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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자
2015년 3월 26일 / 창세기 41:37-46
본문은 시위대 교도소에 갇혀있었던 요셉이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는 지혜를 발휘하여 결국에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믿음의 일꾼을 준비하시고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고통스러운 노예생활 중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시기 위해, 하나님은 모세를 준비하셔서 사용하셨고, 바벨론의 포로생활 중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에스겔, 다니엘 등과 같은 선지자들을 준비하셔서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포로생활 이후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을 재건토록 하시기 위해 느헤미야, 에스라와 같은 자를 준비하셔서 사용하셨습니다.
▶ 요셉의 경우처럼 에스더서에서 하만이 유다민족을 말살하려 할 때에 왕이 궁중일기를 읽음으로 인하여 하만과 그의 무리들이 몰살을 당하고 모르드개가 총리가 되고 유다인들은 온 땅에서 높임을 받게 됨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함이 매우 유익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 2:21-23 / 모르드개가 왕궁의 대문에 앉아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때, 빅단과 데레스라는 왕의 내시 두 사람이 몹시 불만을 품고 왕을 죽일 음모를 꾸몄다. 22) 모르드개가 그 사실을 알고 즉각 왕후 에스더에게 알려 주었다. 에스더는 그것을 모르드개의 이름을 대면서 왕에게 말하였다. 23) 왕은 이 사건을 조사하여 보고 사실로 밝혀지자, 그 두 내시를 십자가에 처형하였다. 이 사실은 왕이 보는 앞에서 궁중일기에 기록되었다.
에 6:1-3 / 그날 밤에 왕은 잠이 오지 않아 신하들에게 국가의 중대사들을 기록해 놓은 궁중 일기를 꺼내어 읽게 하였다. 2) 여기서 우연히 모르드개의 기사가 발견되었다. 모르드개는 궁궐의 대문을 지키던 두 내시 빅단과 데레스가 왕을 암살하려고 역적모의를 하였을 때에, 미리 고발하여 왕의 목숨을 건져내었다. 이 기사를 읽자, 3) 왕이 신하들에게 물었다. “이 일로 인하여 모르드개에게 무슨 상금이나 관직을 주었느냐?” 왕을 모시는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그에게 아무 상도 내린 일이 없습니다.”
● 하나님은 무서운 기근 속에서 야곱 일가를 구원하시기 위해 요셉을 준비하셨고 또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은 야곱의 식구들을 통해 애굽에서 이스라엘 나라의 탄생을 준비키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사용하시는 믿음의 일꾼이라 할지라도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기다림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믿음과 끝까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준비한 자의 삶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 현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서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봄날 정원에서 우연히 나비의 누에고치 하나를 발견했다. 다가가서 보니 고치의 한쪽에 작은 구멍이 뚫리면서 나비가 막 빠져나오려 하는 순간이었다. 나비는 아주 천천히 그 작은 입으로 고치 집을 헤치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러기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나비가 빨리 나오도록 누에고치에 대고 입김을 불어 주었다. 온기를 받아 나비의 작업이 한결 쉬워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나비는 갑자기 따뜻해진 기운을 받아 얼른 고치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나비는 나오자마자 내 손바닥 위에서 죽고 말았다.』
카잔차키스는 나비가 고치 집을 빠져나오는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나비를 죽게 했던 것입니다. 이 경험은 그에게 기다림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게 하였습니다. 비록 기다림이 불필요한 시간처럼 보이고, 그 기다림 자체가 지루하고 또 고통스러워도 기다림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려놓고 추수하는 가을을 기다리듯 인생은 그 자체로 기다림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성패는 기다림에 달려있습니다. 기다림에 성공하면 인생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다림에 실패하면 인생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더더욱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마치 강태공들이 물고기들이 입질할 때를 마냥 기다려야 하듯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때를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의 성패 역시 기다림에 달려있습니다. 기다림에 성공하면 신앙생활에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다림에 실패하면 신앙생활에 실패하게 됩니다.
▶ 기다림의 대표적인 예로 다윗이 지은 시편 27편을 봅니다.
