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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나님이 쓰시는 의인이 되려면
바벨론에서 나오라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
(2)하나님이 쓰시는 의인이 되려면 먼저 해야 할 일.hwp
요한계시록 17:1-18:24 (요절 18:4)
계 18:2 / 그 천사는 큰소리로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무너졌다! 무너졌다! 큰 바벨론이 무너졌다! 그곳은 귀신의 소굴이 되고 악령과 온갖 더러운 영들이 모여 들끓는 난장판이 되었다.
이 천사의 음성은 부드러운 음성이기보다는 절박한 외침으로 곧 바벨론이 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그 도시 사람들의 죄악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도시들을 멸하기로 작정하셨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롯의 가족들을 구출하시고자 했다. 그래서 천사들을 롯에게 보냈다. 천사들이 롯의 가족들에게 ‘내일 아침에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이 도시에 내릴 것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 동이 텄는데도 롯은 자고 있었다. 천사들이 롯을 깨우며 외쳤다. “일어나라!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럼에도 롯은 꾸물거렸다. 할 수 없이 천사들이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의 손을 끌고 성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롯의 사위들은 천사들의 절박한 외침을 농담으로 여겨 소돔에 머물렀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내리는 재앙을 피할 수 없었다. 롯의 아내는 천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다. 만일 롯이 자기의 의를 내세워 그곳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 .
어린 자녀들이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둘째 아들처럼 더러운 곳에 앉아서 땅에 버려진 과자를 주워 먹고 있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의 청소년들이 인터넷 방에 앉아 게임이나 도박에 빠져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술집에 앉아서 불량배들과 노닐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심장이 타 들어갈 것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 곧 멸망할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절박하게 외친다. 이런 선지자의 절박한 외침을 롯의 사위들처럼 농담으로 여긴다면 어쩌면 우리 자신부터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멸망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하나님의 경고에 빠짐없이 소돔과 고모라 혹은 바벨론을 빠져 나와야 한다.
이곳을 빠져 나와야 하는 것은 죄를 짓고 짓지 않고가 문제가 아니라 죄의 경중이 문제가 아니라 빛이 되신 메시아 예수님께서 오셨다면 욥처럼 당연히 그 분 앞에 나와 엎드려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롬 3:9-10 /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참고로 요한복음 8장 21-59절을 보시라. 예수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과의 변론 중 저들을 향한 지적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는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라고 자유로울 수 있는지? ❶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23절). ❷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너희가 믿지 않으면 너희는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25절).
❸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31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믿는 유대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가르침을 따라 산다면 너희는 참된 내 제자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진리를 알게 될 것이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들이 물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이 땅 위에서 살며 어느 누구의 노예도 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하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는 하나같이 죄의 노예다. …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인 줄은 나도 안다. 그러나 그런 너희들 가운데 나를 죽이려고 하는 자가 있지 않느냐? 그것은 내 말을 받아들일 자리가 없을 정도로 너희 마음이 죄로 꽉 차 있는 탓이다. … 너희는 악마의 자식들이므로 악마가 하는 악한 일들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악마는 처음부터 살인자이며 진리를 미워한다. 그 속에 진리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다.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다.’(요 8:44)
왜 바벨론 및 소돔과 고모라에서 나와야 하나? 이곳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벨론이 왜 망할 수밖에 없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망할 수밖에 없는 바벨론의 정체를 밝혀주었다. 그리고 바벨론의 참혹한 멸망까지 제법 소상하게 묘사하고 있다.
1. 바벨론의 기원
바벨론이란 도시를 최초로 건설한 사람은 누굴까? 성경은 그가 니므롯이라고 말한다.
창 10:8-10 / 구스는 니므롯이란 아들을 낳았는데 니므롯은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다른 나라들을 휘어잡은 정복자였다. 9) 또한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도 대단한 사냥꾼이었다. 그래서 `니므롯과 같이 하나님 보시기에도 대단한 사냥꾼이다.'라는 속담이 생겨날 정도였다. 10) 그가 초창기에 정복한 나라는 시날 땅에 있는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였다.
