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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이름
케년(E. W. Kenyon)은 '예수의 놀라운 이름'이라는
그의 책을 다음과 같은 개인적 이야기로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날 오후, "예수의 이름"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는데,
한 변호사가 내 말을 가로막으며 질문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이름을 사용할 법적 권리인 '위임장'을 주셨다는 뜻입니까?"
내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형제여, 당신은 변호사이고 나는 문외한입니다. 나에게 말해주시오 –
예수님이 우리에게 '위임장'을 주신 것입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만일 언어에 어떤 의미가 들어있다고 한다면,
예수님은 교회에 위임장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자 내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이 위임장이란 게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그건 그것의 뒤에 얼마나 많은 것이 있느냐,
즉 이 이름이 얼마나 많은 권세를 나타내고,
얼마나 많은 능력을 나타내는가에 달려있습니다."
그 때부터 나는 예수님이 가지신 능력과 권세가
얼마나 되는지를 발견하기 위해 탐구를 시작했습니다(4).
예수님이 가지신 모든 능력과 모든 권세가
바로 그의 이름 안에 부여되어 있습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위임장이 우리에게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이 우리에게 있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긍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낼 때 그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치유사역을 할 때 그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비밀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 이름의 사용에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구원하려고 할 때 너무도 자주 우리 자신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실제로는, 구원하는 능력이 그 이름에 있는데도 말입니다.
케년은 이렇게 썼습니다.
그의 능력의 분량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의 분량]은 바로 그 이름의 가치의 분량이며, 그 이름 안에 부여된 모든 것은 다 우리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이름을 무제한으로 사용할 권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4).
기도에 있어서 그 이름
예수님은 기도할 때 그의 이름의 사용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지금까지"는 '이 때까지' 란 뜻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예수님이 여기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까지는 그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지상에서 "새로운 날"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위하여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구하는 것은 그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응답이 필요한 사람은 예수님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지식이 없기 때문에 수맣은 기도가 무효가 되고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고, 예수님을 위하여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새 언약의 기도에서 그의 이름을 사용할 권리를 우리에게 주실 뿐 아니라, 또한 그의 이름으로 드려진 기도는 그의 특별한 주의와 관심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 23절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한다.
내가 그것을 보증하겠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기도의 약속입니까!
하지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신약 성경의 가르침 대신 종교적으로 세뇌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적당히 희석시켰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는 것을 덧붙였습니다.
딴 것을 첨가하였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이 하시겠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닐지도 모릅니다."라고 우리는 말해 왔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그와 같은 말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기도응답이 없으면 이렇게 말하고 살아갑니다.
"그의 뜻이 아닌게 틀림없어,
하나님께서 해 주시지 않잖아.
만일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께서 해 주셨을 거야."
예수님은 요한복음 16:23~24에서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1933년 4월 22일에 거듭났습니다. 내가 거듭났을 때 나는 병상에 누어 무기력 상태에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상태에서 기도의 비밀들과 예수의 이름의 사용법을 배웠기에 그것을 지금 여기서 나누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배우는 데는 시일이 조금 걸렸습니다. 내가 16개월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1934년 8월에 나는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법을 배우고 내 몸의 치유를 받았습니다.
이제 내가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말하는지 독자들이 바짝 주의를 기울여 주시면 좋겠습니다(어떤 사람들은 누가 말을 하면 그것의 일부만 이해를 하고 전체를 놓쳐버립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 기도하는 경우, 그들의 의지가 그 상황에 들어온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그 사람이 원하지 않는 것을 기도와 믿음을 통해 그에게 밀어붙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면, 우리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도록 밀어붙이면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경우, 그의 필요에 대해서, 그의 기도 제목에 대해서 기도할 때 그의 의지가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의 의심이 나의 믿음의 효과를 무효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불신앙이 나의 필요를 위한 나의 기도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자 그러한 설명을 염두에 두고 내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을 들어보십시오. 나는 지난 45년동안 기도를 드린 다음 응답을 받지 못한 기도가 하나도 없습니다 (나와,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들을 위한 기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응답을 받았고, 그 응답은 언제나 예수(Yes)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어떤 때는 "예스"(yes)로 응답하시고,
어떤 때는 "노'(no)로 응답하시지요."
나는 성경에서 그런 말을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다만 인간적인 추론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너희가 내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라 그러나 때로는 그가 '노'(No)라 하시고, 때로는 '예스'(yes)라 하시고, 또 때로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시리라."
우리는 성경 말씀에다 그와 같은 것들을 덧붙여서,
왜 기도가 사람들에게 역사하지 않았는지
그에 대한 답변을 그들에게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기도가 역사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말씀을 역사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나에게 기도가 역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가 말씀을 따라 행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훌륭한 크리스천으로, 성별되고, 구별되고, 거룩한 데도 기도 응답의 문제에 있어서는 일이 안될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바르게 살지만, 기도의 문제에 있어서는 허풍을 떨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서 당신이 행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자랑삼아 말할 수는 있지만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그대로 역사합니다.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것을 보증하겠다.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케년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기도를 항상 순전히 법적인 근거 위에 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이름을 사용할 법적인 권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새 언약 안에서 우리의 특권과 권리를 취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고 도할 때, 그것은 우리의 손에서 나와 예수님의 손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그 기도의 책임을 떠 맡습니다. 주님께서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압니다.