시 27:13-14 / 이 몸 사람 사는 이 세상에서 어지신 여호와께 의지하며 주님의 복을 누리며 살리라, 든든히 믿고 믿음이여. 14) 여호와를 애타도록 기다리어라. 기 꺾이지 말고 담대히 살아가거라. 여호와를 애타도록 기다리어라.
“여호와를 애타도록 기다리어라.” 다윗이 자신을 비롯하여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권면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오고 오는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27편은 시편에 나오는 대표적인 비탄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비탄시(悲嘆詩)란 다급한 위기상황 속에서 탄식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호소하는 시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다윗은 다급한 위기상황 속에 있습니다.
2절에 “저 못된 것들이 나 잡아먹으려 달려들지만 저 원수, 저 대적들이 비틀비틀 고꾸라진다.”라고 마치 맹수들이 먹잇감을 뜯어 먹을 것과 같은 기세로 적들이 다윗을 공격해 오고 있을지라도 다윗은 자신과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기다리자! 여호와를 기다리자! 의지하리라!”
바로 여기에 다윗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다윗이 신앙생활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으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했습니다(롬 1:17, 합 2:4, 히 10:38, 갈 3:11). 현대어 성경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의로운 사람은 진실하게 나를 의지하기 때문에 살 수 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사람에게 살길이 있다, 의로운 사람은 진실하게 나를 의지하기 때문에 살 수가 있다, 의인은 자신의 진실함으로써 살 수가 있다.” 여기에서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약속)을 믿고 끝까지 의지하며 인내로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급한 위기 상황을 만나면 조급해 합니다. 그러다가 경고망동을 하여 사태를 그르치게 됩니다. 성경에서 그 대표적인 인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입니다. 사무엘상 13장을 보면 사울이 왕이 된 지 얼마 안 되어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믹마스에 진을 쳤는데 그 수가 엄청납니다. 사울 왕이 그 소식을 듣고 출전하기 위해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출전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 지도자 사무엘이 정한 시간에 오지 않습니다. 7일이 지나자 백성들이 하나 둘씩 돌아갑니다. 사울 왕의 마음이 조급해 졌습니다. 그래서 사무엘 대신 자기가 하나님 앞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막 제사를 끝낼 즈음에 사무엘이 도착했습니다. 사울 왕은 다급한 위기상황 속에서 여호와를 기다리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조급하게 서두르다가 경거망동을 하고 만 것입니다. 이 일로 사울은 더 이상 왕조를 이루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에게 왕위를 넘겨야만 했습니다.
▶ 배재대학의 최남인 교수에 의하면 한국인의 70% 이상이 조급증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더 문제는 이런 조급증이 하나의 정신적 결함증세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랍니다. 남에게 뒤져서는 안 되며, 학교나 직장에서 선두그룹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정신적 결함증세 때문에 시험을 잘 보지 못한 학생들 중에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직장 승진에서 밀린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하는 등 극단적 행위를 저지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늘 쫓기듯 사는 삶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가 ‘빨리 빨리 문화’입니다. 신호등 앞에 늘어선 자동차들이 마치 100m 출발선에 선 사람들처럼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다가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면 앞을 다투어 달려 나갑니다. 만일 어느 한 차가 1, 2 초만 머뭇거리면 뒤차들이 빵빵거리며 경적을 울려댑니다. 왜 그런지 모두가 마음이 조급합니다. 여호와를 기다리는 삶은 다윗처럼 다급한 중에서도 여유를 찾는 삶입니다.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긴 호흡으로 따르는 삶입니다. 마치 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기둥 불기둥을 뒤 따랐던 것처럼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고 뚜벅뚜벅 여유롭고도 힘차게 인생길을 걷는 삶입니다.