창세기는 시날 땅의 바벨에서 그의 나라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는 노아의 증손자였다. 노아에게 저주를 받았던 함의 아들 구스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니므롯은 ‘세상에 첫 용사’라는 별칭이 있다. 용사는 히브리어로 ‘기보르’인데 이는 폭력으로 통치하는 자를 의미한다. 그는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다고 표현되는데, 칼빈은 여호와 앞에서가 ‘against God’이란 뜻이라고 주석했다. 즉 니므롯은 하나님과 대항하여 맞섰던 폭군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을 대항한 가장 극명한 사건은 바벨탑 건설이다.
창 11:1-3 / [바벨탑] 처음에는 온 세상 사람들이 쓰는 말이 하나였다. 똑같은 말을 썼기 때문에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2) 사람들은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시날 땅에 있는 한 평야에 이르러 거기서 집을 짓고 살기로 하였다. 3) 그러고서는 서로 이런 말을 주고 받았다 `자, 우리가 여기에서 벽돌을 만들어 단단하게 굽자' 그리하여 이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벽돌 사이를 단단하게 굳게 하기 위하여 진흙 대신에 역청을 사용하였다. 4) 또 이런 말도 하였다. `자, 함께 도시를 건설하자 또 하늘까지 닿는 망대를 세우자. 그래서 우리 이름을 좀 날리고 서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시날 평지는 니므롯이 건설하기 시작한 도시들이 있었던 곳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는데, 그들은 하나로 뭉쳐 흩어짐을 면하자고 말한 것이다. 바벨론에서 하나님을 대적한 힘의 규합이 일어난 것이다. 이 일의 중심에 니므롯이 있었음이 충분히 예상되는 것이다.
▶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도 이렇게 기록했다. “[니므롯은] 하나님께서 다시 땅을 홍수에 잠기게 하려 하실 경우 복수를 하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는 물이 미칠 수 없을 정도로 높이 탑을 쌓아서 조상들의 멸망에 대해 복수하려 하였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노예살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니므롯]의 이 충고에 열심히 따랐으며, 그래서 그들은 탑 건축에 착수했고 … 그 탑은 그 누구의 예상도 뛰어넘는 빠른 속도로 건축되어 올라갔다.”—「유대 고대사」(Jewish Antiquities), I, 114, 115 (iv, 2, 3).
하나님께 대적하여 벌어지는 인류의 반역에 대해 하나님께서 가만히 있지 않으셨다.
창 11:6-9 / 이렇게 말씀하셨다. `도대체 어쩌려고 인간들이 이러는가? 이들이 모두 한민족인데다가 또 말도 똑같이 쓰고 있구나. 인간들이 이런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니 이제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겠구나 7) 자, 그러니 이제 우리가 내려가서 저 인간들이 쓰는 언어를 섞어 놓자. 그래서 서로 뜻이 통하지 못하도록 하자.' 8) 여호와께서는 인간들을 땅 위 곳곳으로 흩어지게 하셨다. 결국 그들은 도시를 건설하던 일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9) 건설이 중단된 이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 불렀는데, 그 까닭은 거기서 여호와께서 인간들이 쓰는 언어를 섞어 놓아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벨론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한 힘의 규합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탑 사건 이후 새로운 인류 구원의 역사를 진행하셔야 했다. 그래서 주목하신 것이 아브라함이다. 그가 태어난 지역은 니므롯이 정복한 땅 갈대아 우르지역이다.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 있었고, 우상숭배로 가득한 도시, 바벨론 한 복판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것이다. 바벨론을 등지고 가나안을 향해 떠났던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은 새로운 구원 역사를 시작하신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아들을 예루살렘 한 산에서 번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한다. 예루살렘은 바벨론과 달리 한 사람의 온전한 순종이 있었던 곳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순종한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성경에 처음 나오는 바벨론과 예루살렘 이야기다.
2. 바벨론의 정체(실상)
요한계시록 17:1에 큰 음녀가 등장한다. 큰 음녀란 음녀 중의 음녀라는 뜻이다. 이 음녀가 많은 물 위에 앉아있다고 했는데 많은 물은 모든 인종과 백성으로 형성된 엄청난 대중을 뜻한다(계 17:15). 음녀가 불신 세상을 다스리고 지배한다는 뜻이다.
이 음녀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답고 화려하였다.
