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의 회고록 - 반여농산물도매시장을 상생하는 공동체로 ①
반여농산물도매시장의 책임자로
중국 북경에서 1년간 연수를 마치고 2006년 2월 초 귀국했다. 1년 동안 북경임업대학에서 방문학자(일종의 청강생)로서 오전에는 중국어를 배우고 오후에는 자유롭게 수업을 들으며 때때로 중국 각지를 여행하면서 중국에 대해 많이 알게 된 좋은 기회였다.
귀국 후 전혀 생각지도 않게 3월 2일 반여농산물도매시장(이하 반여시장) 관리사업소장으로 발령이 났다. 정기인사가 끝나 적당한 자리가 없어 마침 중간에 자리가 비게 된 반여시장의 책임자로 발령이 나서 참 황당했다. 영어, 일어에 이어 중국 유학을 갔다 와 중국어도 가능하다는 스펙으로 혹시 국제협력과장으로 갈 수 있을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고시 후배들도 한참 승진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승진에 유리한 본청 과장도 아니고 퇴직 말년에 가는 한직인 사업소장이라니 실망이 컸다.
그렇지만 내 전문 분야인 녹지, 공원 부서가 아닌 농산물 유통 분야에서 근무하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진정한 목민관 자리라는 생각이 들어 새로운 의욕이 솟기 시작했다. 목민관이라 표현하는 이유는 반여시장의 울타리 내에서 입법, 행정, 사법의 3권을 행사하는 마치 한 고을의 사또와 같은 역할이라는 이유에서다.
반여시장은 부산광역시가 900억의 예산을 들여 1993년에 지은 서부권의 엄궁농산물도매시장에 대응해 2000년 동부권인 해운대구 반여동에 지어졌다. 공정한 경매를 통해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를 동시에 보호하기 위해 공영도매시장을 만들어 부전역 일대의 개발을 염두에 두고 부전시장의 상인들을 이전시키는 목적도 있었다.
반여시장은 수영강변대로와 반송로가 교차하고 번영로 석대 램프로 경부고속도로에 바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평지로 이루어진 반여시장은 전체 면적이 4만 5천 평에 이르고 약 2,000명의 농산물 유통 관련 종사자들이 상주하며 농산물을 구입하러 오는 소매업자들, 일반 소비자들로 시장 안은 시장통이라는 말대로 늘 북적인다. 건물의 구성은 가장 넓은 1만 평의 면적을 차지하며 농산물의 경매가 이루어지는 청과물동, 무, 배추를 주로 취급하는 무배추동, 양념을 취급하는 양념동, 각종 식료품과 수산물을 취급하는 관련 상가동, 새마을금고, 매점, 목욕탕(현재는 폐쇄), 커피숍, 식당 등 상인들의 휴양과 사교를 위한 서비스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청과물동에는 농산물의 반입과 경매를 담당하는 3개의 도매법인과 각 도매법인에 소속되어 경매를 통해 농산물을 매입 후 소매상에게 적정 이윤을 붙여 되파는 수 백 명의 중도매인들이 장사를 하고 있다. 무배추동에서는 상장 예외 품목인 무, 배추 등을 경매 아닌 직거래로 매매하고 양념동에서는 양념류를 제한 없이 매매하고 있다.
많은 상인들이 한 울타리 안에서 서로 협조하면서 경쟁을 해야 하지만 협조보다는 항상 대립과 갈등의 요소를 안고 있다. 같은 품목을 취급하는 옆 상인들과의 갈등은 다반사고 도매법인과 중도매인들 간, 청과동과 무배추동 간, 심지어 직원들 간의 갈등도 극심했다. 관리사업소는 소장 아래 두 명의 사무관인 관리과장과 운영과장이 있는데 애매함 때문에 업무 소관을 두고 사사건건 대립과 갈등을 일으켜 조정해야 하는 소장으로서도 골치 아픈 문제였다.
관리사업소장은 25명의 공무원과 10여 명의 상장지도원, 10여 명의 경비원을 지휘하며 시장의 유지 관리 발전을 위한 행정권, 상인들 간의 규칙을 제정하는 입법권, 상거래 위반에 대해 벌칙으로 과태료 과징금 등을 부과하는 사법권을 행사하며 2000명이 사는 4만 5천 평 고을의 사또로서 일종의 목민관이라 할 수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