2.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믿음
요셉은 시위대 교도소에서 함께 지내던 술 관원장에게 그의 꿈을 해석해주며 바로 왕에게 말을 잘해서 무죄한 자신을 이 교도소에서 나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절히 부탁합니다(창 40:12-15). 요셉의 해석대로 석방되어 복직했던 술 관원장은 안타깝게도 2년 동안 요셉의 간절한 부탁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창 40:21-23, 창 41:1). 그리고 술 관원장은 2년이 지난 후, 바로 왕이 꾼 꿈으로 인해 자신의 꿈을 지혜롭게 해석해 주었던 요셉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창 41:9-14). 2년 동안 교도소에 갇혀 많은 고생을 했던 요셉의 모습을 연상하면서 기다리는 동안의 아픔을 되새겨 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인내를 가져야 하며, 이것이 우리들의 삶의 지혜요 신앙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것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전 3:1). 우리의 노력으로 충분히 가능해 보일 것 같은 일조차도 하나님의 때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어떠한 삶의 축복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만드시기 위해 기다림의 시간을 주시기 때문입니다(약 1:4).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워 야곱 일가를 극심한 기근 속에서 구원하시려는 것으로, 요셉이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가 보디발의 아내로 인하여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갇히는 극한 환경 속에 처하였지만 그러함에도 요셉으로 하여금 2년을 더 기다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➊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릴만한 믿음의 준비가 되어있는지 내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때를 묵묵히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동안 우리의 모난 성품과 교만하고 이기적인 마음이 다듬어지고,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믿음의 그릇으로 만들어져 가야 합니다.
딤후 2:20-21 / 부잣집에는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만이 아니라 나무와 진흙으로 만든 그릇도 있어서 값비싼 그릇은 손님을 접대하는 데 쓰이고 값싼 그릇은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데 쓰입니다. 21) 만일 그대가 죄를 멀리한다면 순금으로 만든 그릇, 곧 집안에서 가장 비싼 그릇이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장 고귀한 목적을 위해서 그대를 사용하실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➋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곳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놀라운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대제국 애굽에서 그 당시의 모든 학문에 통달했다고 하는 술객과 박사들이 해석하지 못했던 바로 왕의 꿈을 요셉은 당당히 해몽하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지혜롭게 대처하도록 방법까지 일러줍니다.
▶ 다윗은 적군이 공격하기 위해서 지금 자기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상황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하며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라고 말을 합니다. 이제 적군이 공격 나팔을 불고서 일제히 자기 앞으로 물밀듯 밀려드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태연할 수 있었다고 간증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의 오랜 신앙생활의 경험 때문입니다. 지난 날 골리앗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켜주셨던 것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사울에게 쫓겨 10여년 도망자 생활을 할 때 수많은 죽을 고비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 고비를 넘기게 하셨던 것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 되어 여러 나라와 전쟁하면서 한 번도 다치거나 패하지 않게 하셨던 것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적군이 자기 앞에 진을 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태연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 8:24-26 / 갑자기 폭풍이 일더니 물결이 배보다 높이 치솟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25)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소리쳤다. “주님, 우리를 살려 주십시오. 우리가 죽을 것 같습니다.” 26) 그제야 예수께서 일어나시며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그렇게도 겁을 내느냐?” 하며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자 폭풍이 그치고 사방이 잔잔해졌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계셨습니다. 이 때 큰 파도가 일어 배에 물이 들이차고 큰 요동이 일어났습니다. 자칫 배가 뒤집어질 상황입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출신 제자들은 이러다 잘못하면 다 죽게 될 위기상황임을 직감합니다.
그러나 목수출신인 예수님은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 답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급한 위기 상황 속에서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믿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들이 믿음이 없어서 저렇게 두려워하고 불안에 떨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을 있는 사람들은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태연함을 지켜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결국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 한국의 양궁선수들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전 종목을 휩쓰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특히 매 경기마다 피 말리는 치열한 경쟁상황 속에서도 수많은 역전 드라마를 펼치며 전 종목을 금메달로 장식했습니다. 여기에 한국 양궁의 특별한 훈련 방법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남다른 담력훈련과 극기 훈련이 눈에 띱니다. 해병대 UDT 훈련, 번지점프, 화장장에서 시체만지기, 군 지하 벙커에서 귀신 만나기 등 다른 나라 선수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훈련을 소화해 냈다는 것입니다. 아시안게임에 나가기 전에는 살아있는 뱀을 목에 두르고 훈련했다고 합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여전히 태연할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해야 합니다. 그 훈련의 핵심은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신다는 믿음 그 믿음이 필요합니다. 여호와를 기다리는 삶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는 삶입니다. 여호와를 기다리는 삶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여전히 태연할 수 있는 삶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의 과거를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미래까지도 인도하실 것입니다. 내 스스로 노력하면 내게 풍성한 내일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우리 삶의 미래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셨을 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임을 기억하시고, 겸손하고 정직하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의 지혜를 소유하십시다.