계 17:4-5 / 그 여자는 자주색과 붉은 색깔의 옷을 입었으며 금은보석과 진주로 화려하게 치장하였습니다. 손에는 가증할 물건과 음행이 가득 담긴 금잔이 들려 있었습니다. 5) 그 여인의 이마에는 '온 세계의 음녀와 가증한 물건의 어미, 큰 바벨론'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옷을 입었으며 온갖 좋은 것으로 치장하였다. 손에는 금잔을 들었다. 이 여인을 보면 한 눈에 반할 정도로 매혹적이다. 그래서 같이 지내고 싶어진다. 그 품에 기대어 그녀가 따라주는 술을 받아 마시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키게 한다. 하지만 그 금잔 안에는 가증하고 더러운 것이 가득 차있다. 그래서 이어지는 음녀의 실상이 폭로되었다. 음녀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음녀의 실체이다. 그 이름을 세 가지로 표현한다.
❶ 비밀(수수께끼) : 음녀는 마치 양파처럼 그 안에 악독, 거짓, 부패가 겹겹이 쌓여있다는 뜻이다.
❷ 큰 바벨론 :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는 뜻이다(계 17:18).
❸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 : 모든 음란과 우상숭배와 사치와 거짓과 악을 생산하고 있는 여자라는 뜻이다.
이 음녀가 세상에서 하는 일을 소개하였다.
계 17:2 / 세상의 왕들이 이 여자와 더불어 음란한 짓을 하였고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이 이 여자가 주는 음행의 포도주에 취해 있다.
세상의 왕들과 사람들이 음녀가 주는 포도주(술)에 취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즉 이 음녀가 세상을 주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18장에 보면 이 음녀의 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부류들을 열거하였다.
계 18:3 / 모든 민족이 그 여인이 주는 음행의 독한 포도주에 취해 버렸다! 땅 위의 통치자들은 그 여인과 더불어 쾌락에 빠지고 온 세계의 상인들만이 그 여인의 사치스러운 생활 덕분에 큰 부자가 되어 떵떵거린다! <땅의 왕들(정치가들)과 땅의 상인들(경제인들)>
계 18:17 / 이 도시의 많던 재물이 삽시간에 사라져 버렸구나! 모든 선주와 상선의 선장들과 승무원들도 멀리 서서(무역업자들).
이들은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자기의 배를 채우고 즐기고 사치스럽게 산다. 대신에 백성들을 부려먹고 온갖 죄악들을 자행하였다. 이들을 그렇게 하도록 유혹하고 부추기는 자가 바로 음녀 바벨론이다. 그러므로 이 음녀 바벨론은 세상 나라들과 백성들을 부와 쾌락과 미신으로 미혹하여 죄의 늪에 깊이 빠지게 하는 세상의 지배 문화와 정신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정치 경제 예술 학문 등 사람이 생산하는 모든 일에 이 더러운 음녀가 깊숙이 개입하여 사람들의 타락을 부추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답고 화려한데 실상은 더럽고 추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실상을 모르고 음녀의 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음녀 바벨론을 강력하게 지원하는 세력이 있다(계 17:3). ‘붉은 빛 짐승’인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지고 있었다. 이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으로서 사탄의 직계 하수인인 적그리스도이다(13:1-10). 적그리스도는 사탄으로부터 권세를 받아 세상 나라를 지배하는 사악한 정치 지도자나 정권을 뜻한다. 그런데 음녀 바벨론이 이 짐승을 타고 있었는데 이것은 음녀가 짐승의 사주를 받고 있다는 뜻이다. 음녀 바벨론이 광야에 있었다고 하는데 광야에서 하나님께 양육 받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기 위해서이다(12:6 참고). 이 음녀 바벨론이 성도들과 예수님의 증인들의 피에 취했다고 했는데, 성도와 교회를 핍박하고 죽였다는 뜻이다(계 17:6).
음녀 바벨론의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란 사도 요한에게 천사가 그 음녀와 음녀가 탄 짐승의 비밀을 가르쳐주겠다고 하면서 이하의 구절들에서 짐승의 일곱 머리와 열 뿔에 관해 말했다(계 17:7).
