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강 - 行由品- 7
祖- 知悟本性하시고 謂慧能曰, 不識本心하면
學法無益이요
若識自本心하고 見自本性하면
卽名, 丈夫, 天人師, 佛이라하시니라
三更에 受法하니 人盡未知라 懸頓敎及衣鉢云,
汝爲第六代祖하니
善自護念하야 廣度有情하고 流布將來하야
無令斷絶하라 聽吾偈하라 曰
有情- 來下種하니 因地에 果還生이로다
無情- 旣無種이라 無性亦無生이로다
***
祖(조)→ 오조스님이
知悟本性(지오본성)하시고→
본성을 깨달았다고 하는 사실을 잘 아시고,
謂慧能曰(위혜능왈),→
혜능에게 일러 가로대,
不識本心(불식본심)하면→
본심을 알지 못하면,
學法無益(학법무익)이요→
법을 배워도 이익이 없다.
특히 禪宗(선종)에 와서는
이 마음 아는 것을, 처음도 마음을 아는 것이요.
두 번째도 마음을 아는 것이요.
세 번째도 마음을 아는 것이요.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건 하여튼
우리 마음 깨닫는 일이예요. 그래서
불식본심하면 학법무익이라
어떤 가르침.
부처님의 어떤 가르침을 배우더라도
아무 이익이 없다. 이 겁니다.
若識自本心(약식자본심)하고→
만약에 자신의 본심을 알고,
見自本性(견자본성)하면→
뭐 본심이나 본성이나
여기서 크게 분별할 것은 아니에요.
본성을,
스스로 자신의 본성을 본다면,
그것이 곧 부처다. 이 겁니다.
卽名, 丈夫, 天人師, 佛
(즉명, 장부, 천인사, 불)이라 하시니라→
장부, 대장부 진정한 대장부는 見性
(견성)한 사람. 본성을 본 사람을 장부라 하고,
하늘과 사람의 스승이다.
저기 하늘사람이나 보통 우리 인간이나 스승.
그런 이들의 스승 노릇을 하는 것은
곧 마음을 깨달은 사람이라야 스승이 된다.
그것을 부처라고 한다. 깨달은 사람이라고 한다.
이렇게 認可(인가)를 했지요. 이것이 인가한 말입니다.
“야! 참 그대는 제대로 깨달았다.”
하면서 이렇게 인가의 말씀을 내리는 것이지요.
三更(삼경)에 受法(수법)하니→
삼경에 법을 받게 됐지요.
한밤중이지요.
人盡未知(인진미지)라→
사람들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더라.
懸傳頓敎及衣鉢云(현전돈교급의발운),→
곧 돈교와 의발을 전했다.
돈교는 무슨 따로 있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고,
바로 이 道理(도리)를 인정 하는 것이지요.
육조스님이 크게 깨달으신 이 내용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인데, 여기에 피력한
이 내용이 돈교예요.
왜냐?
마음속에 차츰차츰 제거 하는 것도 아니고,
또 萬行萬德(만행만덕)도
차츰차츰 닦아 올라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돈교가 되는 것이지요.
한꺼번에 마음속에 본래 다 갖추어져 있다고
하는 것을 아는 그것이 한꺼번에 되는 것이지요.
頓悟頓修(돈오돈수),
그 덕이나 덕을 닦는 일이나,
번뇌를 제거하는 일이나,
한꺼번에 된다. 斷障修德(단장수덕)그러지요.
불교수행을 두 가지 입장으로 이야기를 하면,
장애를 끊는 것과. 덕을 닦아가는 일.
그러면 장애를 끊는 일이나 덕을 닦는 일이
전부, 장애. 수덕. ←이 두 가지 입장이거든요.
부정적인 것들을 제거하는 일을
단장. 장애를 끊어가는 일이다.
그 다음에 긍정적인 면. 좋은 점.
부처님이 가지고 있는 좋은 점을
자꾸 쌓아가는 일. 그것은 수덕이거든요.
덕을 닦아가는 일.
부처님은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인물인데,
이상적인 인물은 안 좋은 것은 하나도 없고,
좋은 것은 잔뜩 있다. 그렇게 보거든요.
우리는 안 좋은 것이 많고,
좋은 것은 조금 뿐이다.
그렇게 볼 때, 많은 안 좋은 것을 끊어가는 것이
단장이지요. 그러면 좋은 것은 조금 뿐인데,
부처님처럼 많이 쌓으려면
그것은 자꾸 덕을 닦아가야 되지요.
수덕을 해가야 되는데.
그럼 단장이나 수덕이나
육조스님 입장에서는 아니에요.
그렇게 닦아가고 끊어가고 하는 것이 아니고,
오늘 요만치 닦고 내일 저만치 닦고 하는 것이 아니고,
본래 너희의 마음속에 다 갖춰져 있다는 겁니다.
아무런 번뇌도 없고, 아무런 망상. 탐 진 치 삼독이니
그런 것. 본래 없다는 겁니다.
그것이 斷障(단장).
한꺼번에 장애를 끊는 것이지요.
덕도, 부처님이가지고 있는 만행만덕이
네 마음속에 이미 본래 다 갖춰져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修德(수덕)입니다.
그럼 뭐 오늘 요만치 닦고 내일 요만치 닦고,
그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頓敎(돈교)지요. 頓法(돈법).
이 게송(오도송: 8강)을 가만히 분석해 보면,
우리 자성 속에
本不生滅(본불생멸)이고,
本自淸淨(본자청정)이고,
本自具足(본자구족)이고,
本無動搖(본무동요)고,
能生萬法(능생만법)이고,
우리 자성 속에 단장과 수덕의 兩面(양면)이
완전하게 본래로 갖춰져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을 알면 그냥 다 된 겁니다.
