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종직전의 고뇌를 읽고 ☞음성으로듣기☜
니치렌 대성인께서 1253년 4월 28일, 법화경의 간심(肝心)인 ‘남묘호렌게쿄’야말로 말법의 중생을 구제하는 유일한 정법이라고 외치며 ‘입종선언’을 하셨으니 올해로 771년째입니다.
입종 직전에 대성인께서는 법화경을 설해야 할지 말지를 깊이 고뇌하셨다고 『개목초(開目抄)』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일본국(日本國)에 이것을 아는 사람은 다만 니치렌(日蓮) 한 사람이니라. 이것을 한마디라도 입 밖에 낸다면 부모(父母) · 형제(兄弟) · 사장(師匠)에다 국주(國主)의 왕난(王難)이 반드시 닥치리라. 말하지 않는다면 자비(慈悲)가 없음과 같다고 사유(思惟)되어, 법화경(法華經) · 열반경(涅槃經) 등(等)에 이 두 가지를 대조(對照)해 보니, 말을 아니하면 금생(今生)은 무사(無事)하나 후생(後生)은 반드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것이고, 말하면 삼장사마(三障四魔)가 반드시 다투어 일어나리라고 알았노라. 둘 중에서는 말해야 할 것이로되, 왕난(王難) 등이 일어났을 때 퇴전(退轉)할 양이면 아예 그만둘까 하고 잠시 망설이고 있노라니 보탑품(寶塔品)의 육난구이(六難九易)가 생각났느니라.」(신편어서 p.539)고
‘법화경을 설해서 왕난을 만나 퇴전할 정도라면 애초부터 설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나아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거듭 자문하는 가운데 떠오른 것이 보탑품에 나오는 ‘육난구이(六難九易)’의 법리(法理)였다는 것입니다.
‘부처가 멸한 뒤 법화경을 수지해 한 사람을 위해서 설하는 일’이 ‘수미산을 들어서 내던지는 일’, ‘마른 풀을 짊어지고 불속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 일’, ‘갠지스강의 모래알처럼 무수한 경전을 암송하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난(忍難)’이 절대적인 조건이 된다고 생각하셨겠지요. 이 시련을 끝까지 견디고, 가로막는 고난의 벽을 돌파하자고 불퇴의 대서원을 품고, 「산(山)에 산(山)이 겹치고 파도에 파도가 덮치며, 난(難)에 난(難)이 더하고 비(非)에 비(非)를 더함이라.」(신편어서 p.540)는 대법전에 돌진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대난을 참고 견디는 속에 누구나 숙명을 사명으로 바꾸는 인생을 살아가고, 행복해질 수 있는 ‘만인성불(萬人成佛)’ ‘민중불법’의 대법을 확립하셨던 것입니다.
『개목초(開目抄)』의 대성인님의 입종 직전의 고뇌에 대하여 읽고 우리들은 누구나 매 순간 무엇인가를 선택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그때 더 성공적이고,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누군가의 삶을 더 낫게 하는 일에 선택의 기준을 두어야 하며, 당장의 좋은 것만 생각하지 말고, 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