짐승(적그리스도)에 관해 말씀하는데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라고 하였다(계 17:8). 이것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을 모방한 것이다. 성부 하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분이다(계 1:4, 8, 4:8). 그리고 성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에 오르셨고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그 짐승(적그리스도)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결정타를 맞고 패했지만 종말의 마지막에 다시금 등장하여 잠깐 동안 이 세상을 유혹하고 압제할 것인데 불신자들이 다시 재기한 그 짐승을 보고 놀라며 따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짐승(적그리스도)은 결국 사탄과 함께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
이어서 천사가 일곱 머리와 열 뿔에 관해 설명하였다(17:9-13). 일곱 머리는 음녀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고 했다. 여기 일곱 산과 일곱 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우선 로마 제국의 수도인 로마 시가 일곱 언덕 위에 건설된 것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일곱 왕은 역사에 이미 나타났거나 나타날 일곱 제국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17:10에서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했으나 이르게 되면 잠시 동안 머물 것이라고 했는데 그 뜻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❶ 이미 망한 다섯 제국 : 고대 바벨론. 앗수르. 신 바벨론. 메데-바사. 헬라-마게도냐 제국
❷ 사도 요한 당시의 제국 : 로마 제국
❸ 앞으로 나타날 제국 : 적그리스도의 나라
그러나 이상과 같이 구체적인 제국으로 해석하기 보기보다는 모두 상징적인 의미로 보자는 견해도 있다. 즉 일곱 왕들은 모두 적그리스도적인 황제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자는 것이다.
❶ ‘다섯’ : 적그리스도적인 황제들 가운데 대부분이 망했음을 뜻한다.
❷ 지금 있는 하나 : 한 황제가 지금 짧은 기간 동안 통치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❸ 마지막 일곱째 왕 : 곧 지상에 등장하게 될 적그리스도적인 왕을 뜻한다.
어쨌든 현재 사도 요한의 시대에 열국을 다스리고 있는 적그리스도적인 왕은 로마 제국이나 로마 제국의 어느 한 왕 가리킨다고 보아도 좋겠다.
그런데 17:11에서 전에 있었다가 지금 없어진 짐승(8절. 적그리스도)은 여덟째 왕인데 일곱 중에 속한 자라고 한다. 이것은 세상의 마지막에 적그리스도의 실체가 출현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적그리스도의 실체도 결국 멸망할 것이다.
17:12-14에는 열 뿔에 대해 설명하였다. 열 뿔은 열 왕들이다. 즉 이들은 적그리스도의 하수인들로서 세상의 여러 나라들을 다스리는 통치자들을 뜻한다고 보면 되겠다. 이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짐승(적그리스도)을 섬기는 대신에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한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확인하게 되는 사실은 적그리스도에게 복속된 세계의 패권국가들과 황제들이 세계를 통치하기 위해 내세운 두 가지 정책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세상 백성들의 타락을 부추기는 음녀 정책이며 다른 하나는 성도와 교회를 위협하는 정책이다. 한 손에는 유혹의 포도주를 들고 다른 손에는 박해의 칼을 들고 사람들을 적그리스도와 사탄에게 굴복하게 하려는 것이다.
음녀 정책을 한 마디로 말하면 즐기자는 것이다. ‘좀 더 눈을 즐겁게 하자. 배부르게 먹자. 육체의 쾌락에 빠지자. 그래야 재미있고 행복한 인생이 아닌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 하나님께로 향하지 못하게 한다.
한편으로는 세상 사람들을 위협한다. “저기 어린양을 따르는 성도들과 교회를 보라! 얼마나 약하고 어리석지 않은가? 너희들이 저들을 따르면 갖가지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힘들고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선택하라! 우리를 따르겠는가? 어린양 예수를 따르겠는가? 우리를 따르면 즐겁게 살 것이고 어린양 예수를 따르면 고난과 죽음뿐이다!” 이 같은 유혹과 위협 앞에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적그리스도와 음녀 바벨론을 따를 것이라고 요한계시록은 반복해서 말씀하였다.
▶ 하지만 성도와 교회는 어떠해야 할까? 우선 성경의 약속을 믿어야 한다. 그 약속은 어린양 예수님을 따를 때 결국 승리한다는 약속이다.
