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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제주 고산초등학교 22회 원문보기 글쓴이: 笑獻 강찬우
最古이면서 最高인 濟州語
서울翰京面民會長 강찬우
제주어(濟州語)는 추자군도를 제외한 제주 전역에서만 쓰이는, 표준어에도 없고 타 지역의 말에도 없는 제주 특유의 언어 요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제주의 토박이들이 전래적으로 써온 우리말 전부를 가리킨다. 결국 우리말의 하위 단위로서의 변종들이라 할 수 있는 9개 단모음과 20개의 자음체계의 문법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며, 15세기 언어 모습이 남아 있어 국어사적 가치가 큰 살아있는 훈민정음의 화석인 셈이다.
제주어의 탄생이 역사성을 살펴보면 왜구의 침입에 대항한 자체 방어력을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시행된 출륙금지령(1629-18 30)으로 200년 동안 외부 지역으로 탐라인이 이주의 자유마저 박탈당한 채 폐쇄적인 생활이 강요되었던 눈물의 역사적 산물이다.
이점에서 제주어는 다른 지역의 방언과는 달리 훨씬 고형(古形)을 유지한 부면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 만큼 제주어는 우리나라 사투리 중에서 가장 동떨어진 표준어나 다른 방언에 없는 문법형태 및 어휘상의 특징을 많이 가진 독창성이 두드러진 언어이다.
이는“제게 옵서게 ⇒ 빨리 오십시오”, “어드레 감수과? ⇒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와 줭 고맙수다 ⇒ 찾아와 주어서 고맙습니다 ”,“게민 가쿠과 ⇒ 그러면 가시겠습니까”, ”어디서 완마 씸? ⇒ 어디에서 왔습니까“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아래아(ㆍ), 반치음(ㅿ), 순경음 비읍(ㅸ) 등 한국어의 원형과 한글의 제작원리를 보여주는 특수성과 언어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신라어의 격(조사)“랑.리.레.로.루”의 체계가 존재하고 있다.
예를 들면“날 랑 가키어 ⇒ 나는 가겠다.,“이걸 랑 늬 먹곡 ⇒ 이것은 너 먹고”, “아이 아방ㅎ.티라랑 ㄱ.지 맙서 ⇒ 아이 아버지 한테랑 말하지 마십시오.”,“ㅎ.루 리 영 지느냐? ⇒ 하루가 이리 기느냐?”,“ㄱ,루리 비치 누리다 ⇒ 가루가 빛이 누루다”,“아시레 이 집의 살암서 ⇒ 아우가 이 집에 살고 있는가“, “외도레 갑써 ⇒ 외도에 가시지요”, “산지 레 그릅 써 ⇒ 산지에 같이 갑시다.“ 등의 사투리 냄새를 풍기게 하는 것들이며 어휘“레“는 함경도 방언과 그 형태가 같다.
한자어로는“벌초허는 사름 어시믄 골총뒈는 겁주 ⇒ 벌초하는 사람 없으면 골총되는 거지요”,“게난 구기가 그거라 ⇒그러니까 구구가 그거라”, “경헤 붸도 구늉은 지깍헌 사름이라 ⇒ 그래 보여도 궁흉은 꽉 찬 사람이야”, “큰물에 강 서답영 오라 ⇒ 큰 물에 가 세답하고 오너라.“,“헤영 댕기는 게 꼭 숭시 남직허다 ⇒ 해 다니는 게 꼭 흉사가 날 것 같다”,“어떵사 숭악헌지 ⇒ 어찌나 흉악한지”,“웨가에 식게 먹으레 갓다 와수다 ⇒ 외가에 제사 먹으러 갔다 왔습니다”,“이 식게 테물이라도 먹읍서 ⇒ 이 제사 퇴물이라도 드십시오”에서“골총, 구기, 구늉,서답,숭시,숭악,식게,테물”은 각각 한자어“고총(古塚), 구구 (九九 /동지로 부터 81일째 되는 날), 궁흉(窮凶),세답(洗踏),흉사(凶事),흉악(凶惡),식가(式暇),퇴물(退物)”에서 온 어휘들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제주어는 타지방 방언과는 달리 육지인들이 이해하기가 어렵다. 말이 짧고, 대부분 줄임말로 되어있으며, 어미에“시”가 많이 붙고 조선시대 아래아(·)가 발음상에 남아 있어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한국어의 방언이 아니라, 한국어 본토 말과 독립된 개별 언어로 간주하여 제주어(濟州語)로 부르고 있다.
