만나게 된다. 태화산부터 보이는 일대 안내판은 소랭이마을 숲체험길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553봉에 올랐다. 이정표 기둥에 누군가 ‘까막봉’이라고 적어두었다. 지금은 흐릿한데 어느새 이곳을 지나간 사람들은 이곳을 까막봉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어둠 속에 곡두재에서 보면 까만 봉우리가 발딱 서 있다고 하는데 이와 관련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역으로 올라오면 곡소리 난다고 하더니 과연 그대로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장난이 아니다. 가파른 능선 길은 밧줄조차 없어 나무를 부여잡고 내려가야 했는데 자전거나 오토바이에 의해 길이 쓸리어 있으니 어디 발 디딜 자리가 없다. 비라도 내렸다면 상당히 곤란했을 것 같다. 천안아산태극종주를 한 번은 해 보고 싶더니 이 구간을 보니 마음이 싹 사라졌다.
곡두재는 연리지와 성황당 돌무더기가 있어 고개 다운 면모를 하고 있다.
곡두재에서 440봉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바라보니 나무 사이로 보이는 까막봉의 위세가 대단하다. 그리고 440봉의 내리막 또한 상당히 가팔라서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거리는 좀 짧지만 가파른 능선은 아직 사람의 통행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가파른 내리막은 426봉을 지나 475봉 하산에서 다시 반복됐다. 오르내리기를 반복하여 개치고개에 오니 숲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계곡의 모습이 정겹다. 작은 건물 아래에 불교를 상징하는 ‘만’자가 적혀있고 정겨운 임도가 났다.
석지골고개, 인제원고개까지 편안한 산길이 길게 이어졌다. 더러 가파른 짧은 내리막도 있지만 어렵지 않은 길이다. 숲 너머로 남쪽의 골프장이 눈에 띈다. 지난 내리막의 긴장은 풀어지고 인대의 충격도 회복이 되었지만 덥고 졸리다. 쌍령산에 가자면 임도에서 산길로 들어서야 하지만 그대로 차령고개로 내려섰다. 운치 있는 대나무 계단을 내려오자 아름다운 데크가 펼쳐져 있다. 유명한 고개는 관리되지 않는 휴게소 건물에 초라하다. 낡은 데크 위에 천안백호님과 파도님이 시원한 수박을 쪼개어 두고 미소를 띠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면이지만 반가이 인사를 건네고 허겁지겁 수박을 물고 맥주를 들이켰다.
천자봉 다녀와서 639봉으로 가는 길
639고지
곡두재
440고지 하산
475고지
475고지 하산
개치고개 가는 길
개치고개 나무 사이로 바라보는 계곡 소경
임도지나
골프장 인근의 참나무
인제원고개 지나 거대한 송전탑
차령고개
3 차령고개 - 양곡마을
남은 구간은 쉬운 길이라고 하더니 처음부터 절개지 사면을 올라가야 했다. 발 단독으로 주체할 수 없어 주변 나무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작은 나무 하나를 줄줄이 부여잡고 올라가니 나무도 힘들어한다.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만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조금 옆에는 임도가 놓여있고 결국 그 임도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길은 편안해졌다.
342봉은 가지 않고 계속 긴 임도를 따라갔다. 얼마 후 밤나무 과수원이 나타난다. 그리고 커다란 송전탑을 만나 왼쪽으로 내려가자 본격 밤나무 과수원이 펼쳐졌다. 일대 나무를 베고 밤나무 과수원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공주 밤이 유명한 것으로 아는데 오히려 지난 1구간에서 많이 보았고 오늘은 처음 본다. 다만 밤꽃이 피어 특유의 밤꽃 향이 그윽하게 퍼지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닥엔 과수원 특유의 개망초를 비롯한 여러 과수원 풀이 가득하고 더러 보랏빛 엉겅퀴가 피어 내가 아는 과수원 특유의 풀 모습을 띠고 있다.
한동안 편안한 산길을 걸어 국수봉을 만났다. 코팅지 한 장 나무에 걸려있을 뿐 없다면 인식하지 못하겠다. 반바지라고 적혀 있는데 55 산 때 천마지맥에서도 보았다. 1구간 청양군과 차이가 많아 보인다. 지자체는 산을 그냥 방치하여 두고 등산인 자율에 맡기는 느낌이다.
