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마가복음 8장 14-20절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예수님은 떡 일곱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사천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보여주셨다. 이 기적을 본 유대인들은 “저분은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라고 믿어야 하는데, 오히려 예수님을 시험하며, 더 큰 표적을 요구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기적을 사람의 눈으로 보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이 된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 기적을 보여주시고,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 달마누다 라는 지방으로 가는 도중에 제자들이 보기에 먹을 식량이 물고기 한 개 밖에 없는 것을 보고,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서 남겨진 빵을 생각하고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제대로 보면 먹을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순간 잊어버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반대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더 많은 표적을 요구한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라는 말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을 하면서도, 예수님이 원하는 믿음에 이르지 못하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면서도 예수를 넘어지게 하려는 의도만 있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누룩은 빵을 부풀게 한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통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달아야 하는데, 계속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허점만 보려고 하는 것이다. 육의 눈으로 볼 때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시는 누룩의 요지는 죄와 연관이 있는 것이다. 누룩은 죄를 상징한다. 누룩은 부풀게 하지만, 원래의 것을 변형시킨다. 그래서 누룩은 거짓된 것을 상징한다.
바리새인들의 누룩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지 못하고 예수를 넘어지게 하는데 있는 것이다. 그것이 위선이요, 외식하는 자인 것이다.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예수님을 더 깍아 내리기 위해서 함을 쓰는 모양이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제사장 그룹인데, 감히 시골뜨기 같은 자가 메시야 라고 말을 하고 기적을 일으키니 몹씨 마음이 상한 것이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죽일 방도만 생각하는 것이다. 계속 그들은 예수를 잡아 죽이는 것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마치 누룩이 빵에서 퍼지는 것처럼 바리새인들의 마음에 죄로 가득하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헤롯은 에서의 후손으로서 정통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는 마카비 전쟁으로 세운 하스모니아 왕조가 로마에 의해 멸망당하고 난 후에, 당시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와 전쟁(악티움 전쟁) 중이었는데, 헤롯은 옥타비아누스에게 자신을 유대인이라고 속이고, 자신을 유대의 왕으로 세워주면, 자신이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황제가 되는 것을 돕겠다고 거짓으로 협상하여, 결국 헤롯은 유대인의 왕으로 등극한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을 거대하게 재정비했다. 그는 항상 유대인에게서 메시야가 출현한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소문으로 메시야가 태어났다는 것을 들은 것이다. 헤롯은 자신이 왕으로 계속 있으려면 메시야로 태어난 아기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서기관들을 불러 모아 메시야기 어디서 태어나는 물어보았는데, 베들레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베들레헴에서 아기들이 죽는 참상이 벌어진 것이다. 왕이 되기 위한 욕심과 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그의 잘못된 생각은 누룩처럼 계속 번지고 번져, 아이들을 몰살시키는 그 지경에 이른 것이다.
헤롯의 누룩은 아들에게까지 이어진다. 헤롯 안디바는 '아버지를 대신한 영웅의 아들'이란 뜻으로 헤롯 대왕의 둘째 아들로,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의 분봉왕(B.C.4-A.D.39년)이었다. 헤롯 안디바는 자신의 조카이자, 이복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재혼을 했는데, 세례 요한이 자기가 불법으로 동생의 아내와 재혼한 것을 꾸짖자, 자신의 죄를 돌이켜 회개하기는 커녕 도리어 무죄한 세례요한을 옥에 가두어 버렸다.
헤롯 안디바는 부도덕하게도 동생의 아내와 재혼하는 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그의 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헤로디아의 불법 재혼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결국 세례요한을 죽이는 또다른 죄를 초래했던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죄는 단 일회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파생적으로, 또한 연쇄적으로 다른 모양의 죄를 짓게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야고보서 1장 14-15절에서『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신 이유는 당시 제자들도 예수님을 로마를 무너뜨릴 수 있는 메시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크냐 라고 다투기도 하였고,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 되면 자신을 우편에 좌편에 앉기를 바라는 모습들을 보였기 때문이다. 인간적 욕망으로 예수를 바라보면, 누룩처럼 그 생각이 확산되고 번지는 것이다. 제자들의 마음이 그러했다. 가롯유다는 돈을 받고 예수님을 바리새인들에게 팔아버렸다. 그는 예수님이 메시야로서 엄청난 권능을 발휘할 줄로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욕당하고 십자가의 형장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목을 매고 자결해버렸다.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사망을 낳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섰을 때, 제자들은 다 도망가버렸다. 욕망의 잘못된 생각이 계속 누룩처럼 번지는 것이다. 그래서 누룩처럼 번진 생각이 파멸을 가져온다는 것을 예수님이 경고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은 기복주의를 바탕으로 한 인본주의 일 것이다. 예수라는 이름을 이용해서 장사하는 자들,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행위 등 수많은 인본주의 종교행위가 바로 누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