표준어와 비교해 보면, 어휘와 음운, 문법적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중세국어에서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이는 육지와 떨어진 섬이고 언어의 전이가 더디게 나타나 옛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일 뿐이지, 뿌리가 다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제주어를 고어(古語)의 보고라 한다. 이는 중세국어의 모습이 지금까지 쓰이면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제주어 “마(장마), 잇다/이시다, 싯다/시다(있다), 하다(多.많다), 귓것(귀신), 우테(위에)”등은 중세국어의 어형으로 지금도 쓰이고 있다. 이 외에도“낭 우티 올라가지 말라 ⇒ 나무 위에 올라가지 마라”에서 남,낭은 표준어 나무에 해당하며, 중세국어“나모”의 어형이 남아있으며“,“딤”은 짐치에서 김치로 변화했는데 지금도 제주어 화자들은“짐치”를 사용한다.
어디 그뿐인가, 중세 어휘의 예는 너무나 많다. “ 이번은 큰 년이 그릇 설르라 ⇒ 이번은 큰딸이 그릇 치워라”“밥 다 먹어시메 상 설러불라 ⇒ 밥 다 먹었으니 상 치워버려라”,“그 일 설러분 때가 어느 제 꽝? ⇒ 그 일 정리한 때가 언제입니까”의 설르라, 설러불라, 설러분 등은 걷다, 치우다, 정리하다의 뜻을 지닌 중세어“설다”의 방언형이다. 그리고“이 칼 보미언 못 씨키여 ⇒ 이 칼 녹슬어 못 쓰겠다”의 보미다는 중세어 보이고“보리 허단 보난 ㄱ.시락 탄 막 두드레기 나수다 ⇒ 보리하다 보니 까끄라기 타서 마구 두드러기 났습니다)”의 ㄱ.시락은 중세어“ㄱ.라기”에 해당한다.
또한 일찍이 원나라 때 이미 몽골어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며 몽골어를 빌려 쓴 제주어들로는“저 꿩 덜 보라! 수룩짓어시녜 ⇒ 저 꿩들 보아라, 무리 지어 있는 걸”에서 수룩짓다의 수룩은 무리, 집합의 뜻이며“어디 덜 가젠 아방 모르게 우룩(럭) 맞추엄시냐 ⇒ 어디를 가려고 아버지 모르게 말을 맞추고 있느냐“의 우룩/우럭 맞추다 에서 우룩은 (겨레, 말 맞춤)의 뜻이고, 무엇을 주면서 하는 말인 ”마“ 와“이거 마탕 먹으라 ⇒ 자, 이거 받아 먹어라 등이 있다.
1360년대에 몽골이 쇠망하자, 중국 영토 내의 모든 몽골인들은 말을 타고 유유히 북쪽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제주도의 몽골병은 그대로 토착해 버렸다. 돌아가려 하여도 바다를 건너기가 어려웠던 점도 있었겠지만, 한라산 초원이 좋았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탐라인들이 그들을 받아들였을 게 틀림이 없고 그들은 완전히 녹아들어 후손이 따로 없다. 그러므로 오늘도 몽골식의 언어. 풍속. 의복 등이 많이 남아 있다.
다만 일본어 차용을 주장하는 예로 우산을 뜻하는“가사”(かさ에서 유래됨) 등이 있다고 하지만 이숭녕 문학박사는 일본어의 요소가 절대로 남았을 리 없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감수가”나“먹어서 마씀”의 (수가, 마씀)은 결코 일본어의 영향이 아님을 단언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제주인들은 과거로부터 조상들의 삶에서 묻어온 독특한 제주어를 생활속 깊숙이 간직하며 살아왔으며 현재까지도 사용하여 제주도만의 아름다운 문화를 이어오고 있지만, 지금도 제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80세 이상으로 섬에서 이탈하지 않은 사람들이며, 듣고 자란 40대 이상은 사용하지는 않지만, 소통은 가능하고 30대 이하는 소통이 불가능한 표준어 세대인 것이다. 이처럼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된 것은 불과 40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다른 한편, 요즘 70~80대 노인들도 손자들하고 소통하기 위해 표준어를 쓰려다 보니 제주어를 잘못 배운 손자들이 자기 할아버지를 면전에서“하르방! 이거 뭐?”하는 일이 연출되는데 후손인 사람이 할아버지를 부를 때는“하르부지, 하라바지,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한다. 이 아이들이 자라나서 아버지를 면전에서 부를 때도“아방이나 아방님”이라고 하지 아니할까 생각하면 통탄할 일이다. 이 점에서 구어(口語)인 제주어가 말로써 살아 남아야 글로 나타낼 수 없는 운율적 특징이 살아나서 동시에 실현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제주어는 거의 미개척의 노다지라고 하는 이유에는 여기에 또 있다. 타지방에서는 소(牛)나 말(馬)을 멈추게 하거나 가만히 있도록 달래는 소리를 할 때 소와 말을 구분하지 않지만, 놀랍게도 제주어에서는 말(馬)을 멈추게 할 때는 ”와~“ 하고 소(牛)를 멈추게 할 때의 명령어는 ”왕~“이라 한다. 또한 소나 돼지 따위를 몰 때는“식식”이라 하고, 소를 몰거나 끌어당길 때는“ 머식게 머식 이식게”하는 반면, 말을 몰거나 끌어당길 때는“이려! 이려”라고 하며 닭이나 참새 따위를 쫓을 때는“수워, 쉬, 워(숴)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제주 사람들은 바람이 특히 많은 해변지역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바다와 관련하여 자주 쓰이는 어휘가 많고, 그 중에 대표적인“비바리”라는 제주어가 있다. 이제는 제주어의 대명사처럼 쓰이는데 원래는 전복을 따는 사람을말한다. 이“비바리”는“비”와 접미사“바리”로 이루어진 어휘로“비”가“전복”을 뜻한다.