다시 임도로 내려와 얼마간 가다 산길로 진입하였다. 어설픈 안부를 지나는데 다시 반바지님의 표식이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되재고개다. 서쪽 사현리 되재마을이 있다. 공주 시청 지명유래를 보니 ‘지관이 산줄기를 따라오다 지형이 정안천으로 인해 뚝 끊어져 되돌아갔다’라고 유래를 적고 있다. 지형이 그런 모습은 맞지만 내용이 간략하다. 되재고개는 되재마을에서 사람들이 마을 이름 따랐을 것이나 대개 ‘되, 돼, 된’이 들어간 고개는 ‘된비알’처럼 가파르다는 의미가 있다. 반대로 ‘논’은 늘어지다는 의미다.
전월지맥 분기봉에 왔다. 선두는 국사봉에 다녀왔다. 작은 오르내림이 이어지는 작은 산줄기가 이어졌다. 다시 임도를 만났고 얼마간 가다 산길로 접어들어 356고지를 지났다. 산줄기는 부대가 차지하고 있다. 선답자의 후기를 보면 긴 철책 바깥 길을 걸어 통과를 한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세종미래산업단지로 내려왔다. 그런 연유인지 하산길은 낙엽이 가득하고 희미한데 신설된 임도를 지나 계곡을 타고 내려와야 했다. 부대의 울타리기이 어떨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싫어가는 길이다. 어린 초병이 내려다보는, 공식적으로 통행을 금지하는 길을 걷는 기분은 썩 좋지 않다.
차령고개 들머리
송전탑 앞 얼음물 보급
밤나무 과수원
356고지 인근
부대 우회 하산길
임도 절개지
임도 축대 아래로
4 전의요셉의집입구 - 응원리
이번 구간은 시간 여유가 많다. 비 걱정 없는 달서정에 앉아 실컷 먹고 비가 내리고 있으니 푹 쉬었다 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여러 낚시도 있었다. 다만 모기 한 마리와 시간이 지나며 상승한 온도에 제대로 자지 못한 채 길을 나서야 했다. 부대 우회 도로 구간은 버스로 편안히 이동하여 요셉의 집 입구에 내려졌다.
임도를 지나 다시 축축한 숲으로 들어갔다. 오래전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하고 있는 이쁜척하쥐님께는 익숙한 장소일 거란 생각이 든다. 평이한 야산의 느낌이다. 묘지를 지나고 그야말로 털기(수풀에 묻은 물기가 몸에 닿아 젖는 현상)를 하면서 잔잔한 산길을 걷는다. 신발이 점점 젖어옴이 느껴지지만 아직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여름 산행의 어려움은 젖은 신발이 크지만 여전히 특별한 방안이 없다. 오늘은 세 켤레 신발을 가져와 갈아 신는 전략을 세웠다. 요셉의집 뒷산 격인 작은 봉우리를 내려와서 1번 국도로 올라왔다. 1번 국도와 철길 그리고 운주산로가 막아서고 있다. 이런 도로 횡단을 어찌해야 할까? 우리는 가장 뛰어난 안내자가 있으니 걱정이 없다. 대장은 도로로 올라섰고 설마 도로를 그대로 횡단할까 우려가 되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1번 국도는 새벽에도 횡단이 어려운 큰 도로다. 하지만 우측에 지하도가 보이자 곧바로 흠뻑 젖은 풀을 헤치고 도로 사면을 내려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새벽이다. 이로써 횡단은 마무리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한데 지하도는 도로만 지날 뿐 이번에는 철길을 건너야 했다. 철로는 그냥 건너면 되겠지만 운주산로와 철로 사이에는 울타리가 있다. 다만 문이 하나 있어 이리로 사람들이 통행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데 문이 보란 듯이 자물쇠로 잠겨있다. 하는 수없이 울타리를 넘어야 했다. 사람들은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넘는다. 이제는 제법 보아서 그리 신기하지 않다. 이곳은 덕고개(돛고개)다. 푯돌은 서쪽으로 조금 더 가야 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낮은 산줄기를 걷는다. 금북은 낮게 흐르고 있다. 한참을 그러다 문득 도로와 만났다. 비 내리는 새벽에 산속에서 만난 산중 도로는 제법 운치가 있어 랜턴을 끄고 걷는 즐거움이 나쁘지 않다. 낯선 장소에 사람들과 만나 겁 없이 걷는 야릇한 쾌감이 느껴진다. 도로가 이끄는 입구에 도착하니 ‘에머슨’이라고 적은 하얀 간판이 안갯속에 하얗게 빛나고 있다.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골프장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보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우리는 골프장 주차장을 지나 다시 산으로 유유히 들어갔고 골프장의 기계음은 여전히 그대로다.
