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곡집(壽谷集) 김주신(金柱臣)생년1661년(현종 2)몰년1721년(경종 1)자하경(廈卿)호수곡(壽谷), 세심재(洗心齋)본관경주(慶州)봉호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시호효간(孝簡)특기사항박세당(朴世堂)의 문인. 최석정(崔錫鼎), 서종태(徐宗泰), 김창협(金昌協) 등과 교유
壽谷集卷之十一 / [散言] / 散言[下篇]
周愼齋世鵬所撰舍人魚泳濬墓誌曰。曾參未嘗爲親割股。而孝莫與競。杜甫未嘗爲國殺身。而忠不可及。辭理俱絶佳。令人醒眼。雖謂之發前人所未發。可也。
狄仁傑爲魏州刺史有惠政。民爲之立生祠。後其子景暉爲魏州司功參軍貪暴。州人遂毁其像。韓昌黎子昶嘗爲集賢校理。史傳有金根車。昶以爲誤。悉改爲銀信乎。杜甫詩曰。大賢之後竟陵遲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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悉改爲銀信乎。杜甫詩曰。大賢之後竟陵遲也。-> 悉改爲銀。信乎。杜甫詩曰。大賢之後竟陵遲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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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其受氣稟質。必與凡人異。而類多年壽不長。信乎杜甫詩曰人生七十古來稀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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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속집 제5권 / 잡저(雜著) / 퇴계 선생(退溪先生) 언행록(言行錄)
선생께서는 글을 읽을 적에는 단정히 앉아서 우렁차게 읽었으며, 글자마다 그 뜻을 찾고 구절마다 그 의미를 탐구하였다. 일찍이 대충대충 읽는 법이 없어서, 비록 한 자 한 획의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으며, 어(魚)를 노(魯)로 쓴다든지 시(豕)를 해(亥)로 쓴다든지 하는 것과 같은 잘못들을 기필코 찾아 내어 바로잡고야 말았다. 그러나 본디 있는 글자를 도려 내어 고치지 않고 반드시 책 머리에다 두주(頭註)를 달기를, ‘아무 글자는 아마도 아무 글자가 되어야 할 듯하다.’ 하였으니, 정밀하고 조심스럽게 하기를 이와 같이 하였다. 상사(上舍) 조목(趙穆)이 일찍이 《심경부주(心經附註)》를 교정할 적에 자획이 잘못된 것을 곧바로 도려 내어 고치고, 깎아 내어서는 안 되는 주각(註脚)을 곧바로 깎아 내고 보충하였는데, 선생께서 나무라시기를, “선유(先儒)가 쓴 글을 어찌 자기 생각만으로 이처럼 거침없이 취하고 버린단 말인가. 그래 금근거(金根車)의 꾸지람을 생각지 않는단 말인가.” 하였다.
내가 여쭙기를, “《역학계몽(易學啓蒙)》과 같은 책은 처음 배우는 자들에게는 절실하지 않은 듯한데, 어떻습니까?”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참으로 그렇다. 그러나 배우는 자들이 역시 먼저 알지 않아서는 안 된다. 선유(先儒)가 이에 대해서 한 말이 있다.” 하였다.
신유년(1561, 명종 16) 겨울에 선생께서 도산(陶山)의 완락재(玩樂齋)에 계셨는데, 닭이 울면 일어나서 반드시 글을 한 차례 우렁차게 외우셨다. 이에 자세히 들어보니, 바로 《심경부주(心經附註)》였다.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찍이 문원(聞遠) 금난수(琴蘭秀)의 집에 간 일이 었었는데, 산길이 험하여 갈 적에는 고삐를 잡고 조심조심 몰면서 계속 마음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 돌아올 적에는 술에 약간 취하여 갈 때 길이 험하였던 것을 깜박 잊고 마치 탄탄대로를 가듯 마음을 놓고 왔다. 그러니 마음을 긴장하고 놓아 버리는 것에 대해서는 몹시 두려워해야 한다.” 하였다.
또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마음을 간직하기가 가장 어렵다. 일찍이 내가 직접 경험해 보았는바, 한 걸음을 걷는 사이에도 마음이 한 걸음을 걷는 데 있기가 어려웠다.” 하였다.
금근거(金根車)의 꾸지람 : 글자를 경솔하게 잘못 고치는 것을 말한다. 금근거는 황제가 타는 황금으로 장식한 수레이다. 한퇴지(韓退之)의 아들 한창(韓昶)이 우둔하고 용렬하였는데, 집현전(集賢殿)의 교리(校理)가 되었다. 사전(史傳)에 ‘금근거(金根車)’란 말이 있자 한창은 그것이 잘못된 것인 줄 알고 “어찌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반드시 금은거(金銀車)일 것이다.” 하고는 ‘근(根)’ 자를 모두 ‘은(銀)’ 자로 고쳤다고 한다. 《尙書故實》
鶴峯先生文集續集卷之五 / 雜著 / 退溪先生言行錄
先生讀書。正坐莊誦。字求其訓。句尋其義。未嘗以麤心大膽讀之。雖一字一畫之微。不爲放過。魚魯豕亥之訛。必辨乃已。然未嘗割改舊字。必註紙頭曰。某字疑當作某字。其詳愼精密如此。趙上舍穆。嘗校讐心經附註。字畫之訛者。直割正之。註脚之不當刪節者。卽添補之。先生責之曰。先儒成書。何可一任己見。去取之太快如此乎。獨不思金根車之誚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