계 17:14 / 그리고 한패가 되어 어린양을 대적해서 싸울 것이다. 그러나 결국 모든 군주들의 주님이요, 왕 중 왕이신 어린양이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그분의 신하들은 부르심 받은 자요, 선택받은 자요, 충성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말의 마지막 때가 되면 세상 나라들이 음녀 바벨론에 항거할 때가 온다는 것도 믿어야 한다. 17:16이다. 바벨론과 세상 열국과 적그리스도 사이에 자중지란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17절에서는 자중지란이 일어나도록 하나님께서 간섭하실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란 하나님께서 음녀 바벨론과 적그리스도가 파멸하실 때까지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승리의 약속을 믿고 인내해야 한다.
3. 바벨론 파멸의 이유와 모습
18장에서는 세상을 농락했던 음녀 바벨론이 왜 멸망하는지 그리고 그 멸망이 얼마나 참혹한지를 묘사하였다. 먼저 바벨론이 멸망하는 이유를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❶ 종교적인 부패(2절) : 귀신과 우상을 열렬히 숭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부패했다.
❷ 정치적인 부패(3. 9-10절) : 음녀 바벨론이 만국의 왕들을 농락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권력들을 하나님과 백성들을 섬기는데 사용하지 않고 부려 먹는데 사용했다.
❸ 경제적인 부패(3. 11-15. 17-19절) : 땅의 상인들(경제인들)과 무역업자들이 치부했다. 부를 나누지 않았다.
❹ 음녀 바벨론의 교만(7절) : 이 총체적인 부패 이면에 음녀 바벨론은 교만할 대로 교만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잠 16:18, 약 3:6, 벧전 5:5).
그래서 하루 동안에 음녀 바벨론이 파멸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선포하셨다(18:8).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으로 졸지에 파멸하는 바벨론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애곡했다.
❶ 왕들(정치가들)의 애곡(9-10절)
❷ 상인들(경제인들)의 애곡(15-16절)
❸ 선장과 선원들과 선객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무역업자들)의 애곡(17-19절)
계 8:21에서는 큰 맷돌 같은 돌이 바다에 빠져 자취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 같이 사치와 음란의 큰 성 바벨론도 완전히 파멸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결코 다시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여섯 번이나 반복하였다(21-23절).
❶ 바벨론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것이다.
❷ 더 이상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❸ 더 이상 좋은 기술이나 공산품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❹ 더 이상 음식을 만들거나 그 음식을 먹는 즐거움도 사라질 것이다.
❺ 등불 빛도 사라질 것이다.
❻ 결혼의 즐거움도 없을 것이다.
대신에 오직 두려움으로 가슴을 치며 크게 애곡하는 소리만 있을 것이다.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18:10, 16, 19)
음녀 바벨론이 이렇게 졸지에 망하는 근본 이유를 23-24절에서 다시 요약한다.
❶ 복술로 만국을 미혹했기 때문
❷ 성도와 교회를 박해했기 때문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이다.
4. 바벨론의 파멸에 대한 성도의 대응
음녀 바벨론이 파멸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성도와 교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1. 천사가 고통당하는 성도들에게 즐거워하라고 하였다.
계 18:20 / 그러나 하늘이여, 하나님의 자녀들이여, 예언자들이여, 그리고 사도들이여! 그 도시의 운명을 기뻐하십시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해서 그 도시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2. 주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바벨론에서 속히 나오라고 외치신다.
계 18:4 / 나는 또 하늘에서 들려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내 백성들아, 그 여인을 떠나서 돌아오라. 그 여인의 죄에 빠져 들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 역시 그 여인과 함께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유는 바벨론이 곧 파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그곳에서 지금 빨리 나오라고 하신다.
그러면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뜻이 무엇일까? 이것은 단순히 장소의 이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육신을 갖고 있는 한 이 세상을 떠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거기서 나오라는 것은 영적인 탈출을 뜻한다.
영적 탈출이란 큰 음녀 바벨론이 제공하는 술을 받아 마시지 말라는 뜻이다. 음란과 탐욕과 우상숭배와 부정과 사치의 술을 마시지 말라는 뜻으로 그 음녀의 죄에 참여하지 말라는 말이다.
벧전 4:3 / 여러분은 과거에 방탕과 욕정과 술로 소일을 했으며, 먹자판으로 두들겨 마시고 우상숭배에 빠지는 등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쾌락만을 찾아 살아 왔습니다.