이는 12세기 초 문헌인 계림유사(鷄林類事)의“복왈필”(鰒曰必, 전복을 고려 사람들은 비/빗“이라 한다)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으며, 이 ”비/빗“이 쓰인 제주어에서도 ”전복“이란 뜻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곧 전복을 따는 도구를“빗창”이라 한다. 그러니“비바리”의 원래 의미는“전복을 따는 사람”을 말하며, 이런 작업은 주로 여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져서“잠녀”를 뜻하다가 그 의미가 축소되어“처녀”로 쓰이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처녀라는 뜻은 아니었다.
또 하나, 제주어의 창이라 할 만한 것으로는 제주의“욕 문화”를 들 수 있다. 이 가치관습이야 말로 제주어를 읽어내는 가장 중심적이고 기본적인 단초가 될 것이다. 육지 지방의 많은 욕들과 마찬가지로 제주의“욕 문화(틀)”역시 보편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제주지역만의 고유한 몇 가지 특성을 보여준다. 소박하게 말해서 대물림되던 제주에서의 일상적인 욕들을 보면 제주신화에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민중의 삶, 일상과 함께 하는 신들》편에서 보면, 제주의 어머니들은 자녀들에게“노일저대구일의 딸”(제주신화 칠성본풀이에 나오는 아가씨)처럼 궁뎅이를 빼쭉대며 뽄(멋)만 내면서 나돌아 다니지 말라,“정에 어신 정수남이(남장소녀)같이 생각 없이 굴거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흘그산이“같이 흘긋거리지 말라고 늘 가르쳐 왔다. 나아가서 뒤엉켜 싸움질 하는 자식들에게 어머니들이 내 질렀던 욕이야 말로 제주어가 아니면 도무지 표현할 수 없는 풍경들로 넘쳐나게 한다.
“이 몽곤놈에 새끼 덜, 골갱이로 대맹색일 닥닥 모상, 혼곳돌로 아사당 내부쪄부러시문, 속이 씨원허켜”이것을 서울말로 옮기면“이 몽고 놈 같은 녀석들 호미로 머리를 콱콱 찍어서 한꺼번에 패대기쳐 버리면 속이 시원 하겠다”라는 말인데 참으로 살벌한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골갱이는 호미이고 제주에서의 호미는 낫을 의미하며, 대맹새기는 당근머리, 이마를 임댕이라고 한다.
여기서 보충 설명 하자면“몽고 놈”이라는 말이 제주도에서는 오래전부터 욕이었다. 제주는 원(몽골) 나라가 지배되는 동안은 말 목장으로 사용 되었고 추축 컨데, 그때부터 욕이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몽고 놈”이란, 몽군에게 유린하여 생긴 자식 또는 산전수전 다 겪은 닿고 닿은 놈이라는 두 가지의 뜻으로 풀이되기도 하지만, 이제 제주인들은 오랑케 몽골인을 미워하기는커녕 같은 혈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욕 중의 하나는“개새끼”이다. 그러나 그 흔한 욕이 제주에서 사용된 것은 대중매체가 보급된 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특히“육시랄”,“우라질”“주리를 틀”등 형벌에 관련된 욕설은 사용되지 않았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일상적 삶 속에 아주 가까이 살아 숨 쉬는 도구들을 친밀성 있게 사용했던 특징이 있다. 울보아이를 보면서 저들끼리 놀려대며 쓰던 울단/장쿨레기(도마벰), 이 외에도 뚜럼/두레/귀껏(바보) 등이며, 가장 심한 욕은 “니네 어멍 꽝”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육지에서는 흔히 쓰는 '에미', '애비'를 제주에서는 거의 욕에 가깝게 듣는다는 점이다. 아주 속된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느 어멍/아방이 경허랜 허여냐? ⇒ 너의 에미/애비가 그렇게 하라고 했냐?”여기서 어멍은 에미, 아방은 애비의 제주어이다. 또 하나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될 욕은“쇠(소)잡아 먹을 간새(게으름)”였고, 가장 치명적인 욕 중의 하나는“쇠(소) 도둑놈의 집안”이었으며, 요컨대 욕 중에 욕은 할머니들의“이 X으로 난 년아”는 누가 뭐래도 당연 압권이다.
