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해 1279년 3월 21일, 아부쓰보는 91세의 고령으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내 센니치니, 아들 도쿠로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부쓰보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아부쓰보의 신심은 만년(晩年)의 8년에 불과했지만 아부쓰보에게 있어 일생 중 가장 충실하고 환희에 찬 시간이었겠지요.
대성인님은 센니치니에게 아부쓰보가 끝까지 순수하고 진실한 신심을 지킨 모습에 대해 “돌아가신 아부쓰보의 정령은 영취산 다보불의 보탑 안에 동쪽을 향하여 계십니다”라고, 성불의 경애에서 자수법락(自受法樂) 하고 있을 것임을 구체적으로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외아들인 도쿠로는 그해 7월 2일, 아버지의 희망대로 유골을 대성인님이 계시는 미노부로 가지고 갔습니다.
아부쓰보가 죽은 후 아내 센니치니가 어떤 나날을 보냈는지, 언제 돌아가셨는지는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1280년 7월 2일의 대성인님 편지에 “작년 7월 2일에는 아버지의 유골을 목에 걸고 천 리 길 산과 바다를 건너 멀리 미노부까지 등산하셔서 유골을 묻으셨다. 또 올해 7월 1일에 미노부까지 등산하여 성묘하셨다. 자식보다 귀중한 보물은 없고 자식보다 귀중한 보물은 없다.”라고 아들 도쿠로의 신심 강성하고 효양하는 뜻이 두터움을 칭찬하시고 있으므로 그 편지를 받은 센니치니도 틀림없이 행복한 만년을 보냈을 것입니다.
이 신심은 아부쓰보와 센니치니로부터 아들 도쿠로에 법통 상속되어 도쿠로도 부모의 뒤를 이어 사도 호쿠리쿠(北陸) 방면의 홍교에 힘썼습니다.
아들의 신심의 근원은 오로지 대성인님을 향한 아부쓰보와 센니치니의 목숨을 건 급사(給仕)와 공양의 모습, 그리고 대성인님을 갈앙연모하여 등산을 하던 모습에 있습니다.
우리도 아부쓰보와 센니치니의 신심을 우리 신심의 거울로 삼고 평생 후회 없는 정진을 계속해 갑시다.(끝)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부쓰보(阿佛房)와
센니치니(千日尼)의 설화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부쓰보(阿佛房)와
센니치니(千日尼)의 설화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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