벧전 4:7 / 세상 종말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진지하게 깊이 생각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요일 2:15-17 / 이 마음 빼앗기지 마십시오. 만일 이런 것들을 사랑한다면 여러분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16) 이런 세속적인 일들, 이런 악한 욕망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욕에 미치거나 눈에 띄는 것은 무엇이나 다 사고 싶어하거나 재산이나 지위를 자랑하는 따위의 욕망들은 모두 이 악한 세상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17) 이 세상은 사라지고 이런 악한 욕망도 세상과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종말의 때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자주 말씀하셨다.
눅 17:26-32 / 내가 올 때에 세상은 노아의 시대와 같을 것이다.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그들은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며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하면서 모두 태평하게 살다가 홍수가 나자 다 멸망하고 말았다. 28) 또 그때에는 롯의 시대에 있었던 일이 일어날 것이다. 롯의 때에도 사람들은 매일 나가서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농사 짓고 집을 지었다. 29) 그러나 롯이 소돔을 떠나던 날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내려와 그들은 다 멸망하고 말았다. 30) 이처럼 내가 다시 올 때에도 사람들은 예나 마찬가지로 자기 일에만 분주하게 지내다가 멸망할 것이다. 31) 그날에는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짐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고 들에 있는 사람은 마을로 돌아가지 말라. 32) 롯의 아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를 생각하라!
멸망당한 노아 시대의 사람들과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들이 먹고, 마시고, 결혼하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지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땅에서 이 같은 생활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참 뜻이 무엇일까? 그것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죄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같은 행복은 이기적인 행복이다. 내가 배 부르고, 내 가정이 행복하고, 내 미래가 보장되어 있으면 다 된 것 아니냐는 이기적인 행복이 바로 가장 큰 죄악이다. 최선을 대해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 목표가 오직 자기의 행복이라면 그것은 참 행복이 아니다. 곧 사라질 아침 안개와 같다. 그렇게 살라고 우리를 이 땅에서 살게 하신 것이 아니다.
참 행복은 우리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 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며 살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하셨다. 세상 것에 미련이 남아서 뒤를 돌아봄으로써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처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우리들의 최고의 관심사가 무엇일까?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일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추구하는가? 아니면 여전히 이기적인 행복에만 매여 있는가?
■ 기독교를 핍박했던 로마 황제 하나가 자기 제국에 그리스도인들이 자꾸 불어나니까 아주 화가 나서 지혜로운 신하 하나를 불러 명령했다. “여보게! 저렇게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는 것은 로마의 법이 너무 허술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법을 고쳐서 예수 믿는 자들을 무조건 죽이도록 하라!” 그러자 신하는 대답한다. “폐하! 그래서는 안 됩니다. 저 크리스천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기 스승 예수처럼 순교하기를 갈망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저들을 죽이면 기독교가 더욱 번창할 것입니다.” 왕이 다시 제안했다. “그러면 저들을 잔인하게 고문만 한다면 기독교의 세력이 위축되지 않겠나?” 신하가 대답한다. “폐하! 그것도 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저들은 고난을 받으면 받을수록 하늘의 더 큰 상을 받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은 예수의 흔적이라고 자랑합니다.” 왕이 신하에게 되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신하는 이렇게 답했다. “왕이시여! 한 가지 묘책이 있습니다. 저들로 하여금 편안하게 살도록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처럼 쾌락과 사치에 물들면 서서히 무너질 것입니다.”
▶ 몸의 편안함보다 영혼의 평안을 추구하자 / 사람들은 편안함을 추구한다. 그 편안함이 마음의 편안함, 정서적인 편안함, 영혼의 편안함이 되어야 하는데, 육체적인 것과 물질적인 편안함으로 변질된다. 몸의 편안함을 위해서 더 넓은 집과 더 좋은 자동차를 선호하고, 더 많은 돈을 갖기를 원한다. 편안하기 위해 편리한 것을 따지고, 효율성을 따지며 고급과 명품을 선호하게 된다. 그러면 행복할 것 같고, 평안해질 것 같은 환상을 갖는다. 하지만 항상 몸의 편안함이 마음의 편안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시적인 편안함이 주더라도 영원한 편안함은 아니다. 아무리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그 자세가 힘들어지고 불편해진다. 육체의 편안함이 바로 그런 것이다. 또한, 욕심이 지나쳐 과욕으로 치닫고 채워지지 않는 공허와 질투를 갖게 하며, 몸의 편안함이 곧 게으름과 나태함을 위한 핑계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진정으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편안함보다는 평안함이 아닐까?
