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장전국여교역자회 50주년기념 희년문집(2018.6)인 “기억을 되새기며 새 희년을 향하여” 에 실린 글입니다.
담임목회 이야기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사역을 맡은 담임자다”
김성희목사 (독립문교회)
30대 초반에 담임목회를 하던 나는, 1991년에 기장 전국 여교역자회와 카나다 교회의 교류 프로그램으로 카나다를 방문했다. 당시 카나다교회 여성부목사인 로리 크로커가 남성 담임목사의 결혼식 주례를 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생소하고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주례를 부탁한 이유는 ‘같이 사역하는 부목사가 자신을 가장 잘 알기 때문이었다나 -’ 담임목사나 부목사는 하나님께 부름받아 함께 사역하는 목회자로 단지 맡은 역할이 다를 뿐이라는 동역자 의식과 깊은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부교역자가 담임목사의 비서실장, 부관 같은 역할을 담당하다가 담임목사가 갑자기 임지를 옮기게 되면 자동으로 사임해야 하는 구조다. 이 구조는 27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
1. 담임목사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
최근 한국에도 대안적 교회, 새로운 교회, 작은교회 운동 등 다양한 시도가 전개되고 있기에, ‘담임목사’라는 개념도 다시 정리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말 사전은 ‘담임목사는 교회목회자 중 해당 교회를 맡고 있는 대표목사’로 정의한다. 담임목사는 교회를 총괄하는 대표목사라고 할 때, 홀로 모든 일을 담당하는 미자립교회 목사들은 엄격하게 말하면 담임목사의 범주에 들기 어렵다. 평신도 지도자인 장로가 없는 교회의 담임목사는 법적으로는 전도목사라고 부르며 3년에 한 번씩 재신임을 묻기도 한다. 여성담임목회자들의 경우 90% 이상이 부교역자 없이 홀로 교육. 심방. 선교 등 모든 분야를 담당하고 있기에, 부교역자가 여러 명 있는 일반교회에서 목회자 중 대표목사를 담임목사로 부르는 것과는 매우 다른 개념이다.
지난 해 100주년 기념교회에서는 제왕적 담임목사제를 폐지하고 2019년부터 네 사람의 목회자가 영성, 교회학교, 목회, 대외 업무 등 각자 분야별로 전담하여 공동목회로 교회를 이끌어 가도록 결의했다. 교회대표자로 인식되던 담임목사 개념이 없어지게 되어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적 작은교회’ 운동을 펼치고 있는 생명평화마당에서는 ‘탈성직. 탈성별. 탈성장’이라는 새로운 원리로 대안적 교회를 모색하며 5년여간 작은교회 박람회, 작은교회 심포지움을 열어왔다. 그 중 ‘동네작은교회’는 30명이 되면 분립하여, 현재 5개의 교회공동체가 세워졌다. 이들은 독자적으로 예배와 사역을 담당하며 수련회 등은 연합하여 진행한다. 이런 교회에는 담임목사라는 개념 자체가 필요할 리 없다.
1987년 평신도 공동체로 세워진 새길교회는 말씀과 성례전도 평신도가 같이한다. 평신도들도 신학을 공부하여 “생활신학”을 정립하고 함께 교회를 세워가는 등 위계적 성직주의를 극복하고 재성직화를 이루어 가고 있다.
이런 다양한 사례와 많은 변화들을 간직한 채, 일반적으로 지칭되는 담임목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2. 왜 담임목회(擔任牧會)일까?