3. 끝까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 자의 삶
여러분! 문제없는 인생, 문제없는 가정은 이 세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요셉의 삶은 자살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모질고 절망적인 문제투성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 요셉의 인생 속에 마침내 하나님의 찬란한 빛이 찾아왔습니다. 그저 죄수에 불과했던 히브리 청년이 바로 왕의 꿈을 지혜롭고 명쾌하게 해석하며 애굽이라는 국가의 앞으로의 시책(施策)까지도 현명하게 제시했고, 그는 바로 왕으로부터 막강한 실권을 넘겨받으며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창41:37-45).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요동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의롭게 사는 자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보상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계획은 내가 원하는 기준의 때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집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요셉의 출세는 결코 벼락출세가 아닙니다. 요셉의 인생의 성공은, 어디까지나 도저히 내일을 바라볼 수 없는 절망의 환경 속에서 환경이나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들고 살아온 믿음의 결과였고, 인내의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들고 성실하게 달려온 요셉의 아름다운 믿음 위에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주신 축복이었습니다. 지금의 환경으로 인해 요동하지 말고, 요셉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들고 묵묵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성실히 달려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믿음 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으십시다(롬 8:18, 갈 6:9).
4.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마음의 자세
1.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라(눅 18:1-8)
눅 18:7-8 /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으로 간구하는 그의 백성에게 공정한 판결을 해주시지 않겠느냐? 8)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신속히 응답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다시 돌아올 때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과연 몇 명이나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구나!
약 5:17-18 /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열왕기왕상 18:42-43에서 “엘리야가 갈멜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고 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아주 집중적이고 맹렬한 기도였습니다. 머리를 다리 사이에 파묻고 있는 힘을 다해서 기도했습니다. 일곱 번째 그 사환이 와서 손바닥만 한 구름이 떴다고 하니까 큰 비가 올 터이니까 아합왕에게 빨리 마차를 준비해서 궁궐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 조용기 목사님이 이러한 말을 합니다. 『많은 환자들이 제게 안수기도 받으러 왔는데, 50년 동안 수십 만 명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병을 고침받은 사람의 공통점이 있는데, “나는 더 이상 이 병으로 고생하지 않겠다. 이 병에서 반드시 해방되고 말겠다.”하는 당연한 결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냥 나아도 좋고 안 나아도 좋다고 와서 기도 받는 것이 아니라 ‘꼭 낫는다. 나는 반드시 이 병을 극복하겠다. 그러므로 목사님이 기도해 줄 때 자기도 함께 믿고 반드시 이것을 극복한다.’라는 마음에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있을 때 반드시 그 병은 낫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마음의 결단을 한 사람들이 고침 받는 것을 볼 때 우리도 기도할 때 크던 작던 마음에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이 기도는 응답받아야 되겠다. 반드시 하나님께로부터 응답받겠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에 결단을 하고 뜨거운 소원이 있을 때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는 그의 책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에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요, 바로 ‘절망’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본이 포로 2만 명을 잡아다가 4-5년 동안 수용소에서 고문도 하고 일도 시켰는데, 그 수용소에서 8천 명이 죽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때 죽은 연합군의 시체를 연구해 보니까 고문이나 영양실조로 죽은 숫자는 별로 안 되고 대다수가 절망해서 죽은 경우였다고 합니다. 낙심하면 영적으로 죽고 마음도 죽고 육체도 죽고 생활도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조급해 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라(창 16:1-6)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자신이 자녀를 낳을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자 그녀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남편을 설득하여 여종 하갈을 통해 자녀를 생산하려했지만, 막상 환경이 그녀의 바람대로 된 후에 파생되는 문제와 하갈의 변해진 태도를 보고 뒤늦게 후회를 하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나의 방법이 서로 다름은 이미 성경에 기록된 바 있으나 사실상 영문도 모른 채 무작정 장시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일은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인간인 편에 서는 무엇보다도 힘이 들고 상당한 인내를 요하는 작업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뜻을 감히 이루어 드리겠다고 내 마음대로 많은 일을 벌려놓고, 하나님께 두 손을 벌리며 회개하는 반복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자녀가 행하지 말아야할 자세입니다.