바꾸어 말하면, 아버지께서 항상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시는데,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그것은 마치 예수님 자신이 기도를 하고 있는 것과 같으며, 그가 우리를 대신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기도를 법적인 근거 위에 두는 것일 뿐 아니라 또한 것을 사업계획으로 삼기도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여기서 예수님을 대신하는 것이며, 예수님은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대신합니다.(4).
영적 싸움에 있어서 그 이름
예수의 이름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눈에 안보이는 세력들과의 싸움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모든 어둠의 권세들을 이기는 권세가 예수의 이름 안에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7절~18절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15 και ειπεν αυτοις πορευθεντες εις τον κοσμον απαντα κηρυξατε το ευαγγελιον παση τη κτισει
16 ο πιστευσας και βαπτισθεις σωθησεται ο δε απιστησας κατακριθησεται
17 σημεια δε τοις πιστευσασι ταυτα παρακολουθησει
εν τω ονοματι μου δαιμονια εκβαλουσι
γλωσσαις λαλησουσι καιναις
18 οφεις αρουσι καν θανασιμον
τι πιωσιν ου μη αυτους βλαψει
επι αρρωστους χειρας επιθησουσι
και καλως εξουσι
미국 표준역(American Standard Version)에는 "이런 표적을 동반하리니…"로 되어있습니다. 나는 그런 표현을 좋아합니다. 당신을 따르고 있는 사람은 당신 뒤를 따라 가는 것이지만, 당신을 동반하는 사람은 당신과 함께 나란히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번역을 해야 유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고 말하는 성경말씀과 일치하게 됩니다. (고후 6:1)
문자적으로 말하면, 헬라어에는 마가, 헬라어에는 마가복음 16:17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표적들이 믿는 자들에게 동반하리니…"로 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 표현을 좋아합니다. 당신을 따르고 있는 사람은 당신 뒤를 따라 가는 것이지만, 당신을 동반하는 사람은 당신과 함께 나란히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번역을 해야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한 자라고 말하는 성경말씀과 일치하게 됩니다. (고후 6:1)
문자적으로 말하면, 헬라어에는 마가복음 16장 17절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표적들이 믿는 자들에게 동반하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믿는 자입니다. 이런 표적들이 "내 이름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그것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이름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방언을 말할 권리가 있다!]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라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여기서 케년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대명령에서 그의 파트를 계시하고 있습니다"(5)
마태복음에서 그 부분을 살펴봅시다.
마태복음 28장 18절~20절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18 και προσελθων ο ιησους ελαλησεν αυτοις λεγων
εδοθη μοι πασα εξουσια εν ουρανω και επι γης
19 πορευθεντες ουν μαθητευσατε
παντα τα εθνη βαπτιζοντες αυτους
εις το ονομα του πατρος και του υιου και του αγιου πνευματος
20 διδασκοντες αυτους τηρειν
παντα οσα ενετειλαμην υμιν και
ιδου εγω μεθ υμων ειμι πασας τας ημερας εως της συντελειας του αιωνος αμην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당신이 바로 거기서 멈춘다면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에게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지신 권세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나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럴 권세를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전부는 아닙니다. 즉시 예수님께서 교회에게 그의 이ㄹ 이름으로 가라고 권한을 위임해 주셨습니다!
"…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라…"!
내가 700클럽(The 700 Club)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후에 한 목사님이 나에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분은 만일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기 원하시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 라고 믿도록 언제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 목사님은 하나님께 권세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그것을 하나님께 맡겨 드려야 한다 라고 믿었습니다. 이 목사님의 가정에 질병이 있었습니다. 그 자신의 삶에 정신적인 우울증이 왔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뭔가를 역사하실 것이라고만 이해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 해 동안 사역을 해오고 있는데, 자기 자신은 우울증에다 강박증에 눌리고, 가족들은 질병과 질고로 고생하였습니다. 그의 삶에서 승리를 잃어버린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미 나를 다루어 오고 계셨습니다."라고 그가 썼습니다.
"제 짐작에 이제 목사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영에 진리를 깨닫게 해주려고 하셨습니다. 즉, 이 땅의 문제들에 관해서는 하나님께 달려있다기 보다는 우리들에게 달려 있다는 진리 말입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목사님께서 어떤 것을 말씀하기 시작하실 때 나는 눈을 크게 떴습니다. 나는 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주님께서 나의 마음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게 바로 내가 너에게 그동안 줄곧 말해 주려고 했던 것이란다.'"
(우리의 머리가 어떤 식으로 교육을 받아온 게 있기 때문에 때로는 우리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기가 어렵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지금 존재하는 이런 상황들에 대해서 뭔가를 행해야 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달려있다. 즉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우리에게 권한을 위임해 주셨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요약하자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이제 나는 너희에 들에게 권한을 위임하노라. 내가 너희를 내어 보내노니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 '볼지어다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20절).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와 함께 하십니까?
