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선 하루에 일만 보 정도는 거뜬하게 걸었다. 걷지 않으면 대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요르단에 온 이후로 운동을 하는 날보다 집에 있는 날이 압도적으로 많아지면서 생활의 활력을 잃은 듯한 기분도 들고 창밖으로 기나가는 차량의 행렬을 바라보면 웬지 모를 우울감이 몰려든다.
요르단 주택가는 대부분 조용하다. 길을 걷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석유가 나지 않는 가난한 나라인데도 사람들은 대부분 교통수단으로 자동차를 이용한다. 지하철도 없고, 버스도 그다지 많지 않은 나라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중동에서 두바이를 제외하고 지하철이 있는 나라는 없다.
대로변에는 신호등이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다 신호등을 발견한다 해도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파란 신호에 잘 건너지도 않을 뿐더러 고장이 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나마도 요르단은 (두바이를 제외하고는) 내가 가 보았던 중동 국가들 중 사람들이 도보를 걷는 것이 자유로운 국가 중 하나이다.
예전에 잠시 있었던 쿠웨이트의 경우, 도로가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차가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경우를 제외하고 쇼핑몰이나 관광지가 아닌 야외 도보에서 걷는 사람들을 발견하기가 매우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거기선 외국인들이 운동 삼아 걷거나 하면 너무나 쉽사리 눈에 띄게 된다. 이는 아마도 저렴한 자동차 가격과 물값보다 더 싼 기름 값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혹은 여름에 40도 이상을 넘나드는 불타는 듯한 더위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대부분 대형 쇼핑몰에서 쇼핑을 핑계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일종의 산책이라 여긴다. 실제로 쿠웨이트에서는 오전 7-8시에 대형 쇼핑몰에 가게 들이 오픈하기 전의 빈 쇼핑몰 내부에 들어와 조깅을 하는 웃픈 일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요르단은 부유한 인접국가들에 비해 도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시내 중심가는 걸어다니는 사람들과 택시, 자동차로 빈틈이 없다.
요르단 북단 지역은 다른 이웃 국가들에 비해 여름에도 비교적 선선하고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기 때문에 여름이라도 저녁 무렵 산책을 나가면 항상 한국의 가을 날씨 같은 기분 좋은 선선함을 느낄 수 있다.
날씨는 굿!
좋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길을 걸을 때마다 “다신 걸어다니지 말아야지.”하는 마음이 매번 생기게 만들 정도로 인도(人道)가 그다지 발달되지 않다.
주택가를 산책하는 사람들은 조심조심 차도로 다닌다. 덕분에 산책을 하려면 뒤에서 빵빵거리는 차들을 조심조심 피해가며 다닌다.
길을 걷다보면 차들이 ‘빠~앙!’ 하며 클랙션을 눌러댄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면 대부분은 십중팔구 택시들이다.
‘백팩을 맨 동양인=여행객’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는지 택시들은 아시아인들을 보면 여지없이 클랙션을 눌러댄다. 처음 길을 걸을 땐 갑자기 ‘빵빵’ 대는 소리에 깜짝 깜짝 놀라기 일쑤였다. 지금은 그러려니...하고 눈도 깜짝 안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산책을 방해하는 불쾌한 요소임에는 어쩔 수 없다.
한 때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요르단은 주요 도로마다 신호등이 없는 라운드어바웃(roundabout, 회전교차로)이 많다.
이 라운드어바웃은 신호를 줄이고 차량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 졌을 것이나, 신호등이 없어 길을 제대로 건너기 어려운 이 곳에서는 사람들이 라운드어바웃을 이용해서 도로를 건너기도 한다.
대부분의 교통수단을 자동차에 의지하는 이 나라에서는 오후 12시를 넘어가면 대부분의 도로가 교통체증이 상당하다.
3-4시만 되면 라운드어바웃 곳곳은 차량으로 꽉 막혀 대기가 길어지기 때문에 이 틈을 이용해서 도로 횡단을 감행하는 것이다.
통행에 대한 배려는 동네 골목길 아니면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에 바로 길 건너편에 맛집이 있어도 안전을 생각한다면 차를 타고 돌아가야 하는 처지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작은 슈퍼마켓 하나 없다. 내가 사는 거주지 맞은 편에는 프랑스 대사관이 있고, 그 주변으로 일식집, 레스토랑, 카페, 병원들이 제법 있는데도 길을 건너기가 무서워 눈앞에서 바라만 볼 뿐이다.
금요일 오전이 아니고서는 도로를 가로지르는 일은 거의 없다(금요일은 휴일로 무슬림들은 대부분 휴업을 하고 모스크에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금요일 오전은 차량의 흐름이 거의 없다).
걷기 불편한 정비되지 않은 도로, 차도로 나오면 매퀘한 매연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로 인한 일상의 갑갑함 때문에 산책을 포기할 수는 없다.
햇빛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날은 난방이 잘 안되는 집 안보다 밖이 훨씬 더 따뜻하기 때문에 답답한 오후에는 산책을 나선다. 다행히 조용함이 장점인 이 동네는 언덕의 경사가 심하지 않아 산책하기엔 나쁘지 않다.
글을 쓰고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갑자기 우리나라 양재천 산책로가 급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