그것을 알면
그냥 장부 · 천인사 · 불 · 이라고요.
본래 우리 마음속에 그런 사실을,
그런 그 내면을 알면 그것으로 끝이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돈교 그래요.
또 그 법을 받았다는 信標(신표)가 있어야 하니까
그때 옷. 袈裟(가사)지요
가사하고 발우떼 하고 그렇게 전해줬다 이것이지요.
그리고
汝爲第六代祖(여위제육대조)하니→
그대가 제육대조가 되었으니,
善自護念(선자호념)하야→
잘 스스로 호념 하라. 잘 간수를 하라 이것이지요.
마음에 잘 새겨라. 그리고
廣度有情(광도유정)하고→
널리 유정들을 제도하고,
유정은 중생을 이렇게 부르지요.
流布將來(유포장래)하야→
앞날에, 장래에 크게 유포하라.
이 법을 갖다가 앞으로 많이 펼쳐라.
너 혼자만 가져있지 말고,
많은 사람에게 펼쳐가지고서
많은 사람이 이러한
도리를 깨닫도록 하고.
결국 이것을 깨달아야
제대로 사람 사는 보람이고
불교를 공부하는 보람이니까
부디 많이 유포하도록 하도록
그렇게 하라.
그래서 無令斷絶.
無令斷絶(무령단절)하라→
단절하지 않도록. 끊어지지 않도록 하라.
그래서 계속 불법이 전해 내려가도록 그렇게 하라.
그러면서
聽吾偈(청오게)하라 曰(왈)→
내 게송을 들어라. 이것은 앞에서는
하기자성이 본자청정 ←
이렇게 자기 깨달음의 소감을 적는 것을
이것은 悟道頌(오도송) 이라고 그러고,
이렇게 스승이 제자에게 물려주는 것은
傳法偈(전법게) 그래요.
전법게.→ 법을 전하는 게송.
그렇게 명칭이 조금씩 다르지요.
전법게라고 이렇게 합니다.
전법게를, 법을 전해 주면서
※
게송까지 하나 내리는 것이지요.
有情來下種(유정래하종)하니
因地果還生(인지과환생)이로라.
無情旣無種(무정기무종)이라
無性亦無生(무성역무생)이로다.→
유정과 무정을 두고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은 뭐 그냥 게송을 하나 전해 주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有情來下種(유정래하종)하니
因地(인지)에
果還生(과환생)이로다.→
유정 와서 종자를 심으니,
하 는 “내리다” 하는 것이니까 種子(종자)를 심었다.
그러며는 인지에 結果(결과)가 도리어 생겼다.
인지는 원인의 땅 이예요.
땅을 인해서가 아니고, 원인의 씨앗이 있는
그 땅에, 결국은 열매가 맺히지요.
말하자면 씨를 심어야 씨를 심은 그 자리에서
열매가 맺힌다. 유정들은 그래요 유정은...
식물도 마찬가지고요. 사람은 더욱 더 그렇지요.
사람도...
“그대가 나한테 와 가지고 종자를 심었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와서 인지에서,
오늘날의 그대와 같은
결과가 이렇게 생기게 되었느니라.”
그렇게 단순하게 보면 좋습니다.
無情旣無種(무정기무종)이라→
정이 없는 물건, 돌이나 이런 것은 종자도 없다.
無性亦無無生(무성역무생)이로다.→
성품도 없고 또한 생김도 없다.
생하는 것도 없다. 그러니까
이건 내용이 어떻게 보면 상당히 단순한 내용인데,
유정과 무정의 관계를 가지고...
첫줄이
육조 혜능대사가 오조스님한테 와서
오늘날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됐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이고,
또 다음 줄은 거기에서 어떤 상대적으로
표현한 그런 말이지요.
무정이라면 종자도 없다. 그러니까
種도 없고 生도 없다. ←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육조스님의 게송.
提本無樹(보리본무수)요
心如明鏡臺(심여명경대)라.
本來 無一物(본래 무일물)이어니
何處(하처)에 惹塵埃(야진애)리오 ←
이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육조스님의 오도송이지요.
何期自性(하기자성)이 本自淸淨(본자청정)이며
何期自性(하기자성)이 本不生滅(본불생멸)이며
何期自性(하기자성)이 本自具足(본자구족)이며
何期自性(하기자성)이 本無動搖(본무동요)며
何期自性(하기자성)이 能生萬法(능생만법)이리까→
이것이 열 구절. 열 구절이에요.
다섯 게송의 열 구절이다 그렇게...
한 게송을 열 구절로 썼어요.
대개 여덟 구절. 네 구절로 하는데,
이런 것들도 그런 격식을 따지지도 않고,
또 격식을 모르고한 육조스님다운
그런 표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뭐 글께나 아는 사람 같으면
이걸 여덟 구절을 한다든지,
열 두 구절을 한다든지,
그렇게 맞추었을 텐데,
이것은 열 구절로 그렇게 딱 했어요.
우리가 마음. 마음 하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의 內面(내면)을 상당히...
우리는 모르지만
우리들 마음속에 이미 갖춰져 있는
내면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가르침이 됩니다.
提本無樹(보리본무수)
心如明鏡臺(심여명경대) ←
이것보다도...
요걸 외워 놓으면 더 필요해요.
하기자성이 본자청정→ 우리 마음은 본래 청정하다.
하기자성이 본부생멸→ 본래 생멸이 없다.
하기자성이 본자구족→ 본래 구족해 있다.
하기자성이 본무동요→ 본래 동요도 없다.
하기자성이 능생만법이리까→
그리고 능히 만법을 내가 전부 만들어 낸다.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다.
모든 것은 다 내 마음이 전부 만들어 낸다.
하기자성이 능생만법 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