▶ 하지만 어떻게 믿음이 좋았던 아브람이 아담처럼 다소곳이 아내의 말대로 선뜻 따른 것이었을까요? 분명히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고 모래알보다도 더 많은 자손을 의미하는 가운데, 밤하늘의 뭇별을 수효도 알 수 없을 만큼 헤아리며 그 만큼 많은 자손을 주시리라고 약속을 했는데도 말입니다.
아브람이 비록 꿈을 가지고 있긴 해도 세월이 지나니 어느덧 그 꿈은 없어지고, 의심의 안개가 서려 결국엔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론 이미 불가능하다고 여겨졌기에 하나님께서 해주신 약속에는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아내의 말에 응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도 때론 아브람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잊고 마음이 조급해져서 하나님께 구하기는커녕 애태울 때가 많습니다. 또한 오래 기다려도 응답이 오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쉽게 포기합니다. 그러나 끈질지게 인내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귀 기울일 때 하나님은 인생에게 지혜를 주시고 시람과 환경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은 반드시 기한이 차면 이루십니다. 이 하나님의 ‘카이로스’ 때가 되면 전능하신 하나님 외에 하늘 문을 닫을 자도, 열 자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움직이지 아니 하시면 모든 것이 허사요, 결국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처럼 슬기롭게 인내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잠잠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울 것입니다.
전 3:1-2 / [세상만사에 때가 있다] 모든 일에는 정해진 때가 있고, 모든 목적은 다 이룰 기한이 있다.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으며
그러므로 일절 내 뜻을 주장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맡기며 하나님의 때를 끝까지 기다리십시다.
▶ 어떻게 기다려야 합니까? 시편 37:7에 보면 “묵묵히 참고 기다려라. 여호와께서 거둥하시리니 못된 궁리만 하고 살아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 많더라고 불평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복 받을 일을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하는데 축복이 안 나타나고 응답이 오지 않습니까? 그럴지라도 불평하지 말고 참으며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은 ‘슬픔과 고난의 보자기에 축복을 싸다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귀한 믿음의 선진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다 겪었습니다. 고통이나 시련이 올 때 불평이나 낙심대신 “주여 감사합니다. 이 시험이 지난 뒤에는 무슨 축복을 주시려고 하십니까?” 하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에게 시련과 고통의 크기만큼 큰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참을 수 없는 것을 참고, 감사할 수 없는 것을 감사하며 기다릴 때 기적적인 축복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평하지 말고 기다리시는 분들이 되십시다.
시편 40:1에 보면 “그 어떤 일이 벌어져도 오직 여호와께만 희망을 두었더니 오직 주께서 도와주시리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살려 달라 울부짖는 이 목소리 들어주셨네. 몸소 주께서 도와주셨네.”라고 했습니다. 계속 기도하며 기다리지 않는 자는 응답을 받기 어려운데, 어떤 분은 ‘하늘나라에는 되돌아온 소포가 많을 것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참고 기다리며 기도를 계속하지 못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응답이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는 뜻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도 낙심치 않고 계속 부르짖어 응답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과부가 재판관에게 애원할 때도 물러설 줄 모르고 계속 매어 달리다가 응답을 받았습니다. 기도는 응답이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며 계속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마침내 때가 되면 내 뜻과 내 생각대로는 안 되어도 다른 각도에서라도 하나님은 꼭 응답해 주십니다.
