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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유엔평화유지활동의 첫걸음
합참 군사협력과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인 1993년 4월 21일, 한국군 최초로 유엔평화유지활동(PKO) 참여를 위해 ‘현지 사전협조단장’ 직책을 맡아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자료를 확인해 보니 소말리아는 아프리카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면적은 한반도의 약 3배 크기인 국가로 1960년 독립한 이후, 1969년 ‘바레’(Barre)장군이 군부 쿠테타로 집권하였으나 1991년에 독재와 식량난으로 정권이 붕괴되고 이어 10여개 군벌에 의한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실패한 국가’였다. 이에 따라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에 의하여 ‘구호 및 내전 종식’을 위해 노력해오다가 유엔 주도의 평화유지활동으로 전환하고 있는 시점에서 유엔이 회원국에 참여를 요청하고 있었다. 한국은 과거 6·25전쟁시 유엔군의 지원에 보답한다는 의미와 함께, 국제적인 평화 유지 노력에 동참하여 국가 위상을 제고하고 국민적 자긍심을 고취하며 우방국과 군사유대를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한국군 최초로 공병 1개 대대 규모의 유엔평화유지군 파병을 결정하였다.
합참에서는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소말리아의 정황을 파악하고 한국군의 평화유지활동 임무 수행을 위한 분야별 사전협조를 위해 합참 4명, 육본 6명, 공군 1명으로 사전협조단을 구성하였으며 합참에서 지금껏 군사협력업무를 수행해오던 내가 단장을 맡게 되었다. 출국 전 합참의장께 보고 드려 현지 유엔군사령관에게 보내는 친서를 준비했으며, 일행보다 5일 먼저 현지에 도착하여 한국군에 부여될 임무와 지휘관계를 확인하고 분야별 협조를 위한 사전 준비를 하기로 하였다. 합참의장께서는 최초의 유엔평화유지 활동 참여인 만큼 장병들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한미동맹의 경험을 살려 가능한 미군에 대한 공병지원 업무를 맡도록 하되 유엔군사령부가 위치한 ‘모가디슈’에 부대를 위치하도록 노력하라는 지침을 주셨다. 추가적으로 한국 건설업체가 소말리아의 전후 복구 사업에 참여하는 방안도 협의해 보도록 지침을 주셨는데 국익 차원에서 매우 통찰력 있는 지침이라고 생각되었다.
케냐에서 소말리아로 가는 항공편을 확인하니 민항기는 없어지고 유엔에서 운항하는 항공기만 있었으며 공중에서 내려다본 소말리아의 수도인 ‘모가디슈’는 가까이서 볼수록 전쟁터와 같은 황폐한 모습이었다. 공항 도착과 동시에 철모와 방탄복을 착용하고 무장 경호를 받으며 사령부에 도착하여 사령관과 부사령관을 방문하였다. 사령관은 ‘비르’(Bir, 터어키 육군 중장)장군이었으며 한국군의 전개를 크게 환영한다면서 소말리아 유엔군의 작전계획의 개요를 직접 상황도를 이용하여 자세하게 설명해주었고 한국군 공병부대 운용에 대하여는 관련 참모와 구체적으로 협조하라고 얘기하였다. 이어서 부사령관 ‘몽고메리’(Montgomery, 미국 육군 소장)장군을 만났는데 미군 사령관이면서 실질적으로 유엔군을 지휘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는 소말리아 북부지역 확대작전으로 말미암아 한국군이 가능한 조기에 전개되기를 희망한다고 하면서 미군 자체의 공병 능력이 충분하므로 미군에 대한 공병지원은 필요 없으며 한국군 공병부대의 ‘모가디슈’ 배치와 관련하여, 현재에도 각국 부대의 밀집현상이 심각하여 재배치가 불가피한 실정이므로 불가함을 명확히 하였다. 상당히 실망감을 느낀 가운데 한국 건설업체의 전후 복구 참여 문제를 제안했는데 소말리아에 여단 규모 이상의 전투부대를 전개하여 지역책임을 맡고 있는 주요 참전국의 민간업체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답변에 더 이상 말을 꺼내기 힘들었다.
