楡岾寺(유점사) - 유점사에서
金殿崢嶸接上淸 금전쟁영접상청 淸-庚
금빛 대웅전 까마득히 하늘 끝에 닿았는데
僧言羅代始經營 승언라대시경영 營-庚
스님 이르기를 신라 때 지어 번창했던 절이라네
靈蹤滿耳聞生信 영종만이문생신
귀 가득히 신령한 자취 듣기만 해도 신심 생기고
塔影橫庭踏未平 탑영횡정답미평 平-庚
뜰에 누운 탑 그림자 밟으니 평탄치 않네
井水忽從烏啄出 정수홀종오주출
우물물은 홀연히 까마귀 부리에서 나오고
樓詩盡向客吟成 루시진향객음성 成-庚
기둥에 쓰인 시구 나그네 향해 읊는다네
徜徉又得山中史 상양우득산중사
주위를 서성거리다 또 산중의 역사 얻었는데
讀罷難堪萬斛情 독파난감만곡정 情-庚
읽다보니 그 많은 정 감당하기 어렵네.
楡岾寺(유점사) ; 강원도 금강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절이다. 일제강점기 시
60여 개의 말사를 거느린 전국 31본산 중의 하나였다. 신라 남해 왕 때 창건하였다.
崢嶸(쟁영) ; 매우 가파르다. 까마득하다.
上淸(상청) ; 도교에서, 신선이 산다는 삼청(三淸)의 하나. 최고 이상향을 이 른다.
蹤(종) ; 발자취.
啄(탁 / 주) ; 쪼을 탁. 부리 주. 여기서는 부리 주로 쓰였다.
樓詩(루시) ; 누각에 쓰인 시라는 뜻이지만 누각기둥에 새겨진 글귀다.
다할 盡과 이룰 成을 한 구에 넣어 樓詩를 꾸미고 있음은 방문객 이 그 시를 다
읽어주어야 기둥에 새긴 작가의 뜻이 완성된다는 완만한 뜻을 지녔으나 풀어쓰지니
수필이 되고 그대로 풀자니 아 쉬움이 없지 않다. 한시에 굳이 묘미를 첨가하자면
이런 부분이 될 터이다.
徜徉(상양) ; 노닐다. 어정거리다.
讀罷(독파) ; 독파(讀破)와 같이 씀. 책을 다 읽다. 罷는 측성으로도 쓰고 평 성으로도 쓰며
뜻으로는 그치다 그만 두다는 뜻이 강하고, 破는 확실한 측성으로 남김없이 다 하다는
뜻이 내포된다. 그러니 평 측 때문에 罷를 썼다기 보다 뜻깊이를 더하기 위해 罷를 썼다
고 볼 때 읽기를 다 하지 못하고 그만둔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래서 ‘다 읽어
보니’가 아니라 ‘읽다보니’로 풀었다.
難堪(난감)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여 처지가 딱하다.
유점사는 금강산에서 가장 오래된 절로 조선왕조의 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세조(世祖)는 유점사를 왕실의 복을 비는 절로 지정하고 재위시절 직접 찾기도 하였다. 보우대사가 금강산에서 머물던 당시에도 가장 큰 사찰이었다는 것은 대사의 시에서도 엿볼 수 있다. 보우대사는 수행 초기에 금강산의 여러 사찰과 암자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정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사는 절과 관련된 시만 쓴 것이 아니라 봉우리와 굴에 대한 글도 다수 남기고 있다.
금전(金殿)을 불상의 금색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많다. 불상은 어디 가나 금색이다. 유점사는 단청의 대부분을 금색으로 장식하였다. 서까래, 기둥, 외벽탱화로 그려 넣은 심우도 등을 황금색을 배색으로 조성하였다. 신라초기에 금강산이 신라에 속해 있었음은 유점사의 기록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유점사는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 만으로도 불심이 솟아난다 했다. 뜰의 탑 그림자가 발밑에서 평탄치 못하다 함은 무슨 말일까? 頷聯은 쉬 풀 수 없는 선문답인데…… 탑 그림자가 마당에 가로로 누웠다면 밤 일까? 낮 일까? 頷聯과 頸聯은 前句와 後句가 대를 이루었다.
頷聯前句에서 생신(生信)의 대로 後句에서 미평(未平)을 썼다. 마당이 울퉁불퉁하다. 문제는 땅이 울퉁불퉁한 것하고 이 시 하고는 별 연관이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우물물이 홀연히 까마귀 입에서 나온다 하니 글은 풀되 뜻을 풀기 난해함이다. 기둥에 써놓은 법구(法句)가 그렇다. 법구경 어디선가 나올법한 문구다. 그리고 이 문구는 유점사의 역사와 관계가 있다. 기둥마다 새겨진 법구를 다 읽다보니 법어가 베푼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