눅 12:19-20 / 그리고 내 영혼에게 이렇게 말하리라. ‘나는 물건을 몇 해 동안 쓰고도 남을 만큼 쌓아 두었다. 이제는 편안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기자.’ 20)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밤에 내가 네 영혼을 찾아가리라. 그러고 나면 네가 모은 재산이 다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혹시 이런 어리석음이 우리 삶에 은밀히 자리잡고 있지는 않은지? 많이 쌓아둔 물질로 마음의 위로와 의지를 삼지는 않은지? 하나님께서는 몸의 편안과 편리를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아담과 하와가 이 땅에서 받은 저주가 바로 땀을 흘려 열매를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죄의 저주를 인간적인 방법으로 풀어가려는 것이 물질로 인해 육신의 편안함을 얻으려는 물질주의가 아니겠는가?
성경에서는 다른 평안을 이야기하고 있다. 몸이 조금 불편할지 몰라도 영혼과 마음이 평안할 수 있는 비결을 말씀해주고 있다. 몸은 피곤할 수 있지만, 안식의 회복과 생명의 공급이 있는 길이 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안의 진리가 말씀에 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부터 평안으로 오셨다. 그 어머니 마리아에게 선포된 말씀이 바로 그렇다.
눅 1:28-29 /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말하였다.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이여.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 29) 놀라고 당황한 마리아는 천사의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하고 생각하였다.
처녀가 아이를 잉태하는데 그 상황에서도 평안함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또한, 어느 곳에서든 평안을 말씀하시고 가르치셨다. “그 집에 머무르게 될 때에는 복을 빌어 주라. 그 집이 복을 받을 만하면 너희가 비는 복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 복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마 10:12-13) 우리가 누려야 할 행복이 바로 이것이다. 육신의 편안함이 아니라 영혼의 평안이다.
예수님을 시험했던 사단의 전략에 빠져서는 안 된다. 사단은 지금도 성도들을 미혹하려고 별별 수단을 아끼지 아니하는데 그 전략이 바로 예수님을 미혹했던 전략이기도 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마귀를 물리치신 말씀들은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한 내용들이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쓰시는 의인이 되려면 이 다가지 미혹을 물리치며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면 천사들이 와서 도울 것이다.
마 4:3-11 / 그때 마귀가 와서 돌을 떡이 되게 해보라고 유혹하며 ‘그렇게 하면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증명될 게 아니오?’ 하고 말하였다. 4)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은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가르친다.” 5) 그러자 마귀는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지붕 위에 세워 놓고 6) 말하였다. “뛰어내리시오. 그래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시오. ‘주께서 네가 어디를 가든지 주님의 천사를 보내 보호하게 하시니 그들이 두 손으로 너를 꽉 붙잡으리라. 혹시나 돌부리에라도 채이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리라’는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소?” 7)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도 성경에 있다.” 8) 마귀는 다시 예수를 이끌고 아주 높은 산으로 올라가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며 ‘만일 내게 무릎을 꿇고 경배한다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10) 그때 예수께서 “사단아 물러가라! 성경에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그분만을 섬기라’고 이르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11) 그러자 마귀는 떠나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께 시중을 들었다.
참고로 마태복음 11:28을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육신의 문제도 있겠지만 영적인 문제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된 평안과 안식을 주시기 위해 11:29에서는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가나안 땅이라는 육신의 안식도 주시겠지만 그것보다는 영원한 안식을 주시겠다는 것이다(히 3:7-4:13).
성도와 교회를 대적하는 세력은 두 가지이다. 교회를 위협하는 세력과 미혹하는 세력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의 대적은 두 가지 세력 중에 후자 쪽이 월등히 우세했었다. 교회가 음녀 바벨론의 미혹에 타협하고 동화될 때 교회는 점점 더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마귀는 이에 더하여 교회를 위협하면서 협박까지 하고 있다.