이튿날 참모장과 참모들이 모인 가운데, 전개되는 한국군의 공병부대에 대하여 시설 및 건설공병 위주로 편성되어 있으며, 전투공병과는 달리 경비 및 방호능력이 제한되어 있음을 설명하고 평화유지활동을 위해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를 토의하게 되었다. 참모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4가지 방안이 제시되었다. 첫째는 지역책임을 맡고 있는 5개 기동여단 중 1개 여단에 배속 운용하는 방안으로 파키스탄여단이나 인도여단과 같이 공병 능력이 제한된 부대를 지원하는 것인데 유엔군 군수지원사령부에서 제의한 방안이었다. 둘째는 소말리아 북부 지역에 약 150만발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는데 이를 제거하는 임무였으며 작전참모가 제의한 방안이었다. 셋째는 남부 지역에 약 30만명의 난민이 발생하였는데 이를 수용하는 난민수용소를 건립하는 방안으로 인사참모가 제안한 방안이었으며, 넷째는 남부 또는 중부의 주 보급로를 보수하는 방안으로 군수참모의 제안이었다. 제시된 방안에 대한 설명과 토의를 마친 후, 나는 참모장에게 이틀간 지역 정찰을 할 수 있도록 방문부대 협조, 기동수단(헬기 및 차량), 경계병 및 통신지원을 요청했으며, 정찰이 끝난 후 참모들과 방안선정 회의를 갖도록 요청하였다.
제시된 방안에 대하여 지형, 기상, 현지 상황, 한국군 공병 능력 등 여러가지면에서 현실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현지 정찰을 실시하기로 하였다. 첫날은 ‘모가디슈’ 시가지의 항공 및 지상정찰을 실시한 후, 이어서 미군의 군수지원사령부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책임지역과 사령부를 방문하여 상황설명을 청취하고 공병부대 운용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모가디슈’ 시내는 대부분의 시설이 파괴되고 움막형태의 집단 주거지가 폐허건물의 공터에 설치되어 있었으며 소말리아 양대 무장세력인 ‘아이디드’(Aideed)와 ‘알리마디’(Alimahdi, 임시 대통령)의 주도권 다툼으로 치안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미군의 군수지원사령부는 유엔사령부 예하부대에 대한 모든 군수지원업무를 맡고 있었으며 한국군 공병부대를 다른 지역책임여단 예하에 배속 운용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한편 파키스탄 여단장은 한국군의 공병 지원에 크게 환영하며 최대한 협조를 약속하였으나 병력위주의 편성으로 후진성을 면하기 어려운 부대의 모습에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다음 날은 중부 및 북부지역의 이태리, 독일, 캐나다 부대와 책임지역을 정찰하기로 하였는데 헬기를 기대하였으나 가용 헬기가 제한되어 대신 독일군의 대형 군용수송기가 지원되었다. 100여명 이상 탑승할 수 있는 수송기를 함께 가는 공병참모와 경호원을 포함 셋이서 탑승하니 고맙기도 하였지만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끝없이 펼쳐지는 황폐한 땅과 부분적으로 파괴된 도로, 가뭄으로 흐르지 않는 강줄기, 그리고 부서진 건물더미와 움막으로 이뤄진 작은 도시들을 바라보며 내전으로 인한 국민적 피해의 참상과 함께 국가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다. 이태리군 부대를 방문해보니 과거 식민지 지배 경험이 있는 지역을 맡아 자신감 넘치는 평화유지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캐나다 공병부대의 중대장은 여군 대위였는데 장갑차에 함께 동승하여 2시간여 작전지역을 순찰하며 자세한 설명을 해주어 인상적이었다. 또한 NATO회원국인 이들 국가의 공병부대는 장갑화되고 전투공병화 되어 있어 한국군 공병부대의 현대화가 시급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귀가하여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내일 참모회의에서 토의할 자료와 본국에 중간보고할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거의 새벽이 되어 자는둥 마는둥 아침을 맞았다.
예정대로 참모장 주관하에 참모회의를 하게 되었는데 기동여단 배속 운용방안에 대하여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능력 발휘가 제한될 뿐 아니라, 1개 기동여단에 1개 중대 규모의 공병부대가 소요되므로 3개의 여단에 분할 운용하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어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다음으로 지뢰제거 문제에 대하여 한국군의 능력과 제한사항에서 설명한 바와같이 한국군은 지뢰설치는 경험이 많으나 지뢰제거는 초보적인 수준임을 설명하고, 장시간이 소요되어 비효율적이므로 선진국의 전투공병이 맡을 수 밖에 없음을 강조하였다. 셋째로 난민수용소 건립과 관련하여 한국군의 경우, 회교위주의 난민들과 종교 및 의사소통에 많은 문제가 예상되며 민사업무 경험이 전혀 없는 한국군 공병부대의 대규모 난민수용시설 공사는 추가적인 어려움이 많으리라고 설명하였다. 마지막으로 중부와 남부의 주 보급로 공사와 관련, 중부 이태리여단 책임지역의 주보급로가 수도 ‘모가디슈’에 이르는 주요 보급로이며, 한국군 공병부대는 건설과 시설부대 위주로 편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한국에서 도로건설 경험이 많으므로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것으로 기대된다고 제안하였다. 함께 정찰을 실시한 공병참모인 ‘미케티’(Miccetti, 이태리 육군)중령의 적극적인 지지 발언도 큰 도움이 되어 마침내 한국군 공병부대는 중부의 주보급로 보수 임무를 맡게 되었으며 미군이 주도하는 유엔군 군수지원사령부의 지휘통제를 받도록 지휘관계를 설정하였다.
