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스바 금식기도의 부흥회
본문 삼상7:5-12
서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일신인 하나님을 버리고 가나안의 바알(남신)과 아스다롯(여신)의 다산 종교를 예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치며 미스바에 모여 금식 기도회를 갖자고 외쳤습니다.
미스바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이게 되자 이스라엘 국력 회복의 가능성에 항상 경계하고 있던 블레셋 군사도 또한 운집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이 제기되는 줄 알고 겁을 먹고 공포심으로 떨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뢰를 발하시사 블레셋 사람들을 뒤덮어 패국 시켰습니다.
이것은 결국 사무엘의 명령에 의해 금식 기도를 한 결과였습니다. 이같은 내용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을 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모이기를 원하는 사무엘의 기도
5절에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기도는 혼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때때로 혼자서 기도하셨습니다(마26:36). 모세도 호렙산에서 혼자 기도했습니다. 야곱도 벧엘에서 혼자 기도했습니다. 고넬료도 집에서 혼자 기도했습니다.
이같이 혼자서 기도할 때에 개인의 소원은 이루어 지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국민적 혁신이 일어나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 합심기도를 해야 합니다. 로마의 기독교 박해가 심할 때에도 주님의 명령에 의해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120문도가 모여 합심기도를 하였기 때문에 복음이 급성장하고 초대교회에 놀라운 부흥운동이 전개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이 이들을 모이라고 한 것은 빼앗긴 법궤와 블레셋의 침공을 물리치는 것이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적인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 모여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이니 기도하자고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여 기도를 해야만이 국민적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 바로 이와 같이 모여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2. 회개를 촉구하는 기도회
6절에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당시에 있어 이들의 죄라면 하나님의 법궤를 소홀히 하여 다곤의 다락에까지 가 있게 한 것과 이방신 아스다롯을 섬긴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같은 죄를 모여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부흥은 회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찾아옵니다. 새 시대는 회개운동이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부흥은 회개하는 자를 통해서 일어납니다. 성령께서 은혜를 주시고자 하실 때는 죄를 깨닫고 회개를 한 심령에게 주십니다.
성령은 회개하는 심령에 임합니다. (시66:18)에 “내가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제 개인적으로 전 교회적으로 그리고 온 국민이 하나님의 은혜의 흐름을 막는 방해물을 제거해야겠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불신앙, 거짓된 것, 탐욕, 배은망덕, 불성실, 불신, 용서하지 않는 것, 시기, 질투, 이기심, 위선 등입니다.
다니엘은 자기 동족의 죄를 생각하고 울었습니다. 이제 우리들도 나 자신과 우리 동족의 죄를 생각하고 울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치 않으십니다(시51:17). 사무엘은 이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회개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작은 그릇은 쓰시지만 더러운 그릇은 쓰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어떻게 됩니까?
(1) 회개하면 죄사함을 받습니다.
(3) 회개하면 육신의 병도 고침을 받습니다.
(4) 회개하면 축복을 받게 됩니다.
(5) 회개하면 성령의 은사를 충만히 받게 됩니다.
오늘날의 많은 성도들은 죄를 지으면서도 죄를 회개를 할 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3. 금식의 기도의 제단
6절에 “그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식을 하면서 자신들의 죄에 대해 기도를 했습니다. 즉 그들은 음식을 멀리함으로 그들의 육신과 영혼을 괴롭히며 회개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회개 기도의 내용은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통회를 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때에 이스라엘의 회개의 참됨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사무엘의 권면을 순종하되 참되이 하였습니다. 언제나 회개와 동반된 금식은 하나의 형식이 아니고 자신을 쳐 복종시키는 양심의 표현인 만큼 참된 열매를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1. 간절한 기도를 했습니다.
간절(懇切)의 뜻은 “지성스럽고 절실함”이란 말입니다. 기도는 간절해야 합니다. 또 덥지 않은 것은 불이 아니며 간절하지 않은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를 아주 간단히 하기도 합니다. 긴 기도라야만 반드시 좋은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간절한 기도를 한 두마디로 간단히 끝내지는 않습니다.
무엇이나 간단한 것만 좋아하는 현대인은 기도도 간단히 하려합니다. 그저 해치우기 위해서만 하는 기도는 간절해질 수 없습니다. 간절한 기도는 기도외에는 달리 길이 없는 것처럼 오로지 기도에만 전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나의 기도가 꼭 그런 기도였습니다. 이는 오늘에 신앙을 형식화하려는 신앙인들이 한나의 기도를 배워서 주님이 인정하시는 기도를 하므로 응답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2. 목적이 분명한 기도를 했습니다.
