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백의종군길 이음 도보 대행군 참가기(4)
7. 빗속에 넘은 넙티와 게티(현충사 – 정안 29km)
8월 20일(일), 새벽부터 많은 비가 내린다. 아침 6시에 숙소(베르사체 모텔)를 나서 전날 아침에 들른 전주콩나물국밥집으로 향하였다. 휴일이어서인지 이른 아침부터 젊은이들로 왁자하다. 식사 후 우장을 단단히 갖추고 현충사행, 7시 10분 전쯤 정문에 도착하니 서울에서 미리 내려온 한국체육진흥회원 여럿이 먼저와 기다리고 있다. 출발에 앞서 평택에서부터 함께 한 박승운 이순신 백의종군보존회 회장이 유서 깊은 아산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며 정유7갑자(백의종군했던 1597년으로부터 420년)에 갖는 백의종군길 대행군의 완주를 축원한다. 그의 지론, ‘백의종군이 없었다면 국난극복의 위업도 없었으리라.’
7시에 현충사를 출발하여 공주시 정안으로 향하였다. 서울 충무로를 출발할 때 비가 오더니 5일 후 아산 이순신대로를 떠나려니 비가 오누나. 길 안내는 3일째 천경식 아산향토연구회장, 전날 막판에 걸었던 은행나무 광장을 거쳐 곡교천의 남쪽 길로 접어든다. 천변 길이 흥건하여 이내 신발에 물이 찬다. 한 시간에 걸어 곡교천 지류인 온양천 합류지점에 이르고 40여분 더 걸으니 온양천 지류인 금곡천 지나 감태기마을로 접어든다.
감태기마을은 400년 전통의 강 씨 집성촌, 백의종군길의 충무공이 이곳에 이르자 강 씨 문중 지도자들이 나아와 문상하였다고 천경식 씨가 설명한다. 잠시 후에 맹사성의 연고가 있는 배방읍 중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중리에 고려 말 최영 장군의 아버지가 지은 600년 고택이 있고 최 장군의 손녀가 맹사성의 부인, 그 후 이 마을이 맹 씨 촌이 되었다고 한다. 그 마을을 지나는 623 지방도로의 명칭은 고불로(고불은 맹사성의 호)다. 이틀 전 아산시 음봉면에 있는 윤보선 전 대통령 묘소 옆의 산길을 걸었다. 시대를 걸러 역사의 인물들과 이렇게 조우하는구나.
10시 경 623번 도로변의 수철 저수지에 이르자 백의종군보존회 박승운 회장과 임원들이 차 한 잔 마시고 가자며 저수지 맞은편의 산마을 전통찻집으로 안내한다. 일행 대부분 쌍화차를 선택, 정성들여 끓인 차를 마시며 환담하느라 30여분이 훌쩍 지난다. 10시 반에 산마을 찻집을 나서니 이내 오르막길, 산길로 접어들어 힘겹게 오르니 정상에 넙티고개가 있다. 그곳에 여러 번째 만나는 백의종군길 비석이 있고 그 옆에 ‘넙티고개’라 새긴 시비가 있다. 백의종군보존회의 사무국장 한유자 씨가 지은 시(그는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는 예인이다), 그녀가 낭랑한 음성으로 자작시를 읊는다. 충무공이 상중에 이 고개를 넘는 심정을 시에 담았다며.
‘넙티고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아픔으로
돌아올 기약 없는 이 고개를
님은 가셨지만
우리 가슴엔 우국충정
피고지고 지고피고‘
시 낭송 후 넙티고개에서 기념촬영, 비가 그쳐 고개 뒤의 산을 타고 오르는 구름안개가 운치 있다.
고개를 넘으니 아산시 배방읍에서 천안시 광덕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고개 아래 광덕면의 길가에‘백의종군의 길'이라 새긴 비석(앞서 본 비석들보다 더 큰 것으로 석공명인 작품인데 제작 후 건립 허가가 나지 않아 우여곡절 끝에 20년 지나 2014년에야 세우게 되었다는 박승운 회장의 설명) 뒷면에 새긴 난중일기에 충무공이 이곳을 지나는 정황과 심경이 잘 나타나 있다.
‘일찍 길을 떠나며 어머니 영전에 하직을 고하고 울며 또 울었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간에 나 같은 사정이 어디 있으랴 어서 죽는 것만 못하구나. 뇌의 집에 이르러 선조에 하직을 고하고 그길로 금곡 강선전의 집에 이르러 강 씨들을 만나 말에서 내려 곡했다. 그 길로 보산원(광덕면)에 이르니 천안 군수가 먼저 와서 말에서 내려 냇가에서 쉬고 있으며 임천군수 한술이 중시를 보러 서울 가는 길에 앞을 지나다 내가 있다는 말을 듣고 들어와서 조문하고 갔다,,,’
그곳에서 한참 내려가니 보산원, 보산원초등학교의 정자에서 1일 걷기 차 서울에서 내려온 일행과 합류하여 점심을 같이 하였다. 찰밥에 맛깔스런 반찬을 곁들여 30여명이 한곳에 둘러앉아 먹는 광경이 정겹다. 귀한 음식을 준비한 이들께 감사!
