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같은 남자랑 결혼할거야'
- 이 말이 고맙지만은 않은 이유
4년쯤 된 것같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딸아이랑 주말에 식사를 하기 위해 서울 잠실의 롯데몰에 있는 근사한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았다. 바람이 제법 차가운데, 딸아이가 다소 추워 보인다. 간혹가다 기침도 하고, 이런 날씨엔 제법 두툼한 외투를 입어야 하는데 왠지 가을패션이 안스럽다.
그런데 식당 또한 날씨와는 안 어울리는 듯하다. 벽난로가 가동되어야 하는 매서운 추위의 날이나 차라리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야 하는 날에 어울리는 듯한 분위기의 식당이다. 그래도 자리를 잡았으니 어쩌랴. 딸아이의 주도하에 메뉴를 고른다. 파스타와 리조또를 골랐다.
딸아이가 '아빠는 커피, 딸은 청량음료'를 시키려는 순간, 아빠가 손사래질 한다.
"음료보다는 따뜻한 차가 어때?"
"몸이 좀 답답해서 시켰는데.."
"몸이 안좋아보여.. 차를 시켜"
"그럴까? 알았어"
". . ."
". . ."
오늘은 아빠와 딸의 이야기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듯하다. 딸이 분위기의 청량제인데 기운이 없어 보이니 분위기가 영 말이 아니다.
이런저런 일상적인 이야기 나누다보니 식사가 들어온다.
각자 한입 넣는 순간,
내가 시킨 리조또는 왠지 2% 부족한 맛이다. 딸의 표정 역시 약간 이그러진다.
"잘 못 들어온건가, 잘 못 시킨건가.."
"여긴 좀 아닌 것같다.. 그치 아빠?"
"맞아.. 그래도 맛없어도 딸과 함께 오랜만에 식사하니 아빠는 맛있어.."
"맛없는 건 맛없는 거야.."
"그럼 딴 데 갈까?"
"아깝잖아.. 그냥 먹자.. 아빠, 이렇게 소스 좀 쳐봐."
부녀가 공히 인정한 세상에서 먹어본 가장 맛없는 파스타와 리조또, 그래도 딸과 함께하기에 맛있게 먹는다. 알바이야기에 할머니 이야기, 그리고 여러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가 무심코.
"딸! 딸은 나중에 어떤 남자랑 결혼하고 싶니?"
싱겁게 질문해 본다. 그런데,
"아빠같은 남자" 바로 답이 나온다.
"진짜야..".. 고맙다. 괜히 으쓱해진다.
"좋아?"
".... "
리조또 한술 넣는다. 그리고 웃으며
"에이, 아빠 듣기 좋으라고 립서비스하지 말고"
"아니야 아빠... 정말이야"
"...."
커피 한모금 마신다.
"아빠같은 남자랑 결혼하고 싶어...."
"..."
"아빠 괜찮은 남자야.. 엉.."
"그러지마.. 아빠같은 남자랑 결혼하지마.."
"...."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말했다.
"아빠 무슨 기분 안좋은 일 있어?"
" .... 잠깐만"
잠깐 화장실 가는척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돌아와 서 있는 채로,
"내가 옷사줄께.. 나가자"
"엥?...음식 많이 남았는데.."
"맛없잖아. 나가자"
잠실 롯데몰을 돌아다닌다.
딸아이에게 내 양복보다 비싼 패딩을 사줬다. 처음 만날 때보다 기침을 더욱 하기에.
그리고 딸램에게 굽높은 힐을 사줬다. 이제 다 컸기에 더 커보이라고.
이렇게 아빠와 딸은 데이트를 마치고 헤어졌다. 딸의 결혼이상형 주제는 더 이상 이어가지 않은 채.
고속버스안에서 차창을 계속 바라보면서 2시간을 보낸다.
대전에 내리자 어둠이 깔리고 왠지 한잔이 생각난다.
내내 하던 생각 그대로 곱씹으며 술을 마신다.
'B형남자 싫다면서,
충청도남자랑 결혼하지 말라는 엄마말이 맞다면서,
어떻게든 밖에서 술먹을 궁리만 하는 것같은 고주망태 남자는 No라면서..'
게다가,
'조부모 살아계신 채 시아버지 일찍 돌아가신 6남매중 장남이 뭐가 좋다고,
잘나가는 광고회사,바이오기업 마다하고 자기 혼자결정하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려는 남자가 뭐가 좋다고,
평생 육아에, 가사일은 아내에게 맡긴 남자라는 것을 알면서 이런 남자가 뭐가 좋다고...'
취기가 제법 흐른다. 딸에게 문자를 한다
"패딩 따뜻해?"
"정말 따뜻하고 좋아.. 아빠 사랑해"
"아빠같은 남자 인정해줘서 고마워"
"대전 잘 내려갔어?"
"응.. 그런데 아빠같은 남자랑 결혼하지마"
"술마시고 있구나?"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래서 항상 챙겨주는 그런 남자랑 결혼해."
"아빠 술취했구나.."
"진심이야."
"빨리 자."
주말 철 지난 페이스북 글을 돌아보다, 4년전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글엔 담지 않았던 역시 철지난 그날의 딸과의 문자를 찾아봤다.
"아빠같은 남자랑 결혼할꺼야" 아빠에겐 훈장같은, 스무살이 넘은 딸아이가 선사하는 최고의 찬사이지만, 그 훈장을 받은 아빠의 마음은 가볍지만은 않다. 그게 아빠마음일까?
4년전 문자처럼, 정말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래서 항상 챙겨주는 남자랑 결혼했으면 하는 것이 아빠마음인 듯하다.
<강영환의 어의운하 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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