그는 오직 아들을 얻기 위한 목적의 기도를 한 것입니다.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말씀은 불분명한 기도는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무엇을 구하는지 왜 구하는지 분명해야 합니다.
너무 애가 타는 기도이여서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않았지만 한나의 기도는 분명했습니다. “내게 아들을 주옵소서” “그를 드려 주의 종이 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자녀이고 재물이고 건강이고 간에 달라고만 몸부림칠 것이 아니라 왜 달라고 하는지 그 목적이 분명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임도 알아야 합니다. 기도는 확신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구한 것은 받을 줄로 믿을뿐 아니라 이미 받은 줄로 믿어야 합니다.
(사65:24)에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러기에 한나는 기도후 다시 수색이 없었고 그는 사무엘을 얻은 것입니다. 믿음없는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농락입니다.
3. 은밀하고도 겸손의 기도였습니다.
13절에 “하나가 속으로 말하여 입술만 통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고 했습니다. 어떤 때는 통성 기도를 드리지만 어떤 때는 소리없이 은밀하게 기도하기도 합니다. 한나는 은밀하게 기도했습니다.
나다나엘은 은밀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요1:48)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노라”고 나다나엘에게 말하니 나다나엘은 자기의 기도하는 모습을 주님께서 보셨다고 하자 “주여”라고 고백했습니다. 가족도 친척도 모르게 무화과나무 아래서 기도하는 나다나엘을 주님께서 보신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소리없이 기도하여도 주님은 다 보시고 들으시는 것입니다. 한나는 여종의 입장에서 기도했습니다. 자기를 당당히 내세우지 않고 비천한 하나님의 여종이라는 겸손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인의 명령에 예만 있을 뿐입니다.
4. 서원하는 기도였습니다.
11절에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서 대지 아니 하겠나이다”라고 한나는 서원했습니다.
한나는 브닌나로부터 받은 모욕과 박해 때문에 아들을 구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 큰 서원의 청구서를 냈습니다.
주님은 이런 기도를 가장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우리가 구하는 것이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한나는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했으니 그 기도가 얼마나 위대한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한나의 기도는 사무엘로 하여금 어린 시절부터 주께 마음을 바쳐 살도록 했습니다. 이와 같이 기도로 낳고 기도로 키운 자식은 훌륭한 인물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신자들에게 아쉬움이 있다면 자녀에 대한 신앙교육이 너무나 연약한 면을 봅니다.
5.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한나의 신앙은 자신의 억울함을 들어 해결하여 주실 이는 하나님밖에 없음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기도를 들이시고 한나에게 아들을 주셨으며 그 아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체험은 기도가 아니고서는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믿고 의심치 않고 간구하면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모세를 낳았고, 모세의 기도를 통하여 아말렉 군대가 전멸했고, 사무엘의 기도를 통하여 우박이 내렸고, 엘리야의 기도를 통하여 불이 내려왔으며, 솔로몬의 기도로 성전에 영광이 가득하였고, 다니엘의 기도로 하나님의 은밀을 보았으며, 바울과 베드로의 기도로 앉은뱅이가 일어났고, 초대교회 120문도들의 기도로 성령의 은사가 임하였고, 루디아는 기도중에서 바울을 만났고, 고넬료는 기도중에 베드로를 만났습니다. 옛 야곱은 얍복강을 건너오기 전 홀홀단신으로 하나님께 결사적인 기도로 마침내 승리의 형제상봉이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낙스는 기도를 통하여 스코틀랜드를 기독 국가로 만들었으며 모니카는 기도로 어거스틴을 바로 세웠고, 과거의 성도들은 혹독한 환난중에서 기도로 승리했습니다.
모든 신앙운동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한나의 믿음의 기도는 자신과 이스라엘의 새로운 신기원을 창출한 것입니다.
6. 고통중에 기도를 했습니다.