마태복음 18장으로 가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9절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19 παλιν λεγω υμιν οτι εαν δυο υμων συμφωνησωσιν επι της γης περι παντος πραγματος ου εαν αιτησωνται γενησεται αυτοις παρα του πατρος μου του εν ουρανοις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사실을 진술한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우리가 그 구절을 문맥에서 떼어내어 그것 만을 인용함으로써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의도를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다음 구절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그것이 이루어지는지 그 이유, 즉 비밀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20 ου γαρ εισι δυο η τρεις συνηγμενοι εις το εμον ονομα εκει ειμι εν μεσω αυτων
할렐루야!
한편, 또 다시 우리가 이 20절을 문맥과 상관없이 따로 떼내어 그것만 인용하면 우리가 말하는 것이 맞는 말이고 사실이지만, 그것이 그 구절의 충분한 의미라는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이것의 한가지 예를 말한다면,
우리가 교회에서 함께 모여 예배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이 여기에 계십니다.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고 예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예수님이 이 구절에서 말씀하시는 진정한 의미는 아닙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예배에 대해서 이야기하신 것이 아닙니다. 땅에서 합심한 두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왜 두 세사람에게 역사가 일어나는지 그 이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사람이 땅에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왜냐하면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내가 있느니라!
예수님은 두 세사람이 합심한 것이
이루어지게 하려고
바로 그곳에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마태복음 28장으로 돌아가 봅시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 … 볼이지어다 내가 …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0절).
그가 어떻게 우리와 함께 계십니까?
두 세사람이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는 곳에
" …내 이름으로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20)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람일 뿐입니다.
그는 그의 이름으로 그의 이름의 능력과 권세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의 자원들
E.W 케년은 다음과 같은 강력한 진술을 하신 다음,
교회를 향하여 감격스러운 도전을 도발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이름을 사용할 법적 권리를 우리에게 주셨을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억눌린 영혼이 기도할 때 그 이름이 의미하는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인정하는 것은 그의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 안에 들어 있는 가능성들은 우리의 일 이해를 초월합니다.
그가 교회를 향해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라고 말씀하실 때,
그는 천국의 자원들을 기록한 수표에 싸인을 해서 우리에게 주시면서 거기에 써넣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 이름이 교회를 위해 소유하고 있는 엄청난 부요를 얻기 위해서 교회가 예수의 자원들을 철저하게 연구하기 시작하면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5).
그리스도 인들이 현재의 삶의 위치에 있는 것은 그들이 그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그들 자신의 티켓을, 혹은 말하자면 그들 자신의 수표를 그렇게 발행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와 그 이름에 대한 비전이 작았기 때문에 적은 금액의 수표를 발행했습니다.
간혹 가다 몇 번, 꼭 필요할 때, 나는 수표에 내 이름으로 싸인해서 다른 사람에게 금액을 적어 사용하게 했습니다. 물론 나는 그들에게 어떻게 금액을 적는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그저 아무것이나 기입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신 것은 이것입니다. 수표에 싸인을 해서 우리에게 넘겨주신 것입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1,000,000 을 적어야 할 때 자기는 겸솒 손하다고 생각하여, 1달러를 적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낮은 수준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역교회의 목사님들에게, 예컨대 이 수표를 주시면서 "그냥 적어 넣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거기에 겨우 몇 달러를 적었고 25년 동안 허름한 건물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이름에 치욕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게 그의 이름으로 공급해 줄 수 있는 전부란 말입니까?
개인의 삶에 있어서 마찬가지입니다. 거듭나고, 성령충만한 많은 크리스천들이 마귀에게 압도 당한 채, 낮은 수준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실 그들은 그 어느 것보다도 더 많이 마귀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들이 신세타령을 할 때마다 마귀를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아픈가, 병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들을 은 마귀를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질병과 질고의 원인자는 마귀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지 못할 것 같다"라고 그들이 말할 때마다
그들은 마귀를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에 대해 말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싸인한 수표를 주시면서
"거기에 적어 넣어라"고 말씀하셔습니다.
그는 천국의 자원들이 기록된 싸인한 수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의 이름이 오늘날 교회와 모든 성도들을 위해 소유하고 있는 그 엄청난 부요를 얻기 위해서 예수의 자원들을 철저히 연구해 본다면 우리의 삶은 바뀌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소유가 된 것을 알지 못하여서 그 이름에 대한 평가를 낮게 하고 낮게 존중한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기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1.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분야로는 크게 세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어떤 분야들입니까?
2.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노(No)', '예스(Yes)' '잠시 기다리라'는 응답을 주신다고 일반적으로 가르칩니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어떻게 말합니까? 왜 그 세가지 가르침이 문제가 됩니까?
3.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엄청난 자원들을 내 것으로 쓸 수 있는 백지 수표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거기에 써 넣은 분량이 우리의 현재 삶의 수준이라고 했는데, 과연 당신은 지금 그 백지 수표에 얼마를 써 넣을 수 있겠는지 깊이 생각해 보세요 (참고, 왕하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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