우리 기장 전국 여교역자회는 회원이 600여명이다. 여목사만 400여명이고 안수받는 여성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임지가 없는 무임목사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여성담임목회자는 130여명(그 중 목사가 110명)으로 대부분 개척교회. 농촌교회 등 미자립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다. 하나님께 받은 사명감으로 비전을 가지고 소신껏 목회하려는 여성목회자들도 담임목회를 소망하고 있다. 아마 남성목회자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성이 책임있는 자리를 맡기 힘들게 하는 유리천정은 경제계, 정치계, 법조계 등 사회 여러 분야에 비해 교회가 그 벽이 가장 두껍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자립하는 조직교회에서 여성을 담임목사로 청빙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여성목회자는 목회조력자로 반영구적으로 부교역자의 자리에 머물게 되고, 목회비전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 목회현장(그런 의미에서 담임목회)을 갖기도 어렵다. 부교역자로서도 팀을 이루어 소신껏 목회할 수 있다면 반드시 담임목사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지만, 한국교회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경력과 능력이 있어 담임목사로서 주체적인 목회를 감당해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유리천정에 갇히게 되는 현실은 안타깝고 속상하다.
한국교회에서 담임목사하면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데, 여성목회자들은 이와 다른 모습을 만들어 가야 한다. 담임목사의 개념이 바뀌어, 목회자들이 각자 자신의 달란트를 선용하고, 교우들이 만인제사장 의식을 가지고 사명감으로 함께 사역하게 되면 교회는 더욱 역동적이 될 것이다. 이미 대안적 교회운동으로서 공동목회, 팀 목회, 작은교회 공동체, 탈성직 운동 등 다양한 형태의 목회가 시도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3. 마을을 품는 목회 : 담임목회 현장 이야기
목회자가 직접 교회를 개척하는 경우는 지역과 교우들을 선택할 수 있지만, 많은 경우 부름받고 파송된 자리에서 목회의 비전을 다시 점검하며 그 지역사회와 교우들에 맞추어 목회하게 된다. 나는 부교역자로 기도와 전도에 열심인 대형교회, 지식인들이 많은 교회를 건축했던 중형교회, 아담한 중소형교회 등 20여년간 다양한 교회를 섬겼다. 담임목회자로는 30대에 6년, 50대에 7년째, 12년 이상 사역하고 있다. 10여년간 가난한 이웃들과 씨름해 왔고, 20여년간 200여명에서 2,000명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교회에서 일반 목회를 했다. 젊은 시절 담임목회가 민중목회였다면, 지금의 목회는 마을목회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50대에 다시 담임목회를 하게 되면서 처음에는 12제자를 양육하듯이 성경공부와 교육훈련을 통해서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보려고 했다. 그러나 서민들이 많은 산동네에 세워진 교회에는 글을 읽지 못하거나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교우들도 많았다. 지적 공부나 고상한 프로그램보다는 이야기로, 몸으로 만나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도시교회 지식인들과의 만남에 익숙해져 있던 나도 교우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다 보니 한동안 말씀도, 목회도 힘이 들었다.
‘하나님 이웃 창조세계와 소통하는 평화공동체’를 지향하며 마을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꼬리표 있는 초청이라는 부담감을 넘어서기 위해 ‘생명을 살리고 마을을 살리는 공동체’라는 의미로 “살림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주민들을 만났다.
이미용봉사. 사랑의 빵나눔, 장수사진 촬영, 어린이 토요특강(영어회화. 창의사고력 수학, 독서토론)등을 실시하면서 마을주민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주민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부단히 마을 속에서 함께 노력해온 지난 6년 6개월 동안 목회를 정리해 본다.
첫째, 권위 재정립하기: 말로, 생각으로 소통하던 삶에서 몸으로 가슴으로 살아내는 훈련이 필요했다. 교우들과 함께 앉아 김장을 하고, 교회 화장실을 청소하면서 삶으로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둘째, 토론 문화 만들기: 늘 설교만 듣던 교우들이 주제를 가지고 자기 생각과 삶을 나눈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생활 나눔부터 시작하여, 점차 성경의 주제를 나누고, 나아가 책을 읽고 토론하기에 이르렀다. 주제별 성경공부, 화 다스리기, 요한계시록 공부, 종교개혁이야기 등 이렇게 6년을 훈련 하다 보니 이제는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경청과 대화가 이루어졌다.