오순절에 기도하며 기다리던 120명의 성도는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지만, 실상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그 약속을 들은 사람이 500여명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120명 외에는 중간에 다 낙심하고 돌아갔기 때문에 못 받았습니다. 믿고 기도한 것은 은행에 저금한 것 이상으로 정확하게 찾는 때가 옵니다. 씨앗을 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떤 것은 즉시 이루어 주시고 어떤 기도는 몇 년 후, 어떤 경우는 수십 년 후에 이루어 주시기도 합니다.
합 2:1-3 / [정의는 불변의 표준이다] ‘나는 내 경계 초소에 서 있을 작정입니다. 나는 초소 위에 올라서서 주님이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실지, 나의 탄식에 대하여 주님이 무슨 답변을 하실지 기다리기 위하여 먼 곳을 바라보고 있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결심하였더니 2) 여호와께서 내게 이같이 대답하셨다. “내가 이제 네게 보여주는 것을 여러 서판에 명백히 써서 공개하여 그것을 누구나 대번에 읽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하여라! 3) 왜냐하면, 내가 지금 네게 보여주는 계획들이 아직도 정해진 시각을 향하여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계획들은 느리지만 꾸준하고 확실하게 이루어질 그 시각을 향하여 달리고 있으니 절대로 실망을 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 성취가 느리고 지체되더라도 꾸준히 기다려라. 그 시각은 틀림없이 올 것이다. 단 하루도 넘기지 않을 것이다. 4) 이 사실을 깨달아라. 악한 사람들은 제멋대로 허풍을 떨다가 멸망하지만, 의로운 사람은 진실하게 나를 의지하기 때문에 살 수가 있다(의인은 자신의 진실함으로써 살 수가 있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득이 참고 기다릴 수 없는 사람은 큰 축복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0:23에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구원의 희망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우리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습니다. 구원이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에게나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실행하시리라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고 했습니다. 기도를 해도, 십일조를 해도, 봉사생활을 해도 이랬다 저랬다 하지말고 꾸준히 계속해야 합니다. 조급하고 안절부절못하며 불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참고 기다리십시다. 불평하지 말고 기다리십시다. 계속 기도하며 기다리십시다. 움직이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꾸준히 참고 계속하십시다. 그럴 때에 정오의 햇빛같이 빛나는 때가 오며 축복의 날이 올 것입니다.
3. 기다릴 때에 충분히 준비하라
사 30:15 /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 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게로 돌아와 온전히 순종하면 살길을 찾을 것이다. 너희가 끈기 있게 기다리며 나를 의지하면 오히려 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 오래 엎드린 새는 높게 납니다. 오래 엎드린 새가 높게 날 수 있는 것은 오래 엎드려 힘을 모았기 때문입니다. 오래 엎드리는 시간은 낭비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오래 엎드리는 시간은 힘을 모으는 시간이요, 힘을 축적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새가 높이 비상하고 멀리 날기 위해서는 잘 준비해야 합니다. 독수리가 거센 폭풍우를 타고 날 수 있는 것은 준비가 잘 되었기 때문입니다. 준비는 훈련을 의미합니다. 훈련은 고통을 먼저 선택하고 즐거움을 나중에 누리는 것입니다. 훈련은 고통스럽지만 결국은 즐거움을 주고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훈련은 우리로 하여금 대가를 얻게 합니다.
아무리 좋은 재능을 가졌어도 그것을 훈련을 통해 연마하지 않으면 거의 쓸모가 없습니다. 독수리가 모든 새들 가운데 왕인 까닭은 혹독한 훈련 때문입니다. 독수리는 자기 새끼를 무섭게 훈련합니다. 어미 독수리는 높은 하늘에서 자기 새끼를 떨어뜨려 훈련시킵니다. 새끼 독수리는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날개에 비상하는 근육을 키우게 됩니다. 훈련을 통해 태양을 직시하는 눈을 갖게 되고, 거친 폭풍우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력을 갖게 됩니다. 훈련을 통해 폭풍우까지 타고 날 수 있는 유연성을 갖게 됩니다. 우리도 독수리처럼 높이 비상하고 멀리 날기 위해서는 잘 준비해야 합니다. 잘 준비된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오래 엎드림은 또한 기도를 의미합니다.