우선 제주의 욕에는 어느 지방에도 비길 수 없을 만큼, 인간의 삶과 친밀하다는 특징을 갖는다. 제주 사람들의 일상적 삶 속에 아주 가까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생활 속의 도구들을 이용하고 있음은 감탄할 만한 일이다.
“그 나쁜놈! 볼망텡이를 박아불거 아니꽈? ⇒ 그 나쁜 놈! 뺨따귀를 때려 버릴 거 아닙니까?”
“경했주! 모가지 잡안 흥글단 대맹이로 뱃대기를 박아 부난 ⇒ 머리로 배를 받아 버렸더니”
“둥글멍 자빠정게 ⇒ 뒹굴며 쓰러져 버리더군!”
“잘콰니여! 그런 놈은 혼내 줘사 홉니다 ⇒ 그럴 줄 알았지! 그런 놈은 혼을 내줘야 합니다”
중언부언이지만, 제주어는 동사의 활용에 따라 행동의 가능과 부정을 구별하는 것인데 현재 진행, 지속, 완결은 물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위치와 행동을 결정하게 된다.
똑 같은 《차타고 가시오》가 육지인들은 모르겠지만,“차 탕 갑써”하면(가능),“차탄 갑써”할 때는(불가능)”으로 구별된다. 육지어에서 명확하지 않은 동사의 중요 관점인 소위 양면성[aspect]의 명확한 의식을 간직하고 있음은 놀라움 그 자체이기도 하다. 또한“어드 웍 못가키어 ⇒ 어두 워서 못가겠다.” 먹곡(食),보곡(見),허곡(하고 爲)에서의 (웍, 곡)은 결코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며 특히“오랑 상갑써“에서는(와 사가시오)의 뜻이지만,“왕 상 갑써”는 가능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 같은 예는 천금의 가치를 가진 것이다.
그 밖에 다른 지역의 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어멍 집이 간 ⇒ 어머니 집에 갔어”,“어멍 집이 간? ⇒ 어머니 집에 갔어?”등과 같이 제주어의 대화에서 문장 끝에 소리의 억양(intonation)을 두느냐 안 두느냐에 따라서 평서문이냐 의문문이냐가 갈린다. 곧 문장 끝 억양이 낮아지면 대개 평서문으로 발화가 끝났음을 나타내고, 후자의 예처럼 끝 억양이 높아지면 의문문으로서 듣는 사람의 반응을 기다림으로 나타낸다.
“강 방 왕 라 줍서 ⇒ 가서 보고 와서 말해주십시오.”,“강 보난 다 끝나비서라 ⇒ 가서 보니까 모두 끝나버렸더라.”등에서와 같이 어미“~ㅇ”은 앞으로 일어날 동작에 쓰이고
어미“~ㄴ”은 이미 지난 때의 동작에 쓰인다.
일찍이 아프리카의 대표작가 아마도우 함파텔 바(1901~1991)는 유네스코 연설에서 노인 한 사람이 죽는 것은 서재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것은 고대에서 중세에 걸쳐 어느 섬나라를 막론하고 표류해온 큰 배(표준어)에 승선하려는 것은 그 섬사람들에게 크나큰 자랑거리일 것이다.그러나 제주인들이 특별히 그런 일을 즐겨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라, 지킴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그렇게 표현하려고 하는 것뿐이다.
때마침, 2010년 12월 유네스코(unesco)는 인도 코로(Koro)어와 함께 제주어를 소멸위기 단계 중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critically endangered language)로 분류했다. 소멸위기 언어가 됐다는 건《이 상태가 지속되면 조만간 사라질 언어》라는 뜻이다. 이것은 제주어가“사라진다가 아니라, 사라지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경고와 함께 그 안에 담겨져 있는“국제적 인정“이라는 사실에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할 계기로 보아야 한다.
짐작하건데 제주어가 사라질 시기가 언제인지, 사라진 후에 제주 지역과 제주인이 무엇을 상실하게 될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다. 이 점에서 정신적 구심체인 언어의 소멸은 정신의 궤멸을 동반할 것이며, 문화 자원의 상실도 찾아 올 것이다. 결국 제주어로 전해지는 1만8000개의 신화들, 해녀들의 이야기, 전통문화, 그리고 중세국어의 흔적도 사라진다는 것을 말한다.
이제 제주어는 제주인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이다.
참고문헌 : “국어의 풍경들/작가 고종석” “민중의 삶, 일상과 함께 하는 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