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 梅花매화-王安石왕안석
墻角數枝梅 (장각수지매): 담 모퉁이에 매화 몇 가지,
凌寒獨自開 (능한독자개): 추위를 이기며 혼자 절로 피었네.
遙知不是雪 (요지불시설): 멀리서도 그것이 눈이 아님을 알 수 있음은,
爲有暗香來 (위유암향래): 그윽하게 풍겨오는 향기가 있음인가?
〈註주〉
1) 墻角(장각) : 담 모퉁이. ‘장(墻)’은 ‘장(牆)’과 동자(同字).
2) 凌(릉) : 능가하다.
3) 遙(요) : 멀다. 아득하다.
4) 遙知(요지) : 멀리서도 알다. 멀리서 바라보아도 알다.
5) 暗香(암향) : 그윽하게 풍기는 향기.
【生涯생애】
왕안석(王安石, 1021~1086)
송대의 정치가․학자로, 자는 개보(介甫), 호는 반산(半山)이다. 신종(神宗, 1068~1085) 때에 재상이 되어 소위 신법(新法)을 행하여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정책을 썼으나, 실패하여 은퇴했다. 시문(詩文)에도 능하여 당송 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비록 중국문학사에서 북송을 대표하는 문인의 한 사람으로 서술되고 있지만, 실상 그는 살아생전에 정치가로서의 위상이 더욱 컸던 인물이었다. 정치가로서의 풍모를 빼면, 왕안석은 북송의 시단에서 시적 흥취와 감각이 가장 뛰어난 인물 가운에 한 명으로 손꼽힌다. 특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읊은 사경시(寫景詩)와 한가로운 정취를 노래한 한적시(閑適詩)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으며, 그 결과 이지적인 경향이 강했던 송대의 시단에서 당시(唐詩)적인 맛이 가장 풍부한 시인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밖에도 과거의 역사와 인물에 빗대어 자신의 감흥을 기탁한 영사시(詠史詩)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으며, 송대의 인물 가운데 가장 먼저 두보의 시를 높이 평가하여 후세에 두보가 시성(詩聖)으로 추앙 받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해설】
이 책에도 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 제법 나오지만, 한시에는 정말 매화가 많이 등장한다.
매서운 추위에도 꺾이지 않고 꽃을 피우는 매화는 불굴의 정신을 나타낸다. 그래서 누란(累卵-층층이 쌓아 놓은 알이란 뜻으로, 몹시 위태로운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생각하는 지사(志士)에게 그렇듯이, 사랑에 빠진 연인에게도 ‘온갖 시련과 역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이나 불변의 마음’으로 통한다.
매화의 원산지인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매화 애호가로 불리는 인물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 제15편) 남조의 제(齊)․양(梁)나라 시인으로 유명한 하손(何遜 ☞ 제89편)은 일찍이 양주(揚州)에서 관리를 지냈는데, 관사 앞에 있었던 매화나무의 그윽한 향기를 잊지 못해 자원해서 같은 지역의 관직을 다시 맡았다고 한다.
이밖에도 맹호연(孟浩然)이나 범성대(范成大) 등 매화를 사랑하고 예찬(禮讚)한 인물은 무수히 많은데, 명말(明末)․청초(淸初)의 오위업(吳偉業 ☞ 제74편)도 매화 사랑이 남다른 시인이었다. 오위업은 호가 매촌(梅村)일 정도였으며, 매화를 소재로 많은 시를 지었다. 그런데, 그 많은 문인들 가운데 단연코 독보적인 존재는 북송 초기의 시인 임포(林逋 ☞ 제88편)가 아닐까 싶다. 그에 얽힌 일화는 뒤에서 소개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우리가 매화 하면 금세 떠올리는 이육사(李陸史, 1904~1944)의「광야(廣野)」제4연을 인용하고 넘어간다.
=====[2020.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