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회
-이창식
바다를 지고 와서 어판장에 누인다 온몸으로 뒹굴다가 어화등에 유혹되어 끌려와 총총 썰린다 하루치 세치 만찬 제물이다 풀어헤친 가슴팍 핏물에 스미는 시간켜 빈번히 칼날 받으며 차려낸 그릇 버무러질수록 살아나는 힘이다 정라진 물회는 여전히 바다 힘이다.
어머니 등 뒤에서 나무지게 지고
오십천 지름길 가스랑다리 건너다.
시퍼런 강물은 보지 말라는 어머니
훅 바람 불면 강물에 떨어질 운명인데.
그 후로도 무수한 강물 위를 건너고
그럴 때마다 어머닌 철길목침만 보란다.
드디어 흥정 끝내고 어머니와 돈 셈하며
정라진 난전 옆 밥집 물회 한 그릇인데.
보따리 풀면 어머니 사진 그 옆에 선 나,
멈춘 시계 안에서 물회 먹던 정라진 풍경.
해안선 바위 연구
-이창식
파란 줄에 매달린 바위 음자리표 튕겨 팽팽하다.
파도에 오히려 저마다 악기가 된다.
점점 찍혀도 실이 끊어지지 않는다.
바위얼굴마다 이야기 피가 흐르는 까닭이다.
해안선에는 이처럼 바위음악박물관이 산다.
해가 솟을 때 고깃배에 맞춰 소리를 울린다.
대낮에는 멸치떼 후릴 때 더욱 큰소리 낸다.
저녁 오징어불 켤 때 한 옥타브 낮게 연주한다.
마음길 끊어진 곳에 강릉별곡 다시 잇고
바다 바위악보의 그물줄 여럿이 풀고 있다.
덕온게송
-이창식
손끝 진한 차향 우러나 감이 열리는데
또 옆 모과 달린 마당 법문 열리어라.
뜰안 향나무 만큼 세월의 녹, 푸름이여라.
묵은 거 발리듯 물때 벗겨내는 자리여라.
선한 도반의 목소리 카랑카랑 퍼지는데
여름 깊어가는 백일기도 회향 날이어라.
원만한 청량기도 도량 끌탕에 법열이어라.
복천사 운초성문 쩌렁쩌렁 울림장이어라.
다라니, 진흥선원*에 감 모과 향목의 분신인데
마음 비워 빌 공(空) 하자 툭 터지는 별이어라.
*진흥선원(鎭興禪院): 덕온공주와 부마 윤의선(尹宜善)의
고택을 희사받아 벽해당 현공(碧海堂 玄空) 스님이 창건한 절.
하늘재 가는 길
-이창식
마음무게 지고서 힘들게 찾아온다.
고갯길로 이어진 약사여래불 행렬
봇짐 발걸음 고등어 등짐 지게발
구불구불한 길의 면모를 드러낸다.
아리랑 절창으로 읽는 하늘재 높이
별별 쏟아진 곳에, 풀이 바람칼이다.
가을사과 탱글탱글 막사발 걷기 행렬
앞서간 바람 회초리의 흔적을 좇는다.
하늘재 다시 솟아난 여래불심 화두여
용서하고 다시 누워 하늘눈 헤아린다.
특집
죽서루 사뇌가
-이창식
벼랑 고래 암각화가 보고 싶어 시간여행 떠났소.
성혈 북두칠성 으뜸 자리에 싸리기둥 세웠는데
만년의 우리 꿈*을 바람 깎은 바위 위에 펼치다니.
이승휴 고려 사랑이 겹쳐 아주 오래 눈부셨소.
벼랑 줄불놀이 보고 싶어 그대 앨범갈피 뒤졌소.
오십천 배 위에서 메나리 듣는 유희루(遊戲樓)인데
억겁의 윤회별을 강물 후벼판 바위에 조각하다니
허목 목민관의 현판 글씨 탓에 더욱 환하게 눈부셨소.
죽서루, 국보 죽서루 이름만큼 죽장사와 나란히 보았소.
온 사람들마다 감동처방 내린 치유박물관 한 채라니.
*죽서루(竹西樓) 건립에 대한 김극기 시문
27136
충북 제천시 세명로 65
세명대학교 특임교수 이창식 010-6430-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