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했던 중소건설기업의 50대 후반 오너가 골프에 흥미를 느껴 프로테스트를 통과했다. 그런데 학력을 허위로 기재한 것이 ‘양심에 찔려’ 60세 때부터 40년이나 어린 학생들과 공부해 ‘골프 박사’가 됐다.
강종철(68) 장암산업㈜ 회장의 이야기다. 강 회장은 골프를 알고 나서 인생이 180도 바뀐 케이스다. 강 회장은 경기 의정부 지역에서 신흥토건, 신흥건설 등 건설용 골재 생산 및 레미콘 회사를 경영해왔다. 지난달 16일 경기 용인시 용인대 무도대학내 생체역학실험실에서 강 회장을 만났다. 그는 인터뷰한 다음 날 졸업식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광주 출신인 강 회장은 맨손으로 기업을 일궜다. 사업이 자리 잡기 시작할 즈음인 48세 되던 해, 남들처럼 골프를 즐기며 살겠다고 작심했다.
늦게 입문했지만 사업을 하는 것처럼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 그 덕분에 골프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챔피언티에서 70대 중 후반을 남기는 ‘왕싱글’이 됐다. 그러자 ‘프로와 아마추어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재주가 아깝다”는 칭찬이 쏟아지자 용기를 냈다. 능력을 확인할 겸 프로 테스트에 도전키로 했다. 이때가 56세.
무작정 덤비지는 않았다. 프로테스트가 열리는 충북 충주 임페리얼골프장의 회원권을 샀고, 골프장 근처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훈련 캠프’도 차렸다. 물론 회사로 출근했고, 오후에 내려와 연습 라운드를 치렀다. 처음엔 백티에서 75타를 치기가 버거웠다.
1년 후 도전하기로 계획을 수정하고, 회사 경영에서 잠시 손을 뗐다. 팔팔한 20대 지망생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전략부터 짜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술과 늦잠. 업무상 밤늦도록 이어지는 술자리를 해왔기에 고치기가 쉽지 않았다. 알람시계를 5개나 켜놓는 씨름 끝에 석 달이 지나서야 잠버릇을 고칠 수 있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운동을 한 뒤 골프채를 휘둘렀다. 호형호제하던 탤런트 박영규 씨가 그를 위해 1주일에 서너 차례 서울에서 내려와 라운드 파트너를 자청했다. 타수에 치중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그린을 피자 조각처럼 4등분 하고 어디를 공략할지 분석하는 등 전략을 세웠다. 1년 가까이 노력한 끝에 평균 타수는 이븐파 수준으로 내려왔다. 아주 못 쳐도 75타를 넘지 않았고, 3∼4언더파까지 나왔다.
3일간의 티칭프로 테스트에서 강 회장은 첫날 3언더파를 기록해 700여 명 중 1위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 100명이 겨루는 최종전에서 공동 5위로 20명에게만 주어지는 프로자격증을 받았다. 강 회장은 “마지막 날엔 자신감이 생겼는지 클럽 거리가 평소보다 더 많이 나가는 바람에 그린을 번번이 놓쳐 타수를 잃었다”고 말했다. 프로가 된 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에 인적사항을 적어 보냈다. KPGA 사상 최고령 프로 테스트 합격자였다.
고교 2년 때 중퇴한 강 회장은 KPGA 인적사항에 ‘고졸’로 기재했다. 학력을 속였다는 게 늘 마음에 걸렸다. 이때부터 강 회장의 또 다른 삶이 시작된다. 방송통신고 2학년에 편입한 후 졸업장을 받으니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해 골프를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능시험을 치러 용인대 골프학과에 합격했다. 나이 60세를 앞두고 대학생이 된 것.
대학 입학 후엔 차 트렁크에 고급 양주 2000만 원어치, 50여 병을 싣고 다녔다. 교수, 학생들과 어울리며 마시기 위해 마련한 것이지만, 꾸지람이 돌아왔다. 차 트렁크에 가득 찬 술병을 본 한 교수가 “이런 식으로 공부하시려면 차라리 학교에 나오지 마세요”라고 질책했고, 제자 강 회장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 트렁크에 있던 양주를 모두 지인들에게 나눠줬다. 그리고 ‘열공’에 빠졌다. 4년 동안 130학점을 이수하면 졸업할 수 있지만, 강 회장은 149학점이나 신청했다. 그리고 석사과정 2년, 박사과정 2년을 더했다. 강 회장은 특히 박사학위 과정 동기생 4명 중 유일하게 논문이 통과돼 박사가 됐다.
강 회장의 박사 논문은 스윙메커니즘 중 ‘임팩트에 관한 연구’. 생체역학을 연구했다. 수학과 물리가 필수였기에 대학에 다니면서 학원도 다녔다. 스포츠지도자 1급 자격증도 획득했다. 강 회장은 논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골프에서 임팩트란 클럽이 볼에 맞는 과정. 불과 5만 분의 1초 ‘찰나’의 순간이지만 타구의 방향성이나 구질, 비거리까지 결정짓는다. 강 회장은 “초당 5만 프레임짜리 초고속 영상촬영을 통해 유명선수들의 임팩트를 비교 분석했고, 페이드, 드로, 스트레이트 등 3가지 구질로 나눠 차이점을 통계적으로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강 회장은 프로 테스트 준비 과정에서 비거리를 20∼30m 늘렸다. 강 회장은 “비거리가 짧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면서 “스윙의 메커니즘만 깨달으면 ‘잃어버린 비거리’를 충분히 되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 회장의 가족은 그의 도전을 잠깐의 ‘일탈’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강 회장이 프로가 되고, 또 만학도의 길로 들어서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강 회장은 “이제 연구(공부)하는 방법을 깨달았을 뿐”이라며 “졸업했지만 앞으로 저술 활동을 위해 1∼2년 정도 대학에 나올 계획이고 그래서 자취 생활을 당분간 더 유지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용인 = 최명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