무릎을 꿇고 오래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은 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가장 강한 모습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존귀하게 사용하십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오래 엎드림은 하나님의 때를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도 하나님의 때를 알지 못하면 실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때가 만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때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오고 깨어 기다리는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모든 상황 속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 다스리고 싶어하시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 싶은 것은 스트레스가 아닌 고통 뒤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을 가지고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말이 있습니다. 때론 내게 닥쳐오는 일들이 부당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또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불행 앞에서 속수무책인 나의 연약함 앞에 절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약할 때 강함 되시는 하나님께서 때때로 나를 향한 당신의 뜻을 펴기도 하십니다. 내가 생각하는 때가 아닌 주님의 때에 내 삶에 강하게 역사하시며 권능의 팔로 인도하십니다. 그렇기에 오늘 절망 가운데 있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기뻐할 것입니다. 주님의 선하신 때가 곧 올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2,930명의 인물들이 성경에 등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하나님에게 존귀하게 쓰임 받았던 사람들을 볼 때 그 모든 사람들은, 훈련에 의해서 만들어진 즉 훈련(기다리는) 시간을 통과해서 탄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 한 사람을, 이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구약 시대 선지자 중의 선지자로, 그를 하나님이 사용하기까지 80년 동안 하나님이 그를 준비시켜서 80살에서 120살까지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7:22절은 ‘모세는 애굽의 학문을 다 배워 말과 행사에 능하였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쓰시지 않았습니다.
▶ 예수님의 성품인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하나님께서 쓰실 수가 있습니다.
민 12:1-3 /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난하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인 것을 비난하면서 2) “여호와께서 모세하고만 말씀을 나누셨느냐? 우리하고도 말씀하지 않으셨느냐?” 하고 투덜거렸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이러한 비난을 들으셨다. 모세는 이 말을 듣고도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무척 겸손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겸손한 사람은 세상에 없었다.
온유와 겸손을 배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서 그의 손에 있는 지팡이를 하나님의 지팡이로 바꾸어주고 바로를 정복할 수 있는 그 능력을 주셨을지라도 그에게 온유와 겸손, 인내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지도 못하였고 중도에 포기하였을 것입니다. 40년을 애굽에서 지성을 준비하고, 40년을 광야에서 영성을 준비해서 지성과 영성을 겸비하여 하나님께 쓰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한 밤중에 태양이 떠오를 수는 없습니다. 오늘은 내일이 될 수 없으며 봄이 오지 않았는데 여름이 될 수는 없습니다. 계절도 순서대로 바뀌어 갑니다. 모든 사람들이 성공을 꿈꾸지만 그 성공도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열매도 씨앗을 심고 일정한 조건과 기간이 지난 후에라야 거둘 수 있습니다.
■ 식물 중에서 가장 급속하게 성장하는 것이 대나무입니다. 많이 자랄 때는 하루에 1미터씩 자랍니다. 그런 성장으로 대나무의 키는 30미터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 대나무도 생장점에 도달하기까지 5~6년 동안은 땅 속에 묻혀 있습니다. 빛도 보지 못하고 땅 속에 묻혀 있는 동안 성장을 위한 양분을 축적하는 등 성장에 필요한 만반의 준비들을 합니다. 그런데 만약 대나무가 빨리 자라기를 원해 일찍 지상으로 그 뿌리를 드러내면 말라죽거나 제대로 성장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고속 성장을 하는 대나무도 생장점에 도달하기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 히브리어의 산성(山城)이란 단어는 ‘미스가브’(misgab)입니다. 이 단어는 ‘높다, 안전하다’는 뜻인 ‘사가브’(sagab)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마사다’(masada)라는 유적지가 있습니다. 높은 산성같은 곳입니다. 이곳에서 유대인들은 최후까지 로마에 항거했습니다. 로마군이 올라가보니 모든 유대인들이 죽어 있었습니다. 이 마사다도 ‘미스가브’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마사다는 환난 때 지은 것이 아닙니다. 평화로울 때 계획했고 안정된 시기에 축성하였습니다. 탈무드에는 “겨울에 땔감을 사는데 쓰지 않으면 안 될 돈을 여름에 놀며 쓰지 말라”고 합니다. 준비하는 시간은 결코 낭비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순식간에 닥칠 가장 어려울 때를 준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어떤 일이든 반드시 그 일이 이루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마음에 소망하는 것이 있으면 지금 바로 이루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조급해하고 그 조급함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경우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의 섭리를 경험하면서도 ‘때’에 대한 바른 기준을 상실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때’에 대한 바른 기준과 인내심을 갖지 못하면 온전한 열매를 거둘 수 없고 결국 일을 그르칠 수밖에 없습니다.