본문에서 종말을 사는 성도와 교회를 향해 바벨론의 음녀 정책을 잘 분별하고 거기서 나오라고 하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말씀에 주목하시기를 … .
우리들은 정말 하나님의 백성인가? 어린양 예수님의 신부인가? 성령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인가? 그렇다면 그 신분에 걸맞게 사시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도를 위해 예배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게 될 것이다.
결 론
경건한 성도와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분들을 향한 바울의 권면을 결론으로 대신한다.
롬 12:1-21 / [그리스도 안의 새 생활]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산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베푸실 일을 생각할 때 이것이 무리한 요구이겠습니까? 2) 여러분은 이 세상 사람들의 행동이나 관습을 본받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생각이나 행동으로 새로워져서 딴 사람이 되십시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방법이 실제로 얼마나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인가를 여러분의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될 것입니다. 3) 나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정직하게 평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십시오. 4-5) 우리 몸에 많은 지체가 있듯이 그리스도의 몸에도 많은 지체가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의 지체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 모두가 한데 모일 때 하나의 완전한 몸을 이룹니다. 우리 각 사람이 서로 다른 지체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 있으며 각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6)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어떤 일이든 한 가지씩은 잘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께 예언하는 능력을 받은 사람이 있거든 믿음의 분량대로 예언을 하십시오. 7) 만일 남을 섬기는 은사를 받았거든 성의를 다해 남을 섬기고, 남을 가르치는 은사를 받았거든 훌륭하게 가르치십시오. 8) 설교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열과 성을 다해 남에게 도움을 주는 설교를 하십시오. 만일 하나님께서 재물을 주셨거든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만일 하나님께서 행정 능력을 주어 다른 사람들의 일을 감독하게 하셨거든 성실하게 그 책임을 다하십시오. 슬픈 자를 위로해야 하는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위로하십시오. 9) 여러분은 겉치레로 남을 사랑하지 말고 진심으로 사랑하십시오. 10) 형제를 사랑하듯 서로 사랑하며 마음으로 존경하십시오. 11) 여러분이 맡은 일을 게을리 하지 말고 열심으로 주님을 섬기십시오. 12)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계획하고 계시는 모든 일을 기뻐하십시오. 환난 가운데서도 참고 항상 기도하십시오. 13) 하나님의 자녀들이 곤궁에 빠져 있을 때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나그네를 후히 대접하고 만일 그들이 잘 곳이 없거든 집안에 재우십시오. 14)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누가 여러분을 학대하더라도 저주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를 보살펴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15) 다른 사람이 행복해할 때 같이 기뻐하고 그들이 슬퍼할 때 함께 슬픔을 나누십시오. 16) 서로 한마음이 되어 즐겁게 일하십시오. 오만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상류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려 하지 말고 보통 사람들과 즐겁게 사귀십시오. 그리고 무엇이든지 다 알고 있다고 잘난 체하지 마십시오. 17)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누가 보더라도 여러분이 정직하다고 인정할 수 있게 행동하십시오. 18) 어느 누구와도 싸우지 말고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십시오. 19)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스스로 복수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원수 갚는 일은 내가 할 일이니 내게 맡기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20) 오히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는 자신이 해온 일을 생각하고 부끄러워 머리 위에 숯불을 올려놓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릴 것입니다. 21) 악이 기세를 부리지 못하게 하십시오. 선한 행실로 악을 정복하십시오.
마태복음 5-7장에도 나오지만 이러한 신앙생활이 종말의 때에 성도로서 살아야 할 삶의 기본적인 원리이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찬송가 491장 ❶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아서 날마다 기도합니다
<후렴> 내 주여 내 맘 붙드사 그 곳에 있게 하소서 그 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❷ 괴롬과 죄가 있는 곳 나 비록 여기 살아도 빛나고 높은 저 곳을 날마다 바라봅니다
❸ 의심의 안개 걷히고 근심의 구름 없는 곳 기쁘고 참된 평화가 거기만 있사옵니다
❹ 험하고 높은 이 길을 싸우며 나아갑니다 다시금 기도하오니 내 주여 인도하소서
❺ 내 주를 따라 올라가 저 높은 곳에 우뚝 서 영원한 복락 누리며 즐거운 노래 부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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