2절에 브닌나는 자식이 있고 한나는 무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주시면서 축복하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심에 따라 가정을 가진 여인이 자녀를 출산하므로 그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더우기 유대인들은 자녀가 없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저주로 인해 태가 마른 것으로 간주하여 수치와 멸시를 당했습니다. 아마 엘가나가 첩을 둔 것도 한나의 불임이 이유가 된 듯 싶습니다. 그리고 첩이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남편 엘가나는 한나에게 극진한 사랑을 쏟았습니다. 자녀를 낳고 당당해진 브닌나는 그것을 심히 질투하여 한나를 격동케 했다고 했습니다. 또 매년 여호와의 집에 제사를 드리러 갈 때마다 브닌나가 그를 격동시켰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격동이라는 말을 살펴보면 저주하다, 노하게 하다, 약오르게 하다, 울화통이 터지게 하다, 안절부절하게 하다, 자존심을 해치다, 욕보이다, 굴욕감을 준다라는 뜻으로 말합니다. 한나는 이와 같은 격동하게 됨을 당한 것입니다.
한나에게 보이는 브닌나는 남편의 대적자이며, 자기 행복의 파괴자요, 사랑의 방해자였습니다. 그리고 한나는 자식 없음에 대한 모욕과 멸시와 굴욕을 당하게 되어 울고 먹지 않았다(7절)고 했습니다.
이렇게 고통 당하는 한나를 남편 엘가나는 “내가 그대에게 열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하며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이같은 사랑으로도 한나의 슬픔을 몰아낼 수 없었습니다.
아들을 얻기 전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위로 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한나의 가정은 이렇게 불화한 가정이었습니다. 한나는 이같은 역경을 자신의 운명이라고 체념하지 않고 그 고통을 기도로써 해결을 본 것입니다.
기도는 역경도, 고통도, 모두다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힘있는 기도로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7. 응답 받은 기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생각하여 주셨습니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와 그날 밤에 자리를 함께 하였으며 그때부터 태기가 있어서 복중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때가 되매 아들을 낳아 이름을 사무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하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불가능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해와 달과 별과 지구를 만드시고 그 가운데 만물을 만드셨으니 이 어찌 인간이나 그외의 동물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남자나 여자를 만드신 이도 하나님이시며 그안에 태를 만드신 이도 하나님이라 한다면 생명의 원천이신 주님이 어찌 생명체를 못만드시겠습니까? 문제는 하나님께서 무능하시거나 약해지시거나 변질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기사 내용을 상고하면서 굳건한 신앙을 가져야 하며 어떠한 경우라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심장을 토해내는 간절하고도 생명을 건 기도를 해야 하며 특히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다는 서원 기도를 해야합니다.
득남함으로 본인의 숙원이 성취된 기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음은 물론 그의 남편 엘가나도 크게 기뻐하였으며 제사장도 크게 기뻐하였고 온 동리와 친척들이 기뻐하고 경축하여 주었습니다. 이제 한나는 모든 고독과 슬픔과 격동함 받는 것이 말끔히 끝이 났습니다. 남편 엘가나의 열 마디의 위로보다도 득남함은 하늘보다도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들이 열심으로 전도하여 하나의 새생명을 낳기 위하여 한나처럼 기도를 한다면 영적 자녀가 수없이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성령의 은사를 받기 위하여 그토록 애쓴다면 중생의 체험을 못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우리의 소원이 무엇인지 한나와 같은 믿음의 기도로 응답받는 영광을 누리십시다.
결론
무자하여 괴로워 하던 한나는 기도를 함으로 인간들이 임의로 할 수 없는 귀한 아들을 얻었습니다. 어머니로서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 더 귀한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도 이 세상에서 가장 바라는 소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기도하므로 얻어야 하겠습니다.
4. 쉬지 아니하고 계속되는 기도의 제단
8절에 “쉬지 말고 부르짖어”했습니다. 사무엘은 그 어머니의 기도의 응답으로 났고 그 자신도 역시 기도의 사람입니다(삼상12:23, 시99:6).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전쟁의 위기에 당하여 사무엘에게 쉬지 않고 기도하기를 요청하였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함은 응답되기 까지 기도함이니
* 힘써 기도함이고
* 정성을 바쳐 깨어 기도함을 의미합니다. 심령이 깨어있지 않는 기도는 느낌이 없는 기도요, 기계적 기도요, 따라서 괴로운 것이니 오래 계속될 수도 없습니다. 사무엘은 그때 이스라엘의 모든 비참한 광경을 느끼면서 기도하였으니 그 기도는 짧은 기도도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심령을 쳐드는 인격적 기도입니다. 전에 이스라엘과 아말렉이 전쟁할 때에 산꼭대기에서 모세가 손을 들고 있을 동안 이스라엘이 승리하였습니다(출17:11).