작은 산줄기를 지나 다시 도로와 만났다. 이번에는 서정길 모 연수원 진입로다. 마루금 봉우리는 얄밉게도 연수원이 차지했다. 평상에 앉아 잠시 쉬어간다. 배드민턴장 아래 수도시설이 이 있다. 길은 연수원 오른 편으로 돌아서 다시 마루금과 만나도록 나 있다. 때문에 계속 언저리를 돌아 올라와야 했고 젖은 길은 상당히 미끄러웠다.
어김없이 안개가 가득한 아침이 밝아왔다. 산길은 편안하고 운치가 있다. 나무들 사이로 하얀 안개가 가득하고 랜턴을 벗자 머리가 시원하다. 사람들이 애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등이고개를 지나 미끄러지듯 신나게 매실로에 도달하니 간간이 길 쪽으로 기운 초목 털기로 온몸이 흠뻑 젖었다.
이제 고려산 구간으로 들어선다. 도로 절개지 들머리는 대기 길이 좋지 않고 이곳도 풀이 가득하다. 털기를 제대로 하며 다시 흠뻑 젖었다. 등성이에 올라서자 길은 좋아졌고 분위기도 좋았다. 다만 맡아보지 않은 옅고 깊은 악취가 습기를 타고 올라온다. 주변에 축사 라도 있는 걸까? 지도를 보니 서쪽 원승마장이 눈에 띄지만 원인은 알지 못하겠다. 작은 봉우리를 넘자 다행히 안부를 타고 흐르던 악취는 사라졌다.
제법 가파르게 올라서는 고려산은 오히려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어렵지 않았다. 빗속에 흙길이라면 상당히 미끄러워 어려웠을 것이다. 꼭대기 아래 올라서니 비를 피하며 쉬기 적당한 정자가 반긴다. 젖은 옷을 짜고 휴식 시간을 가졌다. 16'
이름이 주는 궁금함이 있다. 취암산 자락부터 안내되어 있는 고려산 이정표를 본 적이 있다. 고려산 하면 강화가 유명하지만 가 본 적은 없다. 어떤 산 일까? 더욱이 고려산성이 있다고 했다.
낮은 산은 그냥 평범했다. 유래가 설명되어 있다. 산성은 보이지 않는다. 고구려 유적도 발굴되어 고구려 남진 최남단 성이라는 이야기가 있고, 백제부흥군의 근거지라는 이야기도 있다. 고려 충렬왕 때 연기대첩은 고려산과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적이 주둔했다는 정좌산은 세종시 조치원 인근의 야산으로 천안 목천에서 출병한 연합군은 밤새 들판을 달려 정좌산을 습격했다. 다만 당시 연기 조산성인 이곳에 사당을 짓고 고려산성으로 불렀다. 더불어 산 아래 아야목마을이 있는데 홍건적 난 때 고려성에 피난했던 사람들이 물이 없어 마을로 내려와 급히 물을 마시자 목이 아파 ‘아야 목아’라고 울었다고 해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의문이다.
아야목고개(애미기고래)로 내려와 길고 편안한 길이 이어졌다. 굴머리고개, 한치고개를 지났다. 굴머리고개는 인식되지 않았고, 한티는 임도가 나서 여전히 통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임도 옆 뽕나무가 눈에 띈다. 빗물에 씻기어진 오디로 영양 보충하고 도로로 내려섰다. 돌고개다. 모 건물 입구에 누워 일행을 기다리는데 비가 얼굴로 떨어진다. 바람막이를 얼굴에 덮자 떨어지는 빗소리에 잠이 솔솔 온다. 19’
옥자봉 능선도 비슷한 분위기의 산길과 임도가 이어졌다. 간단한 차림으로 올라 떨어진 밤을 주워 먹으며 소요하기에 적합해 보이지만 건너편 전망이 좋고 볼만한 암봉도 있는 취암산 능선에 비한다면 약해 보인다. 다음 달 다시 이곳에 모여 이빠진산으로 올라갈 것이다. 얼마나 무더울지, 또 비가 내릴지, 태극로드팀과 함께 걷는 나의 뒷산은 어떤 분위기 일지 궁금하다.
요셉의집 뒷산
철길 울타리 통과
덕고개
세종 에머슨 주차장 지나 산길로
고등이고개 직전
고려산 고스락
아야목고개 위
다음 안부
굴머리고개로 가는 길
삼각점 발굴
한치고개로 가는 편안한 길
옥자봉
응원리 날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