▶ 성숙한 자는 절대로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노련한 자는 때를 기다립니다. 지혜로운 자는 그 때가 될 때까지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미숙한 점이 드러나면 때가 되기 전에 거센 도전을 받거나 해를 당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때를 기다리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때 아니 우리 자신이 온전해 질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유익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도 때가 되기를 기다리셨고, 다윗도 사울의 칼날을 피해 블레셋으로까지 망명한 적이 있었지만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그를 유다의 왕으로 헤브론에서 7년 6개월 동안 다스리게 하셨고, 나중에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때’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다리라면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않고 성급하게 일을 추진하면 맛보지 않아도 될 실패의 쓴 맛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때’를 기다리는 기다림과 그 기다림 속에서 겪을 수도 있는 고난을 이겨내며 인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기대하시는 최소한의 자격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이루기 원하십니까? 그 일이 언제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까? 그 일에 대해 하나님의 때를 헤아려보셨습니까? 하나님께 그 때를 구하시되 응답하실 때까지 기다리십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한 그 때를 하나님이 신뢰하는 신실함이 있는 자에게 알려 주십니다. 만약 하나님의 그 때를 확신하지 못한다면 그 일은 보류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그 일들을 이루어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도래할 그 때를 대비하여 오늘 열심히 준비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그 일을 이루기 위한 준비의 시간입니다. 마치 대나무가 생장점에 도달하기 전 5~6년 동안 땅 속에서 고속 성장을 위해 필요한 자양분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처럼... 오늘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열심히 그 때를 준비하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결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하나님은 나이 들어 갈수록 인생무상, 사는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지 아십니까? 천국을 사모하고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천국 가기를 위해 준비하라는 사인입니다. 사람들이 세상 재미에 빠져 살면 노아나 소돔과 고모라 때와 마찬가지로 천국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청춘이고 언제까지나 기고만장하게 살 줄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이가 들면서 세상 것, 육체의 것을 하나씩 하나씩 거두어 가십니다. 나이 60이 넘어서면서 뇌세포가 하나씩 하나씩 망가져 1/3까지 없어진답니다. 거꾸로 어린아이 수준으로 돌아갑니다. 누군가 의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정도로 자꾸 나빠집니다. 건강도 쇠약해지고 기력도 나빠지고 권태감과 절망감과 무력감에 사회적 손실을 경험하게 함으로 스스로 생각하게 합니다. 돌아갈 곳, 천국을 사모하게 합니다. 너무 잘되고 너무 건강하고 너무 성공하면 언제 천국을 사모하겠습니까? 언제 천국을 준비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에 보내셨지만 그 목적을 이루게 하시고는 우리 영혼을 거두어 가십니다. 이 땅에서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곳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처럼 살 준비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적응 훈련 곧 예수 그리스도 성품을 온전히 이루는 준비입니다. 하나님의 뜻, 사명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원의 완성이라고 합니다. 거저 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의지를 드려 힘써 말씀을 붙들고 지켜 행할 때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본향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실 때도 엄마를 통해 뱃속에서 세상 나올 준비를 철저하게 시키셨습니다. 좋은 음식, 좋은 생각, 좋은 음악, 좋은 신앙으로 몸가짐과 행동거지를 조심하게 했습니다. 엄마 뱃속에서의 10달이 세상에서 80년 90년의 삶을 좌우하듯이 이 땅에서의 80년 90년의 삶이 다음 세상에서의 영원을 좌우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하루 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분 1초를 소홀히 할 수없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