셋째, 열린 시야 갖기: 외부 목회자와 강사를 초청하여 년 2회 신앙강좌를 열어 성경, 교회, 역사 등을 배우고, 부모교육. 자기발견 세미나 등을 통해 개방적이고 다양한 사고를 하게 되었다.
넷째, 주체성을 가지고 이웃교회와 연대하기: 작고 약하다고 내부에만 머물면 정체되고 퇴보하기 쉽다. 마음을 열고 연대함으로 더 많은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 교남동 내 각기 다른 교단의 7개 교회가 연대하여 공동전도지 제작, 6.25연합 기도회, 목회자 야유회, 동주민센터와 연계하여 따뜻한 겨울나기 행사참여, 지역병원과 MOU체결하고 건강강좌, 헬스케어, 건강음식 만들기 등을 진행한다.
다섯째, 생태 영성 회복하기: 마을공동체와 도시재생사업에 참여하고, 도시농업공동체 회원이 되어 양봉장, 육묘장, 상자텃밭과 약초단지 가꾸기 등 주민들과 함께 노동하며 생태영성을 체험하고 있다.
여섯째, 마을 네트워킹: 마을활동가들을 씨실로, 마을 주민을 날실로 엮어 주민 워크숍, 마을잔치, 마을공간(행촌공터)을 운영하며, 민관(주민,동,구청,시청)이 함께 개방, 공유, 새가치 창조를 통해 마을을 세워 나간다.
일곱째, 독서토론을 통한 달란트 선용: 책을 읽고 토론하며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공론장을 확산하고, 학교와 도서관에 출강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 재미와 의미를 나누고 있다.
우리교회는 작지만 크은 교회다. 마을 주민, 동주민센터, 구청등과 연결되어 마을공동체 활동에 참여 하며, 주민과 공무원들이 수시로 찾아오는 열린 교회다. 이런 과정에서 교우들이 마을 선교사(활동가)로 성장한 것이 보람이다. 교우들은 홍파랑 북까페 회장으로 봉사하면서 서울시장상을, 도시농업공동체 총무로 국회의원상을 수상하고, 동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하며 주민센터 운영에도 앞장서고 있다. 교우들의 은퇴 후 일자리도 만들어 지는 등 마을목회의 열매를 맛본다. 마을 자원을 활용하여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마을은 우리의 교구다.
이런 모든 일들이 기존의 틀에 매이지 않고 마을 속에서 호흡하며 끊임없이 소통하고 연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양봉장과 육묘장에서 노동하고, 책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며 이웃과 소통하는 일은 즐겁다. 하나님은 우리를 또 어떤 길로 인도하실지 설레임 가득하다. 열린 미래는 우리를 기대하게 한다.
4. 우리는 모두 담임자다.
큰 교회는 유기체로서의 존재감을 상실하기 쉽다. 가부장적이고 물량적인 교회의 모습으로는 건강한 교회로 자리매김하기 어렵다. 여성이 주체적으로 (담임)목회한다고 할 때, 기존의 교회와는 다른 창조적 목회가 되었으면 한다. 생명의 담지자이자 약한 것에 대한 감수성을 가진 여성성을 살려내는 목회가 필요하다. 생물학적 여성이기에 여성목회가 아니라 이런 여성성을 충만하게 발휘하는 대안적 목회가 요구된다. 자기만의 색깔과 맛을 찾아내어 달란트를 선용하며 즐겁게 목회할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며 함께하자.
시골에서, 도시 곳곳에서 묵묵히 열심히 아름답게 목회하는 여성 동역자들이 많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기에는 지면이 너무 부족하다. 위계적인 교회 조직을 넘어 환대가 있는 원탁공동체들이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온 동네에서, 밥상을 나누고 노래하며 춤추며 그리스를 증거하는 열린 교회가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담임목회자만이 아닌, 부교역자도, 아니 평신도도 우리는 모두 하나님 사역의 담임자로 부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