ἄφες(아페스)의 부정과거 명령법(aorist imperative)에 대한 설명과 성경은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와 성도의 계속적인 죄 고백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설명해줘.
네. 이 부분은 헬라어 문법과 신학이 연결되는 지점이라 처음 보면 어렵습니다. 아주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핵심은 딱 이것입니다.
그리고 ἄφες(아페스)라는 단어의 문법이 이것과 충돌하지 않습니다.
1. 먼저 “부정과거 명령법”부터 쉽게 이해해 봅시다
마태복음 6:12:
여기서 ἄφες는
라는 뜻입니다.
원형은:
입니다.
그런데 ἄφες는 그 동사의 부정과거 명령법 형태입니다.
여기서 "부정과거"라는 말을 보고,
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헬라어의 aorist(부정과거)는 영어의 단순과거처럼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사건”만 나타내는 문법이 아닙니다.
특히 명령법에서는 행위의 시점을 말하는 것이 핵심이 아닙니다.
그래서:
를 굳이 어렵게 설명하면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즉,
라는 청원입니다.
2. 그러면 왜 “부정과거”를 사용했을까요?
여기서 아주 쉽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친구에게:
라고 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리스어에서 어떤 명령이 “문을 여는 행위 자체를 해 달라”는 식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라고 이해하면 이상하죠.
마찬가지입니다.
ἄφες의 부정과거는
라는 뜻이 아니라,
라는 명령/청원입니다.
따라서 aorist라는 문법 하나만 가지고 “이것은 일회적인 과거 용서만 의미한다”고 주장하면 안 됩니다.
3. 그런데 여기서 정말 중요한 문제가 생깁니다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에게:
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주기도문 첫 문장이: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주기도문은 처음부터:
라고만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입니다.
4. 그런데 “이미 죄 용서를 받았는데 왜 또 용서를 구하지?”
바로 여기가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세요.
어떤 아이가 아버지에게 잘못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들은 여전히 아들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아버지에게 와서: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때 아들이 용서를 구한다고 해서:
는 뜻은 아닙니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 안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에서 성도의 죄 고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비유입니다.
5. 이것을 신학적으로 구분하면 훨씬 쉬워집니다
우리가 흔히 “죄 용서”라고 하나의 말로 표현하지만, 성경의 구원 전체를 보면 구분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속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입니다.
한 번입니다.
다시 십자가에 달리실 필요가 없습니다.
둘째: 칭의
그리스도를 믿는 죄인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이것도 반복해서 다시 칭의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셋째: 성도의 삶
그런데 칭의받은 성도도 여전히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합니다.
6. 이것을 표로 보면 아주 쉽습니다
문제 그리스도의 속죄 성도의 죄 고백
| 누가 하는가? | 예수 그리스도 | 성도 |
| 몇 번? | 단번 | 계속해서 가능 |
| 목적 | 죄의 대가를 담당 |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감 |
| 다시 해야 하는가? | 아니오 | 예 |
| 십자가를 반복하는가? | 아니오 | 아니오 |
| 칭의를 다시 얻는가? | 아니오 | 아니오 |
|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가? | — | 예 |
여기서 가장 중요한 줄은 이것입니다.
7. 바로 이것이 히브리서 10장의 핵심입니다
히브리서 10:14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고 말합니다.
여기서 “한 번의 제사”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으로 속죄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죄를 지었다고 해서:
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복음과 맞지 않습니다.
8. 그런데 동시에 요한일서 1:9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여기서 “우리가”라는 말을 주목하십시오.
요한이:
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이라고 합니다.
즉 신자 공동체가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동시에 두 가지를 가르칩니다.
A
B
둘은 모순이 아닙니다.
9. 이것을 자동차 비유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조금 단순화한 비유입니다.
자동차를 샀다고 합시다.
차를 사는 사건은 한 번입니다.
매일 자동차를 다시 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동차를 샀다고 해서:
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그러나:
물론 이 비유는 구원의 모든 면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번의 속죄”와 “계속되는 죄 고백”이 왜 서로 모순되지 않는지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10. 그러면 다시 ἄφες로 돌아갑시다
예수님께서:
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지금까지 배운 것을 가지고 이해하면:
입니다.
여기서:
라는 의미로 반드시 이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에게:
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11. 그런데 “부정과거”와 “계속적인 죄 고백”은 어떻게 연결됩니까?
여기서 질문하신 핵심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제가 이전 답변에서:
라고 표현했는데, 조금 더 정확하게 정정해서 설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ἄφες라는 부정과거 명령법 자체가 “계속적인 죄 고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즉:
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입니다.
그리고 “성도가 계속 죄를 고백한다”는 것은 ἄφες 하나의 문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