오후 1시에 보산원을 출발(사흘간 함께 한 박승운, 천경식 회장과 이곳에서 작별)하여 게티고개로 향하였다. 넙티와 게티의 티는 고개(峙)의 뜻, 게티 가는 길목에 도인사가 있다. 도인사까지 한 시간여, 그곳에서 산길로 접어든다. 산길의 일부는 길이 막혀 통행하지 않는 길, 이번 대행군을 위하여 집행부에서 개발한 코스인데 도인사 가는 도로 옆으로 천안시의 물 부족을 해소하기 위하여 보를 쌓을 계획이라 하니 다음번 백의종군길의 순로는 바뀔 수 있겠다. 비가 온 뒤의 게티고개는 내려오는 길목이 미끄러워 위험한 코스, 일행 모두 조심하며 어렵게 통과하였다.
고개 넘어서 공주시 정안면에 들어서니 오후 3시가 넘었다. 산 아래로 내려오니 한국체육진흥회 세종시지부에서 임병수 지부장 등 여러 분이 마중을 나왔다. 산길 넘을 때 소나기가 내려 조심스러웠는데 목적지를 2,3km 앞두고 갑작스럽게 폭우가 쏟아진다. 큰 비를 쫄딱 맞으며 정안면 소재지에 이르자 서울에서 내려온 이들은 서둘러 버스에 탑승, 작별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헤어져 미안하다. 목적지에 이르니 오후 4시 35분, 29km를 걸었다.
정안 도착 후 세종시 지부 회원들과 함께
저녁식사는 세종시 지부 회원들과 함께 하기로, 숙소에 들렀다 나오기 번거로워 곧장 식당으로 향하였다. 정담을 나누며 식사를 마치니 비가 그쳤다. 세종시 팀과 작별하고 숙소 행, 불순한 날씨에 큰 고개 둘 넘으며 무사히 일정을 마쳐 감사하다. 멀리서 함께 한 이들이여, 편히 가시라.
8. 유서 깊은 공주 거쳐 계룡으로(정안 – 계룡 33km)
8월 21일(월), 새벽부터 많은 비가 내린다. 아침 6시에 숙소(광정모텔)를 나서 정안면소재지의 식당(경성식당)으로 향하였다. 메뉴는 백반, 아침을 들고 출발하려하니 잠시 멈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우장을 갖추고 정안천 제방 길에 들어서니 빗줄기가 굵어진다. 덩달아 물살이 거세지더니 한 시간쯤 걸어 하천을 건너야 할 지점(장원보건진료소 앞)에 이르니 갑자기 불어난 물로 길이 막힌다. 뒤따라오는 승합차에 올라 큰길로 되돌아서 보건지소 앞에 내려 다시 걷기까지 30여분이 지난다. 그 사이 폭우로 내리던 비가 그쳐 다행이다.
갑자기 불어난 물로 다리가 끊긴 지점
장원리에서 큰길 따라 석송초등학교에 이르니 오전 9시, 이곳에서 4차선 도로 따라 30여분 걸으니 북계리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그곳에 있는 '신바람난 빵집'에서 갓 쪄낸 빵 한 입씩 물고 내쳐 걸으니 오인교차로에 이른다. 오인대교를 지나 한 시간쯤 걸으니 의당면 소재지, 변두리에 있는 식당(참나무가든)에서 이른 점심을 든다. 메뉴는 갈비탕, 싹싹한 여주인의 고기를 많이 넣었다는 말에 진심이 담겨 있다.
12시에 오후 걷기 출발, 잠시 후 공주 시내로 접어든다. 초입의 연꽃단지가 운치 있고 법원, 검찰청사와 공주대힉교를 거쳐 강변에 이르는 시가지의 풍광이 아름답다. 강바람이 거센 공주대교를 건너니 오후 2시, 논산방향으로 꺾어 한참 걸어가니 다시 비가 내린다. 굵은 빗줄기로 도로에 흥건하게 물이 고여 신발에 물이 찬다.
비온 뒤 더 운치 있는 연꽃밭
빗속을 한참 걸으니 공주시계를 벗어나 계룡면에 접어든다. 목적지는 계룡면 행정복지센터, 오후 4시 넘도록 굵은 비가 계속되는데 면소재지는 2km 정도 더 가야 한다. 예정주행거리는 30km인데 33km 지점에 숙소가 있다. 숙소(명성모텔) 앞에서 걷기를 종료, 곧바로 여장을 풀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승용차로 5분 거리의 면소재재로 나가 저녁(메뉴는 생선구이)을 먹고 돌아오니 저녁 7시다. 종일 빗길 걷느라 모두 피곤한 기색, 푹 쉬고 내일도 열심히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