회의를 마치자 마자, 공병참모와 함께 차량을 이용하여 주보급로를 정찰하며 대략적인 도로상태 확인과 주변 부대를 방문하여 무장세력들의 활동상황을 파악하였으며 한국군 주둔지 위치를 선정하기로 하였다. 주둔지 위치를 선정하기 위하여 도상에서 4개 지역을 선정한 후 임무 수행의 용이성, 부대 안전, 접근성, 지휘통제 등을 고려하여 수도 ‘모가디슈’에서 북쪽으로 약 30Km 떨어진 ‘발라드’(Balad)지역을 선정하였다. 가까이 인구 2만여명의 시가지가 있으며 무엇보다 이태리 연대와 군수지원대대가 위치하고 있어 이태리 연대장과 협조하여 한국군이 이태리군 영내에 함께 위치하여 상호지원 개념으로 주둔지 방호를 실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군이 보급로 보수공사시 지속적으로 경계를 지원해 줄 수 있도록 유엔군사령부와도 협조를 하였다.
이와같이 공병부대의 임무, 위치, 지휘관계를 결정한 후 도착한 사전협조단 요원들에게 각 분야별 세부협조를 진행케 하였으며 결과를 종합하여 귀국 후, 공병부대의 파병 준비에 착수하였다. 귀국 후 약 2개월이 지난 6월 29일 약 60명의 ‘상록수 부대’(공병부대 별칭 - 소말리아 땅을 푸른 옥토로 바꾸겠다는 의미) 선발대를 인솔하여 주둔지인 ‘발라드’에 도착하였는데, 이태리군이 우리들의 숙소(11개동)를 사전에 준비해 놓았을 뿐 아니라 식사까지 제공해주어 너무 고마웠고 감동적이었다. 선발대를 인솔을 마친 후, 유엔군사령부를 방문하여 ‘상록수부대’의 본대 이동을 위한 이동간 공중 엄호 및 무장 경호, 장비 하역 및 적재 지원, ‘상록수부대’ 보급로 보수간 경계 제공, 한국군 공병장교 유엔군사령부 참모부 근무, 연락장교 운용 등을 협조하였으며 주요 협의내용은 작전명령이나 단편명령으로 문서화하여 이행 책임을 명시하도록 하였다.
약 1개월 후인 7월 중순에 ‘상록수부대’ 본대가 소말리아에 전개하여 한국군 최초의 평화유지활동을 시작하였다. 상록수부대는 주보급로 60Km를 보수하여 복차 통행이 가능하게 하였으며 20Km의 우회도로까지 건설하였을 뿐 아니라 주민 숙원사업인 ‘제너럴 다우드’ 관개수로 18Km를 5개월만에 개통하여 5000ha 규모의 농경지 경작을 가능케 하였다. 또한 지역주민들을 위하여 ‘사랑의 학교’와 ‘기술학교’를 운영하여 소말리아의 평화정착에 기여하는 등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여 이후 국제사회로부터 한국군의 평화유지활동 참여를 지속적으로 요청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한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평화유지활동 파병업무를 맡아 모든 것이 새로운 도전이었고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고 기억된다. 그러나 소말리아 파병을 첫 걸음으로 하여 이제는 세계 10여개국에 1000여명 이상의 한국군이 국제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긍지와 보람을 느끼게 된다. 앞으로도 우리의 국익창출과 한국군의 세계화에 기여할 수 있는 국제평화유지활동이 미래지향적으로 발전되기를 기대한다.
(당시 상황에 관심있는 동기생께서는 연락주시면 관련 사진, 자료를 제공해드리겠습니다 / adkwon@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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