그 전쟁에서 끝까지 이스라엘이 승리하도록 하기 위하여 아론과 훌이 모세의 피곤한 손을 붙들어 해가 지도록 손이 내려 가지 않게 하였던 것입니다(출17:12). 모세의 손이 들리운 것은 그의 심령을 여호와께 쳐들어 그를 의지하는데 도움을 준 말없는 인격적 기도였습니다.
성도들이여 우리도 어떤 문제든지 응답이 있을 때까지 쉬지 않고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5. 블레셋으로 승리를 가져오게 한 기도의 제단
이스라엘의 지도자 사무엘을 위시하여 백성들이 모여 우상을 제거하고 금식과 통회하며 부르짖는 대성회가 있은 후 번제물을 드려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입니다. 이때 블레셋 대군이 기습 공격을 감행하여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방비 상태로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대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뜻밖의 기적은 번제사를 받으시고 계시던 하나님께서 큰 우뢰를 발하시게 하여 블레셋군사들을 어지럽게 하였으며 그들은 갑작스러운 뇌성병력에 놀라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동안에 이스라엘 군사들은 전열을 재정비하고 반격을 가하여 대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단체나 국가를 막론하고 성회를 선포하고 단합해 통회자복하는 합심기도와 하나님께 진정한 제사 행위를 하게 되면 어떠한 강력한 적국도, 영계의 사탄도 하나님께서 직접 싸워 이기게 하신다는 교훈을 확신하게 됩니다.
* (욘3:7-10)절에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찌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했습니다.
(요엘 2:12-14)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네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내가 크시사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고 했으며 (요엘 2:15-18)절에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 하여 열국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찌어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승리의 대세를 몰아 블레셋진의 도성들을 정복하므로 과거에 빼앗겼던 성읍들을 다시 찾았고 사무엘이 통치하는 기간은 평화가 깃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참패를 당한 블레셋은 완전히 힘이 꺾이어 재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백성들이 통회하므로 승리를 거두게 되었던 미스바 일대에 전승비겸 기념비를 세우고 “에벤에셀”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도우셨다는 뜻이며 전국 각지를 늘 순회하면서 백성들을 사랑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며 살아가는 백성들이 되도록 보살폈습니다.
6. 응답이 이루어진 기도의 제단
10절에 “그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우뢰”를 흔히 무서워합니다. 소위 동양의 성인이라는 “공자”(孔子)도 우뢰나는 밤에는 자다가도 일어나서 옷을 입고 관을 썼다고 하며 “루터”(Lutter)도 청년 시절에는 우뢰소리를 크게 두려워하였다고 합니다.
블레셋 군인들이 우뢰 때문에 두려워하여 혼란하여 졌고 마침내 도망하게 되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자연계에 속한 그 어떤 것으로도 오늘날의 핵무기 이상으로 힘있게 사용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던 애굽 백성들은 홍해 바다가 함락됨으로 수장됨으로 더 추격하지 못하고 도리어 죽고 말았습니다(출14:21-31).
* 동맹군이 기브온을 침공할 때는 여호수아의 기도로 의해 태양이 (수10:13) “종일토록 중천에 머물러 있어서 적진을 강타하여 승리를 할 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자기가 지은 자연을 통해서도 사람들의 교만을 꺾으시고 갖가지의 기적을 산출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7. 삶의 방향을 전환하는 제단
3절에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위하여”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이방신과 죄악으로 향했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바라볼 때 이스라엘에게 참된 회심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요구되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즉 우리가 진정 회심을 하려면 세상과 죄악을 향하던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이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온갖 비리(非理) 부정(不正) 우상 등을 제거 할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에서 교양되어야 할 양심 회복 진리에의 순종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실로 주님께서는 우리의 온 인격과 행동과 사고의 전 영역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상태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교제의 삶 속에서 옛 생활의 관습과 행실을 멀리하고 새 사람과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변화된 삶 즉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살며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살전1:9) 삶의 본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과연 여러분의 삶의 방향은 진정 불신자의 그것과 분명히 다릅니까? 크게 반성하고 진정한 삶을 살도록 하며 주님 안에서 온전한 생활이 되도록 해야하겠습니다.
결론
사무엘같이 이 시대를 바로 직시하여 국민적 회개 운동을 일으키는 시대적 소명자가 되어야 일어나서야 하겠습니다.
|