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삼(金達三) 약력
- 본명은 이승진으로 가명은 김달삼과 이상길을 썼다.
-김달삼은 장인 강문석이 사용하던 가명으로 장인에게 물려 받음.
- 1924년 남제주군 대정읍 영락리 978번지에서 출생
- 유년기에 부모를 따라 대구에 가서 심상소학교 졸업.
- 중학교에 입학했다가 도일하여 일본 성봉중학교 졸업.
- 토오쿄 중앙대학 전문부 1년 수료.
- 해방되던 해 박헌영과 같이 활동한 강문석의 딸 강영애와 결혼.
-1946년 조선공산당 경북도당 대구시당 서부지역 당세포 조직책으로 10․1 대구폭동을 주도.
- 제주로 귀향 후 이운방 씨 소개로 대정초급중학교 촉탁교사 재직.
- 남로당 대정면 당 조직부장, 제주4․3당시 제주도당책 및 군사부 총책으로 4․3폭동을 주도.
- 1948년 8월 21일 황해도 해주에서 열린 북한 최고인민대표자대회에 안세훈 등과 같이 참석.
- 해주대회에서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국회의원)에 선출되었고 국기훈장2급을 받음.
-동년 9월 김일성 등 49인으로 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위원회 헌법위원으로 선출.
- 부인은 일본을 거쳐 월북하였고, 그 후 부모와 형도 월북.
- 1949년 8월 강동정치학원을 나와 남파되어 인민유격대(766부대) 제3병단 태백산지구사령관으로 빨치산 활동.
- 1950년 3월 21일 강원도 정선군 반론산 부근을 거쳐 월북하다 대한민국 육군 336부대 제2중대와 20시간의 교전 끝에 사살.
- 묘소는 평양 인근의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가묘로 조성.
- 김달삼의 아들은 " 리경섭"이라하여 평양에 거주했으며 알콜중독자였다고 탈북주민이 증언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